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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1400년의 고찰 설악산 신흥사, 2023, 09, 09 본문

국내 山行日記/문화유산투어

1400년의 고찰 설악산 신흥사, 2023, 09, 09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9. 22. 00:02

설악동 신흥사 주차장에 1일 주차요금 6,000원 선불을 하고 신흥사로 들어간다, 대형 일주문으로 들어가면 24시간 신흥사문화재 관람료를 매표하던 매표소는 문을 닫았다, 그 뒤로 입장권 검열을 하던 출입문은 철거되지 않고 그대로 있다,

신흥사로 들어가는 입구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취소 하라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고

오른쪽 숲 속에는 신흥사 부도군도 있다, 내용은 신흥사 부도군은 19기의 부도가 무리지어 있는데 조선 인조 22년인 1644년에 신흥사가 지금의 자리로 옮겨지면서 역대스님들의 부도를 한곳으로 모았다, 

이 가운데 7기는 글씨가 닳아서 주인을 알 수 없다, 이곳 부도는 크게 두가지 모양으로 화려하게 각진 모양의 팔각원당형 부도와 둥근 종모양의 석종형 부도로, 팔각원당형 부도는 조선시대 이전까지 많이 만들어졋는데 이곳에는 대원당탑등 3기가 남아 있다, 석종형 부도는 조선시대에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이곳에는 성곡당탑등 16기가 있다,

부도가 있는곳을 지나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금강소나무가 있는 곳이다,>우리나라 소나무는 분포지역에 따라 동북형, 중부남부고지형, 금강형, 중부남부평지형, 안강형, 위봉형으로 나뉘어 지는데

그 중 설악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소나무는 금강형소나무로 금강산에서 처음 그 존재가 알려졌기 때문에 금강소나무 또는 강송이라고 불린다, 금강소나무는 줄기가 곧고 황적색인 소나무의 한 품종으로 질 좋은 목재를 생산한다,

금강소나무앞 절 건물 처름 보이는 한옥이 있는데 이 건물은 절간이 아니라 음식점이다, 이 건물 뒤에도 음식점이 있고 들어가는 길 오른쪽에도 여러곳의 음식점이 있는데 메뉴는 전 부침과 황태국, 그리고 산채비빔밥으로 통일 되어있다, 신흥사 수익 사업장(위탁운영 체제)이라서 그런가 보다,

신흥사 통일대불이다, 청동 108톤으로 1987년 8월 30일에 착공하여 1997년 10월 25일에 완공했어니 10년 동안 불사를 했다,

또한 통일대불 아래는 내원법당이 있고 신흥사 통일대불은 반세기동안 계레를 갈라놓은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는 민족의 비원인 국토통일을 이룩하고자 만들어진 것이라고 안내되어 있어며

겨자씨가 모여 수미산을 이루듯 여기 설악산 신흥사 통일대불에서 두손을 모은 우리의 정성과 염원이 쌓이고 쌓여 온 누리에 민족통일과 세계평화의 광명이 비추기를 발원한다는 내용으로 마무리를 한다,

신흥사로 들어가는 길은 3갈래의 길이다, 제일 아랫쪽 다리로 들어가는 길은 비선대로 가는 길이고 두번째 인도교는 신흥사카페로 신흥사로 들어가며 3번째 다리는 신흥사 천왕문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두번째 인도교를 건너 들어간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신흥사 카페다,

다리를 건너가면서 위쪽으로 올려다 보면 신흥사 천왕문으로 가는 다리가 보인다,

심흥사 카페를 지나서 오른쪽으로 신흥사 담을 따라 올라간다

궂이 이 길을 선택한 이유는 신흥사 담에서 자라고 있는덩쿨이 무척이나 아름답기 때문인데 아직은 단풍이 들지 않아서 녹색으로 만족 해야 할듯

신흥사 앞 곧게 뻗은 노거수 아래쪽은 신흥사 쪽으로 윗쪽은 햇볕이 드는 동쪽으로 나무가지 일부가 없다, 이렇게 의도적으로 나무가지를 잘라서 키운 것 같기도하고 원래부터 이런 모습으로 자란 것 같기도 한데 상세 내용은 알 길이 없다,

신흥사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사천왕문이다,

사천왕은 천상계의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는 四天王天의 동서남북 네 지역을 관장하는 신화적존재로 수미산 중턱 사방을 지키며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불도에따라 올바르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피고 그들을 올바른길로 인도하는 천왕들이다,

사천왕 사진에 보듯이 세명의 천왕은 무기를 손에들고 나머지 천왕은 손에 악기를 들고 있는게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천왕의 공통적인 모습이다, 신흥사 사천왕 중 무기를 들고 있는 세천왕은 붉은기와 바짝 서있는 눈썹과 수염, 화가 많이나 있는 듯한 얼굴이고 비파를들고 있는 천왕은 아래로 처진 눈썹과 수염이 특징인듯 하다,

사천왕문을 들어가면 제일 먼저 보이는 당우가 보제루다, 이 건물은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운하당과 적묵당이 있는 마당을 둘러싸 사찰 중심 영역의 공간성을 확보해 준다. 건물의 하부는 기둥으로만 구성된 열려 있는 공간으로 극락보전으로 가는 통로가 된다.

보제루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종무소 인듯하다 종무소를 필히 들려야 하는 이유는 신흠사 박물관과 종무소에 문화유산방문여권 스템프가 있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노크를 하고 종무소 안으로 들어가 문화유산방문자여권에 스템프를 찍고

돌아 나오면 보제루와 신흥사 종루가 있는게 보인다,

보제루와 오른쪽 신흥 사경판 사이로 극락보전으로 들어간다, 신흥사 극락보전은 기단은 자연석으로 쌓고, 주춧돌도 자연석 그대로 놓았으며 배흘림이 있는 둥근기둥을 세운 형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극락보전 옆에는 명부전이 있다, 산 자의 기도처인 극락보전과 사死 자 의 명복의 비는 명부전이 나란히 함께 있는 것도 불교의 특징이기도 하다,

장장 4시간이나 먼 길을 달려 신성한 장소로 왔어니 사진 한장은 남겨야 할 것 같아서다,

대웅전 맞은편 보제루로 들어간다,

보제루에서 들어온 길을 보면 사천왕문과 그옆으로는 화장실 인듯한 건물이 보인다,

보제루외 붙어 있는 종루

조선 후기로 갈수록 규모가 커진 모습을 보여주는 보제루 내에는 법고와 목어, 대종, 경판이 보관되어 있고 몇 몇의 현판과 중수기가 걸려 있다. 이 중에는 이 사찰이 왕실의 원찰(願刹)이었음을 보여 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보제루를 나가면서 보이는 명부전과 극락보전 사이 뒤쪽으로는 신흥사 삼성각이 있다,

극락보전 앞 탑등도 있다,

보제루 옆 종루도 가보았지만 들어 가는 문은 잠겨있었다,

보제루 아래층으로 천왕문으로 나가면서 보이는 신흥사 종루

천왕문을 나와 흔들바위가 있는 방향으로 올라간다, 

흔들바위가 있는 곳 까지가 신흥사 부속 암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신흥사 사천왕문에서 약 250여m 쯤되는 거리에 또 다른 다리가 있다,

이 다리가 있는 곳 건너는

안양암이 있다, 안양암(安養庵)은 신흥사 부속 암자로, 1785년(정조 9)에 창건했다. 안양암에는 아미타회상도 가 있는데 安養庵 阿彌陀會上圖는 조선시대 불화로. 2011년 8월 12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5호로 지정되었다.

안양암을 지나서 개천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여기에도 개천을 따라 임도가 개설되어 있어 길은 편하다,

가는길 오른쪽으로 2기의 부도도 보이는길 

이곳에 세워진 이정표는 설악동탐방지원센터에서 여기는 1,4km이고 흔들바위 까지는 1,4km, 울산바위는 2,4km의 거리라 알려준다, 거리 표식만 보면 왠지 만만해 보이는데

2,4km 앞에 높이 솟구쳐 있는 저 암릉이 울산바위다, 보는것 만으로도 여기는 설악산인듯

울산바위 아래서 흘러내리는 계곡은 일반적으로 보이는 하천과는 사뭇 다르다, 무겁고 큰 바위들이 거쎈 물길에 굴러가는 상상을 불러 일으킨다,

흔들바위까지는 이런 길이 대분이라서 아이들도 많이 다니는 것 같다,

신흥사 입구에 있던 금강송이 이 길에도 많이 보인다,

설악동 탐방지원센터 에서 1,9km 지점에 콘터이너 건물도 한 동이 있는데 문은 잠겨 있지만 암도도 설악산 관리동인듯 하다,

두 갈래 계곡에서 오른쪽 흔들바위 방향 계곡을 따라 올라 가는길

설악동 탐방지원센터 2,2km 지점에

신흥사 부속암자인 내원암이 있다, 內院庵 은 선정사의 옛터에 세워진 신흥사 부속암자로 652년(진덕왕 3)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여 능인암이라 했어나 698년(효소왕 7)에 불타버렸다, 701년 의상대사가 이곳에 선정사를 짓고 아미타삼존상을 봉안하였어나 1642년(인조20년)에 다시 소실되었다,

그 이후로도 중창과 화재등이 계속 반복되어 오다가 1936년에 다시 전소된 것을 중건해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있는 당우로는 법당과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다, 그러나 2023, 9, 9, 현재도 공사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