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봉화길 제5길 남천주길 中下(월전미술관~미란다호텔)2024, 6, 23, 본문
월전 미술관을 나와서 설봉공원 이천 관광안내소를 찾아간다,
주차장 한켠에는 인공 암장도 있고
설봉공원은 곳곳에 작품들이 있다, 월전미술관 만이 아니라 공원 전체가 미술관인 듯하다,
카페가 있는 곳도 지나서 설봉공원 입구로 내려 간다,
카페 앞에서 도로로 나가는길에 봉화길 안내판이 있다, 설봉공원 입구에서는 아직도 9 km정도 남았다,
이천관광 안내소로 왔다, 그리고 안내소 옆 주차장에
경기옛길 봉화길 제5길 남천주길 스템프함이 있다,
경기도 봉화길 - 남천주길 설봉공원 스템프를 찍고
삼국시대 격정장의 역사, 설봉산성 이야기는 설봉산은 이천의 진산이다, 이 산의 7~8부 능선, 속칭 칼바위를 중심으로 한 약 3만평에 달하는 고원지대가 옛 산성터다, 계곡을 감싸안고 쌓은 포곡식 산성으로 성벽은 대부분 흙으로 쌓았으나 돌로 쌓은 석축도 군데 군데 있다,
석축은 대부분 무너져 내렸거니 매몰되었는데 아직도 정상 아래 부분에는 3~10m의 석축의 흔적이 뚜렷한 형태로 남아있는 곳도있다, 이 일대에서는 석축, 석편, 토기편은 물론 건물터를 알리는 정면 9m 측면 + 3m의 인공 주춧돌 9개가 정년히 배치되어 있어 이곳이 웅장한 규모의 삼국시대 산성터 임을 알려준다,
축성연대는 대략 고구려가 백제를 쳐서 한강 이남을 점유하고 이곳에 처음으로 남천현을 설치한 고구려 장수왕 63년(475)에서 신라와 백제 세력이 이곳을 다시 수복하던 신라 진흥왕 12년(551)사이에 고수려 군이 쌓은 성으로 추정한다, 산 정상에 서면 주변 지역이 한 눈에 들어와 삼국시대 부터 치열한 세략 다툼이 있었던 중요한 군사적 요충지대의 역활을 하였던 성으로 여겨진다;
설봉호수로 들어왔다, 설봉호수에는 둘레길이 있는데, 왼쪽길을 따라 갔어나 이 길은 봉화길로 지정된 길이 아닌 것 같아서, 다시 돌아나간다,
호수옆 사면에 백송이 있다, 백송은 수피가 큰 비닐처름 벗겨지고 중국이 원산지로 번식률이 낮고 바늘 잎이 3장으로 그리 흔하게 보이는 소나무는 아니다,
호수로 흘러들어오는 천에 놓여진 청자교를 건너간다, 다리 이름도 도자기 이름이다,
설봉계곡에서 설봉호수로 들어오는 물 줄기 다리에도 그림을 그려놓았다, 관리를 잘 한다는 반증이다,
설봉호수 가장자리에는 연꽃도 자라고 있다,
이천관광 안내소에서 설봉호수로 들어와 오른쪽 청자교를 지나 설봉호수 둘레길을 따라 가는 길에는
긴 계단식 장의자도 있는데 야간에 설봉호수 분수대에서 뿜어내는 춤 추는 조명을 구경하는 곳이라고 했다,
계단식 의자가 있는 곳을 지나가면 설봉정이라는 정자도 있고
이어지는 길은 다니는 사람도 없어니 한가롭기만 하다,
이번에는 백자교를 건너간다, 다리 이름을 새긴 돌 모형도 항아리 모양이다,
백자교를 건너가면 부발역 8,7km 이정표가 있다, 갈 길은 멀지만 설봉공원의 매력에 빠져 오랜 시간을 지체 했다,
이제 점점 더 멀어지는 설봉정을 돌아본다,
호수와 정자가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아직은 연 꽃이 만개하는 시기는 아니지만 철 모르는 녀석은 어디에도 있다, 거의 만개 수준의 붉은 연꽃이 맞아준다, 그나마 네가 있어 설봉호수 연꽃도 보는 구나,
호수절반의 둘레길 끝으로 왔다 이제는 설봉호 물막이 둑으로 건너가야 겠지만 봉화길 설봉호수 길은 여기가 끝이다,
설봉호수 뚝에는 계단식 내림길도 두군데나 있고 건너편에는 인공폭포도 만들어 놓았다, 지금은 호수지만 예전에는 저수지였을 것 같은데 설봉호 둑 아랬쪽에도 공원을 만들어 놓았다,
봉화길은 경충대로 2697길로 이어진다, 이 길은 설봉호수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 오른쪽 둑에있는 도로다
설봉호수에서 내려가면서 첫번째 보이는 이천육교(다리) 에서 건널목을 건너 오른쪽으로 올라간다,
다리위 도로는 경충대로 이며 위치는 중앙교회 앞이다,
경충대로를 따라 가다가 현대자동차 앞 증일 사거리를 직진으로 건너가서
이천 증리 택지개발지구 어미린어반퍼스트 아파트 공사장 옆으로 간다, 이 택지개발 지구는 2026년 6월에 준공한다고 한다,
이천 증리 택지개발지구 첫번째 사업장 끝 육교로 올라가 건너편으로 간다,
그리고 오른쪽으로 기아차 사옥이 보이는 곳으로 내려가
다시 왼쪽 이천시 공설 운동장 공영 주차장이 있는 건물앞으로 해서 올라가면
회전 로터리가 보이는 곳에서 오른쪽 건널목을 건너간다, 회전로터리 대각선으로 중리동 행정복지센터가 있는데 행정복지센터면 동사무소인데 이렇게 큰 빌딩을 소유하고 있는 복지센터는 처음이다,
회전로터리 중앙에 서희선생 동상이 있다, 993년 고려의 북진정책과 친송외교에 불안을 느낀 거란은 동경유수(東京留守) 소손녕(蕭遜寧)이 이끄는 대군으로 고려를 침략했다. 80만 대군으로 봉산군(蓬山郡)을 빼앗은 거란군은 더 이상 진격하지 않고 항복하라는 위협을 되풀이했다.
이 때 고려 조정에서는 적의 대군을 대적할 수 없으니 항복하자는 의견과 서경(西京 : 지금의 평양) 이북의 땅을 떼어주고 화의하자는 할지론(割地論)이 우세했다. 그러나 서희는 거란의 출병 목적이 영토 확장에 있지 않음을 간파하고 거란에 맞서 싸울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때 소손녕이 청천강 남쪽의 안융진(安戎鎭)을 공격하다가 중랑장 대도수 (大道秀)에게 패하게 되자 고려와의 담판에 응하게 되었다. 거란 진영에 도착한 서희는 소손녕이 신하의 예로 뜰에서 절할 것을 요구하자 이를 거절하여 결국 서로 대등한 예를 행하고 대좌하도록 했다.
소손녕은 고려를 침입한 이유를 첫째, 고려는 신라땅에서 일어났는데도 거란이 소유하고 있는 고구려 땅을 침식하고 있으며,
둘째, 거란과 땅을 접하고 있으면서도 바다 건너 송나라를 섬기고 있기 때문이라고 땅을 떼어 바치고 조빙(朝聘)을 하면 무사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에 대해 서희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뒤를 이었으므로 나라 이름도 고려라 하고 평양을 도읍으로 삼은 것이다, 만일 땅의 경계로 논한다면 너희 요나라의 동경(東京 - 지금의 랴오양)도 모두 우리 경내에 있는 셈이니 어찌 우리더러 땅을 침식했다고 하는가, 또 압록강 안팎도 우리 경내였는데 지금은 여진이 그곳을 차지하여 완악하고 간사한 짓을 하므로 도로가 막힌 탓에 그 어려움이 바다를 건너는 것보다 심하다, 조빙을 하지 못하는 것은 여진 때문이니 여진을 쫓아내고 우리의 옛 땅을 되찾아 성보(城保)를 쌓고 도로를 통하게 하면 어찌 조빙을 하지 않겠는가,
남천로를 따라 가는길은
이천 남초등학교 옆으로 가는데 초등학교 담장에는 온통 서희선생 이야기 판이 붙어 있다,
993년 고려 성종 12년 거란은 그해 8월에 압록강을 건너 8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공한다, 이때 서희선생은 홀로 적진으로 들어가 거란이 철수하게 했다,
계속해서 남초등학교 뒤 담으로 직진을 하면
3개의 높은 빌딩이 보이는 곳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이 길은 남초등학교 로 해서 이천 미란다호텔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이길 끝 건너편에 숲이 우거진 곳이 보이는데
숲이 보이는 곳으로 가면 "소소한 행복은 언제나 가까이에" 라는 글이 반겨준다,
여기도 호수가 있다, 여기가 이천 안흥지다,
안흥지로 들어가면
큰 바위 돌 2개가 세워져 있는 앞으로
호수 중앙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는데
호수 중앙에 이천시 향토유적 제15호 애련정이 있다,
愛蓮亭은 이천읍지에 의하면 객사 남쪽 정자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모르나 세종10년(1428)에 중건하고 성종5년(1474) 이천부사 이세보가 다시 중건 했어며 정자 옆 습지에 안흥지를 파서 그 가운데 연꽃을 심고 영의정 신숙주에게 애련정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월산대군 이정(조선 9대 성종의 형) 서거정, 조위, 등 많은 시인들은 애련정의 경치를 읆은 시를 남겼고 임원준과 김안국의 애련 정기와 애련 루기는 지금도 전해지고 있다,
중종23년(1528), 숙종 14년(1688) 정조3년(1779)의 기록에는 역대 임금들의 영릉 행차길에 이천행궁에 머무르며 으례 붉은 연꽃이 어우려진 애련정을 돌아 보았다고 전한다,
순종황제 원년(1907) 벌떼 같이 일어났던 정미의병때 일본군이 이를 진압하고자 이천읍 내 483가구를 불태운 충화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붙타 없어진 것으로 본다,
이천시에서 지방자치 시대를 맞이하여 이천 시민의 의견을 모아 1998년에 애련정을 복원했다,
제5길 남천주길 <해동지도 海東地圖 >에서 보여지는 옛 이천의 모습과 봉화대로
<해동지도 海東地圖 > 이천부의 옛 지도에는 읍치를 중심으로 주변의 산세와 도로, 하천등을 그려 넣었으며, 이천부의 경계까지 표현했다,
주요 지형지물과 읍치를 중심으로 그려진 비교적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지도의 상단과 측면에서 이천의 연혁과 함께 주요 산천에 대한 위치 설명도 수록되여. 있어며
이천읍치에서 주변 마을의 거리도 함께 수록해 놓았다, 봉화대로는 지도의 북서쪽 광현(廣峴)에서 시작하는데 광주계이십리(廣州二十里) 라는 거리 표시와 함께 이 길이 대로임을 표기해 놓고 있다,
길은 설봉산과 아리산 고개를 넘어오게 되는데 고개 이름은 절음현(絶音峴)이다, 고개의 서쪽에 고성은 설봉산성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으며
특히 이천9경 중, 7번째 명물인 애련정이 있는 연못으로 유명한 안흥지는 1907년 일본인에 의해 소실되었다가 1998년에 이천시가 복원했다,
애련정을 나와서 설봉삼거리로 왔다, 여기도 회전로터리다,
설봉삼거리는 이천 온천호텔로 오래된 미란다호텔이 있는 곳이다,
점심시간이 지났는데 먹을 곳이 마땅치 않다, 이천하면 쌀밥정식인데 미란다호텔 일대에서는 쌀밥식당이 보이지 않는다, 택시를 타고 이천 막국수 집으로 왔다
막국수를 주문 했는데 콩나물 불고기가 나와서 이거 주문 안했다고 하니 막국수를 시키면 덤으로 나오는거라고 했다,
막국수에 불고기가 서비스로 나오는 집, 그래서 일까? 막국수 한그릇 값은 13,000원이다, 어찌 되었건 이제는 국수 한그릇 값도 만원이 넘어선 물가에 우리가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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