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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2) 산영루에서 대남문 문수사까지 (2026, 7, 5)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북한산-(2) 산영루에서 대남문 문수사까지 (2026, 7, 5)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6. 7. 6. 23:33

북한산 산영루(山映樓)다, 산 그림자가 비치는 누각이라는 뜻의 산영루는 조선 후기 군영인 총융청에서 관리하던 중요한 건물이었으며, 많은 학자와 문인들이 풍류를 즐기며 시문을 남긴 장소로 유명하며. 1925년 대홍수로 유실되었다가 2014년 고양시의 역사복원사업을 통해 다시 복원되었다, 

산영루 건립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603년 이정구의 유삼각산기에 산영루 옛터가 기록되어 있어 그 이전에도 존재했음을 추정되며 조선 후기 기록은 1711년 북한산성 축성 후, 1713년에 산영루에 기와를 얹었다는 기록이 있어 이 시기에 중건된 것으로 보이는 누각이다,

산영루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중흥사가 있다, 重興寺는 고려 초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찰로 북한산성 내에서 승군을 지휘하던 중심 사찰이었다. 현재는 대웅전과 요사채, 만세루 등이 복원되어 템플스테이 와 법회가 열리는 전통 사찰로 운영되고 있다.

고려후기 태고 보우선사가 1341년 중흥사에 태고암을 짓고 주석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 초기에 태조가 조세를 면제하고, 태종 때는 기우제를 지내는 등 국가적 지원을 받았어며 1711년 숙종 북한산성 축성시 30여칸 규모에서 대규모로 증축해 136칸 대 사찰로 확장하고.북한산성내 팔도 도총섭(승군 총지휘관)이 머물며 승군 350여 명이 주둔해 산성 방어를 담당했던 승영사찰이였다,

중흥사를 지나면 갈림길이 있는데 여기서는 오른쪽이 대남문 방향이다,

산성입구에서 대남문으로 가는 등산로는 완만한 경사지의 길로 초보자도 쉽게 오를 수 있는 길이다,

중흥사에서 그히 멀지 않은 거리에 경리청상장지가 있다, 안내판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경리청상장(經理廳上將, 관성장)은 조선 후기 북한산성 내 경리청에서 곡물 출납과 산성 관리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설치된 무관직 이다. 

1711년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 경리청이 설치되면서 군제 개편에 따라 명칭과 겸임자가 여러 차례 바뀌었다. 

숙종 37년인 1711년 북한산성이 완성되자 산성내 군량미 5~6만석을 비축 하고  

이를 관리하기위해 경리청을 설치하고 곡물 출납을 전담하는 직책으로 상장(관상장)을 두었다,

경리청 터 일대에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는 석축은 300년이 넘는 세월에도 그대로 다, 마치 도성 기초를 연상케 하는 잘 다듬어진 화강암을 보면 그 당시에도 경리청 역활이 상당히 중요했음을 말해 주는듯 하다,

경리청터를 지나 계속해서 대남문으로 가는길

대동문으로 가는 갈림길도 있다, 북한산성 대동문은 북한산성의 동쪽 성문으로, 원래 소동문(小東門)이라 불렸으며 현재는 1993년에 복원된 성문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문루가 있으며, 성곽 탐방로에서 중요한 관문 역할을 하는 문이다.

7월 초순 북한산 일대의 녹음은 그늘을 주기도 하지만 

눈이 부실 정도의 아름다운 푸르름의 색상을 보여준다,

북한산 보국사지 터로 왔다, 보국사터는 북한산성 내에 위치했던 사찰 터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으며, 등산로와 성곽길을 따라 탐방할 수 있는 역사 유적지다.

북한산 보국사지 터는 단순한 폐 사지가 아니라 조선 후기 승군(僧軍)이 주둔하며 산성을 방어하던 군사와 종교 복합 공간이다.

현재는 등산로와 성곽길을 따라 탐방할 수 있는 역사 유적지로, 보국문 성문 인근이며 역사와 자연을 함께 느끼고 싶다면 정릉과 보국문 코스도 좋을 듯하다,

보국사터 다음은 금위영유영지다, 禁衛營 留營地는 조선 후기 군영이 주둔했던 영지(營地)를 뜻하는 용어로, 특정 군영이 머물며 임무를 수행하던 장소다. 즉, 군사적 거점으로서 병사들이 머물고 훈련·방어를 담당했던 지역인데 禁衛營은 조선후기 중앙군 오군영(五軍營)의 하나로, 국왕 호위와 한성부 방어를 담당했던 군영으로.1682년 숙종 때 설치되어 서울 도성과 궁궐을 지키는 핵심 군 부대였으며, 이후 1895년 군제 개혁으로 폐지 되었다. 

북한산성 금위영 이건기비(北漢山城禁衛營移建記碑)는 조선 숙종 41년(1715)에 세워진 비석으로, 금위영 주둔지를 옮긴 사실을 기록한 기념비다.

금위영 이건기비는 북한산성 내 금위영 주둔지를 보국사 아래로 옮긴 사실을 기록한 비석으로, 조선 후기 군사·문화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다. 

현재는 북한산성 대성암 인근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7호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북한산성 금위영 이건비가 있었던 자리는 지금 이렇게 보호되고 있다,

금위영 이건비가 있는 장소를 지나

대남문으로 올라간다,

이제는 대남문도 지근 거리인데

보광사지로 올라왔다, 보광사지(普光寺址)는 북한산성 내에 위치했던 사찰 터로, 조선 후기 승군(僧軍)이 주둔하며 산성을 방어하던 군사와·종교적 시섷이였다, 

현재 건물은 사라지고 절터만 남아 있으며, 성곽 탐방로를 따라 확인할 수 있는 역사 유적지로 

보광사지 터는 북한산성 방어 체계와 승군 활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장소다

대남문 직전 공사용 울타리가 세워져 있는 곳이 보인다, 이곳도 절터 인데 복원하는 공사를하는 중으로 공사는 10여년이 넘게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북한산국립공원 직영 공사는 아닌듯 하다,

공사용 펜스가 쳐진 울타리 안으로 들어다보니 예전부터 있었던 저 건물 하나 외에는 아무 것도 진척된게 없는 울타리만 설치하고 있는지가 10여년은 된 것 같은데 절 행사도 한다는 알림 현수막도 걸려있다, 

아마도 불자들에게 성금을 빋이야 공사를 하는듯 한데, 국립공원안에 있는 터에 왜 이런 대책없는 공사 허가를 해 줬는지? 고양시는 즉각 공사 허기를 취소 하는게 맞을것 같다,

엉터리 공사장도 지나서 대남문 가까이 올라가니 대성문은 300m, 구기분소는 2,5km, 비봉은 2,2km 라는 이정표도 있는곳 

북한산성 4대문 중 남쪽에 위치한 대남문으로 왔다, 대남문은 해발 683m에 위치한 주요 관문으로 성곽길을 따라와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즐길 있는 인기 탐방 코스의 종착지 하나다.

대남문은 북한산성 성곽길 탐방의 대표 목적지다. 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해 대서문과 중성문을 거쳐 도달하는 루트가 가장 일반적이며, 총 5.8km, 약 3시간정도 소요 된다.

대남문을 나가면 구기동계곡으로 내려 가는 데크긿과 문수사로 가는 데크길이 있는데 오늘은 문수사로 간다,

문수사로 가면서 마주 보이는 보현봉은 대서문에서 부터 대남문으로 오던 오밀 조밀한 길과는 다른 우람하고 당당한 암석 바위다, 보현봉(普賢峰)은 북한산 남쪽에 위치한 해발 714m 봉우리로, 문수봉과 짝을 이루며 불교적 상징성을 지닌 산이다. 풍수적으로도 조선 도성의 내맥을 살피던 중요한 지점으로, 역사, 종교, 지리적 의미가 깊다. 

전래되는 설에 의하면 수양대군이 천문지리를 연구한다는 명목으로 한명회등의 일당들과 보현봉에 올라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는 모의를 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대남문앞 보현봉 맞은편 문수봉 아래 직벽에 자리한 문수사로 왔다,

文殊寺는 문수봉 아래 위치한 사찰로, 고려 예종 4년(1109)에 탄연국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절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조계사의 말사이며, 국내 3대 문수성지  하나로 꼽히는 절이다

문수사 석굴법당은 문수사 경내에 있는 천연 동굴 문수굴 을 법당으로 삼은 공간으로, 문수보살을 모신 영험한 기도처로 유명하다. 고려 예종 때 탄연국사가 창건한 이후 불자들의 신앙 중심지로 이어져 왔으며, 현재도 주말에만 개방되어 참배할 수 있다.

북한산 문수사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모시고,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문수보살을 협시불로 봉안한 법당이다. 현재의 건물은 2001년 불사로 중창되어 2002년 완공되었으며,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함께 담은 전통사찰 건축물이다.

북한산성 탐방안내소 를 제외하고  여기까지는 화장실이 없지만 유일하게 화장실이 있는 곳이 문수사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