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왕과 신하, 나랏일을 의논한다, 경복궁 내외전(2011, 9, 14)조블뉴스 본문
태조 이성계는 1392년 조선을 개국한다,
개국 2년후 한양 천도를 결정하고 궁궐조성을 시작한 태조4년(1395년)에 궁궐 중심
전각 390여 칸을 완공하고 경복궁 시대를 연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나라의 기틀을 새롭게 다지기
위해 가장 먼저 건립한 궁궐로서 역사가 가장 오래 되였을 뿐만 아니라 규모가 크고 격식도 매우 엄중하다,
경복궁은 북악산(백악산), 인왕산, 낙산, 남산(목멱산)에 둘러 쌓여 있고 그 중심에 청계천이
흐르는 평지에 자리 잡았다, 경복궁은 개국 1392년부터 1910년까지
519년동안 27대 왕의 법궁이다
↓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문루가 2층이며 홍예문이 셋으로, 조선궁궐의
모든 문을 통틀어 가장 큰 규모와 격식을 갖추고 있어 그 위풍 당당함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조선 태조때 건립된 이후 임진왜란으로 인한 전소, 일제의 총독부청사 신축에 따른 이전과, 6, 25 전쟁시
문루소실등 험난한 질곡의 세월을 격었어며 1968년에 중심축이 틀어진 채 콘크리트로 복원되여
제대로 된 모습을 찾지 못하고 있다가,우여 곡절끝에 2010년 10월 제모습을 찾은
광화문이 우리품으로 돌아왔다,
광화문은 경복궁의 역사 만큼이나 불행한 과거를 간직한 문이다,
그런점을 제외하고 지금의 모습으로만 본다면, 이제 광화문은 본래의 모습으로 복원되면서
일제에 의해 변형된 축선이 제자리를 찾았고 금강소나무로 재건된 문루는 한국적 건축미를 뽐낸다,
현판 또한 당시 글씨를 되살려 완성되였다, 이러한 광화문은 일제에 의해 훼손된 민족 정기를
바로 세우고 우리의 새로운 역사를 활짝 열어갈 문이 될것이다, ↓ 광화문 앞 해태,
불을 잠재우고 선악과 시시비비를 명확히 가려내는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궁궐의 주요문과 전각인 광화문정문과, 근정전정전, 사정전편전, 강녕전침전은 남북을
축으로 하는 일직선상에 있고 주요 전각에 딸린 부속 전각들은 각 영역에서 안에서 좌우대칭으로
이루도록 배치 되였다, 둘레는 네모 반듯하게 궁성을 쌓았고 동서남북 네 방향에 문을 냈다,
경복궁 건축에 나타나는 이와같은 엄중한 질서와 절제의 위엄은 예의와 도덕으로서
나라의 기틀을 세우고자한 조선왕조의 기본 정신에서 비롯 된다, 궁궐의 전각들이 각기 서열과
쓰임새에 걸맞게 지어 졌을뿐 호사스럽거니 위압적이지도 않은것도 같은 이유다,
경복궁은 " 만년토록 빛나는 큰복을 지닌 궁궐" 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여기에는 하늘의 뜻을 받아 백성을 다스리며, 대대손손 태평함을 이어 가겠다는 조선왕조의
소망과 이상이 담겨있다,
↓ ↑ 흥례문(興禮門) - 경복궁의 궁성 안쪽에 위치하는 첫번째 문 이다,
이 자리에 일본의 조선 총독부 건물이 있었다,
↓ 흥례문을 들어서면 정사각 둘레는
네모 반듯하게 이렇게 궁성을 쌓았고 동서남북 네 방향에 문을 냈다,
↓ 홍례문 일곽의 가운데는 백악으로 부터 흘러내려오는 물,
즉 금천이 서에서 동으로 흐르도록 한 어구가 있고 어구의 중앙에 영제교(永濟橋)라는
다리가 놓여있다, 어구와 영제교는 근정문에서 이루어지는 왕과 신하들의 조회시에 신하들이
도열할 위취를 구별하는 경계이기도 했다, 영제교를 중심으로 북쪽에 2품 이상의 관원이
서고, 남쪽에는 3품 이하의 관원이 정열 하였다,
↓ 흥례문에서 보이는 다음 문인 근정문,
근정문 앞 일대,
↓ 근정문, 이문을 지나야 근정전 으로 들어간다,
↓ 근정전 이다,
경복궁은 궁궐의 중심인 외전과, 생활의 중심인 내전으로 조성 되였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왕이 다니는 어도가 있고 좌우에 신하들이 걷는 신도가 따로 있어며,
신하들이 지위에 맞추어 자리 하도록 품계석을 세웠다, 왕을 중심으로 질서가
엄격했든 조선시대의 일면을 보여주는 공간이다
근정전은 왕이 문무백관에게 조회를 받고 외국사신을 접견하며 즉위, 책봉, 혼례, 같은
나라의 중요한 행사를 치르는 곳으로, 왕과 나라의 권위와 품격을 드러내는 중요한 공간이다,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중층의 전각은 높고 넓은 2층의 월대 위에 당당히 올라서 있어며
근정전 주변을 둘러싼 행각의 기둥들은 마치 왕을 호위하는듯 줄지어 있다,
↓ 근정전 답도의 봉황,
봉황이 날면 천하가 크게 평안하다고 한다, 용과 함께 왕을 상징 한다
↓ 근정전 내 용상 뒤 일월오봉도, 왕의 상징이자 왕만이 소유할수있는 그림이다,
그림속의 해와 달, 오악, 소나무, 물, 바위는 천지만물의 조화와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
궁궐을 지켜주는 석물과 장식, 궁궐 곳곳에 해태, 호랑이, 용, 봉황, 현무, 주작,
십이지신상, 등 수백년을 말없이 궁궐을 지켜온 석물들이 있다, 이 석물들은 왕실의 권위와
위엄을 들어내주는 상서로운 존재로, 불과 물을 다스려 화재나 홍수, 가뭄같은 천재 지변을 막고,
행복을 불러오거나 어려움을 극복할수 있는 힘을준다고 알려져 왔다, 궁궐에서 가장 많은
석물을 볼 수있는 곳은 근정전의 월대 이다, 계단의 좌우 소맷돌, 계단기둥, 난간,
모퉁이등 등에 모두 36마리가 놓여 있다
↓ 근정전 뒤 사정전으로 들어 가는 입구다,
오른쪽 → 석물은 근정전 뒤 월대 석물 이고 ← 왼쪽 문은 사정전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 사정전은 왕이 평소 머무르며 나랏일을 돌보았든 곳으로,
"깊이 생각하여 나랏일에 임한다" 는 뜻을 품고 있다, 조선왕 가운데 가장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다고 평가 받는 세종이 밤늦도록 학문을 연구하고, 집현전 학자들과
의견을 나누었든 곳도 사정전이다,
↓ 사정전 내부,
↓ 사정전 옆 오른쪽 만춘전,
↓ 만춘전 옆으로 강녕전과 교태전으로 나가는 길이다,
↓ 사정전에서 강녕전으로 들어 가는 향오문, 강녕전과 교태전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으로 침전 영역을 이룬다, 사랑채에 해당하는 강년전은
왕이 독서와 휴식, 신하들과 면담을 하던 곳이다,
강녕전(康寧殿)은 국왕의 침전이며 ‘강녕(康寧)’은 편안하고 건강함을
의미하고 근정전 북쪽에 있다. 경복궁 창건 당시인 1395(태조 4)년에 처음 지었다.
1433(세종 15) 년에 고쳐 지었고 1553(명종 8)년에 불탄 것을 재건했으나 1592년 임진왜란 때
전화(戰禍)로 전부 타버렸다. 1867년 경복궁 중건 때에 다시 지었다.
화재로 없어진 창덕궁의 희정당(熙政堂)을 재건하기 위해 1918년에 헐었으며
1995년에 복원하였다, 강녕전 건물의 특징은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이다, 왕이 용을 상징하므로
용이 자는곳에 용마루를 둘수없다는 등의 여러기지 설이 있어나 정확히 벍혀진것은 없다,
강녕전은 중앙 3칸은 대청마루, 좌우 3칸은 온돌방, 맨가의 1칸은 누마루다,
↓ 오른쪽은 지금으로 말하면 사랑방 같은 곳이고
↓ 왼쪽은 안방같은 곳으로 임금이 수라상을 들기도하고 쉬기도 하든 곳이다,
왕의 침전, 겨울철 보온은 어떻게 했을까?
↓ 강녕전 마루밑 오른쪽에 불때는 아궁이가 보인다,
↓ 강녕전 일원,
↓ 강녕전 뒤로 교태전으로 들어가는 문,
3칸 대문 옆 벽돌치장을 한 기둥같은 곳은 궁중의 꿀뚝이다,
↓ 안채에 해당하는 교태전은
왕비가 거처 하면서 궁 안 생활을 총 지휘 하든 곳이다,
↓ 교태전 건물도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이다,
교태전 일원, 침전 답게 불 때는 아궁이가 곳곳에 보인다,
↓ 아미산 정원을 바라보는 교태전 뒷 편의 전경이다,
정원과 조화를 잘 이루도록 지어졌다,
교태전 뒤편에 계단식 화단을 쌓아 아미산을 조성하고 4기의 장식적인
굴뚝과 관상수 수석들을 배열해 정원을 만들었다, 아미산 정원은 뒷산인 북악의 정기를
침전까지 이어주며, 왕비의 후원답게 은밀하면서도 기품있게 꾸며졌다,
정원의 아랫 단에는 돌로만든 함지와 화분등이 놓여 졌는데,
함월지는 달이 담긴 호수를, 낙화담은 노을이 비친 연못을 의미한다,
계던식 정원은 산을, 돌함지 따위는 호수를, 굴뚝의 무늬는 동식물의 생태계,
를 상징하여, 아미산 정원은 신선이 사는 자연의 선계가 된다,
굴뚝의 연한 주황색 전 벽돌을 쌓은 몸체에 조각된 여러 무늬들은 각각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봉황은 왕비를, 박쥐는 부귀를, 매화와 국화는 군자의 심성을,
학, 사슴, 불로초, 솔, 대, 돌등 십장생은 장수를 뜻 한다
주 / 여기 실린 역사기록은 경복궁 안내 팜프렛을 인용하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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