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여주 신륵사(2014년 12월 27일) 본문
여주 신륵사는 신라 진평왕때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저 내려오는 절이다,
원효대사의 꿈에 흰옷을 입은 노인이 나타나 지금의 절터에 있든 연못을 가르키며 신성한 가람이
설 곳이라 일러주어 그말을 따라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 하였어나 뜻대로 되질 않았는데 원효대사가
정성을 다해 7일동안 기도를 올리니 9마리의 용이 나와 하늘로 승천한 후에야 이곳에 절을 지을수 있게 되였다는
전설이 전해저 내려오는 절이다, 절 창건에 관한 전설은 여기도 예외는 아닌것 같다,
절 이름에 관해서는 고려 우왕때 여주에서 신륵사에 이르는 마馬 암巖 이라는 바위 부근에서
용마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자 나옹선사가 신기한 굴레를 가지고 그 말을 다스렸다는 설화에서 유래했다고도 하고,
고려 고종때 건너편 마을에 용마 龍馬 가 나타나 걷잡을수 없이 사나우므로 이를 사람들이 붙잡을수 없었는데
이때 인당대사가 나서서 고삐를 잡어니 말이 순해졋어므로 신력으로 제압했다고 하여 신력의 신 神과 제압의 뜻인 륵 勒을
합처 신륵사 神勒寺 라고 지었다는 설이 전해저 내려올 뿐 어디에도 기록은 찾을수 없다,
예로부터 농경사회에서 용은 물의 신으로 여겨저왔다,
이 처름 용과 관련된 설화는 신륵사가 강가에 있음으로 해서 생겨난것으로 해석될수 있겠다,
홍수와 범람이 잦은 남한강의 환경과 지역적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옛 선인들이 이 절을 세우고 강을 돌본 것에서 이러한 설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그 속에서 한국의 자생풍수에 따른 비보 裨補적인 의미 역시 부여 되였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절에서는 어떤 기본 예법이 있을까?
불자가 아니기 때문에 일반적인것 외에 깊이있는 예법은 나도 모른다,
(1) 합장 예배하는 경우?
일주문을 넘어서 부처님 도량에 들어서거나 나올때, 법당에 첫발을 들여 놓거나 나올때,
절을 시작하기 전이나 끝날때, 경내에서 스님이나 불자와 인사 할때 등이다,
(2) 절 하는 예법, 절의 의미(오체투지)
삼보(부처님, 법, 스님)에 대한 예경과 상대방에 대한 존경을 의미하며, 스스로를 낮추는 수행방법이다,
대개 참회나 기도 방법으로 108배, 1080배, 3000배 등을한다, 큰 절은 신체의 다섯군데를 땅에 닿게 하는 것으로
다섯군데는 이마, 양팔꿈치, 양 무릎을 말한다, 이는 자신을 무한히 낮추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존경을 표시하는 예법이다,
(3) 마무리 절(고두배)
3배, 또는 108배, 3000배, 등 절을할때, 마지막 절을 한다음 몸을 일어키지 않고
머리를 들어 이마와 바닥사이에 합장을 하는데 합장을 하면서 소원을 간단히(1 ~ 2초) 기원 한다,
양손을 바닥에 대고 이마를 다시 바닥에 살며시 댄 다음 일어선다, 일어 서서는 합장 반배한다,
여기는 신륵사 경내를 나와서 있는 여주 도자기 축제가 열리는 장소다,
행사시에만 사용하는지 모든 건물이 비여 있었다,
2014년의 송년 여행의 밤이 깊어간다,
저녁이라기에는 이른 18시경, 여주강가에 자리한 일성콘도에서 잔을 들었다,
지나간 일년을 되돌아보니 영남알프스에서 지리산으로, 설악산까지 많은 곳을 찾아 다닌것 같다,
그러나 이제 며칠이 지나가면 다시는 오지 않을 2014년이다, 아쉬워도 보내야 하고 새해를 맞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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