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만리장성 - 4, 팔달령장성 북3루, (八达岭长城, 바다링창청), 2018년 1월 15일 본문

해외 旅行/중국북경여행

만리장성 - 4, 팔달령장성 북3루, (八达岭长城, 바다링창청), 2018년 1월 15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2. 2. 05:30

바다링창청은 수도를 호위하는 문이라 할수 있는 곳이다,

바다링에서 남쪽 입구까지의 중간에 관거우(관구)라 불리는 40m 길이의 협곡이 있는데

바다링은 관거우 북쪽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있다,

올라온길 맞은편으로 돌아보니 남 城성이 보인다,

바다링창청에 오르면 눈길 닿는데까지 넓은 하늘을 바라볼수 있고, 구불 구불 길게 이어지는 산맥과

산봉우리들이 잇따라 겹처지는 만리장성은 마치 거대한 한 마리의 용이 아주 아득한 옜날부터 현재까지 오랜

세월동안 저 어디선가에서 날아오르는 듯한 형용할수 없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북성(北城)의 성길도 차츰 고도가 높아진다,

옜 사람들 사이에 바다링(팔당령) 아래 쥐융관(거용관)을 보면 마치 물을 가득채운

물동이를 엎 지르는(유리한 지형 또는 위치에 있다는 의미)것과도 같어며 또한 우물을 들여다 보는것과 같다고도 했다,

쥐융의(거용)의 험준함은 관청(관성)에 있지 않고 바다링(팔달령)에 있다고 하는 말이다,

관성에 들어서면 서로 마주보며 우뚝 솟아있는 봉우리 사이로

나 있는 길이 하나 보이며, 높은곳에서 몸을 굽혀 아래로 내려다보면 지세가 매우 험준하다,

그 만큼 팔달령은 지리적으로 만리장성의 중심이고

수도인 북경의 방어선 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지역이 였다는 뜻이된다,

북 3루에서 북쪽방향으로 내려다본다,

양쪽의 험준한 산 준령 가운데로 나있는 협곡으로 들어가자면 반드시 팔달령을 거처야 했다,

그리고 보면 만리장성 팔달령의 지리적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든 것 같다,


이곳 북 3루에도 암문이 있다,

만리장성은 각 루 마다 암문이 하나씩 있는 것 같다,


 중국역사상 역대 전략가들이 절대로 양보하거나 타협하지 않았든 곳인 바다링은,

 전략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의미)를 가지고 있는 곳이다,

그러나 청나라 이후 바다링은 갈수록 황폐해지고 성곽과 망루의 보존 상태가 날로 심각해젓다,

그래서 인민정부 수립이후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해 오늘에 이른다,

바다링창청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의 증인이기도 한 것이다,

최초의 황제였든 진시황(秦始皇)이 동쪽에 있는 제스(갈색)에 도착한후, 다퉁루(大同路)를 통해 셴양(함양)으로

돌아간 사건을 비롯해, 요나라 초태후의 순행, 원 태조의 관성 입성, 명나라 황제의 북벌, 청나라황제의 친정(와이 몸소 출전하는 의미)

등의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 났을때 마다 바다링은 반드시 거처 가야하는 중요한 관문이였다,


느긋하게 시작한 팔달령 장성의 오름길은 생각보다 빡세거나 힘든길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속해서 이어지는 오름길이 다소 부담스러운건 사실이다,

경사진 길을 따라 가다가 계단길이 나오면 경사가 더 높아 진다는 뜻일테니

저 계단길에서는 가끔씩 계단을 의자삼아 앉아 쉬는 사람들도 보인다, 힘들면 그렇게 쉬면서 올라가면 된다,

비수기라 그리 많은 사람들은 아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와있다,

그러나 성수기 이곳에는 발디딜 틈도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개방이후 만리장성을 찾은 사람들은

1억 5천 만명 정도는 된다고 하는걸 보면, 우리로서는 감히 상상도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