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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서울둘레길 8-3코스 화계사 2024, 04, 28 본문

Trail(둘레길)/서울둘레길

서울둘레길 8-3코스 화계사 2024, 04, 28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4. 5. 13. 00:14

화계사(崋溪寺)는 백운대 만경봉으로 북한산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삼각산(三角山)의 동남쪽 칼바위 능선 끝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교구 소속의 전통사찰이다. 중종 17년 1522년에 신월선사(信月禪師)가 창건한 절로 

원래는 고려 광종때 법인대사(法印大師) 탄문(坦文)이 지금의 화계사 근처인 삼각산 부허동(浮虛洞)에 보덕암(普德庵)을 창건 하였으며 1522년 신월이 서평군(西平君) 이공(李公)과 협의하여 지금의 화계사 자리로 옮기고 법당 3처(處)와 스님들의 요사(寮舍) 50칸을 지어 화계사라고 고쳐 불렀다고 하는 절이다, 

화계사로 들어가면서 처음으로 보이는 곳은 오른쪽 언덕에 있는 부도전이고 건물로는 조인정사다,

조인정사앞 문 기둥을 지나 들어가면 왼쪽에 450년 느티나무가 있고 그 옆에 3층 건물인 대적광적이 있다, 

대적광적 앞에는 범종각(梵鐘閣)이 있는데 1972년에 조성된 옛 梵鐘閣은 특이한 2층 6각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당시 화계사에서 가장 멋진 건물이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 노후화로 인한 안전문제로 철거되고 2010년 3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일 목조 건물인 현재의 범종각이 건립되어 이 곳에 사물(四物)을 함께 봉안했다.

대적광적과 범종루는 이렇게 배치되여 있다,

화계사 동종은 사인비구 제작으로 조선시대 승려 사인이 보조장인 5명과 숙종 9년에 만든 범종으로, 원래 영주 희망사에 있었는데 고종 35년에 화계사로 옮겼다, 종각에 걸어두는 범종과 법고, 운판, 목어를 불구(佛具) 사물(四物)이라하는데, 사찰에서 의식의 시작을 알리거나 공양 또는 함께 일할 때 대중을 모으기 위해 사용된다.

장엄하게 울리는 소리는 종교적인 분위기를 극대화하며 종소리를 듣는 사람은 자신의 악업을 깊이 뉘우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도록 인도 한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종소리가 울려 퍼지듯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친다는 뜻도 담겨 있다,

사인비구 제작 동종 꼭대기에는 두마리의 용의 머리가 서로 연결되어 잇는데 이는 종을 매는 고리인 용뉴 역활을 한다, 보통 범종의 용뉴는 한 마리 용으로 된 장식과 음통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과는 달리 이 종은 음통이 없고 쌍용으로 장식된 것이 특징이다, 몸통의 윗 부분은 범자문으로 장식되어 있고 아랫부분은 보상화문과 장초문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종각을 지나 대웅전과 명부전, 삼성각, 나한전으로 가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오른쪽에 조실채와 요사채가 있고 그 옆으로 미륵전으로 가는 길이 있다,

미륵전은 우측 언덕 높은 곳에 있는데 미륵부처님은 석가모니 부처님 열반 후 56억7000만 년 뒤 이 사바세계가 인간의 수명은 8만4000세요 지혜와 위덕이 갖추어져 안온한 기쁨으로 가득차 있는 이상적 국토로 바뀐 세계에 출현하시는 부처님이시다.

화계사 미륵부처님은 2015년 11월 미륵존불 조성을 결의한 이후  2019년 5월 5일 12존불 안치 7일 특별기도 입재를 통해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밝은 햇살 아래 동쪽을 향해 편안하게 앉아 계시는 화계사 미륵부처님은 우리가 소원하는 바를 무엇이든 언제까지든 들어주실 것만 같은 모습이다

조실채와 요사채 앞쪽 종무소와 명부전 사이로 대웅전으로 들어간다, 종무소(宗務所)는 절의 사무를 맏아 보는 곳이다,

종무소와 명부전 사이로 들어가면 대웅전(大雄殿)이 있다, 현재의 대웅전은 1870년(고종 7년) 대덕(大德) 용선(龍善)과 초암(草庵)스님이 흥선대원군의 지원을 받아 중수했다.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로 지붕옆 면이 여덟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며 제법 높은 단 위에 세워져 있어 앞 마당에서 올려다보면 지붕의 양쪽이 마치 커다란 새가 날개를 펼친 듯 활력이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양 옆에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모셔져 있다. 현재의 불상은 도난 및 훼손으로 1983년 주지 진암 스님이 다시 조성 봉안한 것이다.

후불탱화는 1875년에 화산(華山)이 조성한 것으로, 주불은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으며 주변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 보현보살, 문수보살, 지장보살 등과 사천왕, 십대제자 등이 그려져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곳으로 절의 중심이 되는 건물로, 대웅전이라는 뜻은 세상을 밝히는 위대한 영웅을 모시는 전각이다, 화계사 대웅전은 고종 7년에 흥선대원군의 지원을 받아 중수했다, 기록에 따르면 석수 30명 목공100여명이 수개월 만에 완공했다고 하며 왕실의 지원을 받아 지어져 궁절 이라고도 불렀다, 건물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관청 건물에만 사용하던 용두와 드무(화재를 막기위해 물을 담아 놓는 솥 모양의 용기)가 배치되어 왕실 원당의 품격을 보여준다,

대웅전 왼편에 자리 잡은 천불오백성전(千佛五百聖殿)은 오백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건물 자체가 높은 단 위에 설치된 데다가 내부에 많은 나한상(像)을 봉안하고 있다. 봉안된 조각상은 찬하(餐霞) 최기남 거사가 조성한 것으로, 최기남은 1915년 관직에서 물러나 금강산에 들어가 조국의 광복을 기원하며 십팔나한상과 천불상, 오백나한상 등을 조각하였다.

나한(羅漢)은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성자를 가리키는 말이다.최고의 깨달음을 얻었으므로 부처님이나 보살 못지않게 공양을 받을 만한 위치에 있다. 그래서 나한을 모신 건물에는 흔히 오백나한전, 나한전, 또는 응진전,이라는 이름이 붙는데, 이곳만은 특이하게 천불이 덧붙여져 있다. 그래서 법당에 불상이 천 개 모셔져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오백나한과 석가모니불, 관음보살, 지장보살이 모셔져 있다. 건물 이름에 천불이 붙어 있는 것은 천불전과 나한전을 겸한다는 의미이다.
 
천불오백성전 주련
通化玄關眼底尋(통화현관안저심) 깊고 오묘한 가르침 깊이 들어가니
色卽空兮空是色(색즉공혜공시색)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네
此時瓦石卽黃金(차시와석즉황금) 이때에 기와장이 황금이 되는 때이니
道心脈脈意沈沈(도심맥맥의심심) 보리 구하는 마음 계속 깊이 이어가네.

대웅전 문미(門楣)에 걸려 있는 현판은 김정희의 제자 위 신관호(申觀浩)가 쓴 글씨이다

대웅전 오른쪽에 명부전(冥府殿)이 있다, 명부전은 저승(명부)의 세계를 상징적으로 꾸며놓은 전각으로. 죽은 사람들을 고통에서 구원해 주고자 대원력을 세운 지장보살(地藏菩薩)을 모신 곳이며, 또한 저승의 심판관인 열 명의 왕을 모신 곳이라고 하여 지장전(地藏殿) 혹은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한다.

 

한편에 생전에 저지른 죄를 비춰볼 수 있는 업경대가 설치되어 있다. 업경대로 죽은 사람의 죄를 비춰보고 시왕들이 문초를 하며, 이때 지장보살이 망자의 변호사가 되어 망자의 선행을 찾아내 변론을 해 주는데, 그 결과에 따라 극락이든 지옥이든 삼계(三界) 가운데 어디론가 망자를 보내게 된다.

망자는 죽은 지 49일째가 되는 날에 심판의 결과(업의 선악)에 따라 다음 세상으로 가게 되는 까닭에 후손들은 이날 특별히 정성을 다해 불공을 올린다. 죽은 이가 마음의 미련을 버리고 다음 세상으로 편안히 갈 수 있도록 기원하는 의식을 49재라 한다. 자신의 조상이 좋은 곳으로 가기를 바라며 49재를 지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 민족이 효(孝)를 가장 중요한 인간의 도리로 여기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명부전은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셔오라는 왕명을 받아 황해도 백천(白川)의 강서사(江西寺)에 있던 지장보살과 시왕상을 이곳 화계사로 모셔 1877년에 봉안하고 익년(1878년)에 초암스님이 조대비(趙大妃)의 시주를 받아 중수한 것이다. 2001년 기와를 바꿔 얹고 외벽 채색은 물론 내부의 지장보살상, 각종 시왕상, 동자상 등 말끔하게 단장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친필 현판이 걸려있다,

대웅전 좌우로 천불오백성전과 명부전이 있고 천불오백성전 뒤에는 삼성각과 삼성암이 있다, 이제는 나가야하는 시간이다, 계단으로 내려가면 종각과 대적광전이 붙어있는 것같이 보인다,

대적광전(大寂光殿)은 1991년 정수스님이 조성한 현대식 복합건물이다. 비로자나불은 연화장(蓮華藏) 세계에 있는 부처님으로 연화장 세계가 장엄하고 진리의 빛이 가득한 대적정(大寂定)의 세계이므로 전각 이름을 대적광전이라 한다. 현재 대적광전 1층은 공양간, 2층은 불교대학 강의실과 스님들의 요사, 3층은 법당, 4층은 시민선원으로 운용하고 있다.

화계사를 나가는길 왼쪽으로 부도전 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보인다,

화계사를 나와서 돌아보면 조인정사 끝으로 대적광전과 범종루로 들어가는 문 기둥이 있다,

화계산 일주문(一柱門)이다, 일주문은 절에 들어가는 어귀에 우뚝 서 있는 문으로, 기둥을 양쪽에 하나씩만 세워서(一柱) 지어진 것이 다른 건물과는 다르다. 이 문을 경계로 세간(世間)과 출세간(出世間)으로 나뉜다. 이 문을 들어설 때는 오직 일심(一心)에 귀의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화계사 일주문은 1998년에 조성되었다.

화계사 가람배치도

본문에 설명한 내용은 화계사 홈페이지와 안내문에 있는 내용을 옮겨 적은 것임을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