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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만리장성 - 7, 만리장성 시작과 끝(八达岭长城, 바다링창청), 2018년 1월 15일 본문

해외 旅行/중국북경여행

만리장성 - 7, 만리장성 시작과 끝(八达岭长城, 바다링창청), 2018년 1월 15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2. 3. 12:30

중국을 대표하는 만리장성은 세계적인 문화유산이자 세계 7대 불가사의중 하나다,

만리장성은 중국 춘추전국시대 서로 국경을 보호하기위해 장성을 쌓았어며, 중국 진나라

시황제가 북방 유목민의 침입을 막기위해 현재의 장성을 만들었다,

인류최대의 토목공사로 불리는 만리장성은 성벽의 높이,

이중으로 축성된 성벽등 지역마다 각기 다른 구조와 재료로 만들어젓다,

 

팔달령장성(八达岭长城, 바다링창청)외에도 

모전욕장성(慕田峪长城,mù tián yù cháng chéng,무톈위창청),

사마대장성(司马台长城,sī mǎ tái cháng chéng, 쓰마타이창청),

거용관장성고객잔(居庸关长城古客栈, jūyōngguān chángchéng gǔkèzhàn, 쥐융관 창청 구커잔)

등은 각기 다른 독특한 모양과 구조로 여행자들이 찾고 있다,

이곳들은 모두 북경에서 갈수있는 곳이다,

수도인 베이징의 팔달령 장성은 가장 많이 알려진 관광지로

베이징에서 서북쪽으로 한시간 거리인 75km 지점에 위치하며 성의 높이는 1,015m에

이르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만리장성과 빼여난 주위 경관은 만리장성 중 가장 뛰여난 곳이다,

명나라때인 1505년에 축조 되였다,

우리는 성을 쌓을때 자재는 거의 모두가 돌이다,

그중에서도 화강암을 짤라서 네모지게 다듬어 만든 종류가 제일많다,

그러나 팔달령 장성은 거의 구운벽돌로 쌓은게 우리와 다르다,

이제는 팔달령장성 남성(南城)으로 올라간다,

남성은 북성보다 사람이 적어보인다,

모두가 북성으로 올라가니 이곳 남성으로는 나처름 생각나는

사람들만 올라오는 곳인가보다,

성 전체와 바닥 그리고 루(樓)까지 집을 짓듯

벽돌을 한개 두개 붙여 쌓아서 성을 만들었다, 화강암등의 큰 돌(바위)들이 없었을까?

아니면 그당시에도 벽돌를 굽는 기슬이 뛰여 났든 것일까?

남 2루 까지 올라왔다,

남성은 북성과 루의 구조가 다르다, 북성의 루는 좁은 공간에 세운

루(樓)가운데를 벽돌로 칸을 막아 통행에 제약을 주는 형태였었는데 남성의 루는

사방으로 벽체만 설치하고 가운데 공간은 비워 놓았다, 그래서 벽면에

뚫린 창으로 전투를 할수 있도록 설계했다,

이제 3루로 올라간다, 초입에서 올라가는 길은 북성보다 가파르다,

계단은 없지만 경사도는  상당히 높다,

돌아보면 팔달령 장성 입구를 비롯해 길게 이어지는 북성이 보인다,

북성이 있는 산과 이곳 남성이 자리하고 있는 산 사이, 고개마루인 팔달령은,

지형만으로도 요쇄다,

사진 하단에 있는 비석이 보인다, 만리장성을 오르지않은 남자는

남자가 아니라는 모택동 어록을 새긴 비석이다,

남성에도 암문이 있다,

그러나 이곳은 외진 곳으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이라 막아 놓았다,

그리고 가파른 경사진 길을 올라가서 계단을 올라가면 남성 3루다,

팔달령 장성 남성 3루는 이런 형태로 만들어저 있다,

남성에 있는 루의 형태는 북성의 통일된 루의 규격과는 각기 다르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보이는 형태가 그렇다는 얘기다,

남성 3루에 올라와서 남성 4루 방향으로 올려다 본다,

이곳부터 산 등선을 타고 올라가는 경사도의 난이도가 높아 보인다,

그리고 그 위로 보이는 남성(南城) 4루(樓)

까마득 해보인다, 만리장성이라 만리까지 이어저 있어니 끝을 볼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게 당연하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보이는 남성 5루는 능선에 있다,

올라갔다가 돌아 올려니 오후에 또 가야하는 일정이 있어 망서려진다,

끝이 없기는 하지만 저곳까지라도 올라가서 둘러보고 오늘 일정은 여기서 끝낼까,

이 정도에서 돌아가 새로운 여행지로 갈까, 돌아서려니 미련이 남는다,

올라온 곳도 꽤나 높은 곳이고 남성과 북성을 어느 정도는 둘러본 셈이니

이제 그만 돌아가야 겠다, 타국까지 왔어니 유적들을 자세히 둘러보면서 이해할게 아니라

그냥 가볍게 보고 즐기는게 더 마땅할것 같고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유적을 돌아보는게

좋을것 같아서다, 뭐 이 정도면 맛보기 구경은 충분한 셈이니.

벽돌을 한장 한장 쌓아서 견고하게 만든 성, 보수를 한 지금도 그렇지만

그 먼 옜날에 이 높은 곳으로 벽돌을 실어와 산위로 져다 날라서 이성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참 대단한 민족이다,

더욱이 양면을 벽돌로 쌓았어면 가운데는 흙 같은 물질로 채웠을 텐데

그렇게 채운 흙 등의 재료들을 이렇게 높게 쌓은 벽돌이 버팅기며 오랜 세월 지탱해 간다는게

이해가 안된다, 물론 이제는 양측 벽면의 벽돌과 가운데 채운 흙이 하나로 합처저

돌이된 세월이기는 하지만,

이 문으로 나가면 팔달령 장성입구고 돌아서면 남성 4루다,

남성 3루에서 보이는 북성의 끝없는 모습이 한편으로 무었인지도 모르겠지만

부럽기까지 하다, 이제 그만 만리장성에 대한 미련을 접고 돌아간다, 그러면서 도대체

이 만리장성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모두 다 아는 이야기들이지만 ~

그래서 잠시 만리장성의 출발점과 끝 지점을 살펴 본다,

만리장성의 동쪽기점인 산하이관(산해관) 라오룽터우(노룡두)는 중국의 동쪽바다,

중국만리장성의 동쪽기점으로, 시발점이다, 서쪽 끝에서 보면 종점이겠지만, 용의 머리란 뜻의

노룡두란 이름은 바다와 만리장성이 만나는 지점이 마치 승천하는 용의 머리같다고 해서

이곳 만리장성 생김새에서 따왔다, 사실 직접 가보면 시작점이라는 것과 바다와

만리장성이 만난다는 점 외에는 특별한게 없다,

그리고 만리장성의 서쪽끝인 자위관, 실크로드를 지나는 사신이나

상인이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했다, 자위관은 만리장성의 유명한 관청이였고

일단 보존상태가 완벽하다, 명 홍무제 때 건설된 만리장성의 서쪽 끝이자, 제국의 국경이였다,

관성은 흙으로 쌓은 내성과 벽돌을 쌓아만든 외성으로 이루어저 있다,  내성의

둘레는 640m 내성 장벽위에는 성루와 망루가 있는데 이 건축물의 역사가

자그만치 500년이다, 사막의 모래바람을 맞어며 우뚝 서있다,

명나라때 ↑ 자위관 방어를 강화하기 위해 축조된 현벽장성 ↓ 이다,

가욕관 성루가 치련산맥과 헤이산 사이에 세워진 중국과 서역을 잇는 실크로드의 관문이라면

현벽장성은 자위관과 성룽, 헤이산을 잇는 만리장성의 일부분이다, 가욕관 성루보다 150년 뒤인 1539년에

건설 되였어나 거의 무너지고 1987년에 재건되였다, 경사도가 45도에 달하는 산등성이에 세워저있다,

동쪽 만리장성에서 보든 풍경과는 전혀 다른 사막으로 나무 한그루 살지않는 불모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