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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서해안 국토종주 8, ~ 줄포면에서 새만금방조제홍보관까지,(2018년 5월 21일) 본문

서해안 일주(해남 땅끝-김포)/서해안국토종주결산

서해안 국토종주 8, ~ 줄포면에서 새만금방조제홍보관까지,(2018년 5월 21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7. 23. 18:10

아침 이른시간 줄포에 있는 수윤장여관을 나섯다,

줄포상설시장 또는 줄포 재래시장이 있는 곳 앞이다, 이곳에서는 편의점도 늦게 문을열고

음식점도 점심시간은 되여야 문을 열기때문에 가다가 아침을 먹어야 한다,

줄포만갯벌생태공원 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왼쪽에 있다, 생태공원 캠핑장은 이곳에서 1,5km다,

이곳 줄포만은 전남의 법성포와, 충남의 서천과 함께 남부 서해안의 3대 포구로서 군산항과 더불어 2대항에

속했든 곳이기도하다, 곰소만 매립으로 지금은 사라진 항이 되였지만

보이는 저곳이 줄포만이다,

이곳에서 바다가 보이지는 않지만 여기서 줄포만은 가까운 거리다,

가는길 왼쪽에 있는 후촌마을도 보면서 지나간다,

줄포면은 부안군이다, 부안군은 삼한시대 마한(馬韓) 54개국 중 지반국(支半國)이

 부안지역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하며 4세기경 백제의 남방정벌로 주변 세력들과 함께 백제에 항복하여 백제 관할이였다,

이제 줄포면에서 보안면으로 들어간다, 보안은 노령산맥 변산반도 남단 해변에 접한 지역으로 동쪽은 정읍군 고부면, 서쪽으로는 옥녀봉,

매봉, 동량재가 곰소만,  남쪽으로 줄포만에 접해있다, 북쪽은 노승봉으로 부터 유정재를 너머 상서면에 접해 있는 곳으로

부안읍에서 16km 지점이며 교통이 편리하다,

보안면은 마한시대 부족국가로서 시작해서 백제시대는 서기 600년(무왕 1년) 흔량매현 이라 하였어며

통일신라 시대에는 서기 742년(경덕왕 1년)에 보안현으로 하다가 경덕왕 16년에 희안현으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

다시 보안현으로 바꾸었어며 조선조 서기 1416년(태종 16년) 12월 부령현과 보안현을 합병하여

부령의 부자와 보안의 안자를 따서 부안현으로 하였다,

일제때는 입상, 입하면으로 분리 집강을 두어 집무를 했고, 1916년 4월 입상, 입하 양면을 다시 합병하여

보안면으로 개칭했다, 그러다가 1963년 주민조직 개편에 따라 10개리 43개 마을로 행정분리 되였어며 1994년 행정조직

개편에 따라 10개리 44개 마을로 행정 분리되여 오늘의 보안면에 이르게 된다, 아래사진은 영전사거리 회전교차로가 있는 곳이다,

좌측으로는 곰소와 격포, 우측으로는 주산으로 가는 길로 갈라지는 도로가있다, 

보안면 지역도 농토는 넓다,

보안면 남포리 들녁과 남포리 그 뒤에 있는 산은 해발 250m 인 남대봉 자락이다,

이곳 산은 최고 높이가 해발 350m다,

보안은 지리적으로 신복리 철마산으로부터 옥녀봉, 노승봉, 덕성봉을거처

이곳 남포리 유정재에서 정자산을 돌아 모정재를 지나 군자동과 매산, 뒷산을거처 다시 성매산으로

이어지는 산등성이는 마치 성을 방불케하는 자연적인 좋은 조건이기에 전설도 많은 곳이다,

보안 마을들은 영전리와 유천리 토성에 군량미를 저장했든 창고는 많은 사창을 지키기 위해 축조한 곳으로

지금도 그대로 형상을 지니고 있는 곳이다, 옜 장터인 구장터는 현감이 기거하든 곳이라서고현리, 기와를 굽는다고 해서 기와골 등

지난날을 더듬어 갈 수있는 자료들이며 유일하게 고려 청자를 굽든곳으로 유천마을에 위치한 유천리 도요지는 사적 제69호로 지정되여 뜻있는

학자나 관광객은 이곳을 그대로 지나치지 않고 찾아 다시 한번 조상의 얼을 더듬곤한다, 그리고 굴바위는 생육신 김시습이 은거한 곳으로

 굴 한가운데 옥정(玉井)이 있어며 굴의 깊이가 얼마나 깊은지 불을 지피면 해창에서 연기가 나온다는 설도 주전 되여 내려온다,

영성제가 보인다, 영성제는 보안면 남포리 64-1에 있다,

영성제라는 이름은 있어나 이곳이 무슨 사당인지? 유래는 찾을수 없었다,

영선제 건너편에는 만포제라는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는  꽤 큰 저수지다,

영성제에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용사버스승강장이 있다, 승강장 건너편 인도 건널목이 있는 곳은 월천리

유관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이곳도 삼거리인 셈이다, 이 곳 내림길에 부터는 상서면 이다,

보안면은 이곳에서 끝나고 이제는 상서면 땅이라는 뜻이다,

언덕을 올라가서 조금만 내려가면 호벌치전적지가 있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 30호다,

정유재란 호벌치 전적지는 보안면 남포리에 있는데 이 언덕은 정유재란(1597년)때 왜적과 맞서 싸우다 목숨을 잃은

선현들의 넋이 서린곳이다, 정유재란이 일어나고 왜적이 줄포만을 거처 부안읍에 처들어오자 채홍국은 김영년등과 함께 의병을

조직하여 싸움을 벌였어나 적의 급습을 받고 전사했다,

그러자 그의 두아들 명달과 정달도 나라를 구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위해 적진에 뛰여 들었어나

장열하게 전사한다, 당시 이들과 함게 산화한 의병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이곳에 전적비와 함께 순절비를 세웠다,

순절비 앞에는 정유재란 호벌치 전적지 사당도 있다,

정유재란 사당을 내려가면 유정삼거리다, 이곳에는개암 쉼터가 있다, 편의점과 식당이 있고

넓은 주차장끼지 있는 완벽한 쉼터다, 개암쉼터 한식뷔페 식당으로 무조건 들어간다, 줄포면에서 이곳까지오면서

아침을 못했어니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이렇게 번듯한 식당을 만나다니 오늘은 먹을 복이 있나보다, 뷔페식이니 대충 담아 자리에 앉았는데 

주인사장님께서 미역국을 따로 갇다가 주었다, 그리고 아무리봐도 내 행색이 너무 초라해 보였든지? 미수가루를 타 주면서 가다가

먹라고 한다, 이건 정말 예상도 못했든일이 일이다, 사람은 이런 작은일에도 진심을 느끼면 감동을 받는게 아니든가,

이 따스한 정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다, 063) 582- 2313 개암쉼터 한식 뷔페 다,

개암쉼터를 나가면 있는 유정버스승강장을지나 가면서 건너다 보이는

주산면 사산리 방향 들녁은 보는것 만으로도 넉넉해 보인다,

상서면 감교리 유정마을로 들어가는 길

유정마을 뒤 산에는 아주 멋스럽게 생긴 바위 두개가 우뚝 솟아 있다,

산세를보니 이곳 산에도 등산로가 있는 모양인데 무슨 산인지 이름은 알수없다,

뒤에있는 산들과 넓은 들녁 그 아래로 이어저 있는

유정마을을보면 아주 아름다운 풍경이 어우려지는 넉넉한 농촌마을인것 같다,

보령원이라는 표지석도 있다, 보령원은 김유신장군사당으로 부안군 상서면 봉은길 90-5 에있다,

보령원(保寧院) 保寧書院은 1862년(철종 13) 김유신의 후손들이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사패지 개암동에 유적비를 건립 하고 

사우와 강당 등을 건립하여 홍무왕을 봉안 향사하였다. 도읍지에는 둔충전으로 사설에는 개암사로 등재되었다. 1934년 보령원으로 개칭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곳이다, 보령원은 이곳에서 500m 거리에 있다, 보령원(保寧院) 保寧書院 입구 농은버스승장장을 지나서 가는길

상서면 감교리 봉은마을과 주산면 사산리 봉은마을이 함께있는 마을이 보인다, 탑이 있는 건물은 감교교회다,

그리고 길건너 상서면 감교리와 주산면 사산리마을 도 보인다,

이곳은 상서면과 주산면 경계가 있는 마을로 행정구역과 마을이 함께 겹치는 마을인것 같다,

봉은버스승강장을 지나면 봉은마을 표지석도 있다,

개암사 입구도 지나간다, 개암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번지에 있다. 개암사는

634년(백제 무왕 35)에 묘련대사가 창건한 절로. 1314년(고려 충숙왕 1)에 원감국사가 다시 지어 큰 절로 거듭나게 되었다,

개암사는 이곳애서 약 2,7km 지점 우금산 아래에 있다,

개암사 입구를 지나가면 회시마을도 보인다,

회시마을은 이지역에서는 조금 큰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는 나무 숲 아래 정자도 있다, 여름철 그늘 쉼터인 모양이다,

회사마을 입구에는 

 회시마을 표지석도 있고 회시버스승강장도 있다,

처음보는 이름이 보인다, 원숭이 학교 다, 원숭이학교는 자연사 박물관,이다,

문화관광부 지정 전라북도 제4호 전문박물관으로 등록된 원숭이 학교는 90여 마리의 여러종류의 원숭이와

다양한 악어가 서식하는 악어 동물원, 문화 예술적으로 보전 가치가 있는 동양 최대 규모의 화석, 원석 보석 박물관, 봄의 요정이

부르는 로즈마리 터널, 라벤다동산, 스피아민트 광장 등 향긋한 허브향이 함께하는 허브식물원, 다람쥐 동산 등 다양한 볼거리와

20여명의 원숭이 학생들이 선보이는 좌충우돌 원숭이 친구들의 학교생활, 원숭이 공연과 잠시라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아슬아슬하고 웃음과 감동이 교차하는 중국 기예단 공연이 함께펼처지는 학교라고 안내되여 있다,

이 마을은 이렇게 새로지은 주택과 대대로 내려오는 오래된 집들이 묘한대조를 이루는 이곳은

부안로 1811 이다, 부안로의 끝은 어디서 어디까지일까? 새로 만들어진 도로명은 시군을 뛰여넘고 마을과 마을의 경계를 허물어 버렸다,

이러다가 앞으로 어느 싯점에서인가는 도로명을 기준으로 행정구역을 나누어야 할 시대가 올지도 모르겠다,

감교리 마을 끝 항일의병 선봉장 김낙선의사 기적비가 있다, 김낙선 의병(1881~1925)은

부안군 상서면 출신으로 1909년부터 의병장 이용서 부대에 가담 의병 30여명과 함께 고부, 부안, 태인등지를 근거로 활동했다,

구 한말시대 20대 때부터 일본군과 맞서 싸우다 운명을 달리한 항일의병의 뜻을 기리기위한 기적비로 2004년

후손들이 부지를 매입하고 전북도와 부안군 지원으로 2009년에 세워졋다,


김낙선의사는 한일합방 직전인 1909년 3월 28세때 태인군 남촌면 일대에서 일본군 기병대와 교전중

허벅지에 총상을 입고 탈출에 성공해 은신하며 치료해 후일을 도모했다, 같은해 7월 의병 12명을 규합 선봉장이 되여서 항일유격전을

전개해 크고 작은공을 세웠다, 다시 한달뒤 김제군 홍산면 일대에서 일본군 헌병대와 교전중 총상을입고 체포구금되여

11월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형을 선고받고 투옥됬다,


1916년 11월 7년형을 모두채우고 출옥했지만 이미 고국은 일본의으로 넘어간 후였다,

뛰여난 활약상을 보였든 김의병은 1925년 고문의 휴유증을 못이겨 44세의 나이로 사망하고 1986년 12월 16일 건국포장이

1990년 12월 26일 건국 애국장이 추서 되였어며 2003년 5월 20일 대전 국립현충원에 안장 되였다,

김낙선의사 기적비 옆에는 타루비가 있다, 타루비에는 1592년 임진왜란에서

패한 왜군이 조선 선조 30년 다시 처 들어와 정유재란을 일으키자 이곳 고장 도화동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든 이유 선생이 의병을 모아서 앞 마을인 청등에서 적과 싸우다가 순국한 그 갸륵한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것이다,

라고 안내되여 있다, 부안은 가는곳마다 왜적과 맞서 싸우다 목숨을 바친 애국지사들의 발자취를 많이 볼수 있는

총효의 마을이다, 김낙선의사 기적비와 타루비 앞에서 잠시 모자를벗고 묵념을 올렸다,

타루비 옆으로 난 길은

감교리 병목골 마을로 들어가는 길이다,

가는길 오늘쪽에도 감교리다, 

감교리 넓은 들녁을 바라보면서 느긋하게 길을 따라 올라간다,

가는길 오른쪽 가도 가도

끝이 없을것같은 들녁이 이어지는 한가운데 나있는 도로를 따라 올라간다,

동림, 양산, 우덕버스 승강장도 지나간다, 그리고 가오리 우덕마을에 난 인도를 따라가다가

우덕초등학교를 만난다, 1953년 3월 31일 우덕국민학교로 개설되여 14명의 교직원과  28명의 초등학생과 3명의 유치원생을

포함하여 31명의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다, 농촌학교라 그런지 교실과 운동장 시설은 아주 넉넉한 것 같다,

이제는 우덕초등학교도 지나서 상서면사무소로 올라간다,

이곳은 상서면 가오리로 상서면소재지다, 이곳에는 농협하나로마트도 있고 농협은행도 있다,

상서면 사무소와 상서보건소 청사가 나란히 있는 이곳은 상서면 가오리 478번지로 부안로 2001 이다,

상서중학교는 1971년 7월 1일에 개교한 학교로 교직원 13명에 13명의 학생(1학년 2명, 2학년 7명, 3학년 4명)이

공부하고 있는 초 미니 학교다, 이렇게 넓은 운동장과 넉넉한 교실이 있는데  더욱이 교직원과 학생수가 동일하니 이런 현실이

지금 우리 농촌의 현실이 아닌가,

상서중학교를 지나 상서면 용서리 한가운데로 난 길을 따라 지석마을로 간다,

지금가고 있는 도로명은 고인돌로다,지석마을 표지석에는 숙실이라는 이름도 있는데 이곳 행정명은 용서리고

마을 이름은 지석마을인데 그리고 숙실은 뭔지? 지석마을로 들어가는 휘여진 길 끝에

지석마을회관이 있는게 보인다,

지석마을 입구를 지나서 용서리로 올라간다,

저기마을, 용서마을, 이곳 마을 이름은 참 다양하다, 지석마을 맞은편 용서리 들을 바라본다,

그리고 멀리 장동리까지 이어지는 평야지대도 보고

계속해서 736번 도로를 따라간다,

장동리 849번지 삼거리다, 이곳 오늘쪽 골목길로은

분장 1길과 분장 2길로 들어가는 마을길이다, 물론 나는 이길로는 가지 않는다,

상서면 통정리 산 아래 여러기의 묘지가 있는 곳과 밭 가운데 정자가 보인다,

정자는 마을 주민들의 쉼터 정자가 아니라 묘지 후손들이 지어놓은 정자 인가보다, 그리고 보니

이곳은 공동묘지는 아닌것 같은데 여러기의 묘가 보인다, 선산인가보다,

상서면 장동리 분장 1길 마을도 보이고

상서면 고인돌로 249  

부안군 상서면 통정리 448, 부안중앙농협농산물산지유통센터도 있다,

부안중앙농협농산물산지유통센터 맞은편 은 분장마을 과 통정리 들녁도 보면서 지나간다,

그러다보니 산자락 아래 옹기 종기 모여 살고 있는 도화, 봉암마을도 보인다,

도화봉암 마을을 지나 상서초등학교 앞으로 간다,

1922년 3월 부서공립보통학교로 설립괴였어며 교직원 13명에 학생수 16명(남 6명. 여 10명,)의 학교로

16명의 학생들이 사용하기에는 너무 크고 넓은 학교시설과, 교직원과 학생이 1 : 1 인 학교다,

상서초등학교를 지나면 바로 도화사거리다,

도화사거리에는 구암마을 이라는 마을 표지석이 있는것을 보니 이곳이 구암마을인것같은데

이곳에서는 지금까지 내가 걸어온 736번 도로는 왼쪽 내변산으로 가고  나는 그대로 직진해서 705번 도로를 까라 가야한다,

도화사거리를 지나면 에서 바로 다리가 있는데 이 다리가 구암교다,

구암교는 상서면과 하서면의 경계다, 면의 이름을 상, 하, 다, 하서면으로 들어가 처음만난

이정표는구암리 지석묘 였다, 70m라고 되여 있어니 일단 들어가 본다, 청동기 시대 무덤인 지석묘라고

쓰여있는 표지석과 고인돌 비슷한 머릿돌 몇개가 있는게 전부다,

하서면 변산로에 있는  긴 건물 지붕에

태양열판이 깔려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그곳이 무었을하는 곳인지는 알수 없다,

계속해서 길을 따라 올라가는길 오른쪽으로 멀리

하서면 초등학등학교가 있는 하서면 청호리 598-1 번지 일대도 보인다,

그리고 하서중학교가 보인다, 하서중학교는 1971년 3월 5일 280명 학생이 입학하면서 개교한 학교다

교직원 15명에 35명(남학생 19명, 여학생 16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는 학교다, 하서중학교 앞에는 운암버스승강장이 있다,

하서중학교 맞은편 운암길이다,

운임길 좌우로 운암마을이 이어지고 운암마을회관도 있는 마을이다, 행정지명은 석상리다,

부안군 하서면 석불로 4 , 하서면 장신리 아주 오래된 마을인

등룡삼거리에 있는 등룡미곡처리장이 보인다, 미곡처리장 옆 오른쪽으로는 길게 어어지는 도로도 보인다,

신설도로인 이 도로는 변산바다로로 30번 국도다, 2017년 12월에 개통했다,

그러니 오늘로 보면 이제 5개월 정도된 도로다,

네이버 길 찾기에서 알려주는대로, 오른쪽에 있는 등룡미곡처리장 앞에서

여태까지 따라가든 705번 도로를 포기하고 오른쪽 장신리 방향으로 들어가 장신교차로에서 30번국도로 들어간다,

이런 도로에서는 오는 차를 마주보고 가는 역방향이 더 안전하다, 일반국도니 인도는 없지만

자동차 전용도로는 아니다,

이제 달려오는 차량을 마주보고 간다,

30번국도 변산바다로는 부안군 동진면 봉황리 417-6 봉황교차로에서 변산교차로까지로 변산로 새만금의 대체도로다 

지금도 2차선이 변산로는 마을과 마을을 지나가는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오른쪽에는 등룡마을도 보이고 장산리 일대의 농지들이 보인다,

그리고 멀리 변산(해발 508m)이 보인다, 해수면과 동일한 해발이라 이곳에서 500m가 넘는 산은

아주 높은 산이다, 변산 정상, 의상봉에는 많은 국가시설이 있는게 보인다,

30번 신설도로로 올라가니 일직선으로 뻗은 변산바다 로 다,

딱히 이길 말고는 다른길이 없다, 현재의 내 위치를 알려주는 길 찾기도 정확히 이길이 맞다고 알려준다,

그리고 보이는 첫번째 교차로인 수조교차로와 만난다, 직진은 새만금이고 오른쪽으로 나가면

신재생에너지 산업단지로 가는 날개 도로다, 나는 수조교차로도 그냥 지나간다,

보이는 마을을 지도 검색을 해보니 하서면 백련리 노계마을이다,

하서면 백련리 일대에

넓게 퍼저있는 농지를 보면서 변산해안로를 따라 계속해서 간다,

무료한 길이지만 푸른 하늘을 보고 가다보니 도로건너편에 대형선풍기?도 돌아가고 있고 큰 건물도 있다,

전라북도 신생에너지 테마파크, 풍력핵심기술연구센터 와  KIMS 재료연구소다,(당겨찍은 사진에 그렇게 건물용도가 쓰여있다)

좀 복잡하기는 하지만 여하튼 풍력관련 연구를 하는 곳인 모양이다, 그리고 이곳에는 도로 양 쪽에 버스승강장이 있다,

백련버스승강장이다, 백련이라는 이름은 이곳에서 보이는 도로 아래 마을이 백련리 기 때문이겠지만

마을은 저렇게 멀리 떨어저 있는데 버스승강장은 누가 이용을 할까?

사진으로 보면 마을로 연결되는 길도 없는데

보이는 백련리 저곳에도 구 도로가 있고 그곳으로도 버스가 다니는데 궂이 이곳에 버스승강장을 만들어

놓은것을 보면 뭔가는 예정되여 있는것 같기도 하다, 그나 저나 이곳에서 바라보는 들녁은 정말 그림처름 아릅답다,

도로길만 위험하지만 않다면 이 길을 가보는것도 나쁘지는 않을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도로로 올라서면서 보았든

변산(해발 508m)이 바짝 다가 온것 같은 느낌이다, 의상봉에 있는 저 시설들은 레이더 시설인것 같기도 하다,

백련버스승강장 다음에 있는 백련교차로를 나가 변산해안로를 버리고 구길인 변산로를 따라간다, 

백련교차로 진입로를 따라 나가니 30번국도 아래로 들어가는 도로가 있다, 이 길은 등룡미곡처리장이 있는 등룡삼거리에소 오는 구,길이다,

이제 30번 국도 아래로 들어간다,도로 아래로 나가면 해변주유소가 있다, 이곳 해변주유소 뒤가 바다였든 때도 있었다,

그리고 가든길 변산로를 따라 다시 30번 국도 아래로 백련리로 들어가서 조금 높은 곳으로 올라서면

새만금방조제 간척지가 펼처진다, 바다에 뜨 있는 작은 섬들을 연결해서 방조제가 건너간다,

변산로에서 30번 국도인 변산바다로 건너에 있는 정자를 본다, 당연히 새만금 이름이 들어간 정자인줄 알았더니

흘림체로 쓰서 붙여 놓았지만 잼버리 공원이라는 현판이 붙어있는 정자다,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가 이곳에서 열리기 때문에

지금 새만금은 잼버리대회 준비를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변산로와 함께가는 30번 국도 변산바다로 

외측으로는 새만금 간척지가 이어지고 새만금 방조제와 고군산 군도까지 보인다,

가는기을 이렇게 양족으로 갈라저 있다,

산족에 있는 2차선 도로는 변산로고 오른쪽에 있는 4차선 도로는 30번 국도 변산바다로 다,

지금 내가 걷고있는 길은 산 아래 2차선 도로인 변산로다, 2차선 도로에는 지나다니는 차가 보이지도 않는다,

이제 하서면 백련리 비득 마을까지 왔다,

마을 뒤 높은 산이 보인다, 오는내내 보이든 산 정상 국가 시설물들이 있는 변산 의상봉이다,

이곳 비득마을에서 자동차로 올라가는 도로가 있다, 통행이 가능하다고는 한다, 그리고 이곳 비득교차로 앞에는 

뽕잎백합죽, 풍차바지락죽, 할매바지락죽 등이 있다, 나는 이곳 할매바지락죽 집에서 백합죽으로 점심을 했다, 이 지역은 죽먹고

사는 동네인지? 음식점은 모두가 죽집이다, 그러나 죽이라고 만만히 볼게 아닌게 죽 한그릇 값이

8,000원 ~ 10,000원이다, 물론 바지락 칼국수도 8,000원 이니 밥값보다 비싼 동네다,

할매죽집에서 죽 한그릇 먹고 새만금입구 홍보관으로 간다,

가는길은 구, 도로는 이곳에서 30번국도와 합처진다, 정확히 비득마을 할매죽집에서 70여m 정도에서

30번 국도 변산바다로와 합처진다, 그러니 합처지는 구간의 길이는 약 200m 정도로 짧다,

앞에 보이는 교차로가 소광교차로다, 이곳에서 변산로와 다시 만난다,

30번 국도 옆으로 나 있는 구, 길인 변산로를 띠라간다,

이 도로는 말은 구 길이지만 30번 국도 공사시 새로 정비한 도로다,여전히 옆에는 30번국도 변산바다로가 함께 간다,

30번국도에 새만금육교가 있다, 새만금육교 아래로 나 있는 도로는 새만금로다,

새만금로는 새만금방조제를 건너 군산으로 가는 도로다, 내일은 저 도로를 따라 군산으로 간다,

그리고 새만금육교를 나가면 오른쪽에 새만금홍보관이 있다, 오늘은 여기 까지다,

숙소를 잡으려고 마을로 가는길 길게 이어저 있는 새만금 방조제가 보인다,

바로 앞에는 가력도가 보이기도 한다, 세만금방조제 는 33,9km 라고 하는데 내일 하루에

무조건 새만금방조제를 건너가야만 한다, 벌서부터 설레임이 가득하다,


 

걸어서 만든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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