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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진달래능선에서 백련사, 인수재, 419민주묘지역까지 24, 5, 12,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진달래능선에서 백련사, 인수재, 419민주묘지역까지 24, 5, 12,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4. 6. 6. 00:00

북한산 우이역에서 2,1km 대동문 1,6km 거리에 있는 3번째 이정표에 백련공원지킴터로 내려가는 방향 표식이 있다, 오늘 이곳으로 온 이유는 북한산에서는 한 곳뿐인 50여년 세월의 인수재 식당으로 가려고 이곳으로 왔다, 백련사 방향으로 내려간다,

내려가는 초입은 비교적 평온한 길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내려가면 너들길로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천천히 조심해서 내려가면 별 문제는없다,

이 길에서 나무 한 그루가 길 전체를 그늘로 덥고 있는 나무가 있는데

나무 기둥은 왜소하게 보이지만 넓은 그늘을 주는 이 나무가 어떤 나무인지?는 모르지만 일반 나무와는 달리 숲이 퍼저있는 나무다,

계속해서 아래로 내려간다,

북한산에서는 동쪽이고 이른 아침이라 볕이 강하지만 그늘이 많은 곳이라 시원하개 내려간다,

내림길에는 운동시설이 있는 곳도 있고

백련사라는 절도 있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북한산 국립공원에 자리잡은 백련사는 1930년 음력 7월7일 이은순(李銀順) 보살에 의하여 창건된 90여년된 절이다,

백련사 창건주인 이은순 여사는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였는데 현 백련사 ​관음전 아래의 바위틈에서 자연 용출 석간수를 음용하고 오랜 병고에서 벗어난 후 환희심을 느껴 작은 법당을 짓고 부처님을 모시며 신행 활동을 시작한 것이 백련사의 출발이라고 한다,

백련사를 지나 내려가는 길은 백련사까지 오가는 임도가 있다,

도로는 있지만 차량 통행은 없다, 백련사 관련 사람들이 아니면 이용하지 않는 도로인 모양이다,

내려가는길 왼쪽에 계단이 있는데 

계단으로 올라가면 애국선열 현곡(玄谷) 양일동선생 묘역 안내가 있다,

높은 계단이라 올라 가 보지는 않았다,

이어지는 길은 그리 넓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형차는 충분히 다닐만 하다, 절을 다니는 사람들의 교통로기는 하지만 원래 깊은 산중에 있는 절로 오가는 걸음마저 수행이라 했는데 요즘에는 수행보다 편함이 먼저인 모양이다,

그리고 다시 애국선열 심산(心山) 김창숙 선생 묘역이 있다, 김창숙 선생은 경북 성주출신으로 독립운동가, 교육자, 을사5적 처형요구, 광복 후 이승만 정권에 항거해 부정선거 규탄, 성균관대학교 창립해 초대 학장에 취임했다,

김창숙선생 묘역도 언덕에 있다,

김창숙 선생 묘역를 지나면 임도지만 돌을 깔아 길을 만든 구간이 있다, 걷는 사람은 야자매트로 걸어면 편안하다,

돌을 깔아 길을낸 곳에서 약간 휘여지는 지점에 있는 이정표에는 많은 묘역방향 안내가 있는데 요기서는 김도연선생 묘역 방향으로 가야한다,

김도연선생 묘역은 왼쪽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서서히 내려가다가 다시 또 오름길이다,

우이역에서 출발해 그리 먼거리를 오지는 않았지만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가면

그렇기는 해도 이길에서 오름길은 그냥 그럭 저럭인 그런 길이다,

조금이지만 올라 가다가 보니 양지바른 곳에 평평한 공터가 나온다,

그리고 큰 비석 앞에 묘소가 있는데

여기는 애국선열 동암(東菴) 서상일 선생 묘역이다, 서상일 선생은 대구출신으로 독립운동가 이자 정치인으로 대동청년단, 조선국권회복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광복 후에는 제헌국회의 헌법기조 위원으로 현정의 초석을 놓았다,

진정한 지도자 서상일 선생에 대하여 윤보영이 쓴 시도 전시되여 있다, ~ 중략 ~ 북한산 애국지사 순례길을 걷다 보면 독립운동가 묘소가 있습니다, 누구를 모셨는지 무슨말을 남겻고 어떤일을 했는지, 눈길 주지않고 날아가는 새처름 지나쳤던길, ~ 증략 ~ 이제 기억하겠습니다, 잃어버린 주권을 되찾기 위해 애쓴 당신의 거룩한 뜻을 기억하겠습니다,

서상일선생 묘역에서 김도연 선생 묘역은 230m거리다,

여기까지 묘역은 길 단장이 그런대로 되여 있었지만 여기서 부터는 오솔길 정도다,

오솔길을 따라 가는길 이정표도 없고 여러 곳으로 가는 갈림길도 있는데

가던 방향으로 계속 가다가 보니

90도 각으로 꺽어지는 곳이 있었는데 여기를 돌아가니

담을 쌓아 묘지를 단장해 놓은 곳이 보인다,

여기가 김도연 선생 묘역이다, 1967년 7월 19일 소천하신 분의 묘소가 이렇게 말끔한 것을 보니 최근에 새로 단장을 한 것 같다,

애국선열 상산(常山) 김도연 선생은 김포출신으로 독립운동가 정치가 였으며 일본에서 1919년 1월 1일 비밀리에 조선독립청년당을 조직하고 2월 8일 선생을 포함한 11명의 대표는 조선독립선언을 주도하여 옥살이를 했다,

1942년 일본이 조선 어학회를 해체시키는 사건으로 인해 또 다시 2년간 옥살이를 하였어며 광복후에는 입법의원과 제헌 국회의원을 거쳐 초대 재무부 장관을 역임했다,

여기는 깊은 산중이다, 이어지는길은 직진과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데 이정표가 없어니 어디로 가야 할지? 가늠이 안되지만 일당 4,19국립묘지 방향으로 가보기로 했다,

내림길로 약 20여m를 내려가니 깊은 산속에 인수재라는 현판을 단 집이 보인다, 이곳을 어렵게 찾아 왔는데 문은 닫겨 있고 이전 안내가 붙어있다, 이곳에서의 영업을 중단하고 아래 장소로 이전 했다는 안내다,

여기는 북한산 국립공원내로 민가나 상가가 있을 수 없는 장소지만 아주 옛날부터 집이 있었어니 오늘날까지 내려왔는데 이제 이전을 했나보다, 내 기억하기로는 50여년 전 이 깊은 산중에 있는 이 집은 두부를 만들어서 산꾼들한데 팔기 시작했던 곳인데 

지금은 둘째 아들? 인가가 여기로 들어 와 갈매기살을 주 종목으로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소식에 미루고 미루다가 옛 시절의 추억을 꺼내 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이전을 했다니? 그 것도 4월에 이전을 했어면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ㅠ

하산 길에 만난 동네 분들 이야기로는 아카데미하우스 입구로 이전을 했고, 산꾼들이 두부 한모에 막걸리 한잔을 하던 시절의 할머니는 3년전 93세에 별세 하셨다고 한다, 내가 여기를 찾지 않은지가 벌서 40년 이상 되었어니, ㅠ

인수재를 내려와 이전했다는 곳으로 찾아간다, 산속에 그자리에 있을때를 추억하며 찾아 왔는데 이사를 갔다고 하니 그나마 흔적을 찾아간다,

아래로 내려와 서울둘레길을 따라 

가는길 그늘도 시원하고 

계곡의 물소리도 정겹게만 들린다,

백련공원지킴터를 지나서

북한산 둘레길 순례길 구간으로 가면 작은계곡을 건너가는 다리도 있고

데크길을 따라 계속해서 가다보면

이틀동안 내린 비로 계곡물이 한참이나 불어나 있다,

이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가 조금 전 부터 계속해서 들렸나 보다,

아카데미하우스 입구 도로까지 내려와서 왼쪽으로 도로를 따라 내려 가다보니

길 건너에 이제 막 달아놓은 것 같은 간판이 보인다,

북한산 인수재라는 새 간판과 현관문 위에는 산속에 있는 글씨를 그대로 뽄을따서  현판을 붙여 놓았다, 반갑다, 비록 지금 주인은 얼굴도 모르는 집이지만 옛 추억을 찾아 온 오늘은 이렇게 마무리가 되나보다

옛날에 먹었던 맜 있었던 두부 한모 와 갈매가살 양념 2인분, 생고기 2인분, 을 주문했다, 지나간 긴긴 세월속의 추억은 그저 추억 속에서만 존재 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