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한양 방어를 위한 조선 시대의 성곽 남한산성 2023, 07, 16 본문
반정으로 왕위에 오른 조선 제16대 인조는 明명과 가깝게 지내는 정책을 펼쳤다. 당시 명과 대치하고 있던 後金 후금이 1627년(인조 5년) 조선을 침략한 전쟁이 정묘호란 이며, 이 전쟁을 계기로 후금과 조선은 형제 관계를 맺었으나 두 나라의 관계가 점점 악화되자 국호를 淸청으로 고친 후금은 순식간에 한양으로 처들어 와 한강을 건너 남한산성을 포위했다.
당시 남한산성 내 식량은 두 달 분량도 되지 않았다. 고립 무원 상태로 버티던 조선은 강화도까지 함락되자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남한산성을 스스로 걸어 나온 인조는 청의 군대가 머물고 있던 삼전도에서 항복하고 굴욕적인 협정을 맺었다. 청태종은 자신의 공덕을 새긴 기념비를 세울 것을 강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송파구 잠실동에 있는 삼전도 비다.
패배의 역사가 남아 있긴 하지만 남한산성 자체는 한 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천혜의 요새다. 북한산성과 함께 한양을 지킨 이곳은 673년(신라 문무왕 13년)에 쌓은 주장성의 옛터를 활용하여 1624년(인조 2년)에 다시 고쳐 쌓은 것이다. 이후 여러 차례 개축을 했는데, 특히 한국, 중국, 일본 사이에 이루어진 교류와 서양 무기의 도입은 남한산성 축조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험준한 산세를 이용하여 정교하게 지어진 성에는 많은 건물이 있지만, 현재는 동, 서, 남, 문루와 방어시설, 군사훈련시설, 관청 등이 남아있다. 주목할 만한 건물로는 남한산성 행궁사적이다, 행궁으로 들어간다,
남한산성 행궁은 정무시설은 물론 다른 행궁에 없는 종묘사직 위패 봉안 건물까지 갖추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이곳 남한산성은 유사시 임시 수도 역할도 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이른 시간이라 남한산성 행궁은 아직 Open전이다,
open전이라 행궁으로 들어 갈 수 없어니 행궁 옆으로 올라가 본다,이곳은 역사적으로 한번도 함락되지 않은 대외 항전의 전적지로 최고 수준에 달하는 우리나라 성곽 축조 기술을 보여주는 남한산성(사적)과 역사를 함께하고 있다.
행궁 왼쪽으로 올라가다 보니 거대한 나무 한그루가 있는데 이 나무는 410년이나 된 느티나무다, 수령 410년이면 병자호란때로 인조가 이곳에 있었을때 쯤 된다,
남한산성 행궁은 다른 행궁과 달리 종묘와 사직에 해당하는 좌전(左殿)과 우실(右室)을 갖추었다. 행궁의 규모는 상궐(上闕) 73칸, 하궐(下闕) 154칸으로 모두 227칸 규모다. 상궐은 행궁의 내행전으로 정면 7칸, 측면 4칸으로 평면적 180.4㎡(55평)이다. 그 중 왕의 침전인 상방이 좌우 각각 2칸씩이고, 중앙의 대청이 6칸, 4면의 퇴칸이 18칸으로 모두 28칸으로 구성 되어있다,
행궁 담장 옆 유리로 봉인을 한 구축물이 있다, 유리 함 속에는 통일신라 시대 와적장 전시장으로 기와저장소에서 확인된 통일신라시대 대형 기와로 조선시대 기와 와는 달리 평균적으로 50cm 내외의 기와가 주를 이루고 그 중에는 64cm에 달하는 초대형 기와들이 다수 발견 되였다 고 안내 되어 있다,
이렇게 보이는 기와유물은 행궁 건물지에서 발견된 신라시대 기와로 행궁이 들어서기 전에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이미 이곳에 건물이 있었던 터로 보인다,
행궁 담장 옆에 있는 이 대형 선돌은 무슨 용도 였는지? 비가 내리는 날이라 풀이 젖어 있어 가깝게 가보는 것을 포기하고 먼 발치에서 보는 것 만으로는 알 수 없었다,,
행궁 안으로 들어 가지는 못했지만 행궁 외곽에서 풍기는 것 만으로도 400년의 역사가 느껴지는 그런 곳이다, 행궁을 구성했던 부속시설로는 左殿좌전 과 右室우실, 在德堂재덕당 , 漢南樓한남루, 人和館인화관 등이 있었다. 행궁 및 부속시설은 모두 인조 이후 건립된 것으로 19세기 초까지 계속 증축, 보수되었다.
행궁끝에서 내려가는 길에 보이는 행궁 출입문인 漢南樓 한남루 가 멋스럽게 서 있다, 임금이 서울의 궁궐을 떠나 도성 밖으로 행차하는 경우 임시로 거처하는 곳을 행궁이라 한다. 남한산성 행궁은 전쟁이나 내란 등 유사시 후방의 지원군이 도착할 때까지 한양 도성의 궁궐을 대신할 피난처로 사용하기 위해 인조 4년(1626)에 건립했다.
실제로 인조 14년(1636)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여 47일간이나 항전을 했어며 이후에도 숙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등이 여주, 이천 등의 능행길에 머물러 이용하였다. 남한산성 행궁은 1909년까지 잘 남아 있었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의해 훼손되었다. 1999년부터 발굴 조사를 시작하여 2002년에 상궐에 해당하는 내행전을 준공하고 2004년 행궁 좌전을 준공했다.
한남루는 상, 하궐을 포괄하는 행궁 외곽 담장의 정문에 해당하는 행궁 외삼문의 누각이다. 정조 22년에 광주 유수 홍억이 행궁 입구에 한남루라는 누문을 대문으로 세웠으나 20세기 초반에 붕괴되었다. 한남루란 한강 남쪽 城鎭 성진의 누대라는 뜻이며 프랑스 영사 프랑뎅(Hippolyte Frandin)이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2011년 같은 위치에 한남루를 복원했다.
한남루 오른쪽으로 남한산성 전통공윈 쪽을 바라보고 있는 인화관도 있다,
인화관도 지나서 산성로터리로 내려가다 보면 왼쪽에 종각이 있다, 종각은 아침과 저녁 일정한 시각에 종을 치던 곳으로 조선시대 때에는 주요한 지방에는 시내 한가운데 종을 매달아두고 쳤다, 남한산성 종각에는 천흥사 동종이 있었는데 남한산성으로 언제 옮겼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다,
천흥사 동종의 몸체에 새겨진 글 귀에 따르면 고려 현종 1년 1010년에 주조된것으로 원래는 고려 태조 4년 921년에 태조가 창건한 충남 천안 성거읍 천홍리 천흥사에 있었다, 이 동종은 고려시대 동종을 대표할 수 있는 우수한 작품으로 높이 170cm 입지름 100cm의 크기다, 천흥사 동종은 일제 강점기에 이왕가 박물관으로 옮겨졋다가 해방후 덕수궁미술관을 거쳐 현재는 서울 용산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여있다,
남한산성 종각의 종은 2012년에 원형의 문양 및 형태를 그대로 재현하되 타종시 종 울림이 좋게 하기 위해 약3배 정도 더 크게 베작한 것이다, 남한산성종각은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중 하나인 통치경관(읍치요소)에 해당한다,
종각을 지나면 광주시 문화관광해설사의 집 이있다, 여기가 남한산성관광안내소다, 이곳에 문화유산투어 여권스템프가 있다고 해서 찾아보니 문은 닫겨있다, 관광안내소 앞에는 남한산성 역사테마길 안내도 있는데
1코스는 장수의 길로 오래사는 장수가 아니라 남한산성이 가지고 있는 방어요새의 특징들을 살펴볼 수 있는 탐방코스다,
2코스는 국왕의 길로 행궁에서 시작하여 침괘정을 지나 병자호란시기 인조가 항복하러 성문을 나간 서문을 아우러는 탐방코스다,
3코스는 승병의 길로 남한산성을 만들때 부터 전쟁시기 남한산성을 지켰던 승병들의 생활을 알아볼 수 있는 코스 이고
4코스는 옹성의 길로 남한산성의 약점을 보완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고민을 느낄 수 있는 코스이며
5코스는 산성의 길로 하늘이 만든 성으로 알려진 남한산성의 성벽을 두루 볼 수 있는 탐방 코스로 그동안 가장 많이 다닌 코스가 5코스 였다,
남한산성관광안내에 문화유산 여권스템프가 없어니 또 한 곳에도 있다는 남한산성세계유산로 간다, 행궁앞 회전 로터리에서 동문 방향 342번 국도를 따라 내려간다,
파출소를 지나고 남한산성작은 도사관도 지나서 내려 가자보니 소중한문화유산 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여기인가보다, 하고 다가 갔더니 광주소방서다,
조금더 동문방향으로 내려가면 오른족으로 한옥이 보이는데 간판은 따로 없고
표지 동판으로 경기도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라는 안내가 있다, 행궁앞 회전로터리에서 약 500m정도의 거리다, 이곳 안내 부스에 비치되여 있는 문화유산 탐방 여귄에 스템프를 찍는다,
이곳에는 남한산성 약사도와, 남한산성내 사찰에 대한 안내판도 있는데 그 내용을 보니 나라가 있고 백성이 있어야 불교도 있다라는 전제로 남한산성에는 유독 사찰이 많다, 산성내에 잇는 사찰은 장경사, 망월사, 동림사, 옥정사, 개원사, 한흥사, 남단사, 천주사, 국청사, 영원사 등 모두 10개나 된다,
왜 이렇게 많은 사찰이 있을까? 호국불교의 성지라는 신앙적인 측면과 함께 절이 많았던 실질적인 이유는 바로 승군의 편성 때문이었다, 전 국토가 초토화 되는 임진왜란을 격은 조선은 비로서 군사력의 중요성에 눈을 뜨게 되고 승군들은 임진왜란 당시 목탁 대신 사람을 살리는 활인검을 들고 의병들과 함께 큰 활역을 했는데
임진왜란이 끝나고 인조는 1624년 남한산성을 축성하면서 임진왜란때 활약한 승병을 조직적으로 활용할 계획으로 남한산성에 총 9개의 사찰(늦게 창건한 영원사 제외)이 8도 승병들의 주둔지로 배치되였고 총괄 본부 역활을 하는 사찰이 하나 추가 되어 9개가 된 것이 오늘에 이른다, 라는 내용이다, 태극기가 펄럭이는 이 건물은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이고 주자장한켠에 있는 멋스러운 한옥 건물은 화장실이다,
남한산성세계유산센터에서 행궁으로 다시 돌아간다, 산성내 이곳은 모두가 한옥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겉으로는 모두 한옥 스타일이지만 기둥을 비롯한 벽체는 모두 콘크리트 옹벽이나 벽돌 구조다,
그래도 나름 모두 한옥스타일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보이는 모든 집들이 음식점이다,
행궁앞 회전 로터리에서 동문 방향으로 내려 갈때는 오른쪽으로 내려 갔는데 올라갈때는 반대편 인도다, 올라가는길 옆 녹지대에 大將君砲 대장군포가 있다, 대장군포는 불씨를 손으로 점화, 발사하는 유통식의 일종으로 조선후기에 사용된 화포다,
철 주물로 주조하였고, 두터운 마디를 두른것으로 포의 강도를 보완하였다, 또한 포산에 손잡이 처름 튀여 나온 砲耳 포이 부분이 특징이며 포이에 쇠고리를 달아 손잡이 역활을 하도록 했다, 전시된 대장군포는 기록과 유물울 참조하여 만든 모형이다,
中砲 중포는 불씨를 손으로 점화, 발사하는 유봉식화기의 일종으로 조선 후기에 사용된 화포다, 조선후기에는 포신의 주조술이 숙련되어 대장군포 에서 볼수 있는 죽절도 많이 감소 했다,
또한 포 앞 쪽에서 뒤로 갈 수 록 부피를 두껍게 한 것이 특징이다, 전시된 중포는 기록과 유물을 참조해 새로 만든 모형이다,
神機箭火車 신기전화차는 한꺼번에 여러개의 총통이나 신기전을 쏠 수 있게 만든 조선시대 로켓형 무기로 이동과 각도를 조정할 수 있게 만든 점이 특징이고
전투가 벌어 졌을때 빠르게 이동하여 적에게 화약 무기로 공격할 수 있었다, 전시된 신기전화차는 모형이다,
投石器 투석기는 돌을 던져서 공격하는 공성 병기로 발석기 發石車 라고도 한다,
지렛대의 힘을 이용하여 무거운 물체를 멀리 던지기 위한 도구다, 전시된 투석기는 전시용 모형이다,
온덕위에 보이는 저곳은 연무관이다, 연무관은 군사 들이 무술을 연마 하던 곳으로 인조 3년 남한산성을 쌓을때 함께 건립되었다, 이후 숙종 28년 1702년에 수어사 김재호가 대대적으로 중수 하였다, 처음에는
연무당으로 불렸지만, 숙종때 연병관이라는 현판을 하사하였고 정조때는 수어영이라고 개칭하였어나 일반적으로 연병관 또는 연무관으로 부르고 있다, 특히 조선 정조 재위 1776~1800 때에는 특별 과거시험을 치르고 무기 시연과 군사훈련이 실시된 곳이다, 고종도 이곳에서 야간 군사 훈련을 실시한 적이 있다,
남한산성 연무관은 유형문화제 제6호로 관리되어오다 2021년에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승격되었다, 또한 연무관은 세계문화유산 남한산성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중 하나인 군사경관(군사 시설)에 해당한다,
연무관에서 내려다 보이는 오른쪽에 고풍스러운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느티나무는 410년이나 된 나무다,
410년의 세월이면 병자호란을 맞아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적과 대치하던 시대로 군사가 주둔하고 있었을 때이니 이떼 누군가가 심은 나무인듯하다,
연무대에서 행궁으로 올라가면서 건너편에 보이는 음식점이다, 분위기는 모두 역사괸인듯 하다,
행궁앞 회전로터리는 성남지역에서 올라오는 버스 종점이다, 성남 산성역에서 이곳으로 연결되는 버스는 9번과 9-1번 그리고 53번 버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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