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천혜의 명당 ~ 북한산 의상능선(2011, 4, 12)조블뉴스 본문
2011년 4월 둘째주 구기동에서 북한산을 오른다,
구기동 계곡으로 들어서자 봄의 향기가 몰려 온다, 바람은 아직도 찬데 이 봄 기운은 어디서 오는것일까,
어찌 보면 지금의 북한산은 거대한 도심에 포위되여 있는 고립된 ? 산이다,
북한산이 없었다면 천만명도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 수도 서울이 가능했을까?
그러나 우리는 산이 그 자리에 있는것만 알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구기동에서 대남문으로 오르는 계곡길,
문수사와 대남문의 갈림길인 삼거리에서 문수사로 오른다
부처님 탄생일이 가까워 지나 보다 문수사에 빼곡히 연등이 걸려 있다,
연등은 일반적으로 색갈이 있는 등과 흰등이 있는데 색이있는 연등은 산사람의 복을 비는것이고
흰색 연등은 망자(죽은사람)의 명복을 비는 것이다, 연등 행사는 살아 있는자 만이 아니라
조상을 섬기는 우리 정서에 맞게 행하는 불교 의식이다,
문수봉 깍아내린 벼랑끝에 자리한 문수사에서 좌측길을 따라 나서면 대남문이 바로 지근거리에 있다,
그 옆으로 길게 늘어선 북한산성의 화강암과 수려한 보현봉이 봄 했살을 맞아 반들거린다,
저 대남문을 지나 청수동암문으로 간다
청수동암문위 여기는 아직도 300년전의 성곽돌들이 그대로 보존되여 있다,
허물어저 굴러내리고 성곽에 나무가 뿌리를 내려 자라고 있어도 복원의 이름으로 성곽을 허물고
새 화강암으로 치장해 놓은곳 보다는 한층 더 옜 정취를 느끼는곳이다, 이 상태로 라도 오랬동안 훼손하지 않고
보존해야 하는 책임 또한 북한산을 사랑하는 사람들 몫이 아닐까?,
지금 보이는 길게 뻗은 능선을 사람들은 의상능선이라 부른다,
문수봉에서 의상봉까지 가는 능선에는 8개의 봉우리가 있는데 왜 의상능선일까?
의상능선의 8개의 봉우리는 V 자 안부로
급격이 떨어저 내리고, 오르는 만만치 않은 암릉길이 많은곳이다,
아슬아슬한 릿지산행의 스릴과 쾌감,
계속해서 이어지는 암릉산행의 즐거움이 있는 의상능선길 ~
이 의상능선에는 용이 승천했다고 하여 용출봉 이라
불리는 봉우리가 있다, 그만큼 산세가 험하고 아름답다는 뜻일게다,
아무생각 없이 그냥 지나가는길,
그러나 자세히 돌아보면 아찔한 길이기도 한 이런 암릉길은 초심자는 우회길로 돌아가야 한다
증취봉을 지나 용혈봉으로 가는 내림길,
가만히 서 있어도 절로 굴러갈만큼 경사도가 급하다
용혈봉 정상으로 올라가는 마지막길 ~
그리 크지는 않지만 용혈봉 정상 인근 쉼터 바위다 ~
여기서 바라보는 조망은 왜 의상능선이 북한산 제일의 아름다운 곳인가를 보여준다,
이 쉼터 바위에서는 사모바위와 비봉이 우뚝솟아 있는 비봉능선도 조망되고,~~
맞은편 백운대와 만경대,
그 앞에 선 노적봉의 둥글고 거대한 종 모양의 아름다운 암릉까지 눈길을 끌어 당긴다.
오늘 우리가 가야 하는 8개의 봉우리 중 마지막 남은 용출봉과 의상봉,
올려다 보는것 조차 까마득해 보인다, 이 구간은 우회길이 없다, 오로지 정상에 올라 섯다가
정상에서 내려가는 꼭지점 산행을 할수 밖에 없는곳이다, 까마득히 올려다 보이기는 해도
저 멋스러움이란 어디에도 견줄수없다, 오로지 의상능선에서만 볼수있기 때문이다,
신라 화엄사상의 대종장이신 의상대사가 정진하시든 천년기도처 자리에
국녕사의 대불좌상이 백운대를 향하여 좌정하고 있다, ~
용이 승천했다는 용출봉의 미묘하고 신령스런 기운이 깃든 봉우리에서 흘러내려
龍 의 심장에 해당하는 곳으로 알려진 이곳에 자리한 동양최대의 國寧大佛도 내려다 보인다
이렇게 가파르게 내려 서기도 하고 ~
만만치 않은 철계단을 잡고 가파르게 용출봉으로 올라선다, ~
두발로는 버티는것 조차 힘들어 네발로 올라야 하는 구간도 지나야 한다,
북한산 의상능선은 의상봉(503m)에서 부터 시작하여,
용출봉(571m)과, 용혈봉(581m), 증취봉(593m), 나월봉(657m), 나한봉(688m), 칠성봉(716m), 문수봉(727m)으로
이어지는 아름다운 능선이다. 하나의 능선에 8개의 봉우리를 타고 넘어가는
능선은 북한산에서 의상능선 밖에 없다.
의상봉 정상에서 북한산동 입구로 내려서는길 약 800m 는 45도각의 내림 암릉길이다,
오늘 지나온 암릉과는 또 다른 길, ~ 먼저 내려선 사람이 다음 사람의 내려서는 발디딤을 확보해
줘야 할정도로 급한 경사길이다, 온통 쇠 파이프와, 쇠줄, 그리고 로프가 매여저 있다,
초심자에게는 로프나 쇠줄을 잡고 내려감도 어렵고, 로프도 없는 길을
내려 서기도 무척 버거운길이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것은 내려가는 길목에 이런 바위도 있다,
누구는 매바위라고도 하는데 내 눈에는 그냥 잘 다듬어 놓은 조각품처름 보인다,
당나라에 가서 화엄경 (석가모니가 도를 이룬 뒤 깨달은 대로 설법했다는
경문인 화엄경을 모태로 법계의 평등의 진리를 깨우친 석가의 만행(萬行), 만덕(萬德)을 칭송한 경전) 에
푹 빠져 가지고 돌아와 화엄종을 창시한 의상대사가 지금의 국녕사 자리에서
기도정진 하였든 곳의 배경산이라서 의상봉이라 했다고 한다,
건너편 원효봉 역시 원효대사가 정진하시든 기도굴이 있어 원효봉이라 하였어니
배달계레 최고의 명승들의 정진터가 있었든 산, 누가 봐도 천혜의 명당이 즐비한곳이 북한산이다,
원효대사가 당나라에 불교공부를 하려 가는길에 밤에 바가지로 물을 마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바가지는 해골이었다.
그래서 원효는 모든게 마음에 달려있다는 것을 깨닫고 발길을 돌렸다, 그 후 원효는 승복을 벗고 요석공주와 로맨스로 설총을 나았다.
두 큰 스님의 불력만큼이나 원효봉과 의상봉이 북한산을 지키고 있다
이 천혜의 명당산의 이름이 왜 북한산인가? 北漢山 이라는 지명에 대해 잠시 알아보면,
이조 개국초 이성계와 무학대사는 한양을 도읍지로 정하면서 백운대와 인수봉, 만경대의 삼각축이 있다
해서 삼각산(三角山) 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불럿다,
그로 부터 수백년의 세월이 흐른 후 청태종에게 삼전도의 수모를 격은
아픔의 역사를 가진 숙종이 지금으로 부터 약 300년 전인 1711년 옜 백제의 토성을
근간으로 단 6개월만에 8.5㎞에 이르는 북한산성 축성을 완공하고
우리 민족은 자손대대로 영원히 북쪽에 있는 한족을 잋어서는
안된다는 한이 서린 이름 이기도 하고 漢水 이북에 있는 산이라는 뜻도 있다, ~
그러나 역사는 살아 있는자 의 몫이 리라?
의상봉을 다 내려서면 오늘 의상능선 산행을 끝난다는 의미가 된다,
마지막 구간길 옆에 화알짝 핀 진달래가 배웅을 해준다,
오늘 하루도 고생 많이 하셨다, 잘 가세요, 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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