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지리산둘레길3코스 인월 금계구간(2020년 5월 23일) 본문
2020년 5월 23일 06시 30분 지리산둘레길 2코스 종점과
3코스 출발점인 구 인월교 앞에서 3코스종점인 금계로간다, 이곳에서 금계까지는
약 20여km의 거리다,
이제 인월을 떠나가야하는 시간이다, 인월은 어떤동네일까?
예로부터 인월은 경상도와 전라도의 풍물장소였다, 지리산에서 나오는 약초와
산나물을 비롯하여 경상도에서 올라오는 수산물과 소금들이 거래되는 시장이 형성되였어며
운봉과 함께 판소리 광대들의 굿마당이 펼처졋는데 5일장(3일 8일)은 지금도 이어진다,
지리산으로 가는 관문이자 경상도로 넘어가는 길목인 인월은 할머니가 담근
된장처름 구수한 고을이다,
살아온 날들을 성찰하고 살아갈 날들에 대한
명상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는 지리산 둘레길은 인월에서 출발한다,
이런 말들이 빼곡히 적혀있는 인월을 지나간다,
성처름 만들어진 이런집이 있는 곳은 중군마을이다, 중군(中軍)마을은
고려우왕6년 이성계장군은 삼남지방에서 노략질하든 왜구를 섬멸하기위해 황산에
본진을 두고 이곳 마을에 중군을 두고 상우에 소군, 등등 여하튼 왜구와
전투를해서 이겼다는 워낙 긴내용이 적힌 유래석이 있다,
온동네 담벽에는 지리산 둘레길 3코스에 관련된
내용들이 써여저 있다, 이 마을은 모두 지리산 둘레길에대한 강한
자존감을 가진 마을인것 같다, 보이는 담벽에는 잣과 호두의 고장, 민속마을이라
적혀있는데 행정지명은 인월면 중군리다,
아래는 람천이 흐르고 나는 지금 산허리를 따라간다,
그러다가보이는굴피집, 일명 너와집인데 이런 집들은 강원도 삼척 일부지역에만
있는줄 알았더니 전북 남원에도 너와집이? 엄밀히 따지면 굴피집과
너와집은 조금 다르기는하지만,
너와집 뒤 이정표는 두길을 알려주는데 모두 지리산둘레길이다,
왼쪽으로가면 하천변길이고 오른쪽은 산길인데 산길이 100m정도 더 길다,
어디로가든 백련사입구 임도에서 다시 만나는 길이다,
망서릴것도 없이 나는 100m가 더 멀다는 산길로 올라간다,
조금 더 걷더라도 높은 곳에서 멋진 경관을 볼수있다면 그 또한 좋을게 아닐까 싶어서?
지리산 기슭의 텃 밭
넉넉하지 않아 부족해보이는 듯한 산기슭 텃밭
이 정도면 되였지 무었을 더 욕심부릴수가 있을까? 나는 이런곳이 좋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조금멀리 바라보니 천왕봉이 가물거리듯이 보인다,
제석봉에서 천왕봉까지의 능선 그냥 이대로 달려가고 싶다, 걷잡을수 없는 욕심에 조금 당겨본다,
절반은 가까워젓다, 천왕봉이 있어 이른 새벽부터 내내 가슴이 뛰였나 보다,
숲길로 들어가가 전 다시한번 돌아본다, 람천 둑으로 오다가
이제 꽤 높이 올라온 것같다, 인월에서 여기까지는 사람사는 터지만 여기서 부터는
산길이다, 이제 얼마를 더 가야 마을로 들어가는지는 알수 없다,
선화사로 이어지는 콘크리트 포장길에서 이정표는 도로를 버리고
숲으로 들어가라 알려준다, 이제부터는 얼마나 아름다운 숲길이 기다리고 있을까?
조금은 긴 길을 선택한 오늘은 아침부터 이렇게 싱그러운 날이다,
지리산 숲속으로 점점더 깊이 들어간다,
그래도 길 걱정이 없는것은 산중 곳곳에라도 이렇게 못생긴
투박한 장승같이 만든 둘레길 이정표와 국가위치표지목이 나란히 서 있어니
혼자걷는 길도 외롭지만은 않다,
조금전 비털밭에서 농약을 치고있든 아저씨 말이
귓가에서 떠나지 않는다, 가난하게 살고는 있지만 자신은 지리산을 버릴수없어
죽을수도 없다고 한 말이 이직도 귓가에 생생하다,
오늘 이곳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바람소리도 산새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오히려 내 발걸음 소리가 크게 들린다,
이곳은 중리 너와집 갈림길에서 아랫길과 윗길로 나누어지든
갈림길이 다시 합처지는 곳이다, 내려오고나서 생각해보니 산길을 걷는것 보다
콘크리트 길을 걸어서 올라오는게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이곳은
수성대 약수쉼터로 알려저 있는 곳이다,
수성대약수터 쉼터에서 더 올라가면 백련사 입구가 있다,
백련사입구에서 조금만 더 올라가다가 좌측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둘레길이다,
계곡은 계단을 내려서면서 보인다, 그리고 이곳에 또 한곳의 쉼터가 있는데 수성대 3번째
쉼터로 지리산둘레길 1박2일(강호동, 은지원)찰영지라는 안내가 붙어있다,
수성대 세번째 쉼터 앞 다리를 건너서 배너미재로 올라간다,
가는길 초입 돌계단과 토사흘러내림을 방지하는 석축이 길게 쌓아저있다,
이 깊은 산에 이렇게 돌담 하나 하나를 쌓아서
길을 만든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알수 없겠지만
그래도 그들이 흘린 땀을 생각해서라도 길뿐만이 아니라 자연 그대로를
조금이라도 훼손하는 일은 없어야 겠다,
위치표식이 없어니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 쯤이 배너미재가 아닐까?
배너미재는 장항마을 사람들이 풍개를 사 먹어로 다녓든 추억이 있는 고갯길이라고
하는데 풍개? 는 무었인지
짧은 구간이지만 이곳의 길은 거의 밀림수준이다,
모자를 스치는 나무가지 숲의 소리에도 놀랄정도로 깊은 숲길을
지나다가 갑자기 앞이 훤히 트인다,
그리고 잠시 내림길을 내려가니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그리고 아랫녁에 보이는 마을이 마을은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와 장항리다,
건너편 산 언덕에는 홀로 서있는
큰 건물도 보이는데 저 건물은 일성지리산 리조트다,
장항마을로 내려가는길 장항소나무당산 옆에있는
지리산둘레길 3코스 첫번째 스템프함이 보인다, 3코스는 두곳에 스템프함이 있다,
장항소나무당산이라는 글이 새겨진
스템프를 꽝 찍고
내친김에 사진도 한장
근데 모양새가 영 아니다, PHOTO BY 들레길 길손
당산소나무는 이렇게 생겻다,
지금도 당산제를 지내는 장항마을 소나무당산, 이곳에서 당산제를 지내고,
마을앞 당산나무에서 마지막 당산제를 올린다고 한다,
마을 앞 당산나무
장항마을 소나무당산 인월 금계구간 설명서도 읽어본다
인월 금계구간 장항마을 소나무 당산은 전북남원시 인월면과 경남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을 잇는19km의 지리산 둘레길 인월 금계구간 지리산둘레길 시범구간 개통지인 지리산
북부지역으로 남원시 산내면 상황마을과 함양군 마천면 창원마을을 잇는 옛고개길인
둥구재를 중심으로 지리산 주능선이 넓게 펼처지고 다랭이 논과 산촌마을
을 지나 엄천강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뭐 이렇게 적혀있다,
이제 마을길로 내려섯다,
마을길 도로지만 차가보이지 않는 도로다,
길은 이제 람천 장항교를 건너서 남원산내우정교육센터로 간다음
일성지리산리조트 방향에 있는 명보휴게소 앞 지리산둘레길 화장실 건너편 마을로 들어간다,
마을길을 따라서 올라가면 커다란 사과나무 농장도 있고
이어지는 길은 콘크리트 포장길이다,
서서히 고도가 높아진다,
지나온길을 돌아보니 산중턱에 있는 백화사가 보인다,
1시간전만 해도 저 앞길로 왔는데 이제 이곳만 지나가면 백화사는 보이지도 않겠지만,
그리고 아랫마을인 산내면 대정리 일대도 보인다,
사람사는 일이란? 알수 없지만 아마 내평생에 두번 다시 이곳에서 지리산
일대를 둘러보는 기회가 있을까? 한번 지나가는 길이기 때문에 내가 여기서 바라보는 것도,
이 사진을 찍어서 나만의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모두 다 소중하기만 하다,
콘크리트 포장길을 올라서 이제 산길로 들어간다,
내발자국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산길을 쉬엄 쉬엄 걸어서 간다,
이런길이 둘레길의 여유가 아닐까, 인월에서 금계로 가는길은 20km정도의 거리다,
아침나절에 고개마루를 하나 넘어왔어니 이제부터는 이렇게 널널한
길을 가야할것 같은데
가다가보니 천년을 살다간것 같은 나무가 그자리에서 서서히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모습이 보인다, 주목이 살아천년 죽어천년이라더니
이 나무가 주목인가?, 이곳에 주목이 있을 자리는 아니지만
산내면 대정리에서 중황리로 넘어가는고갯길은 길 한번 좋다
더욱이 아침 볓이 뜨거운데 그늘이 태양빛을 막아주는역활까지 하는 길이니
바람만 조금 불어준다면 금상첨화일텐데, 욕심이 지나친 것일까,
적막강산인듯한 조용한 산길에서 산새소리가 들린다,
이렇게나 아름다운 노래소리가 있을까,
넉넉하고 기분좋은 길에
매료되여 길을 즐기며 걷다보니 돌 담이 보인다
한두채의 집이 있였든 자리치고는 무척 넓은 터가 돌담위로 보인다,
마을이 있었든 자리인가? 잘 보이지도 않는 한켠에 있는 작은팻말에 "사람 손이 떠난
논밭 묵답" 산업화의 물결따라 농부는 논밭을 버리고 도시로 떠났다, 한때 고추가 익고, 벼가 고개를
숙이던 논밭은 농부의 발걸음이 끊기자 나무가 들어서 이제 숲으로 거듭나고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려는 땅의 본능을 볼수있다 라고 안내해 놓았다,
이깊은 지리산중턱에서 농사를 지었다니
여가서 살았든 농부의 삶은 얼마나 고달팟을까, 전답이 있었다는 주변을 살펴보니
이곳은 생각보다 넓은 구릉지다, 한두가구가 아니라 여러가구가 땅을
일구며 살았을 것 같은 곳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땅만보고 가다가 보니
콘크리트로 포장을 한길이 보인다, 그리고 보이는 탁 터인 전망
지리산 중턱에 자리잡은 산내면 중황리 마을이 보인다,
이곳 중황리에서는 지리산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불편한점이 없는마을이다, 둘레길을따라 이어지는 펜션, 민박, 무인쉼터, 음식점 등
그것도 파전에 막걸리는 물론이고 짜장면집까지 있다, 이곳은 분명히 농촌인데도
둘레길이 사람들의 삶을 바꿔가고 있는 듯한 그런 흐름이 보인다,
이 옆집은 펜션이다, 펜션에서도 민박은 언제나 환영이다,
이집 펜션 간판에 아들은 사춘기가되면 남이되고 군대가면 손님이되고
장가가면 사돈이된다, 딸둘에 아들 하나면 금메달, 딸만 둘이면 은메달, 딸하나
아들하나면 동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 이라는 글을 써놓았다,
작은계곡을 지나니 오솔길이다, 왜 그른지 이 오솔길은
처음 와보는 길이 아니라 눈에 많이익은 듯한 그런길이다, 낮설지 않다는 말은
그만큼 편안하다는 길도 된다는 말이아닐까,
그렇게 가다가보니 집한채가 보인다,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이 보인다, 차를타고도 올수있는 곳이다,
집 옆으로 이어지는길은 골목길이기는 해도 이만하면 충분할것도 같은데
데크로 인도까지 만들어 놓았다,
데크길 중간에는 전망대도 있는데
전망대 에서 내려다 보는 중황리마을은 뭔가 조금은 특별한 마을인듯
마을이 들어서기 전에는 뒷산 백운산 기슭에 황강사(黃岡寺)란
절이 있었고 북쪽으로 약 200m 위치에 꿩이 엎드려 있는 형국이라는
복치혈(伏雉穴) 굴이 있어 황강사의 황(黃)자와 복치혈의 치(雉)자를 따서 황치(黃雉)라고
했든 곳이나 마을 주변 3개 자연마을 중 위쪽에 있어 웃황치라 하다가
한자로 바꾸어 상황(上黃)이라고 했다는 마을이다,
높은곳에서 내려다 보는 황리마을
이곳에서 보이는 마을이 왜 이 마을을 상, 중, 하, 로 나누어 졋는지 이해가 된다,
등구령 쉼터에서 많은 사람들이 점심을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등구령쉼터 맞은편 집도 식당이다, 이곳에있는 식당 두집은 일하든 동네분들도
모두 여기와서 점심을 할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다, 등구령끝이니
이곳이 황리의 마지막 식당일 것같다,
이 길은 전라도와 경상도로 나누어지는 등구령으로 가는 길이다,
1592년 임진왜란 때 파평윤씨 통정대부 윤천왕(尹天王)이 지리산으로 피난을 가던 중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과 경계를 이루는 백운산 등구치를 넘으려 하다가 영신암(靈神岩)이라는
바위 밑 굴속에 몸을 숨겼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굴에서 약 200m 떨어진 상황리로
내려와 느티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터를 닦아 정착했다.
등구령으로 올라간다, 본래 운봉군 산내면 지역으로 황치, 웃황치
또는 상황이라 했으나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상황리(上黃里)와 하황리(下黃里)
일부가 병합되어 중황리에 편입되었다. 이곳이 등구령(재)이다,
등구령은 함양에서 전북남원의 산내와 운봉으로 오가든길로
경상도와 전라도를 이어주는 길이다,등구령에 있는 또 하나의 안내는 등구령은
거북등을 타고 넘든 고갯길이며 또한 지리산서쪽 만복대에 노을이 깔릴때 동쪽 법화산
마루에 달이 떠오른다고 해서 노을과 달빛이 어우려지는 고개길이라 했다,
경남 창원마을과 전북 상황마을의 경계가 되고 인월장을 보러가든길로,
새색시가 꽃가마타고 넘든 길이다, 지금은 이곳을 찾는이가 드물지만 되살아난
고개길이 마을과 마을, 그리고 사람을 이어줄 것이다 라고 써여있다,
등구령에서 내려와서 우측에 보이는 마을 저마을은 어디일까?
지도를 보니 저 마을이 창원마을인것 같은데 창원마을이면 금계로 가는 길이다,
그러나 저 마을로는 들어오지 말고 왼쪽 임도로 가라고 안내되여 있다,
마을 반대편인 좌측 콘크리트포장 길을 따라 올라간다,
아마 이길은 아랫마을 주민들의 반대로 이렇게 조금 돌려 놓은게 아닐까?
지리하게 콘크리트 포장길을 가다가 정자가 있는 곳을 지나간다,
정자에서 잠시 쉬여가려고 했더니 앉을자리마저 마땅치 않다, 흙과 먼지가 많이
쌓여서 앉을수도 없다, 그러나 이 높은 산중까지 콘크리트 포장은 뭔가, 차라리 흙길이면
걷기라도 편할텐데 전라북도보다 경상남도가 더 부자인갑다, 커브를 돌아나가니
집이보인다, 이런길에서 집이 보이면 왜 반갑지?
여기가 창원마을에서는 지대가 제일 높은곳이다,
앞산 너울저 있는 제일높은 곳이 지리산천왕봉이다, 창원마을은
지리산 천왕봉을 바라보고 있는 마을이다, 남원 중황리서부터 다랭이 논밭이 많이보인다,
지리산 기슭에서 농사를지어며 살아가자면 논밭을 일구지 않어면 안되였든
여건때문에 다랭이 田畓은 필수가 아니였을까?
창원마을 제일 높은 지대에서 한참을 내려가면
창원마을 당산나무가 있다, ↓이곳에는 둘레길 3코스 두번째 스템프함이 있다,
당산나무 아래로 들어간다,
당산나무 앞에 세워저있는 스템프함
여기서 3코스 두번째 인월 금계구간 스프를
쾅 ~ 찍고나서
당산나무 앞 전망장소에서 보이는 세석과 장터목 제석봉과
천왕봉 중봉등 등 지리산 정상 일대가 파노라마로 너울이지는 전경을 본다
걷고있는 길이 지리산둘레길이니 지리산 정상이 멋있게 보이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천왕봉만 보면 가슴이 떨리는 것은 정상인가, 병인가? 나도 모르겠다,
당산나무가 있는곳에서 조금다 내려가면 창원산촌 생태마을이 있다,
창원마을은 조선시대 마천면내 각종 세로 거둔 물품들을 보관한 창고가 있었다는
유래에서 창말(창고마을)이라고 했다가 이웃 원정마을과 합처지면서
현재의 창원이 된 마을이다,
지리산마을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를건 없겠어나
그냥 잠시 둘러보고 지나가는 길이지만 뭔가 조금은 달라보이기도 한다,
또 다른 방향에서 보는 지리산 창원마을 강원도 깊은 산중에서도 볼수없는 지리산
자락만이 보여줄수 있을것 같은 설명은 할수 없지만 그런 마을이다,
마을길 마저도 달라보인다,
그러나 그렇게 보여서 그런게 아니라, 그렇게 보아서 그런 것일게다,
이쯤에서 금계는 아직도 2km 정도는 더 가야 한다,
길은 이제 산허리를 돌아서 내려간다,
문제는 18km 이상을 이미 걸어왔다, 지금 시간이면 슬슬 지처가는게 문제다,
소나무와 전나무 숲으로
들어가 이런 숲길을 한동안 가다보면
이 쯤이 마지막 내림길이다,
금계마을이다. 황금색 깃털을 가진 새(金鷄)라는 조금은 추상적이고
근사한 이름이지만 예전 금계마을은 노디목 이였다,
노디는 징검다리의 사투리다. 강 건너 칠선계곡에 자리한
추성, 의중, 의탄, 의평마을 사람들이 징검다리를 건너 왔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 금계다. 지금은 지리산1교와 의탄교가 징검다리를 대신한다,
금계마을은 모텔은 없지만 민박, 펜션등은 많은 마을이다,
하룻밤 자는데 펜션은 과한것 같아서 민박을 이용했는데 현금만 4만원을 받는다,
카드결제는 더(부가세) 받는다, 일단 그기까지는 그렇다고 치드라도품질은 그 흔한 생수한병
주지않어며 긴 때밀이 수건도, 드라이기도 없어며 더욱이 방청소는 언제했는지? 수건으로 닦았더니
금방 검은색으로 변한다, 인월이나 함양으로 다니는 지리산둘레길 버스는 수시로 있어니
타지로 나가길 적극 추천한다, 다 그런건 아닐거라 믿지만, 먼길을 왔는데
만박집 순례를 할수도 없지않은가?
사람과 생명, 성찰과 순례의길, 지리산둘레길,
인월에서 도착한 3코스 종점이자 4코스 동강으로 가는 출발점이 여기다,
인월 금계 구간은 공식적으로 20,5km 이라고 했다, 그러나 2020년 5월 23일 GPS 로
측정한 거리는 21,46km였다, 알바한 구간도 없어니 1km 정도는 구경하느라
기웃거린 거리인 모양이다,
지리산 둘레길 3코스 고도 (高度)는 아래와 같다,
'Trail(둘레길) > 지리산둘레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리산둘레길5코스 동강 수철구간(2020년 6월 2일) (0) | 2020.06.09 |
---|---|
지리산둘레길4코스 금계 동강구간(2020년 5월 24일) (0) | 2020.06.01 |
지리산둘레길 2코스 운봉~인월구간(2020년 5월 22일) (0) | 2020.06.01 |
지리산둘레길 1코스 주천~운봉구간(2020, 05, 22) (0) | 2020.05.25 |
지리산둘레길 자료 (0) | 2020.05.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