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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소백산 희방사 가는길 (2019년 5월 26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충청·경상·전라

소백산 희방사 가는길 (2019년 5월 26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9. 5. 27. 10:05

2019년 5월 26일 오늘은 06시 40분에 출발하는 무궁화호 1601 열차를 타고

단양과 영주의 경계에 있는 영주땅 희방사역에 09시 13분경에 도착해서 소백산으로 오를 예정이다,

가는길은 지하철 1호선 청량리역 4번출구(지하철 앞 쪽 칸)로 나가면 청량리역 광장이다,

06시 40분에 출발한 무궁화호 열차는 이렇게 달려서

단양을 지나




열차 도착 예정시간인 9시 13분에

단양역 다음 정류장인 희방사역에 도착했다,

희방사역 죽령방향

열차가 가야 하는 영주 방향

희방사역 광장,

희방사역은 간이역이라서 택시 교통편은 없는 곳인데

오늘은 소백산철죽제가 열리는 날이라 단양지역에서 택시들이 이곳에 와서 영업을 하고 있었다,

희방사역에서 이곳 희방사 매표소까지는 약 1시간 정도가 걸리는 약 4km의 길이다,

오늘은 택시가 있어니 일단 이곳까지 택시로 이동을 했다, 택시요금은 15,000원 으로 메타기도 꺽지않는 무법 요금이다,

그러나 평소에는 택시가 없어니 시비할일도 없다, 이제 택시는 이곳 희방사 매표소 입구에서 돌아가고 소백산을 오르기 위해서는

이곳 매표소에서 입구를 막아놓고 통행세를 받는 중넘들에게 1인당 2,000원의 통행세를 지불해야 들어갈수 있다,

요즘 중 넘들은 죽어서도 돈 보따리를 싸들고 가야 극락세상으로 갈수 있기 때문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돈을 갈취하는 산적질을 하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인 모양이다,

이제는 소백산으로 들어간다, 소백산 국립공원 내 에서 벌어지고 있는 무법 천지?

그러나 이런 것들을 바로 잡을 공권력은 어디에도 없다,






영남의 제1폭포라는 희방폭포











희방사로 들어가는길

희방사 요사채 앞으로 연화봉으로 가는길

희방사 제일 앞쪽에 있는 요사체인 이 건물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희방사 대웅보전과 지장전 사이를 흐르는 계곡

연화봉으로 올라가는 길에서도 희방사로 들어갈수 있다,

거리는 150여m 정도다



소백산 연화봉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 희방사다, 신라선덕여왕때인 643년

두운대사가 당시 경주의 호장(戶長)이였든 유석의 무남독녀가 호랑이에게 물려가

화를 당할뻔 했는데 두운대사가 구해주어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지어 주어

희방사라 했다고 하는 절이다, 가운데 높은 건물이 희방사 대웅보전이고

오른쪽 건물은 절의 살림살이를 책임지는 종무소다,

연혁을 알수없는 석탑 뒤로 희방사 지장전이 보인다, 지장전 공포에는 유난히 토끼그림이 많다.

不死의 상징인 토끼는 다음과 같은 유래가 있다. 옛날 어느 날 노인으로 변장한 제석천(불교 수호신)이

토끼와 여우, 그리고 원숭이 앞에 섰다. 그는 이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했는데 여우는 강 속에서

싱싱한 잉어 한 마리를, 원숭이는 진귀한 꽃과 열매를 가져왔다.

하지만 빈손으로 돌아온 토끼는 장작에 불을 붙여 자신을 대접한다 며

불 속에 뛰어 들었다. 제석천은 자신을 위해 소신공양한 토끼의 행동에 감동을 받아

본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불에 탄 토끼를 재에서 꺼내 여우와 원숭이에게 토끼를 달에 보내

영원히 사람들의 귀감이 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이런 일이 있은 후부터 사람들은 모두 달 속에

토끼가 있다고 전해졌으며 토끼를 불사(不死) 보시 희생 의 상징으로 기억하고 있다,

희방사 범종각 이다,


대웅보전 내 오른쪽에는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 222호인 희방사 동종 ▽이 있다,

이 동종은 원래 조선(朝鮮) 영조(英祖) 18년(1742)에 주조(鑄造)된 충북(忠北) 단양(丹陽) 대흥사(大興寺)

종으로 승장(僧匠)인 해철(海哲)과 초부(楚符) 등이 제작한 중종(中鐘)이다.


형태는 쌍룡(雙龍)의 종뉴(鐘) 아래 포탄형의 종신(鐘身)이 연결되었는데,

그 외형선은 볼록한 종정(鐘頂)으로부터 구연부(口緣部)를 향해 벌어지면서 내려 오는 선형(線形)을

그리고 있다. 종뉴는 다소 도식화(圖式化)되어 단지 종을 매다는 기능만 지녔다.

종신은 중앙의 쌍줄 띠장식을 중심으로 윗부분에는 둥근 모양의 범자(梵字)로 된 상대(上帶)

아래 연화당초문(蓮華唐草紋)의 유곽대(乳廓帶)와 연화문의 종유(鐘乳)로 구성된 4개의 유곽과 연화가지를

손에 쥐고 있는 4구의 보살입상(菩薩立像)이 교대로 배치(配置)되었으며, 아랫부분에는 종복(鐘腹)

근처에 명문(銘文)이 배치되고 구연부에는 연화문과 당초문의 2단으로 된 하대(下帶)가 둘려 있다.


동종의 하부쪽에서 주출(鑄出)된 명문(銘文)에는 건륭칠년임술오월일 충청도 단양 남면

소백산 대흥사 대종삼백근입산중석덕 대선사함신 노덕입회 녹화질 편수해철 편수초부(乾隆七年壬戌五月日

忠淸道丹陽南面 小白山大興寺大種三百斤入山中碩德 大禪師涵信 老德笠會 綠化秩

片手海哲 片手楚符)라 쓰여 있는 글이 보인다,

희방사 대웅보전 앞에서 건너다 보이는 산신각과 지장전(地藏殿) 그리고 범종각(왼쪽부터),

가운데 지장전은 명부전, 시왕전 이라고도 불린다, 염라대왕등 10왕을 모신 전각으로 주존은 지장보살을 모신다,

이 세상이 아닌 어두운 세계인 명부세계(冥府世界)의 왕인 염라대왕을 모신 곳이라 하여 명부전 이라

고도 하며 지옥에서 죄의 경중(輕重)을 정하는 열 분의 왕(十王)을 모신 곳이라 하여

시왕전이라고도 하는 전각이다,


사람이 죽어면 그날부터 49일까지는 7일마다 각 7대왕이 심판을 맡어며

그 뒤 100일에는 8대 평등대왕, 소상때는 9대 도시대왕, 대상때는 10왕 오도전륜 대왕이 차레로

생전에 지은 선업과 악업 등 잘 잘못을 심판한다, 명부시왕을 모신 主座에 지상보살을 모시는 일이 있는데

이 경우도 지장전이라는 이름대신 명부전, 시왕전 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명부전 안에 지장보살을

봉안하고 있기 때문에 지장전이라고 하며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을 봉안하기 때문에

시왕전이라고도 한다,

원래 고려말 까지는 지장전과 시왕전이 독립된 전각으로 각각 분리 되여 있었어나

조선시대 불교 말살 억불 정책 속에서도 부모에게 효도하고 죽은 부모를 좋은 세계로 보내기 위한

불교 신앙과 의식만은 그나마 인증을 받게 됬다, 그 결과 망인의 형벌 및 새로 태여날 셰게를 결정하는 심판관인

시왕과 망인을 자비로 인도하는 지장보살과 각각 독립된채 존재했던 지장전과 시왕전을 명부전이라는

이름으로 결합했다, 이러한 변화는 대략 조선초에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1400년의 역사를 지닌 고찰인 희방사를 나와서

연화봉으로 올라간다, 여기 까지는 소백산 등로의 워밍업이고 이제부터는 본격적인 산행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