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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평화누리길 13코스, 쇠둘레길(역고드름-노동당사)2018년 9월 30일 본문

2017년 平和누리길/평화누리길 결산

평화누리길 13코스, 쇠둘레길(역고드름-노동당사)2018년 9월 30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8. 12. 8. 06:00


역고드름 200m 지점에 있는 차탄천이다,

이곳 차탄천이 연천군과 철원군의 경계이자, 크게는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다,

 중, 러, 일 전쟁중이든 일본은 경술국치 직후인 1910년 10월 철도공사를 시작해서 1914년 8월 14일 완공한

구, 경원선 119개소의 교량중 차탄천 교량이라 안내되여 있다, 그러나 지금은 철근콘크리트 구조에

현무암 마감을 한 교각과 그 위에 얹혀져 있는 교량 철빔 구조물만 녹슨채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다,

가야하는 칠만암은 15,5km 나 된다는 거리표시가 있다, 그리고 이 페 철교

30 ~ 40m 상류에는 일제때 개설했든 신작로 교량도 다리가 끊어지면서 교각 뼈대만 남아 있는게 보인다,

차탄천 건너 작은 언덕에 이곳 차탄천에서부터 평화누리길 13코스가 시작된다는 알림판이

풀 숲에 외롭게 서 있다, 평화누리길 13코스는 철원군 쇠둘레길로 17km에 8시간 20분 정도가 걸린다는 안내도 있다, 

 이정표에는 15,5km 이고 평화누리길 쇠둘레길 안내판에는 17km 이니 어떤게 맞을까?

철길이 놓여저 있었든 구, 철길 언덕으로 올라간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은 꽤나 높다,

차탄천을 건너가기 위해 높은 교량을 만들어 교량과 철길의 높이를 맞추어서 열차가 다녔을테니 하천에서

철길까지 많이 올라가야 하는게 맞겠다, 페 철이되고 나서 사람들은 교량이 끊어젓어니 하천으로 다녔을 것이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하천에서 철길로 연결되는 길이 생긴것 같다,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보니

이 근처에는 태양열 패널이 빼곡히 설치되여 있다,

구, 철 길로 생각되는 이 길은 이렇게 길게 이어저 있다,

철길은 없어졋지만 철도가 지나가든 철도부지는 그대로 남아 있다, 물론 지금은 새로운 노선으로

철도를 만들어서 구,철길은 없어지기도 했지만 이곳으로 다시 철도가 깔릴일도 없다,

새로 만든 경원선 철로다, 지나온 신탄리역 다음역으로 북한과 접경지역에 있는 

백마고지역 까지만 운행이된다, 경원선 열차는 동두천역을 출발해 마지막 전철역인 소요산역을 지나

초성리역, 한탄강역, 전곡역, 연천역, 신망리역, 대광리역, 신신탄리역을 지나 마지막으로 백마고지역에 닿는다, 

백마고지역은 민통선 마지막 역이지만 민통선 안에도 철원역과 월정역이 있어며

그 다음역은 이북땅에 있는 평강역이다,

지금 걷고 있는 길은 옛날 철도 부지다, 가는길에는 평화누리길 쉼터

정자도 만들어저 있다, 오늘 우리는 아무도 지나다지 않는 이곳 정자에 앉아서 느긋하게 라면 파티도 했다,

2018년 9월말, 가을이다, 가을 흉내만 물씬 풍기는 가을이 아니라 진짜 가을이다,

이렇게 가는 길이 예전 철도부지인지, 도로부지인지?는 정확히 알수 없지만

가는 길은 내내 편안하게 철원 들녁으로 이어 진다,

철원평야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철원에서 생산되는 쌀은 철원의 쌀 브랜드인 철원오대쌀이다,

들판을 따라 가다가 보면 앞에 정미소 건물이 보인다,

평화누리길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길은 저 정미소 건물이 보이는 곳으로 가야 한다,

이제는 소이산으로 가야한다, 그러나 이곳은 백마고지역 입구다,

백마고지(白馬高地)역을 그냥 지나가면 언제 또 이곳에 올려는지? 그래서 백마고지 역으로 들어간다,

백마고지역은 현재 경원선의 종착역으로, 철원군 철원읍 평화로 3591에 위치하고 있다. 또한 백마고지 역에서는

안보관광을 위해 DMZ 평화열차 등을 이용하여 백마고지역을 찾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다양한 안보 연계 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白馬高地 역에서 출발하는 대표적인 안보 견학코스는 제 2땅굴과 철원 평화전망대,

월정리역·두루미관을 돌아 백마고지역으로 돌아오는 코스이며, 백마고지역 근처에 백마고지 전적비와

노동당사, 소이산, 한여울길 4코스와 5코스가 있어 두루 이용하기 좋다.

백마고지역으로 들어오는 DMZ 평화열차를 이용하는 관광객의 경우 철원에서 재배하는

농산물과 오대쌀로 지은 밥을 맛보고 안보 견학까지 즐길 수도 있다. DMZ 평화열차의 안보 견학 코스는

멸공 OP와 월정리역·두루미관을 거쳐 백마고지전적비까지 둘러볼 수 있는 새로운 코스다.

백마고지역은 더 이상 갈수 없는 철도 중단점이다, 철마는 달리고 싶지만 더 이상 달릴수 없다,

최근의 남북회담으로 올해안에 북녁으로 이어지는 철도 공사 기공식을 한다고 하니 멀지 않은 날에 백마역 철도 종단점도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될 날이 오지않을까, 경원선은 이곳에서 종단이 되지만 이곳에서 가까운 곳에있는 파주

경의선은 도라산역이 마지막 역이기는 해도 종단역은 아니고 계속해서 이북으로 연결이 되여있다,

그리고 백마고지역 한켠에 외롭게 서 있는 우체통이 눈길을 끈다,

북녁 하늘 우체통이다, 이 우체통에서 편지를 붙이면 언제쯤에나 배달이 될까?

백마고지역에는 白馬高地 명칭 과 백마고지 전투개요 탑이 있다, 백마고지는 강원도 철원군

묘장면 산명리에 위치한 해발 395m의 야산인데, 전쟁전에는 아무도 눈여겨 보지않든 무명고지였다, 백마고지 명칭의 유래는

전쟁중 피아 포격에 의해 수목이 다 쓰러저 버리고 난 후의 민둥산 형상이 누워있는 백마처름 보였기 때문에 백마고지라 했다는 설과

당시 참전했든 어느 연대 부연대장이 외신 기자회견때 화이트호스힐(Whit horse hill)라고 대답해서 불리게 되였다는 설이

있어나 격전을 치루고 난 후 처절한 산의 형상이 백마의 와상(臥象)과 같다고 불리게 되였다는 설이 유력하다

백마고지전투는 한국전쟁(50,6,25 ~ 53,7, 27)기간중 가장 치열하게 고지 쟁탈전을 전개했든

1952년 10월, 철원에 위치한 작은 고지를 놓고 국군 제 9보병사단과 중공군 제38군 3개 사단이 쟁탈전을 벌인끝에 9사단이

승리한 전투다,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10일 동안 불과 395m밖에 되지않는 고지를 빼았기 위해

중공군 1만여명이 전사상 또는 포로가 되였어며, 국군 제 9보병사단도 3,400명의 사성자가 발생했다,

발사된 포탄의 수는 아군 219,954발, 적군 55,000발 등 274,954발 이였다, 결국 세계 전사상 유래가 없을만큼 처절한 포격전,

수류탄전, 백병전을 10일 주야로 반복한 끝에 이 고지를 아군이 점령했다, 라고 안내되여 있다,

백마고지역에서 소이산은 2,7km 다, 백마고지역에서 빤히 보이는 앞에 보이는

작은산이 소이산이다, 소이산으로 들어가는길 얖 옆에는 철책이 처저 있다, 그리고 삼각 표지판으로

지뢰라고 쓰여 있다, 이 길 양옆은 지뢰밭 이라는 표시다,

사실상 이곳부터가 소이산 자락이다,

소이산은 지뢰산이다, 그래서 이곳으로는 올라갈수가 없고 안전한 길로 올라 가야한다,

대전차 방어 구조물 양 쪽으로는 전차가 넘어올수 없도록 성을 쌓아놓았고

그 길목에는 콘크리트 구조물은 터트려서 길을 막을수 있도록 한 구조물 들이 보인다,

소이산 입구다, 백마고지역에서 바로 작선으로 소이산으로 올라갈수

있어면 이곳까지 돌아오지 않아도 되였겠지만 소이산은 온통 지뢰밭으로 둘러쌓인 산이라

길이 없어니 이곳까지 와야 소이산으로 올라갈수 있다,

소이산 입구에서 건너다 보면 숲 속으로 뭔가 보인다,

저곳이 바로 노동당사다,

소이산(해발 362미터)은 철원읍 사요리 산1번지다, 

북한이 1946년 지은 3층짜리 건물인 노동당사 건너편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이다.

소이산은 5월이면 산전체가 하얗게 물드는 산이기도 하다, 일제시대에 심어 놓은

아까시아 꽃으로 물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봄이면 소이산 주변에 양봉 벌통이 널려 있는 산이다,

소이산은 민통선 밖에 있는 산이지만 전쟁이후 미군의 군사기지로 민간인 출입

통제선으로 분리된 곳이였다

그 덕분에 전쟁 이후 반세기 동안 철원읍내 한가운데 야산이 스스로

변화해온 모습이 간직돼 있다. 일제 때 토사 방지림과 연료림으로 많이 심은 아까시아 나무가

소이산 숲의 주인 행세를 하고 있다.

길가에 무리지어 돋아난 외래종이자 생태교란종인

단풍잎 돼지풀은 이곳에 오랫동안 군사기지가 있었음을 말해주눈 단서다,

문이 닫혀 있는 저 울타리 쪽문으로 들어가면

소이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고 앞에 보이는 나무 계단으로 올라가면 소이산 전망대가 있다,

소이산 정상보다 먼저 전망대로 올라간다,

나무계단을 설치해서 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그리 높지는 않다,

계단을 올라가서

약 30여m 쯤 가면 소이산 전망대가 있다,

이곳 전망대 유리창에는

각각의 방향에 있는 지명을 살펴 볼수 있게 안내판을 붙여 놓았다,

↓ 왼쪽 작은 산 정상에 건물이 보이는 곳(나무 뒤)이 백마고지다,

백마고지는 민통선 안에 있어 민간인 출입이 금지되여 있는 곳으로 멀리서 보는것 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 두번째 보이는 철원역에서 월정역으로 연결되는 점 선이 원산가는 철길이며

사진 아래 보이는 선은 금강산으로 가는 철길이다,





이렇게 소이산을 한바퀴 돌아보는 4방향 중 3방향을 돌아보고 나서 전망대를 나간다,

전망대에서 보는 철원평야보다 소이산 정상 전망이 더 잘보이기 때문이다, 소이산 정상으로 올라간다,

닫힌 울타리 쪽문으로 들어가면서 처음 보이는 건물은 미군 막사였다,

기쁨 즐거움, 사랑, 희망, 평화, 믿음, 등

미군 막사 앞에 있는 단어들이 눈길을 끈다, 이곳에 있어야 할 단어들 총 집합이라서

소이산은 그동안 일반인들 에게는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산이였다,

미군이 소이산에서 철수 한 후, 육군 6사단이 소이산 개방에 합의하면서 지난 2011년 소이산 생태 숲 녹색길

이라는 이름으로 길이 열리면서 비로서 사람들에게 알려진 산이 소이산이다,

소이산 지하벙커 위로 올라가서 내려다 보니 미군이 사용했든 막사는 서서히

허물어저 가는 중이였다, 그러나 이런 것 마저도 우리에게는 소중한 역사 유적 자산인데 그냥 방치하다가

허물어지면 그때가서 새로 지을 것인가?, 아니면 철거해 버리고 아무일도 없었든 듯이 이 자리에 미군막사가 있엇다

라는 안내판 하나 붙이는 것으로 끝낼것인가? 뭐가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돈을 많이들여서 복구 하기를

바라는게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관리를 해야 할것 같다는 생각이다,

소이산 정상에 올라서니  눈앞이 확 트이면서 뭔가 형언할수 없는 기운이 몰려온다,

소이산 입구에서 기껏해야 해발 200여m 정도 올라왔을 뿐인데 수천m 급 고산에 오른 느낌이다.

가슴이 뻥 뚤리는 듯한 소이산 정상 전경은 무었 때문일까?


1953년 휴전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휴전회담과 전투가 동시에 벌어졋다.

북한과 남한은 휴전이 이루어 지기 전까지 최대한 영토를 확보하려는 영토 확보 전쟁을 했다,

휴전선을 중심으로 서부에서 동부까지 전 지역에서 고지를 점령하려는 전투가 계속되면서. 중부전선에 위치한

이곳 철의 삼각지는 남한의 서울과 전국으로 연결되는 도로망이 발달한 전략적 요충지 였다.

1951년 9월 북한은 중국인민지원군과 함께 철의 삼각지 안의 백마고지, 수도고지, 저격병능선 등에

집중적으로 대공세를 전개했다. 전투는 휴전이 성립되기 직전인 1953년 7월 13일까지 마지막 공세와 수세가 계속되던 곳이다.

이곳은 6·25전쟁 중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곳으로, 결국 철원과 김화는 남한영토로, 평강은 북한 영토로 끝이났다,

소이산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끝없이 펼처지는 철원평야는 피로 얻어진 땅이다,

이곳 소이산 정상에서는 넓찍한 철원평야와 비무장지대, 그리고 그 건너 북한 평강고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은 누가 뭐래도 논(畓)의 바다 다, 소이산은 철원평야에 떠 있는 논의 바다 섬이다. 철원평야를 한눈에 굽어보는 지형때문에

이곳은 고려 때부터 봉수대가 설치돼 함경도 경흥에서 서울로 연결되던 경흥선 봉수로에 속해 있었든 장소다,

소이산의 북쪽 산자락은 모두 지뢰 밭이다. 노동당사에서 국도 87호선을 따라

대마리로 향하는 길 양쪽은 옛 철원 시가지였지만 지난 60여 년 동안 지뢰 통제구역으로 묶였다.

그동안 묵은 논(畓)은 습지가 되고, 묵은 밭(田)과 집터는 숲으로 바뀌었다.


지뢰지대 안에는 고사리와 고라니가 많이 살고 있지만 폭발사고가 나서

사람들은 들어가기도 꺼린다, 전문가들은 소이산의 생태적 가치는 훼손이 심한 산 위 보다

산자락의 지뢰 지대가 더 높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철원이란? 625 전란이 끝난 54년 10월 공산지역이든 철원이 수복되면서 붙여진 신조어다,

예를 들면 관전리와 사요리 등 구철원에 대칭한 개념으로 신철원이 생겻다, 구 철원읍 지역은 현재의 철원읍

행정관할 대부분에 해당되는데, 철원평야의 중심지에 도시가 발달함에 따라 경원선과 금강산 철도가 운행되고 각종

농축산물의 집산과 교류가 번창하여 예로부터 강원도내에서는 춘천, 강릉, 원주와, 더불어

大邑富鄕(대읍부향)으로 꼽히든 곳이다,


1937년 인구는 4,269가구에 19,693명, 철도는 경원선이 서울까지 101km, 원산까지 125km,

내금강까지 116,6km 요충지다, 철의삼각지 전투에서 철원을 수복하지 못하고 밀렷다면 동두천 의정부까지가

북한지역이 되였을 것이다, 그래서 철원은 피로 얻은 소중하고 귀한 역사의 땅이다,

철원군은 고구려때 철원, 또는 모을동비라 하다가 신라경덕왕때(743) 철성으로,

905년 후삼국 태봉국의 궁예가 국도를 이곳 풍천원에 정했다, 고려태종때(918) 철원으로 했어며 그후

동주로 바꿧다가 고려 충선왕때(1310) 철원으로 조선조 태종13년(1413)에 철원을 도호부로,

고종 32년(1895)구역개편시 철원군이 되였다,


1945년 해방과 동시 철원은 38 이북으로 공산치하에 들어 갔어며 1954년 10월 21일

공산치하로 부터 수복한후 1963년 김화군을 철원군에 신서면은 연천군으로 1972년 평강군 정연리는

철원군에 편입한다,(평강군은 이북 이다)

소이산은 작은 산이지만 이 산이 없었다면 전쟁 때 철원 평야를 지킬 수

없었을 것 이라는 의견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래서 이 소이산은 보물보다 귀한 우리의 산이다,

625전란이후 민간인통제선(민통선) 북쪽의 평야지대는 70년대까지 출입이 통제되여

대부분 관목과 초지가 있는 황무지였다, 향토를 가꾸겠다는 농민들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지뢰를 캐내고

개간을 하는 한편, 기존의 학저수지외에 토교, 강산, 신명호, 등 대단위의 전천후 인공저수지를


축조해서 철원평야에 농업용수를 공급함으로서 안전 영농의 기반을 갖추게 되였고

지금은 전국적으로 명성을 얻은 철원 오대쌀을 생산하는 비옥한 농토로 만들었다, 철원의 논 면적은

약 1만 1천여ha에 미곡 생산량은 강원도 전체 약 25%를 차지한다,

철원은 그 어느 곳보다 우리민족의 애환이 가장 많이 어려있는 곳이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자연경관과 인위적 풍토조성이 잘 어우려져 있는 통일의 길목인, 역사의 고장이다,

화산지대로 이루어진 현무암 계층의 한탄강 절경과, 우리나라 중부 제일의 곡창지대인 평야와,

오대쌀의 진미, 겨울철 귀한 손님인 두루미와 기러기, 독수리등 철새가 있는 곳이다,

625와 철의 삼각지 전투, 과거를 회상하는 구,철원 시가지의 유적, DMZ와

제 2땅굴 등이 있는 철원은 강원도 영서 북부에 위치한다, 지리상으로는 우리나라 한가운데 해당하는

요충 지대로서 주요 간선도로의 발달과 함께 경원선과 금강산 철도의 분기점이다, 


구 철원역사, 제2금융조합, 얼음창고, 농산물검사소 등과 같은 과거의 주요

건물들은 근대 문화유적으로 남았어며, 농가와 논밭의 상당수는 습지와 숲으로 바뀌였다.

통일이되여 철원에 평화도시라도 만들어진다면 소이산은 그 중심에 있는 중요한 산이며 무었보다 바라

보기만해도 가슴 뛰는 철원평야의 황금 들판은 무었과도 바꿀수없는 귀한 우리민족의 보고다,

이제 마지막으로 소이산 정상에서 본 소이산의 四 방향을 정리한다,

사진 가운데 보이는 작은 산이 백마고지다, 이곳부터 우측으로 한바퀴 돌아서 둘러본다,

왼쪽이 백마고지 그리고 철원 평야다, 철원평야 건너편 북한 평강고원도 모두 보인다,

지형상으로 는 백두대간에서 길게 뻗어내린 광주산맥의 끝 자락인 철원은 과거에 대읍부향(大邑富鄕)으로

즉, 큰마을 부촌이 였다,

그리고 잠시후에 우리가 가야하는 곳인 노동당사 방향이다,

왼쪽 중간에 띠 처름 이어저 보이는 경계가 지금은 민통선이며 또한 금강산으로 가는 철길이였다,

철원읍내와 동송읍내

그리고 금학산과 고대산이 보이는 방향이다,

좌측 금학산과 고대산이 있는 신탄리 방향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탄리 방향에서백마고지 사이

전경이다, 소이산 정상에서 한바퀴돌아 보는 360 방향의 조망은 여기 까지다,

소이산 평화마루공원이라고 이름이 쓰여진 소이산 정상

공원을 이제는 나가는 시간이다, 소이산 전망대로 올라갔든 계단도 지나서 내려 간다,

이제 소이산으로 올라 갈때 출발점이였든 소이산 입구로 내려 왔다,

앞에 사각형 노동당사 건물이 보인다, 이제 우리는 저곳으로 간다, 철원은 과거 노동당사와

법원, 경원선과 금강산 기차가 지나 다니고 1930년대에 인구 2만명이 거주하던 도시의 중심지였다,

중, 고등학교가 5개소나 되였고 금융기관이 4개소, 행정기관 34개소 등이 있든 큰

도시로 강원도내 에서는 춘천, 원주, 강릉과 더불어 4대 도시였다,

이곳은 소이산 삼거리다, 소이산 삼거리는 지도에도 나타나지 않는다,

소이산 삼거리에서 왼쪽은 노동당사로 가는 길이고, 오른 쪽은 철원시내나 고석정 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그리고 거리 표시 이정표가 있다, 연천 역고드름 6,2km 표지판에

 현위치는 노동당사 삼거리라고 적혀 있어나 잘못된 표지판이다, 노동당사 삼거리는 노동당사 북쪽에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철원읍 관전리에 있는 노동당사(勞動黨舍)는 1946년에 지어진 3층 건물이다.

6.25전쟁(六二五戰爭 , Korean War)이 일어나기 전까지 북한 노동당사로 이용되었든 건물로 현재

이 건물은 6.25전쟁 때 큰 피해를 입어 건물 전체가 검게 그을리고 포탄과 총탄 자국이 촘촘하게 나있다.

노동당사는 2001년 2월 근대문화유산에 등록되였다. 노동당사까지 있었든  철원군(鐵原郡)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시절 강원도 도청 소재지 이기도 했다,

강원도 도청은 1946년 12월에 원산시로 이전했다, 이때인 1946년에 조선노동당에서 철원읍 관전리에 

3층짜리 노동당사 건물을 건축했는데, 한국전쟁 이후 구철원이 대한민국 땅이 되면서 노동당사도 대한민국에 속하게 된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해 페허가 된 노동당사 건물은 현재 1층은 멀쩡 하지만 2~3층은 빈 골조만 남아있다,

노동당사는 한반도 중앙인 철원읍에 있다, 철원군 관전리 민간인 출입통제선에서

100m 도 떨어지지 않은 위치다, 오랜동안 민통선이라는 족쇄에 묶여 일반인 출입이 제한되였든

노동당사는 지난 2000년 민퉁선이 북상하면서 자유롭게 올수 있는 여행지가 된다,

노동당사 여행은 서울역에서 백마고지역으로 가는 경원선 평회열차 DMZ train 을 타고

백마고지역으로 와서 노동당사로 연결되는 버스를 타면 10여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외벽에 보이는

총탄과 포탄의 흔적들이 처참했든 전쟁의 흔적이다,

처참하고 암울했든 한국전쟁과 분단, 미군과 소련군정, 등 해방직후부터

아픈 역사의 시간들 을 힘겹게 보내는 동안 우리 민족에게는 수많은 상처가 생겻다, 가슴깊이

개겨진 아픈 역사를 외면하거나 숨기는게 아니라 제대로보고 되플이 하지 않을

진정한 용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이곳은 지금 안보관광지다,

노동당사는 북한땅이였든 1946년 조선노동당 철원군 당사로 지어 졋다,

소련군정 아래 있다보니 소련식 건축양식을 따라지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에게 네모 반듯한 3층 건물은

공포의 대상이였다, 당시 수많은 반공인사가 이곳에서 고초를 격었어며, 노동당사로 끌려간 주민들도 거의가 죽거나

불구가 되여 나왔다, 또한 노동당사 좌우에는 경찰서와 법원도 있었다, 지금도 노동당사 왼쪽

정자 옆에는 여전히 공산당 경찰서 터가 남아 있다,

노동당사 건축기법은 세멘트 벽돌을 30cm 두께로 쌓아서 외벽과 격벽을 만들고

스라브를 치서 3층으로 올린 건물로, 전체적으로는 무척이나 견고하게 지어진 건물이다, 그러나

전쟁을 격어면서 1층을 제외 하고는 외벽만 간신히 남았다, 건물이 사라진 것도 어니고 골조만 남았지만 그 안에

담긴 역사까지 껍데기만 남은게 아니다, 그래서 일까, 이곳 노동당사 건물은 2002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였다,

노동당사 오른쪽 차가 다니는 도로에 국방색 기둥이 설치되여 있는 곳이 보이고

군인들이 그곳을 지나가는 차량을 검문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이곳은 민간인 출입통제선 즉 민통선이다,

소이산에서 내려다 보았든 북쪽의 철원평야는 거의가 민통선 안에 있다,

노동당사에서 버스를 타고 철원군 동송읍 전통시장 앞으로 왔다,

 철원읍과 동송읍은 한 도시이면서도 행정구역은 나누어저 있다, 노동당사가 있는 곳에는 버스가 자주

다니는 곳이 아니고 백마고지역 열차시간에 맞춰서 운행하기 때문에 1시간 ~ 1시간 30분 정도 간격으로 운행한다,

전통시장 맞은편에 있는 동송시외버스터미널에서 동서울로 간다, 요금은 11,000 정도며 운행시간은

2시간이다, 철원군민들은 요금이 저렴한 백마고지역에서 열차를 이용해 서울로 다닌다,

철원관광이 궁금하면 http://tour.cwg.go.kr/site/tour/mai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