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봉화길 제5길 남천주길 中上(설봉산정상~월전미술관) 2024, 6, 23, 본문
설봉산 정상으로 들어온 길로 100m를 돌아가 설봉산성으로 가야 하지만
설봉산 정상에서 바로 설봉공원으로 내려간다, 길은 꽤나 먼거리에 데크계단을 만들어 놓았다,
데크계단을 모두 내려가
첫번째 보이는 이정표에서 봉화길 시그널은 300m거리인 영월암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길이다, 잠시 내려가다보니 정상에서 보던 것보다 더 좋은 조망이 있는곳이 있다,
설봉호수도 보이고 이천 신개발지 아파트공사 현장도 내려다 보인다, 우리가 가는길은 설봉호수 둘레로 아파트공사장 옆으로 이어진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해 복하천(福河川)을 건넛다는 복하천도 내려다 보인다,
이렇게 조망이 좋은 곳이니 길게 땀을 식히면서 간식도 하고 나서 내려간다,
설봉산 정상에서 440m지점, 영월암 100m, 설봉공원입구까지는 1,34km라는 이정표도 있다,
봉화길 시그널이 영월암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로 내려가라고 알려 주기 때문에 직진으로 내려가는데 기묘하고 아름다운 바위가 있다, 안내가 없어 어떤 바위인지? 알 수 없었지만 설봉공원으로 내려가 약도를 보니 이 바위가 설봉산 삼형제 바위 라고 했다,
삼형제 바위에서 내려가는 길은 가파른 경사 흙길이라 매우 미끄럽다,
잠시 이런 길도 따라 가지만
길이 미끄러우니
의지 할 것은 스틱 뿐이다,
그러다가 보니 도로가 보인다,
이 도로는 설봉공원에서 영월암으로 연결되는 도로인 것같다
설봉공원입구 570m, 영월암 630m 이정표도 있는 곳을 지나
계속 아랫녁으로 내려가다 보니 홍살문이 보인다, 이 홍살문은 설봉서원 홍살문으로 설봉서원은 조선 명종 때인 1564년 2월 이천부사 정현이 설봉공원 입구에 건립했다가 흥선대원군 서원철폐령에 따라 1871년(고종 8년)헐렸던 것을
이후 2000년 7월부터 설봉서원 배향인물(서희, 이관의, 김안국, 최숙정)의 후손인 이천 서씨, 광주 이씨, 의성 김씨, 양천 최씨 문중과 이천향교를 중심으로 설봉서원 복원건립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2004년 6월 사단법인 설봉서원(이사장 최석홍)이 설립되는 등 서원 복원작업이 활발히 추진되여. 이천시 예산 14억원과 설봉서원 배향 인물의 문중 기탁금 3억원을 합쳐 17억원을 들여 2007년 4월 136년만에 이곳에 복원했다,
설봉서원 앞으로 흐르는 계곡에도 지금 생태복원 공사가 진행 중이다,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길 월전 장우성관이 있다, 들어가 보고 싶었으나 대문은 닫겨있다, 멀리서 안내판을 찍어 내용을 보니
동양화는 붓을 들기 이전에 정신 자세가 중요합니다, 물체의 외형을 묘사하는것이 아니고 그 내면을 관조하여 자기의 심상을 표현라는 것입니다,
먹빛 속에는 요약된 많은 색체가 압축되어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테두리 밖에서 아름다운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월전 장우성 - 이라고 적혀 있다,
월전 장우성은 광복이후 세종대왕 기념관 "집현전학사도", 국회의사당 벽화 "백두산천지도"를 제작한 화가로 충북 충주에서 태여나 2세때 여주로 일가가 이주했다,
설봉공원으로 내려와서야 설봉산 4대명소 설봉산 계곡 가는길 안내가 있다, 설봉서원, 여래계곡, 삼형제바위, 영월암이 설봉산 4대 명소 인가보다,
이 일대 모두 설봉공원이지만 설봉산에서 내려와 공원으로 들어가면서 비(碑)가 있고 16개국 국기도 계양되여 있는 곳이 있는데
이 비는 이천시 625 참전기념비다,
이천시 625 참전기념비 뒤에는 경기도 소방공무원 추모 동상도 있다, 2007년 11월 27일 이천시 호법면 소재 식품공장 화재진압 중 고귀한 넋으로 산화한 고 윤제희 소방교와 경기도 순직 소방 공무원의 숭고한 마음을 기리기 위해 경기도민의 마음을 모아 이 추모상을 세웠다고 새긴 소방관 추모비다,
소방관의 기도 도 새겨져 있다, 생략하고 마지막 부분만 인용하면
"신의 뜻에 따라 저의 목숨을 잃게되면 신의 은총으로 제 아내와 가족을 지켜 주소서" 라고 새겨져 있다,
소방관 추모비 앞 대한민국 무공수훈자공적비도 있다,
오! 대한민국 무공수훈자여
겨레와 함께 영원히 빛 나리라 !
그 다음은 운동장만한 크기의 거대한 조형물 애국지사 孝(효), 忠(충), 이라고 새겨진 석판이 있는 서희 선생 동상이 있는 곳도 있다,
서희선생은 고려 전기의 문신이자 외교가로 993년(성종 12)에 거란족이 침입하자 단신으로 적진에 들어가 적장 소손녕과 담판을 벌여 설득시키는 데 성공, 거란군을 철수시킨 분으로 설봉서원 배향 인물이다,
조금더 내려가 월전미술관으로 들어간다, 월전 장우성 화백은 1946년부터 1961년까지 서울대학교 미술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1963년 미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워싱턴에서 개인전을 가지고 동양예술학교를 개설, 실기와 동양미술을 지도, 강의 했다.
그리고 1966년 3년 여의 미국 체류를 끝내고 귀국하여. 1971년부터 1974년까지 홍익대학교 미술대 교수를 역임하였으며. 1973년에는 일본 동경 송옥(松屋)백화점 화랑에서, 1980년에는 프랑스 정부 초청으로 파리의 세르뉘쉬 미술관에서,
1982년에는 독일 쾰른시립미술관에서 초대 개인전을 열었고 1959년에 서울시 문화상, 1960년 대한민국 홍조소성(紅條素星)훈장, 1976년에는 문화훈장, 2001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월전미술관은 입장료 1,000원이고 경로는 무료다, 사실 미술은 문외한 이지만 오늘은 너무 더워서 미술관은 시원할 것 같아서 들어왔다, 아래 작품은 "시루 -채석강" 이라는 이종민 화가의 작픔으로 2021년 흙벽지 위에 천연색체, 토분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제는 화로 도 미술 작품인 모양이다,
이천 시립 월전 미술관 소장 범종
↓ "돌을 찢는 남자 : 팔폭괴석도"
화선지에 유연묵 으로 그린 이호억 화가의 작품,
작가는 아버지의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몸을 움직일 수 있음에 대해 감사하게 되고 삶의 숭고함, 시간의 유한함을 자각하고 그것을 작품에 담아 냈다, <돌을 찢는 남자 : 팔폭 괴석도>는 투쟁, 섭취, 샐식, 관음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 보임으로서 삶의 가치를 조명 합니다,
세월이 흘러도 세상이 바뀌어도 보석처름 제 빛을 잃지않고 반짝이는 자연의 아름다움 만이 나를 심취하게 만드는가보다, - 장우성, 진달래, 화실수상, 학고재, 1999 -
↓ "모란"
종이에 수묵채색, 1996년작,장우성
화폭 오른쪽 글
" 나그네로 지낸 3년의 세월,
타향에서 수심에 찬 마음으로 꽃을 본다네,
어렴풋이 보이는 듯, 겨우작은 그림 하나 그린다네,
멀리서 서엋 둥지를 그리워 하며 월전 산인이 그리고 쓰다"
화폭 왼쪽 글
"초록빛 고운 잎은 우아하고도 깨끗하고,
하얀 꽃잎은 연분홍에서 다시 진홍색으로 짙어지네,
모란의 마음은 시름에 겨워 애 간장이 끊어지는데,
저물어 가는 봄빛이 어찌 모란의 마음을 알까,
1996년 병오년 봄에 워싱턴에서 월전 짓다,"
↓ "여인"
비단에 수묵채색 1945년 장우성
화폭 글
"봄의 리듬" 을유년(1945) 봄날 성천 인형이 감상해 주길 바라며 월전 그리다,
↓ "학"
종이에 수묵채색 1974년 장우성
화폭 글
신선 사는 곳 삼산에서부터 온 먼길 푸른 구름
만리 밖을 그리워 하는 마음 갑인년(1974)가을
성천 인형의 금른의 복을 축하 하며 월전 그리다,
↓ " 매화 "
종이에 수목채색 1967 장우성
화폭 글
완산 매화는 옆으로 뻗었는데
골수에 스며드는 맑은 향은 세상에 드문 것이라네
뜻을 얻어 문 닫고 입을 굳게 닫으니
먹의 연못에 고요함이 깨지고 규룡이 날아 오르네
정미년(1967) 봄에 성천 종형께 검여가 삼가 낙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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