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영덕 삼사해상공원 해돋이와 주왕산(2010년 1월, 1일, - 1,) 본문
2009년과 2010년이 만나는 마지막날 과 첫날을 이 열차 안에서 보냈다,
12월 31일 밤 10시 20분 에 영등포역을 출발한 열차가, 안동에 도착한 시간은 2010년 1월 1일 새벽 3시,
올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인 오늘 새벽 기온이 -15` ~ -16`, 체감온도는 -20`는 되는것 같다,
열차에서 내리는 순간 오싹한 한기가 느껴진다, 여기서 또 버스편 으로 2시간 정도가야
영덕에 닿는다,
연말, 연시니까 딱 한번, 느리고 따스한 열차로 밤새 달려
태양과 시선을 마주쳐 보는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고 묵묵히 바다위로 솟아 오르는
뜨거운 불덩이가 새해를 멎음을 축하해 주지 않을까, 그 따스하고 관대한 빛살에 올 한해의
소망을 묶어 띠우고 돌아오면 한해의 첫 발걸음이 한층 가벼울 것 같아서,
나름 한해를 보내고, 맞으며, 2년에 걸친 무박여행을 한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태초신(太初神)의 이름은 크로노스, 즉 '시간' 이라고 한다,.
사람들이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시간의 흐름을 오감으로 느낄수 있는 일출과 일몰에 집착하는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게다
참으로 다사다난 했던 기축년(己丑年)이 저물고 희망찬 경인년(庚寅年)이
저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밝아 온다. 새해는 60년 만의 ‘흰 호랑이(白虎) 해’ 인 만큼 어느
때보다 역동적인 한 해가 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다. 그래서 사람들은 바다와 산을 찾아
해맞이를 하며 마음속 의 시름을 떨치고 새 소망을 담을 준비를 하는게 아닐까,
묵은해의 마무리와, 새해의 시작을 일출과 함께 맞으려 밤새워 달려온 이곳
영덕, 삼사해상공원 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승용차 안에서 야영까지 하면서 일출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무었이 이 많은 사람들을 밤새워 달려오게 만들고 기다리게 하는가, 자연과 인간의 약속이 만들어 내는 하모니!!
그래서 세상 사는 맛은 모두가 나름 느낌이 비슷 하리라,
여기는 새벽 6시경에 도착하여 걸어서
삼사 해상공원 으로 올라 갔다가 아침 8시경 내려오면서 공원 입구를 스냅한 것이다,
영덕 삼사해상공원에서의 해맞이는 끝나고 다시
버스를 타고 청송 주왕산으로 가는 길목 얼음골 이라는데서 잠시 멈췄다,
이름과는 달리
인공으로 얼려놓은 얼음 외에는 자연 얼음은 없다
그래도 없는것 보다는 눈요기 꺼리가 되기는 하지만 추워서인지
얼음보다는 모닥불이 생각나는 날씨다,
주왕산이 보인다,
계곡 냇물은 꽁꽁 얼어붙어 몇몇 개구쟁이들의 썰매터로 변신을 했다,
주왕산 입구에 자리하고 있는 대전사, 뒤로 솟아오른 암봉이 오밀조밀 멋있게 생겼다,
이 대전사는 672년(신라 문무왕12년)에 의상조사께서 창건하신 신라 고찰로
통일신라 고려 조선으로 이어저 온 청송의 중심사찰 이 였으나 임진왜란때 대부분 소실되여
현종 13년(1672년) 여기 보이는 보광전을 새로짓고 당루와 4-5채의 집을 중창하였다, 고 한다
- 안내판에-
계곡을 따라 잘 닦아놓은 길로 주왕산 제1폭포를 목표로하여 올라간다,
이곳은 급수대(汲水臺) 라고 하는곳이다,
신라 37대 왕인 선덕왕이 후손이 없어 무열왕(29대)의 후손인 김주원으로 38대왕을
추대 하였으나 때마침 그가 왕도에서 200리나 떨어진곳에 있었고 홍수로 알천이 범람하여 건너올수 없게 되자,
대신들이 이는 하늘의 뜻이라 하여 상대동 김경신을 왕으로 추대 하게된다, 그리하여 김주원은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 주왕산으로 피신하여 대궐을 건립하였는데 당시 산위에는 샘이 없어 계곡물을 퍼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다고 전해지는데 그후로 이곳을 급수대라 하였다고 한다, - 안내문-
시루봉,
시루봉은 그생김새가 떡을찌는 시루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측면에서 보면 마치 사람의 옆모습처름 보이기도 한다, 시루봉에는 옜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소 도 를 딱고 있을때 신선이 와서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지금도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 안내문 -
학소대 鶴巢臺,
하늘을 찌를듯이 솟은 절벽 위에는 청학과 백학 한쌍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 하여 학소대로 불린다,
어느 옜날 백학이 사냥꾼에게 잡혀 짝을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 주면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오고 있다,.. 지금 학은 간데 없고 그들의 보금자리 터만 절벽위에 남아
옜 주인을 그리워 하고 있다, - 안내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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