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한국 선종의 대수도 도량 송광사 上 2023, 07, 30 본문
송광사는 사적 제506호.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의 본사로 한국 선종의 대수도 도량으로 유서깊은 僧寶寺刹(승보사찰)이며, 통도사, 해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사찰로 꼽히는 절이다.
송광사 창건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으나 〈송광사사적비 松廣寺事蹟碑〉 〈보조국사비명 普照國師碑銘〉 〈승평속지 昇平續誌〉에 의하면 신라말 體澄(체징)이 길상사라는 소규모 절을 지은 것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2023년 7월 30일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에 있는 송광사를 찾아 왔다,
송광사로 들어가는 구 매표소에서 문화유산 여권 43페이지 34번칸에 여권스템프를 찍는다, 이 문으로 들어가면 불국토이니 여권에 입국 도장을 찍어야 입국이 허용 되나보다 ㅎ
송광사일주문으로 들어가면서 왼족으로 보이는 첫 건물은 송광사를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 시설(매점)인듯 하고
우거진 숲 길을 따라 올라가는 길에는
그늘도 있고 정자도 있고
개울도 있다,
그리고 개울을 건너가는 다리를 건너면
울창한 전나무 숲이 있는데
하늘 끝까지 뻗은 전나무 숲이 상상 이상이다,
전나무 숲길을 지나서는
아스팔트로 잘 다듬어진 도로지만 들어가는 오른쪽에 비석군이 있다,
가까이 다가가서 잘 살펴보면 무슨 비석?들 인지 짐작은 하겠지만 비석에는 관심이 없어니 ~ 패스다
비석군 맞은편에 빨간 목탁 다송원이 있다, 여기도 매점인듯 하다, 물론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고목 두그루가 나란히 서 있는 곳도 지나고
두번째 비석군도 지나 가니
송광사 조계문이다, 조계문은 송광사 첫 관문으로 일주문이다, 이 일주문은 신라말에 처음 세운 것을 1310년 1484년 1676년 1802년에 고쳐 지었어나 현재의 조계문은 양식상 1802년에 세운 것으로 보인다, 계단 좌우에 세운 돌 짐승은 그 형태가 모호하여 사자 같기도 하고 원숭이 같기도 하나 일주문을 들어설 것이니 몸 가짐과 마음가짐을 경건히 해야한다는 안내가 붙어있다,
일주문을 들어가서 안쪽으로 올라가면 왼쪽에 송광사 임경당이 있고
임경당 앞에는 개천이 흐른다,
그 다음으로는 개천을 건너 본찰로 들어가는 다리도 있다,
일주문 지나서 보이는 작은 건물 두동과 말라 죽은 나무가 보인다, 가늘고 긴 고사한 나무는 고향수로 보조국사 지눌(1158~1210)스님께서 송광사에 처음 오실때 짚고 오신 지팡이를 꽃으시며 시를 남겼다, 일확가 전하는 나무다,
<너와 나는 같이 살고 죽어니, 내가 떠날때 너도 떠나고, 너의 푸른 잎을 다시 보게 되면, 나도 그런 줄 알리라>라는 한시다,
그 뒤 지팡이에서 잎이 피어 자라다가 보조스님께서 입적하시니 이 향나무도 따라서 말라버리므로 고향수 라 하였다, 고향수 이야기는 1751년 이중환의 택리지에도 기록되어 있고, 1886년 순천부사 이범진이 왕실에 보고하던 지도에도 불생불멸 이라는 글자로 표시되어 있다,
근세에 이은상 선생은 이에 읆기를 "어디메 계시나요, 언제나 오시나요, 말세 장생을 뉘 있어 건지리까? 기다려 애타는 마음 임도 하마 아시리", 하니 이에 송광사 인암 스님이 화답하기를 "살아서 푸른 잎도 떨어지는 가을인데, 마른 나무 가지 앞에 산 잎 찾는 이 마음, 아신듯 모르시오니 못내 야속 합니다" 하였다,
이처름 많은 명사들이 기리는 속에 고향수는 보조스님께서 송광사에 환생하여 오시면 다시 푸른 잎을 피우게 되기를 꿈 꾸면서 불가사의하게도 800여년 동안을 이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 작은 집 두동은 세월각과 척추당이다,
19세기 초에 지어진 각으로 일주문 안쪽에 죽은자의 위패를 두고 그 영혼이 속세의 때를 벗는 관욕처(관욕 : 불교에서 제를 올릴 때 영혼을 정화하는 일)인 세월각과 척추당이다,
이곳에서는 혼백을 목욕 시켰어며, 세월각은 여자 영가, 척추당은 남자 영가의 관욕처로 사용 되었다, 정면 1칸의 규모의 작은 건물로, 내부는 현재 비어있다,
세월각과 척추당 앞 계곡을 건너 본찰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松廣寺 三淸橋 및 羽化閣(송광사 삼청교 및 우화각)이 있다,
삼청교는 일명 凌虛橋(능허교)라고도 불린다. 松廣寺成功重刱錄(송광사 성공중창록)에 의하면, 이 홍교는 1700년(숙종 26)에서 1711년 사이에 조영된 것으로 보이며, 그 뒤 60여 년이 지난 1774년(영조 50)에 중수하였다.
다리 밑으로 흐르는 계곡을 이용하여 19개의 4각 장대석을 각지게 맞춰 虹蜺(홍예)모양을 이루고 양쪽 측면으로는 막돌이 아닌 4각 판석을 쌓아올렸다. 또, 난간 받침돌과 돌출된 중심돌 위에 4개의 긴 돌을 연결하여 난간을 이루었고, 홍예 천장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머리 돌이 나와 있다.
이 虹橋(홍교)는 선암사의 승선교, 흥국사의 홍교와 같이 웅장한 멋은 없으나 건물과 함께 이중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드문 예라 하겠다. 이 虹橋(홍교)는 다리 구실도 하고 또 이 다리 위에 羽化閣(우화각)이라는 건물을 세워 사람의 통행을 돕는 이중 효과의 복도로 이용하고 있다,- 안내문 인용 -
우화각을 지나 들어가면 천왕문이다, 천왕문 좌우에는 동방의 지국천왕, 남방의 증장천왕, 서방의 광목천왕, 북방의 다문천왕 등 사천왕이 있다,
저마다 권속을 거느리고 있는 사천왕은 힌두교의 사방 수호신과 내용상 동일한 관념을 채택한 것이나, 신의 명칭에서 그 원어까지 동일하지는 않다, 원래는 고대 인도에서 세계의 수호신이었던 것을 불교가 수용한 것이다. - 다음 백과 사전 -
천왕문을 들어서면 연등 꽃이 핀 나무 사이로 송광사 鐘鼓樓(종고루)가 있다
羽化閣(우화각)과 천왕문, 鐘鼓樓(종고루) 건물은 대웅전을 향하여 일직선 상에 나란히 위치했다,
鐘鼓樓(종고루)를 지나 들어가면 송광사 대웅전이다, 송광(松廣)이라는 절 이름은 조계산의 옛 이름인 松廣山(송광산)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 이 대웅보전은 1951년 소실 후 1988년 송광사 8차 중창 당시 다시 지었다,
대웅보전에는 삼세(과거, 현재, 미래)제도를 염원하는 삼세불 즉, 과거불인 연등불, 현재불인 석가모니불, 미래불인 마글불을 모셧어며 각 부처남의 좌우에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지장보살 등 4대 보살을 모시고 있다, - 안내판 옮김 -
대웅전을 마주보고 있는 방향 오른쪽에 지장전이 있다,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주불로 모신 전각으로 지장보살의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이 섰고 그 좌우로 시왕(十王)이 모셔져 있고 천도재와 49재, 영가천도 등 각종 재를 지내는 곳이다, 시왕은 인간이 살아 있을 당시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열 분을 가르키며 사람이 죽어면 그날 부터 사십구일 까지는 7일 마다 그 뒤에는 100일, 1년(소상) 2년(대상)때에 차례로 각 왕에게 가서 생전에 지은 선악업의 심펀을 받는다고 한다,
송광사 지장전(地藏殿) 내부 오른편에는 금호아시아나 박인천(1901-1984) 초대회장과 아내 이순정(1910-2010) 여사의 위패가 큼지막하게 있다. 1985년에 冥府殿(명부전)을 허물고 그 자리에 지장전을 세웠는데, 여기에 필요한 금액을 모두 시주했다고 한다. 지장전 오른쪽 벽을 회장 부부의 위패가 넓게 차지하였다. 한자로 請入法王宮(청입법왕궁) 安心坐道場(안심좌도량)이라는 글귀도 위패옆 벽에 쓰여 있는데, 이는 관음시식 중에하는 奉安偈(봉안게)라는 기도문의 한 구절로 법왕(부처)의 궁전에 초대하여 맞아들였으니 편안한 마음으로 도량에 앉으소서.라는 뜻이다.
대웅전을 바라보는 장소 왼쪽에는 승보전이 있다, 승보사찰인 송광사를 상징하는 승보전에는 부처님 당시에 영축산에서 설법 하시던 장엄한 모습을 재현하여 부처님과 10대제자 16나한을 비롯항 1250명의 스님을 모신 전각이다,
이 건물은 한국전쟁 당시 소실된 대웅전을 송광사 7차 중창 당시에 복원하면서 지어 졋어나 8차 중창때 현재의 대웅보전을 지어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긴 것이다, 그옆 안쪽에는 용향각(응향각)이 있다, -안내문 옮김 -
승보전과 응향각 사이 오른쪽에 관음전과 문수전도 보인다,
대웅전앞 마당에는 鐘鼓樓(종고루)가 있고 그 옆으로는 성보각인 성보박물괸도 있다,
승보전옆 응향각 앞으로 들어가 보면
담장 밖으로 하사당과 삼일암도 보이고 출입문은 새로 지어진 것 처름 보인다,
대웅전 뒤 송광사 설법전은 높은 계단 위에 있다,
설법전으로 올라가는 계단과 그 옆에 있는 수선사도 보인다,
고풍스럽게 보이는 수선사 높은 언덕에 피여난 넝쿨 담장이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더욱이 기묘한 나무들 사이로 보이는 전각들은 멋스러움이 가득하다,
대웅전뒤 열려있는 창문으로 송광사 전면을 보면 이 또한 그림같은 예술 작품이다,
대웅전 뒤쪽에서 승보전을 지나 관음전으로 왔다, 관음전은 본래 聖壽殿(성수전)이라 하여 1903년 고종황제의 성수망육(51세)을 맞어 임금이 이름을 지어서 편액을 내린 황실 기도처로 건축되었어나 1957년 옛 관음전을 해체하면서 관세음 보살님을 옮겨 모시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관세음보살 좌우에 그려진 태양과 달이 고종황제와 명성황후를 상징하고 있고 내부 벽화에 文臣(문신)들이 허리를 굽히고 불단을 향해 서 있다, 또한 내외벽에는 화조도 산수화 등이 그려져 일반 사찰의 벽화와 뚜렸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 송광사 관음전의 특징이다, - 안내문 옮김 _
크고 작은 전각들을 모두 다 돌아볼 수 도 없지만 전각 이름과 용도를 다 모르니
그저 구경하는 것 만으로 만족 해야 하는 송광사,
승보전 뒤편이자 성보각 앞에는 큰 돌을 깍아 만든 샘물이 흘러 나오도록 한 사각 돌통도 만들어 놓았다,
송광사 上 편은 여기 까지다, 다음에는 송광사 下 편이 이어진다,
'국내 山行日記 > 문화유산투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여왕릉지 & 정림사지 2023, 08, 01 (6) | 2023.09.06 |
---|---|
조계종 창시자인 보조국사 지눌의 송광사 下 2023, 07, 30 (6) | 2023.08.28 |
875년(헌강왕 1)에 도선이 창건한 순천 선암사 2023, 7, 29 (14) | 2023.08.16 |
19위의 왕과 30위의 왕후 신주를 모셔놓고 있는 종묘 2023, 07, 24 (20) | 2023.08.14 |
창덕궁 선정전과 인정전 그리고 규장각 일원 2023년 7월 23일 (11) | 2023.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