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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복궁의 밤,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경복궁의 밤,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5. 10. 23. 17:46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을 내려 620년전 육조거리였든 넓은길(세종로)을 따라

광화문으로 들어선다,  경복궁은 조선을 창건한 태조 이성계가 1395년에 창건했다,

창건 당시 육조거리 지하에 철마가 달릴거라고 꿈이나 꾸었을까?

경복궁은 창건 197년후인 1592년 임진왜란때 성난 백성들의 손에 불타 없어젓다,

그로부터 275년후 1867년 흥선대원군의 주도하에 기하학적 질서에 따라 대칭적으로 중건되여

오늘날까지 148년을 이어저 내려온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역사를 설명 하려는게 아니다, 

아름답고 소중한 우리민족의 영원한 유산에 대한 내용을 되 짚어 보는 것이다,

 

또한 일제 강점기에는 거의 대부분의 건물들을 철거하고 근정전 등 극히 일부 중심

건물만 남았고,  조선 총독부 청사를 지어 궁궐 자체를 가려버리기도 했다. 다행히 1990년부터

본격적인 복원 사업이 추진 되어 총독부 건물을 철거하고 흥례문 일원을 복원하였으며,

왕과 왕비의 침전, 동궁, 건청궁, 태원전 일원의 모습을 되찾아 가고 있다,

 

경복궁 경회루다, 경회루는 침전영역 서쪽에 위치한 연못 안에 조성된 누각으로.

외국사신 접대나 임금과 신하 사이에 벌어지는 연회장소로 사용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경복궁 창건 당시는 작은 누각이었던 것을 태종 12년(1412)에 크게 연못을 파고

지금과 같은 규모로 만들었다,

연못 속에 잘 다듬은 긴 돌로 둑을 쌓아 네모 반듯한 섬을 만들고

그 안에 누각을 세웠으며, 돌다리 3개를 놓아 땅과 연결되도록 하였다.

이때 연못에서 파낸 흙으로 왕비의 침전 뒤편에 아미산이라는 동산을 만들었다.

성종 때 건물이 기울어져 다시 고쳐 지었는데 돌기둥에 용과 꽃 장식을 하여

화려하게 치장하고,  연산군 때에는 연못 안 인공섬 만세산을 조성하고, 그 곳에 월궁을

꾸며 조화를 장식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 되었다. 경회루 건물은 없어졌지만,

경복궁이 중건 될때까지 연못은 나라에 가뭄이 들 때마다

기우제를 지내는 곳으로 이용되기도 한 곳이다,

경복궁 경회루는 우리 나라에서 단일 평면으로는 규모가 가장 큰 누각이다,

간결하면서도 호화롭게 장식한 조선 후기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는 소중한 건축 문화재다,

태조 4년(1395년)에 창건된 이 광화문은 정도전에 의해 사정문(四正門)과

오문으로 불렸어나 세종7년(1425년) 집현전 학사들이 광화문이라 바꾼것이 오늘에 이른다,

이 광화문은 한일합병후인 1927년 조선 총독부가 경복궁 동문인 건춘문(建春門) 북쪽으로 이전 시키고

이 자리에는 조선총독부를 지어 조선의 혈맥을 끊어내는 만행을 저질럿다, 그나마 이전한 광화문은

6,25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였다, 한때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복원(1968년)시키기도 했어나

2006년부터 광화문 복원공사를 하여 2010년에야 전통적인 옜 모습을 찾은 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