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산성역에서 남한산성 남문으로(2020년 5월 10일) 본문
지하철 8호선 산성역 1번출구
로터리 건너편에 보이는 공원이
남한산성으로 올라가는 등로이자 성남누비길 1코스구간 길이다,
사진 가운데로 설치되여 있는 계단이
산성역에서 남한산성 남문으로 올라가는 등로 입구다,
이렇게 생긴 안내 기둥이 보이는 곳에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이렇게 널찍한 공원이 나오는데
왼쪽에 보이는 작은 건물과 기둥사이로 들어간다,
이 길은 성남누비길 1구간 남한산성길 이라는 안내도 보이는데
성남누비길 1구간은 복정역 완충녹지에서 부터 출발해 3,4km 정도를 와야
이곳이라는 안내도 있는것을 보니, 성남 누비길 1구간은 복정역에서
남한산성 남문까지인 모양이다,
남환산성 남문으로 올라가는
성남누비길 1구간길은
여유로운 산책길이다,
지금 올라가고 있는길 왼쪽에는 남문에서부터 복정동까지
창곡천이 흐르고 있다는 지도와 천을따라서 창곡동마을도 있다는 안내가 있는데
창곡동이라는 마을은 나라에서 봄에 곡식을 대여해주고
가을에 곡식을 거두어 보관했다는 창고가 있었다는 설과 조선조 말기에
탄천일대에서 생산된 군량미 창고가 있었다는설과 병자호란때 군사들이 진을폈던 곳으로
병기를 저장했든 곳이라는 설이 유래해 오는데, 창말 - 창골 - 창동 등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마을 유래도 안내판에 써 놓았다,
산성역에서 1km 정도 올라왓어며
남한산성은 3,7km 를 더 가야 한다는 이정표를 따라
계속해서 올라가기만 하면 된다,
울창한 숲으로 둘러쌓인 길이라
조망은 없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분당지역 일대 가 보인다,
조망쉼터 안내다,
관악산과 북한산, 도봉산등이 보인다고 한다,
그러나 조망쉼터로 갔더니 짓은 안개가 끼여서
바로 아랫마을도 보이지 않는다,
조망터를 지나 내려 가니 이렇게 넓찍한 공간이 보인다,
이곳에 세워진 안내판에는 복정역에서는 4,7km, 지화문(남한산성 남문)에서는
1,5km 거리인 이곳은 보부상 옜길이였다는 안내판이 보인다,
보부상은 봇짐과 등짐을지고 이동하며 물건을 파는 장사치라는 뜻이고
보상은 보자기에 물건을 싸 머리에 이고 다니며 판매하는 여인들 장사치를 말한다,
보부상은 부피가 큰 옹기, 그릇, 죽제품, 소금등을 판매하였어며, 주요 육상 간선도로망인 삼남로,
영남로, 의주로, 봉화로(남한산성 옜길)등을 통해 상업유통의 한축을 담당했든
보부상들은 장사가 전국적으로 들어서게 되자 일정한 날자에 열리는
장소를 돌며 물건을 판매하는 장사치라는 의미로 쟁돌뱅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계기가 된다,
지금은 보부상이라는 이름은 사라젓지만 그들이 남긴 지명들과 5일장의 장돌림 문화는 여전히 이동
상인들에 의해 지속되고 있는 진행형문화다,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다가 뜬금없이 장돌뱅이
이야기가 나왔지만 여하튼 이 길도 보부상들이 지나다니든 길이였다는 게 아닐까?
계단으로 올라간다,
계단으로 올라가서 만나게 되는 不忘碑 불망비
불망비 不忘碑 란?
어떠한 사실을 후세 사람들이 잋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우는 비석으로
바위에 새겨진 불망비는 조선 후기 문신인 수어사 서명웅, 부윤 홍익필, 과 이광중 세 사람이
백성을 사랑한 공적을 잋지말자는 뜻을 새긴 것으로 하나의 바위에 3개의 비 형태로
되여있어며 백색 파도 문이 수려하게 보인다,(안내판 내용 그대로임)
불망비 비석 뒤 평지에는 둔전에 대한 설명도 있다, 둔전 屯田 이란?
고려와 조선시대, 군졸이나 서리, 평민 등에게 아직 개간하지 않은 땅을 개척하여
경작하게 하고 여기에서 나오는 수확물의 일부를 지방 관청의 경비나 군대의 양식으로 쓰도록
한 밭을 말하는데 이곳 안내판에있는 내용은 병자호란당시의 이야기가 쓰여있는데
병자호란시 남한산성에서 전투를 치렷든 부대의 규모는 무려 1만명이 넘었다,
기록에따르면 임금과 관료, 궁인들, 성 외부에서 들어온 주민들까지 포함하면 25,000여명
이나 되였는데 전시에 사용되는 물자와 식량은 어떻게 비축했을까, 답은 둔전이였다, 군사지역이나
시설에 주둔하는 병사들은 평상시에 농사를 지였다, 남한산성 인근 지역의 지명을 살펴보면 둔전과 관련된
지명이 여러곳에 남아있다, 남한산성 옜길을따라 산성동문으로 나가면 오전리 라는 지명이 있는데
오전리의 오는 오동나무를 뜻하고 전은 밭전자다, 여기서 전이 둔전을 뜻하며 하남시 작평마을
성남시 둔전동, 광주군오포읍 군수둔리 등도 둔전과 관련이 있는 지명이라 적혀있다,
길은 현재의 도로변으로 붙어간다,
이 길이 옜길이 였어니
옜길을 따라 새로운 길이 만들어 진 모양이다,
남한산성의 최고봉인 청량산에 대한 안내도 있다, 청량산은 479,9m 의
산으로 사방이 평지여서 밤보다 낮이 긴 산이라고 일장산日長山 또는 주장산 晝長山으로
불리기도 했다, 지형은 해발 460여m 정도의 산지로 둘러싸인 해발 300m~350m 고도의 평탄한
분지형태로 산지의 사면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외부로부터 적의 침입을 막기에
유리한 지형이라서 삼국시대부터 산성을 축성한 군사충지였다,
성남 산성역에서 부터 산성남문으로 올라가는 오른쪽이
도로였어니 왼쪽 산 능선을 따라 올라왔다, 그러다가 왼쪽길은 끊어지고
도로 건너로 넘어간다,
잠시 인도를 따라 가다가 도로 아래길로 들어간다,
도로 아랫길로 잠시 올라가다가
다시 도로변으로 올라서면 남문터널이 있다,
남눈터널 옆 길로 간다, 이 길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든 옜길로
남한산성 남문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옜길을 따라 남문으로 가다가
오른쪽에있는 작은 공원에서 성남누비길 시설이 보인다,
이 구간은 복정역에서 남한산성 남문까지 이어지는
1구간의 끝지점이니 누비길 스템프 인증함이 있다, 누비길은 걷는
분들은 여기서 인증스템프를 찍어면 되겠다,
그리고 바로 앞에 보이는 남한산성 남문
남한산성을 처음보는 첫 인상은
북한산성에 비해 남한산성은 그 높이가 눈에 띠일 정도로 높다,
남문앞에 있는 고목 몇 구루는
450여년의 역사를 가진 살아있는 나무다, 돌로된 산성이 들어서기 전부터 있었든 나무다,
우리가 이곳으로 온 길은 계속해서 이어지지만
우리는 남한산성 남문으로 들어 가기로 했다,
남문의 이름은 지하문 至和門 이다,
성 안으로 들어 왔다,
지화문에서 산성내로 들어가는 길이 보인다,
성내에서 보는 남문의 모습
지하문이라는 현판이 높게 걸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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