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지리산종주1> 노고단에서 연하천대피소(2012, 10, 28)조블뉴스 본문
밤 10 시40분 용산역에서 열차를 타고 다음날 새벽인 3시경 전남 구례에 도착한다,
역전 재첩국 식당에서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한후 택시(구례역 - 성삼재, 일인당 10,000원)를
타고 성삼재에 도착한 시간이 새벽 4시 30분 이다, 성삼재(1,090m)는 구례 천은사를 거쳐 뱀사골로
넘어가는 고개로, 정상엔 주차장과 휴게소가 있는 곳이며. 861번 지방도가 지나가고, 남서쪽은
구례 천은사 방향, 북동쪽은 뱀사골이나 정령치, 남동쪽은 노고단 정상으로 가는
도로가 있는 곳 이다,
성삼재휴게소에서 노고단대피소를 지나 노고단 고개로 올라왔다,
노고단(老姑壇, 1,507m)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 의 3대 주봉으로 꼽힌다,
여기서부터가 지리산 능선종주의 시작 지점이며, 북쪽으로 심원계곡을 남쪽으로 화엄사
계곡과 문수계곡, 피아골 계곡에 큰 물을 보태는 크나큰 봉우리다,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가는 능선길에 여명이 밝아 온다,
어둠을 헤치고 뜨겁게 올라오는 일출, ~ 이때가 새벽 6시 10분 쯤이다,
2.1km 를 걸어 돼지령에 도착 한다,
돼지령?, 왜 돼지령이라고 했는지 유래는 알수 없어도
이곳은 분명 해발 1,390m의 지리산 돼지령 이다 ,
돼지령을 지나 피아골 삼거리에 도착한다,
조정례씨가 쓴 태백산맥 소설에서 보면 빨치산 21사단이 전멸했던 역사의 한 페이지인 곳이
피아골이다, 우리민족의 역사에 지리산은 반란의 산으로 기억 된다, 빨치산과 반란군의 주무대 였기 때문이다.
6.25 이후 빨지산 잔당이 지리산으로 모여 들었고, 이는 국군 토벌대의 무차별 포격, 방화로 이어진다,
피아골 산장터에서 한 트럭분 이상의 인골(빨치산의 것 추정)이 나왔다는 사실은 얼마나 빨지산
토벌작전이 격렬했는지의 반증을 보여 준다 하겠다,
1952년 빨치산 대 몰살의 현장이었던 대성골, 거림골, 빗점골, 의신부락 등은 잿더미가
되어버렸고, 오늘날까지도 대성골의 숨은 골짜기에서는 인골이 종종 목격 된다고 알려진다,
당시 빨치산 벌이라는 명목으로 수 많은 죄없는 양민이 국군토벌대에 의해 학살
되었던 것은 우리나라 근 현대사의 비극적인 역사로 남아있다,
임걸령은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8㎞거리에 있다,
해발 1,320m의 높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속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거운 물이솟고 물맛이 좋기로 유명 하다, 옜날 의적이나 도적들의
은거지였든 것으로 유명하며 특히 의적 임걸(林傑)의 본거지였다하여
임걸령이라 부른다,
이 샘이 물맜이 좋기로 유명한 임걸령 샘이다, 여기를 그냥 지나가는것은 임걸령에 대한 모독일터 ~
시원하고 맛좋은 임걸령 샘터의 샘물을 한바가지나 들이킨다, 사실 이때 쯤은 땀으로 온몸이 범벅이
될때이니 임걸령 샘물이 더 없이 반갑기도하다,
여기는 반야봉으로 올라가는 노루목이다,
반야봉(般若峰 1,732m)은 그 높이와 관계없이 지리산 제2봉이며, 지리산을
상징하는 대표적 봉우리이다. 주봉과 중봉이 절묘하게 빚어낸 지리산의 대표적인 봉우리 답게
노고단은 물론 멀리 천왕봉에서도 선명하게 조망돼 그 독특한 모습을 배경으로 사진촬영을 많이 하는곳이다.
또한, 신비로운 낙조(落照)의 장관을 연출해 내는 지리산 8경중의 하나로 손꼽히기도 하는 곳이다,
여름날에는 하루종일 이글대든 뜨거운 태양이 지루한 하루를 보내고 서편으로 숨어들 무렵
반야의 하늘은 온통 진홍빛으로 물들어 보는 이들을 감동케 하는 곳으로 알려저 있다,
삼도를 경계로 한다고 해서 삼도봉이라 명명된 삼도봉에 도착했다,
삼도봉(三道峰, 1,550m)은 전남, 전북, 경남을 구분 짓는 삼도의 큰 경계역할을 하고 있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다 경남의 산청군, 함양군, 하동군 등 3개군과 전북 남원시, 전남 구례군 등
5개 시와 군, 그리고 15개 면의 행정단위로 그 구역을 구분 짓고 있으며, 그 광활한 지리산 자락은 또한 계곡과
산등성이를 기점으로 해 수많은 자연마을을 형성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낫날봉, 날라리봉, 늴리리봉 등
다양하게 불리던 이 봉우리가 삼도의 경계점이라 해서 삼도봉으로 명명된 것은
국립공원 관리공단이 지리산에 이정표를 세우면서부터 라고 한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낫날봉 으로 불렸다 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반야봉 바로 아래 해발 1,550m로 지리산의 수많은
준봉 가운데 특이할 만하게 눈에 띄는 봉우리는 아니다, 반야봉의 그늘에 가려 아주 이름없고
별다른 특징을 찾을 수 없는 산세지만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라는 데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겠다,
경남은 삼도봉 ~ 불무장대 ~ 통족봉 ~ 촛대봉 ~ 섬진강 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경계로 해 전남과 구분되며, 전북과는 삼도봉 ~ 토끼봉 ~ 명선봉 ~
삼각고지 ~ 영원령 ~ 삼정산 을 연결하는 능선을 경계로 하고 있다. 전남과 전북 경계는 삼도봉 ~
반야봉 ~ 도계삼거리 ~ 만목대 ~ 다름재 구간으로 이 경우는 능선으로 경계선을 만들다
계곡을 건너 다시 능선이 경계선이 되는 형상을 하고 있다,
삼도봉에서 화개재로 가는길 은 잘 만들어 놓은 데크계단길을 내려서야 한다,
이길을 올라오는 사람들 에게는 거의 죽을 맛 일듯한 길고 긴 내림 계단길, 그러나 내려서는
사람들도 결코 이 길이 편하지만은 않은 이유는 이 만큼 많이 내려가면 이 보다 더 가파른 길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일게다, 그런 상상이 결코 오래가지 않아서 현실이 된다,
지리산 능선 장터중의 한곳인 이곳 화개재, 첩첩산중이자 이 높은 곳에서
장이 열렸다니 지금의 시각으로 보면 상상을 초월하는 곳 이기도 하다, 가벼운 배낭도
무거워서 벗어버리고 싶은 곳인데 하나라도 더 많은 물건을 찖어지거나, 머리에 이고 올라왔을
우리 선조들 ~ 그들의 끈끈하고 강인하고 질긴 삶의 철학이 오늘의 우리를 지탱해주는
힘의 원천이 아닐지?, 문득 아둔하게도 그런 생각을 해본다,
다시 화개재에서 1,2km 토끼봉에 도착한다,
아침 나절에는 돼지봉을 지나 왔는데 여기는 다시 토끼봉이다,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모양 이라서가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한편, 토끼봉은 정상 초원에 지보초가 군생하고 있어
일명「지보등」이라고도 불린다. 남쪽 능선길을 따라 20여리 내려가면
칠불사(七佛寺)가 자리잡고 있으며, 이 능선길은 가끔 하산시
지름길로 이용되기도 한다,
토끼봉에서 3km 지점에 연화천대피소가 있다,
지진몸을 하룻밤 쉴수도 있고, 불도 피울수 있어며 음식을 만들어
먹을수도 있는 곳인, 산중 대피소는 등산객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휴식처이기도 하다, 연화천 대피소에는 식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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