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비오는날 조선의 법궁 경복궁을 돌아본다, 2023년 7월 23일 본문
2023년 4주 일요일인 7월 23일 지하철 경복궁역에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가는길 불로문이 있다,
불로문은 한장의 판석으로 만든 석문으로 이 문을 통과하면 만구무강과 불로장생한다고 하는 청더궁의 불로문을 모방해 제작한 문이다, 모방을 했어도 불로문이니 당연히 불로문으로 들어갔다,
경복궁역에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가는 출구는 경복궁역 5번 출구다,
고궁박물관 출구 벽에는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되여 있는 유물들 사진을 찍어서 벽에 붙여 놓았다,
조선 태조 금보와 영친왕비 적의와 대삼작노리개 를 시작으로
영조임금 초상과
청화백자 용무늬 항아리 와 암금의 초상화를 모시는 곳에 쓰인 병풍과 제기
십장생도와
왕세자 성균관 입학식 그림에 흉배용 봉황문 목판 까지
전시되여 있는 사진 유물들을 보면서
고궁박물관 으로 나가니 7월 23일 오늘은 올 들어 가장 많은 비가 내라는 날이다,
고궁박물관 앞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이 있다,
흥례문옆 융성문으로 들어간다,
융성문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작은 건물이 수문장청 이고 그앞에 광화문이 있다,
광화문으로 들어 오면 그 다음 문이 흥례문이다, 경복궁은 광화문에서 근정전까지 일직선상에 있다,
매표를 하고나서 흥례문을 들어가면 다음 문은 근정문이고 근정문으로 들어가는 입구 영제교가 있다, 영제교는 흥례문과 근정문 사이 경복궁 금천교다,
금천교는 말그대로 금천 을 건너기 위해 세운 돌 다리 이며,금천은 풍수지리적인 이유와 외부와의 경계를 나타내기 위해 궁궐의 정문과 중문 사이에 둔 인공 개천이다. 그러나 경복궁의 경우는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가 아닌 중문인 흥례문과 정전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금천이 있다.
금천은 1395년(태조 4년) 9월, 경복궁이 창건될 때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이름도 없이 그냥 석교(石橋)라고 불렸어며.개천을 따로 파지 않고 그냥 흐르는 도랑 위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태종 대에야 제대로 금천을 팠고 세종 대에 永濟橋 영제교 라는 이름을 붙였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으로 경복궁이 폐허가 되었으나 영제교는 돌로 만들어서 큰 훼손없이 남아있었다. 이후 270여년간 방치되었다가 1865년(고종 2년)에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다시 궁궐의 금천교 역할을 했다.
금천 영제교를 지나서 흥례문으로 돌아보니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도 보인다,興禮門 흥례문은 정문인 광화문과 근정전 정문인 근정문 사이에 있는 중문이다, 원래는 1426년 세종 8년에 집현전에서 예 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 弘禮門으로 이름을 지어올렸는데, 1867년 고종4년 경복궁을 중건하면서 청나라 건륭제의 휘 홍력 弘曆 을 피휘하여 지금의 흥례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근정문은 경복궁의 정전인 근정전 정문이다,395년(태조 4년)에 경복궁을 창건하면서 함께 세웠으나 임진왜란으로 불탔고 1867년(고종 4년)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었다. 고종 시기에 중건할 때, 위치 등은 개국 초와 비슷하나 일부 부분은 달라진 듯 하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총독부청사가 근정문 앞 까지 들어 섯고 근정문 앞 흥례문은 없어지고 금천은 메워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근정문은 무사했고 625전쟁의 화마도 무사히 비껴가 오늘날까지 옛 모습대로 남아있다.
근정문 왼쪽에는 유화문과 기별청이 있고
오른쪽은 회랑이 있다,
근정문 앞에서 돌아보면 흥례문과 흥례문 지나 오른쪽 정부종합 청사등이 보인다,
조선의 법궁인 경복궁이다, 경복궁은 아래 위 층 월대 주위에 긴 댓돌을 돌리고, 그 위에 荷葉童子 하엽동자와 팔각 廻欄石 돌란대로 구성된 石欄干 석난간을 세웠어며. 각 난간의 엄지 기둥에는 十二支像 12지상을 방위 에 맞게 조각하여 정전을 상징적으로 수호하게 한 월대 위에 창건한 景福宮 勤政殿 경복궁 근정전이다,
정면 5칸, 측면 5칸의 팔작지붕 중층건물로 신하들의 朝賀 조하를 받거나 政令 정령을 반포하는 正殿 정전으로, 때로는 사신을 맞아들이기도 하고 養老宴 양로연이나 위로연을 베풀기도 하던 곳으로.
현재의 건물은 1867년에 중건 했어며, 중건 당시 태조 때의 건물을 원래대로 복구하지 않고 廻廊 회랑을 單廊단랑에서 複廊 복랑으로 바꾸고 월대(月臺 궁전 앞에 있는 섬돌)도 새로 만드는 등 변화가 있었다.
현재의 근정전은, 경복궁 복원사업의 일환으로 2000년부터 진행되어온 보수공사 결과다. 근정전의 보수는 건물을 지탱해주는 고주(高柱, 높은 기둥) 4개의 맞춤부분이 벌어지고 용마루와 처마가 처지는 등의 문제점이 발견되어 1층의 연목과 2층에 해당하는 부분을 완전히 해체하여 재 조립한 대규모 공사로, 2000년 1월부터 2003년 10월까지 46개월에 걸쳐 약 72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완료했다.
팔작지붕의 내림마루와 추녀마루, 용마루에는 모두 회반죽을 발랐고, 용마루 양끝에는 취두(鷲頭 매 머리모양의 장식)를, 추녀마루 위에는 龍頭 용두와 雜像 잡상을 배열했고 사래 끝에는 토수(吐首 龍頭, 鬼頭 모양의 장식)를 끼웠다.
건물의 외부 정면 좌우에는 청동제 향로를 놓았으며 정면 서쪽계단 옆에는 무쇠로 만든 드므(넓적하게 생긴 독)를 두었다. 드므에 물을 담아두어 이 물에 火氣 화기의 얼굴이 비치면 놀라 숨거나 움츠리어 화기가 진압된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또한, 근정전에서 근정문에 이르는 御道 어도 좌우에는 정1품부터 정9품까지의 품계를 새긴 品階石 품계석을 배열하였으며 遮日 차일을 칠 때 사용하였던 차일고리가 앞 마당에 남아있다.
경복궁 왼쪽(들어오면서 보는 방향)에서 경회루가 있는 곳으로 나가면
修政殿 수정전이 있다, 수정전은 근정전 서측에 있는 건물로, 북으로는 경회루가 자리 잡고 있다, 임진왜란때.경복궁이 불타 없어지기 전 세종ㅠ연간에는 학문을 연구하며, 왕에게 주요 정책을 자문하고 건의하던 기관으로 한글을 창제하는 등 문치의 본산이었던 집현전이 있던 곳이다,
수정전 맞은편에 사랑경복궁이 있다, 사랑경복궁이라는 이름이 거창하기는 하지만 여기는 커피등의 음료를 파는 카페다,
사랑 카페안에 문화유산투어여권 스템프함이 있다, 경복궁이 새겨진 스템프다,
스템프를 찍고 나서 수정전옆으로 간다, 수정전은 고종 때 중건되어 외조공간에 자리 잡은 왕의 편전으로 사용되었으며, 1894년 갑오개혁때에는 대한제국의 군국기무처를 여기에 두었으며, 4면에는 행각과 남쪽의 외행각이 일곽을 형성하고 있었지만, 일제 때 훼철되고 현재의 본전 건물인 수정전만 남아있다./p>
수정전 옆으로 지나가면 경회지와 경회루가 있다,
경복궁내에서 두곳의 큰 연못이 있는데 여기는 경회지다,
경회지에는 경회루가 있다, 경회루는 경복궁의 유휴(遊休) 공간으로,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사신이 왔을 때 연회를 베푸는 장소로 사용했던 누각이다. 처음 지었을 때는 규모가 작았으나 태종 대에 증축하면서 규모를 키웠다. 물론 지금 건물은 고종 때 다시 지은 것이지만 규모와 제도는 옛것을 기초로 하고 있다.
태종 때 새 누각을 완성하고 이름을 짓고자 할 때 경회(慶會)·납량(納涼)·승운(乘雲)·과학(跨鶴)·소선(召仙)·척진(滌塵)·기룡(騎龍) 등의 이름들이 후보로 거론되었다.(『조선왕조실록』 태종 12년 5월 16일) 논의 끝에 경회 로 결정이 났지만, 승운(구름을 타다), 과학(학을 타고 건너가다), 소선(신선을 부르다), 척진(먼지를 씻다), 기룡(용을 타다) 등의 이름을 보면 경회루 주변 경관을 신선경으로 상징화하려 했던 당시 군신들의 정서가 역력히 읽힌다.
증축할 당시에 경회루 연지에는 이미 봉래·방장·영주 삼신선도를 상징하는 세 개의 섬이 조성되었던 것으로 여겨지는데, 세종 대의 문신 변계량(卞季良)이 지은 「화산별곡」에 이에 관한 정보가 들어 있다.
"경회루와 광연루 높기도 높을사 넓으나 넓어 시원도 하다.
연기는 걷히고 맑은 기운 불어든다. 하늘 밖에 눈을 돌리니 강산풍월 경계도 천만 가지.
답답한 심회를 활짝 풀어준다. 올려 바라보는 경치 그 어떠한가.
봉래 방장 영주 삼신산 어느 시대에 찾아볼꼬"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일원에서 경회루로 가는 출입문도 보인다,
경회루와 사정전 일원 으로 나누어진 길에서 사정전 방향 창으로 들여더 보면
근정전 뒤에 있는 사정전이 보인다, 사정전은 근정전 뒤에 있는 편전으로 왕이 평상시에 거처하면서 정사를 보던 건물이다,
경회루에서 사랑 카페 앞에 있는 문으로 근정전으로 들어가서 근정문과 흥례문을 지나서 용성문으로 나가
국립고궁박물관 앞으로 지하철 5번 출구로 들어간다, 2023년 7월 23일 그치지 않고 내리는 빗 방을을 헤치고 둘러 본 경봉궁 일기는 여기까지다, 다음은 창덕궁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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