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백두산(2) 연길대성중, 도문 남양정(2016, 07, 30,) 본문

해외 旅行/白頭山(백두산)

백두산(2) 연길대성중, 도문 남양정(2016, 07, 30,)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6. 8. 12. 11:47

용정 시내를 돌아 대성 중학교로 간다,

용정 대성 중학교 전경

윤동주의 아명(兒名)은 해환(海煥)이었다.

아우 일주(一柱)는 달환(達煥)이었으며 막내동생은 별환으로, 윤동주시인의 어른들은

세 자식들에게 해, 달, 별을 이름 앞에 차례로 붙었다. 과연 시인이 나올만한 집안 내력이였든 모양이다,

윤동주 시인이 다녔던 대성중학교에는 그의 시비가 서 있다.

대성중학교는 민족시인 윤동주가 다니든 학교로

 그 당시 수많은 독립운동가 와 애국지사를 배출한 곳이다,

물론 관광코스는 교실을 돌아볼수 있도록 했었고 대성중학교 전속 가이드가 자세한 설명을 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내부에서 사진 찰영을 금지 해놓은 탓에 교실내 사진은 없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함께한 일행 모두는 아니지만 첫 단체 사진을 직었다, 훗날 이것도 좋은 추억이 될테니

대성중학교 옆에는 새로 신축한 용정 제일중학교가 있었다, 

이름과 건물은 바뀌였지만 지금도 한민족의 후손들이 민족교육을 받고 학습하는 곳이다,

대성중학교를 떠나서 두만강 나루터로 간다

두만강 나루터로 가는길 ~ 차 내에서 찍어서 사진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끝없이 넓게 펼처진 옥수수 밭은 조금 부럽기 까지 했다,

용정에서 중 조 국경선을 따라 약 1시간 정도를 달려가야

두만강 나루터가 있는 도문시로 들어간다,

차가 달리는 도로 옆은 두만강이 흐르고 강 건너편은 이북이다,

그래서 이 길은 접경지역 차내 관광이다, 북한 지역 건물들이 보인다,

두만강 나루터다, 옜날 이곳은 두만강을 건너든 뱃사공이 노를 젓든 곳이다

예날에는 지금처름 중국과 조선으로 나누어저 있지도 않았을테니 강 건너나 이곳이나 모두 같은

민족이 살아가든 곳이 아닌가, 지금은 나라가 달라 국경에는 다리와 철교가 연결되여 있다,

이것 두만강 나루터는 북한땅과 불과 30m 거리다,

그러나 이곳 두만강 나루터는 140여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과거의 역사와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채 오늘도 두만강은 유유히 흐른다, 민족의 사변이 있고난 다음 눈물 젖은 두만강이라는 노래가 분단의

아픔을 뼈에 사무치게 한으로 새기며 다가왔든 두만강이다, ~ 이곳은 평상시 나루터 강변까지 내려갔다고

했는데 오늘은 중국 당국의 통제로 나루터로 내려가지 못했다,

도문의 자랑인 일광산 공원 전망대에서 

북한 남양 로동자자 주택지구와 도문전경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었다,

두만강과 건너편 북한지역 ~

철교와 다리 이 다리가 중, 조 왕래를 하는 곳이다,

사진 왼쪽이 중국 도문시다,

오른쪽은 북한 로동자 주택단지라고 한다,


연길에서 부터 중 조 국경선을 약 1시간 정도를 달려 왔어도 북한지역 산에는 나무가 없다,

진에 보이는 것처름 모두가 벌거벗은 민둥산이였고 경사도가 높더라도 한뼘이라도 농작물을 키울수

있는 곳은 모두 개간을해서 농사를 짓고 있는게 보인다,

이 멋대가리 없어 보이는 아재가 찍사다, 멋이 없음 어떤가?

동해안 일주를 끝낸지 얼마되지 않아서 가뜩이나 마른 체형이 5kg 나 빠지다 보니 조금 말라보이는것 뿐이다,

외모는 그래도 마음은 비단결같은 청춘인데, ~ ㅠㅠ 이곳에 나두 있었다는 인증샷을 찍었다, 사실 내손으로 사진을

찍어야 하니 여행이 끝나도 내 사진은 그리많지 않을것이다,

중국은 도문시 북한은 남양 이다,

그래서 인지 전망안내 표시는 도문 남양이라 붙어 있다,

도문 남양 전망대 에서 내려와 두만강 나루터로 이동하고 있는 우리들모습

각각의 방향에 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한글과 중국어로 새겨진 이정표도 있다,

아직까지는 우리와 다른점은 별로 없는 간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