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봉화길(2023년 11월 11일 개통) 본문
봉화대로
조선시대 간선도로망 6대로 체제에서 평해로와 영남로(동래로)라는 두 대로 사이의 간선도로의 하나로 서울에서 경북 봉화로 이어지는 큰 길이었다,
1770년 신경준의 도르고 에서 봉화로는 정식 간선도로망 중 하나로 인정 받지는 못하니 점차 상업의 발전으로 인하여 10대로의 도로망 확장체제에서 경북지역을 연결하던 길이었다,
한양에서 광주와 이천을 거쳐 충주까지 이어지는 봉화로의 노선은 거의 직선에 가깝고 기복이 적어 최상의 교통 여건을 구비한 곳이였으며, 한강 유역에서 상업 활동을 하던 상인들에게 주요한 상업로로 활용 되었다,
특히 봉화로는 노선이 거의 직선에 가깝고 기복이 적고 강이나 내(川)는 건너기 힘든 장애물이 없어 최상의 교통여건을 구비하여 "소의 이동" 이 보장되는 牛路(우로)로 활용되었다,
봉화로의 중요성은 역대 조선왕조의 실록과 왕실족보인 璿源譜(선원보)가 移運(이운) 되던 역사 保障(보장)의 길이라는 것이다,
태백산로라고 불리기도 한 봉화로는 10대로 중 종점이 유일하게 내륙인 것도 특징이다, 현재 남겨진 문화유산은 옛 선조들의 생활문화의 큰 줄기가 되는 도로(옛길) 주변에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존재하는데 봉화로 역시 많은 유산과 지역의 명소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도보길 이다,
경북봉화에 있었든 태백산 사고(史庫)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봉화길
경기도는 하남, 광주, 여주, 이천시, 경기문화재단과 함께 봉화대로의 옛 노선을 연구 고증하고, 그 원형 노선을 바탕으로 봉화길을 조성했다,
다만 옛길의 멸실, 각종 도로에 의한 노선 단절, 도보자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 구간 등을 대체할 대체로를 개척하여 봉화대로를 따르는 역사문화 도보탐방로 봉화길 137km를 새롭게 개통했다,
역대 조선왕조의 실록과 왕실족보인 선원보(璿源譜)가 이운(移運) 되던길
덕풍천길은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오는 첫 관문이다, 하남의 앞 마당이라 불리는 당정뜰을 시작으로 덕풍천산책로를 따라가게 되는데 자연의 정취를 사계의 변화와 함께 즐길 수 있는구간으로
경기지역에서 유일하게 평야에 세워진 광주향교를 지나 덕풍천변도로인 고골로를 따라 남한산성 북문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봉화로의 원형과 상당부분 일치한다,
특히 이길은 병자호란 때 청군과 대치하여 남한산성에서 45일간 항전할때 보부상들의 희생적인 보급로로 이용되는 등 국난 극복의 현장이기도 했다,
봉화로를 걸어면서 역대 조선왕조 실록과 왕실족보가 이운 되던 역사 보장(保障) 의 흔적을 느껴보자,
덕풍천길(13km)
소요시간 4시간20분 ~ 4시간40분 난이도 보통
코스 : 하남검단산역 ~ 당정뜰 ~ 하남시청 ~ 광주향교 ~ 남한산성 북문 ~ 남한산성 로터리
교통편
- 하남검단산역 2번출입구
- 남한산성로터리 52, 9, 9-1 ㅡ> 성남 산성역
스템프
1) 하남검단산역 2번출입구 은방울공원(하남시 대청로 109)
2) 광주향교(하남시 대성로 12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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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들이 한양으로 과거를 보기 위해 걸었던 과거길
한양삼십리 누리길은 남한산성의 역사와 문화를 널리 알리고자 조성된 숲길이다, 목현동에서 남한산성면 산성리를 잇는 12km의 등반코스로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기위해 넘었던 길입니다,
합격바위와 세오고개의 돌무덤은 선비들의 염원이 담겨있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목현1동 마을회관 이정표를 따라 검복리, 산성리, 불당리, 오전리를 지나 목현동에 이르게 되는 구간은 옛길릐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수많은 사연을 품은 구간으로 대자연의 정취와 함께 걸어보기 바랍니다,
한양삼십리길(19km)
소요시간 : 5시간 30분 ~ 5시간 50분 / 난이도 매우 어려움
코스 : 남한산성로터리 ~ 검복리새마을회관 ~ 히든카페 ~ 목현1동마을회관 ~청석공원 ~ 경기 광주역
교통편
갈때 : 성남 산성역 52, 9, 9-1, 남한산성로터리
올때 : 경기 광주역(광주버스터미널 에서 1,6km)
스템프
히든 카페 맞은편 황소상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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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을 이어온 광주의 세월을 느껴보는 길
광주는 940년(고려 태조 23)에 廣州라는 지명을 쓰기 시작해 1,000년을 넘게 써온 지명이다,
넓을 광(廣)을 쓸 만큼 드넓은 지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수원으로 편입된 일부 면과 서울 강남 및 강동구, 남양주 일부, 의왕과 군포, 성남, 하남, 일대가 모두 광주 였습니다, 이렇듯 넓고 광활한 지역라는 뜻으로 너른고을 이라 하였습니다,
국수봉 정상에서 광주의 드넓음을 느끼고 곤지암천에서 세월 속에 간직된 나의 의미를 찾아보기 바랍니다,
너른고울길(15km)
소요시간 3시간 50분 ~ 4시간 10분
코스 / 경기광주역 ~ 청석공원 ~ 국수봉 ~ 전망대 ~ 초월역 ~ 곤지암역
교통편역
경기광주역 ~ 곤지암역
스템프
국수봉 정상(전망대 정자 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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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지암에 깃든 이야기 역사의 위인을 찾아 가는 길
곤지암의 어원은 옛날 이 마을 뒷산 끝 자락에 연못이 있는 곳에 바위가 있다고 하여 뫼 곤(崑), 못 지(池) 바위 암(巖) 자를 써서 곤지암이라고 유래 되었다고 합니다,
이 일대는 조선시대 부터 교통의 요충지로 이곳을 거처가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이 때문에 곤지암 주막촌과 5일장이 유명했습니다,
광주에서 곤지암까지 가기 위해서는 대쌍령과 소쌍령이라 불리는 두 개의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신립장군의 이야기가 전해 옵니다,
신립장군의 혼이 두 개로 쪼갰다는 넋고개 전설과 벼락이 쳐서 바위가 갈라졋고 지금도 그 바위 위에서 향나무가 약 400년 넘게 자라고 있다고 합니다, 조선 중기의 명장인 신립 장군을 기리며 곤지암 바위를 찾아보기 바랍니다,
곤지암바위길(11km)
소요시간 : 3시간 10분 ~ 3시간 30분
코스 : 곤지암역 ~ 동원대학교 ~ 이천의병전적비 ~ 신둔도예촌역
교통편 : 곤지암역 ~ 신둔도예촌역
스템프
1) 봉현전 정자 옆(광주시 곤지암읍 봉현리 265-1)
2) 이천의병전적비(이천시 신둔면 수광리 산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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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섭대천의 이천 삼국시대 격전장의 역사를 담은
남천주길은 이천의 유래를 찾는 여정입니다, 삼국시대부터 이천 일대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심했습니다
우선 고구려 때 남천현(南川縣)이 되었어며 568년에는 신라에서 남천주로 명명하고 행정구역화 하였습니다, 고려 태조인 왕건은 후백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하여 지금의 복하천( 福河川)에 이르렀을때 서목이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건널 수 있었습니다,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 후 왕건은 이섭대천(利涉大川) 이라는 글귀를 내려 주었고 여기서 이천이라는 지역명이 비롯되었다고 전해 집니다, 설봉산의 수 많은 문화 유산과 이천 지역과 관련된 이야기를 주목하며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남천주길 (16km)
소요시간 4시간 50분 ~ 5시간 10분
교통편 : 신둔도예촌역 ~ 부발역
스템프
설봉공원 안내센터(이천시 경춘대로 2709번길 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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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궤열차, 수려선(수원 - 여주)의 옛 흔적을 찾는길
골내근은 고구려 때 불렸던 여주의 최초 지명입니다, 이 일대는 남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벼농사 짓기에 최적의 지역이기도 합니다,
특히 1930년부터 1972년 까지 수원에서 이천을 거쳐 여주를 잇는 수려선 협궤열차가 지나 갔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기에는 이천과 여주 일대에서 생산되는 쌀을 인천항까지 운송하기 위해서였고 해방 후에는 도민의 사연을 가득 담은 이동 수단이 였습니다,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들지만 협궤열차의 흔적을 상상하며 걸어 보시기 바랍니다,
골내근길(14km)
소요시간 2시간 50분 ~ 3시간 10분
코스 : 부발역 ~ 수정리마을회관 ~ 세종대왕릉
교통편 : 부발역 ~ 세종대왕릉
스템프
수정리 마을회관(이천시 부발읍 황무로 1833번길 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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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릉(寧陵)을 참배하기 위해 임금이 걸었던 거둥길
거둥길은 왕이 선대왕의 능에서 제사를 주관하기 위해 오가던 능행길을 말합니다,
여주에는 조선의 4대 임금 세종대왕의 영릉(英陵)과 17대 효종대왕의 영릉(寧陵)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세종대왕이 후손에게 남긴 휼륭한 업적들과 그 업적의 바탕이 된 애민정신을 되새겨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효종대왕의 북벌에 대한 의지를 느껴볼 수 있는 구간입니다,
효종대왕을 참배하기 위해 수 많은 임금이 걸었던 길을 생각하며 걸어보시기 바랍니다,
세종효종길(11km)
소요시간 : 3시간 50분 ~ 4시간 10분
코스 : 세종대왕릉 ~ 이인손묘 ~ 세종대왕기념관 ~ 세종산림욕장 ~ 대로사 ~ 한글시장 ~ 여주향교 ~ 여주역
교통편 : 세종대왕릉역 ~ 여주역
스템프
세종산림욕장입구(세종대왕릉면 왕대리 9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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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들녁의 비경을 찾아가는 결실의 길
자채방앗길은 사계의 변화를 누릴 수 있는 결실의 길입니다, 이천시 중심을 가로 지르는 복하천과 그 지류 일대의 모심기부터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때 까지 농부들이 흘린 땀방울의 결실을 체험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특히 자체벼는 이천지방을 중심으로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 되었던 양질의 재래종 벼를 말하는데 밥 맛이 유별나게 좋기 때문에 임금의 수라상에 올리는 진상품으로도 유명했습니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땅이 넓고 기름져서 백성은 많고 부유하다 고 할 만큼 벼 농사로 이름난 지역이었습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변화되는 주변의 풍경을 느끼며 걸어보시길 바랍니다,
자재방앗길(20km)
소요시간 : 5시간 50분 ~ 6시간 10분
코스 : 부발역(1번) ~ 한국기독교역사박물관 ~ 무우정 ~ 성호호수연꽃단지 ~ 성호저수지 ~ 설성면행정복지센터
교통편
부발역 1번 출입구 ~ 금당리 설성면사무소(51106) 정류장 20-9,20-51,20-6 태평터미널 이동 1336번 환승 동서울
스템프
1) 무우정 정자입구(이천시 대월면 358번길 168-24)
2) 성호 호수 연꽃단지 입구(경기 이천시 설성면 장천리 8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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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성산 정상에서 느껴지는 여운 역사 보장의길
설성산은 산 정상에 설성(雪城)이라 불리는 성이 있어 설성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설성은 신라가 성 쌓을 마땅한 곳을 물색하기 위해 이천 일대의 여러 산을 헤메다가 설성산에 와서 보니 이상하게도 지금의 성이 쌓여진 자리에만 돌아가며 띠를 두른 듯 흰 눈이 내려 있어서 눈의 자취를 따라 성을 쌓고는 이름을 설성이라 했다고 전해집니다,
설성산은 등반한 고도에 비해 정상에서 바라본 전경은 묘한 여운을 느낄 수 있습니다, 청미천을 따라 하천변에 수놓은 들꽃의 향기를 느끼며 봉화길의 마침표를 찍어 보시길 바랍니다,
설성산길(16km)
소요시간 : 4시간 30분, 5시간
코스 : 설성면행정복지센터 ~ 성호저수지 ~ 설상산 ~ 이천선읍리석불입상 ~ 청미교사거리(경기도 경계)
교통편
갈때 : 동서울 1336번 태평터미널 20-9,20-51,20-6 버스 환승 ~ 금당리 설성면사무소(51106) 하차
올때 : 청미교사거리에서 650m 감곡버스터미널 1336 동서울
스템프
1) 설성산성 인근 이천선음리 석불입상(장호원읍 선읍리 899-3)
2) 청미교 사거리 쉼터(경기도 경계) 장호원리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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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7대로 전도
경기옛길 봉하길 스템프 용지
봉화로(奉化路) - 사고(史庫) 로 통하는길
여암 신경준(1712-1781)은 1770년에 그의 저작 도로고(道路考)에서 처음으로 조선의 간선도로를 6대로(大路)로 파악하고 이후 고산자 김정호(?~1864)는 1860년대에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10대로로 확대해 규정했다, 약 100년 사이에 4개의 대로가 추가된 셈이다,
이중 첫번째 대로(大路) 즉, 조선시대 7대로가 곧 봉화로(奉化路)이다, 奉化路에 大路의 자격이 부여된 때는 19세기 초반으로 임원십육지(林圓十六志)와 산리고(山里考)등의 자료에서 이를 알 수있다,
봉화로의 출발점이 한양인 것은 다른 대로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종점이 보통의 고을이 아닌 태백산사고(太白山 史庫)라는 특정 지점인 것이 이채롭다, 이 사고가 설치된 곳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의 각화산 산중이다, 조선의 실록은 처음에 춘추관과 충주사고에서 보관했는데 세종 대에 이르러 증설의 필요를 느껴 경북 성주와 전북 전주에 사고를 더 설치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 전주본을 제외한 다른 실록이 소실되었고 이에 전주본을 바탕으로 명종까지의 실록을 다시 만든후 평북 영변의 묘향산에 사고를 설치해 전주본을 옮기고 강릉 오대산과 봉화 태백산, 무주 적성산에 사고를 더 지어 새로 간행한 실록을 분산 보관하기 시작했다,
전주본은 이후 1628년(인조 6)에는 강화의 마리산으로, 1660년(현종 1)에는 같은 섬 안의 정족산으로 옮겨 다니게 된다,
500년을 써 내려온 역사 기록물인 조선왕조 실록은 한국이 자랑할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이에 조선 왕조실록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더불어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되었으며 2001년 9월에는 승정원 일기와 프랑스에서 소장하고 있는 직지심체요절(하권)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세계기록유산은 2004년까지 세계적으로 총 90건이 지정되어있다,
봉화로의 종점이 하필 태백산 사고 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주, 무주, 강릉, 강화 등이 각기 통영로, 제주로, 평해로, 강화로, 본선 또는 지선이 지나고 있으므로 사고는 기본적으로 대로로 연결되는 주요 지점으로 인식 되었던 듯하다,
대강의 봉화로 경로를 살펴보면 한성의 동대문이나 광희문을 나선 봉화로는 살곶이 다리로 청계천을 건넌 후 송파진, 광주 경안동과 곤지암, 이천, 음죽을 경유해 경기도를 벗어나고 이후 충주, 단양, 죽령, 풍기, 영주 등을 지나 봉화까지 이어진다,
봉화로는 경기도 이천과 충청도 충주의 가흥창 및 서팡에서 분기하는 3개의 1차 지선이 있는데 여주, 제천, 영춘, 청풍, 순흥, 예안 등이 이들 지선으로 연결된다, 봉화로 도로 관리는 한성에서 음죽까지는 경안도(慶安道)에서 이후의 구간은 연원도(蓮原道)에서 담당했다,
오늘날 봉화로 노선은 대체로 서울에서 장호원까지는 3번 국도, 장호원에서 충주까지는 38번국도, 충주에서 죽령까지는 36번 국도, 죽령 이후 봉화까지는 5번 국도 및 36번 국도로 연결이 된다, 대동지지 에 의거한 경기도 내의 봉화로 노선은 다음과 같다,
경도(京都) ~ 전곡교(箭串憍, 10리) ~ 송파진(松坡津, 5리) ~ 가장 가까운 남쪽의 율현까지 15리, 추령ㄲ자 30리, 용인까지 20리, 가장가까운 남쪽 나루인 심정까지 20리, 이보현까지 5리, 신현까지 15리, 경안역까지 10리) ~ 검북참 15리, ~ 경안역(慶安驛, 15리) ~쌍령점(雙嶺店, 10리) ~ 곤지애 10리, 광현(廣峴 15리) ~ 이천(利天) 20리)로 서울에서 130리, 분기점 ~ 장동점 30리(광현으로 진입하지않고 이천까지는 직진 고리로 45리) ~ 음죽(陰竹 20리, 서울에서 180리, 덩븍방향의 여주까지 50리) ~ 장해원(長海院 10리) 다,
"대동지지(1864년)" 봉화로 원형노선
한양 ~ 봉화 전체 500리, 196km
(한양) 전곶교 -> 신천진 -> 송파진
(경기) 율목정 -> 남문 -> 검북참 -> 경안역 -> 쌍령점 -> 곤지애 -> 이천 -> 장호해원
(충북) 오갑 -> 용당 -> 충주 -> 활강역 -> 수산역 -> 장위점 -> 단양 -> 죽령
(경북) 창락역 -> 풍기 -> 창보역 -> 연천 -> 내성점 -> 봉화
"자전곶교지 광주략도" 남한산성 옛길
"대동지지"의 정리고 성내분로조(城內分路條)에 따르면 도성에서 살곶이다리(서울시 사근동)까지의 길은 흔인문, 동묘, 영도교, 왕십리, 차현을 지난다, 영더교는 청교천 본류에 가로놓인 다리로 황학동에 있었고 황학동에서 중앙 시장을 지나 왕십리길을 통해 살곶이 다리까지 이어졋다, 차현은 수레릐 왕래가 빈번해 붙은 이름으로 현재 한양대학교 교내에 편입돼 있다,
살곶이 다리는 중량천에 놓여진 다리고 이를 건너면 뚝섬(살곶이 벌), 자양동, 신천진(서울시 신천동)으로 이어진다, 신천진은 잠실도(蠶室島)의 북안에 위치한 나루로 남안에는 잠실이 있었고 여기서 한강을 건너면 송파진에 닿았다, 지금은 신천진 자리에 잠실대교가 놓였고, 송파진은 송파대로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정황은 1890년 중반에 측도된 구 한말 한반도 지형도(남용우 편, 1996, 성지문화사 영인본)와 1910년대 일제가 제작한 5만분의 1 지형도에 잘 나타나 있다,
송파진 건너 이후의 봉화로는 문정동까지 송파대로와 일치하고 올림픽훼밀리타운 아파트단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송파세무서, 서울여학생 생활교육원, 하남시 학암동, 남ㅎ나산성까지, 남한산성 부터는 308번 지방도로를 따라 검북참(광주 중부면 검북리) 오전리, 새오고개, 목현리 경안리까지 이어진다,
광주는 1626년(인조 4)에 남한산성을 쌓고 하남시 춘궁동 일대에 있던 치소를 성 안으로 옮겼으며 1795년(정조 19)에는 읍격이 유수부로 승격하였다, 읍치가 성 밖 경안리로 나온 것은 1906년으로 경안리는 오래 전부터 경안역, 파발막, 관청, 장시가 밀접한 광주의 중심 지였다,
경안리에서 장호원까지는 3번국도와 거의 일치한다, 대쌍령과 소쌍령으로 이어지는 쌍령은 대도여지도에 따르면 그 너머에 쌍령점이 있으므로 오늘날 쌍동리에 해당할 것이다, 이곳에서 경안천의 지류인 곤지암천이 합수 한다,
곤지애(실촌면 곤지암리)역시 경안동과 마찬가지로 5일장의 역사가 오랜 곳이다, 마을 서쪽에 뾰죽바위를 곤지바위로 부른데서 이름이 붙은 곤지암은 봉화로를 기반으로 실천면은 물론 이 일대의 상업요지로 기능해 왔으며 최근에는 중부고속도로릐 인터 체인지가 건설 되면서 중심성이 더욱 높아 졋다, 넋고개로도 불리는 광현(실촌면 신촌리)은 경안천과 복하천의 분수령이 되면서 동시에 광주와 이천의 경계점이 된다, 장등점은 여주군 가남면 태평리 섬배(蟾背, 섬비)마을로 추정된다,
음죽은 청미천 유역에 위치한다,1914년 이천으로 편입되면서 청미면이 되어 군으로서의 이름을 잃었다, 장해원은 오늘날 장호원으로 음죽의 치소가 장호원읍 선읍리에 있었다, 장호원은 전국으 ㅣ시장 정보가 최초로 수록된 자료인 :동국문헌비고"(1770) 때부터 지금까지 5일장이 개시되는 곳으로서 음죽의 전통적인 상업요지다, 장호원은 일찍이 1941년에 읍으로 승격된다,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김종혁 연구교수, 역사지리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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