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해파랑길 34코스 묵호역~옥계시장(2016년 4월 14일~15일) 본문
해파랑길 33코스와 34코스 분기점인 묵호역 뒤다,
이곳에서 망상으로 올라간다
묵호항으로 들어가는입구
이곳에는 무료 주차장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4월달은 아직 비수기라서 그런 모양이다,
묵호항 어시장
묵호항에서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어달해변이다,
해파랑길은 어달해변으로 바로 가는게 아니라 산위에 있는 묵호등대로
돌아서 가도록 되여 있었다, 산 위로 올라가는 골목길
논골 마을로 올라간다,
길이 조금 가파르기는 해도 집들이 다닥 다닥 붙어있는 골목길이고
오래된 담장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면서 올라가다 보면 금방 묵호등대에 도착할수있다
여기는 묵호항 북쪽 산중턱에 자리잡은 논골 마을로. 논골은 옛날 산 중턱에 논이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동해시는 이 길을 따라 등대까지 이르는 길을 테마 여행코스로 개발했다.
논골담길은 길은 험하다. 구불구불하고 경사도 높고, 울퉁불퉁 그 자체다.
지금 허리 구부정한 동네할머니들은 그 시절 아이를 업은 아낙으로 연탄을 머리에 이고
물을 담은 양동이를 두 손에 들고 매일같이 이 길을 오르내렸다. 지게꾼들은 바소쿠리가 있는
지게에 오징어와 명태를 한 가득 담고 이 길을 숨 가쁘게 오르며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갔다. 그렇게 논골담 길은 묵호 사람들의 희망의 길이었다
오징어와 명태를 빼고는 묵호는 설명되지 않는다,
오징어는 묵호의 주 어종이며 그 다음이 명태다. 갓 잡은것은 생태,
얼린것은 동태, 건조시킨 것은 북어, 반쯤 말린것은 코다리, 얼렸다가 녹였다가 하면서
말린 것은 황태라고 부른다. 또 봄에 잡으면 춘태, 가을에 잡으면 추태,
겨울에 잡은 것은 동태. 그리고 명태 새끼는 노가리다,
노가리는 애주가들에게 사랑받는 제일의 안주거리다.
한때 묵호는 전국으로 팔려 나가던 노가리 중심항구이자, 노가리천국이었다.
이러한 오징어와 명태잡이 추억을 고스란히 전해주는
마을이 바로 이곳 안 묵호다,
해변에서 고불고불 100m 정도를 올라 간 언덕 정상
끝자락에 묵호등대가 있다. 등대에서 내려다 보는 논골담길은
묵호항이 내려다 보이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다
묵호항은 1930년 항구로 개발되고 1980년까지 전성기를 누렸다.
전성기 시절에는 주민과 외항선원, 오징어 선원들로 넘쳐나는 거리였고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던 항구마을이었다. 그 뒤 쇠락의 길을 걸으며 선원들이 하나 둘, 이 마을을 <
떠나면서 적막한 빈집들은 추억만을 보듬은채 지금은 그 흔적만을 간직하고 있다,
묵호등대에 관한 모든 내용은 여기에 있어니
관광객은 묵호등대와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바라보는것 만으로도
묵호등를 찾은 수고로움은 충분히 보상 받을수 있는 곳이다,
묵호등대는 최근 영화와 드라마 촬영지가 되면서
묵호의 상징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훨씬 이전부터 묵호와 묵호사람들의
애환과 함께 그 뒤안길을 함께해왔다. 1941년 8월에 묵호항이 첫 포구를 열고, 무연탄을
주로 실어 나르던 배들과 오징어 어부들이 단골 고객이었다. 항만법상 1종 항으로
한때 최대 규모의 항구로 자신 만만한 뱃고동 소리를 울렸던 항구다.
묵호항은 석탄과 시멘트등을 수출하며 한국수출 역군의 기항지자,
동해안 어업기지, 조업중 어선들이 바람을 피해 대피하던 포근한 보금자리기도 했다
출렁다리인 이곳은 등대로 가든 논담길이다,
오징어와 명태를 짊어지고 오르내리던 꼬부랑 돌담길이기도 하다,
지금은 많이 달라지기는 했지만 예전 묵호의 제철은 가을이다.
가을볕 쨍쨍하게 내리쬐면 신선한 바람결에 오징어 말리기가 딱이다. 묵호 특산물이
오징어였기 때문이다, 온 동네는 싱싱한 오징어 말리기로 분주했다. 덕장에는 오징어가 떼로
널려있고 덕장이 아니더라도 집집마다 지붕과 옥상, 앞마당 빨랫줄과 담벼락에는
줄지어 오징어를 말리는 일이 묵호사람들의 일상이였다
이 사진은 출렁다리에서 한때를 보내고 있든
사람에게 부탁을 해서 찍힌 것 이다, 2016년 4월 15일 나는 묵호등대에 있었다,
내가 지금 서있는 곳에서 바다를 내려다 보면 왼쪽에있는
바위가 까막바위고 오른쪽에 있는 조형물이 문어상이다, 문어상에 얽힌
설화는 조선중엽 덕망있는 호장(지역유지)이 이곳에 살았는데 어느날 바다에
어선2척이 마을을 급습했고 호장은 이들과 맞서 싸웠어나 힘이 부족했다,
침입자들은 호장과 약탈한 재물을 배에싣고 돌아가려하자
호장이 침입자들을 크게 꾸짖었는데 하늘이 갑자기 어두어 지고
천둥번개가 치며 광풍이 심하게 일어 호장이 탄배가 뒤집혀 모두 죽고 말았다,
남은 한척의 배도 달아나려 하자 갑자기 거대한 문어가 나타나 그 배를 뒤집어 침입자
들을 모두 죽게했다, 그때 나타 난 큰 문어가 호장이 죽어 변신한 혼이라
전해지고 있다, 믿거나 말거나 이런 내용이 문어상에 적혀있다,
문어상 조형물 옆 까막바위 안내는 서울 남대문의
정동방이 까막바위라고 적혀있다, 남대문과 여기가 일직선 이라는 뜻이다,
동해시 어달동에 있는 어달항은 묵호동과 망상동 사이에 있어
해안도로로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이다. 다른 항구나 해변보다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하고 아늑한 항구 분위기를 느낄수있다. 특히 특이한 모양의 햐안 등대와
빨간 등대, 그리고 낚시의 명소로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어달항 지나서 바다에는 등대가 있다, 저곳 등대가 있는 곳은
물속에 잠기는 바위가 있었는데 배가 항해중에 바위에 올라 타는 사고가
많이나서 바위를 부술려고 하다가 그 바위에 등대를 세웠다고 한다,
이후부터 여태까지 사고가 없었다고 하는 등대다,
어달항을 지나 북쪽 해변으로 올라간다,
파도에 씻기여
모래 백사장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어달해변<
어달해수욕장이다,
해수욕장에는 모래가 없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방법이 있을까,
이제는 대진항이다,
아담하고 깨끗한 동해 대진항,
대진항은 묵호역에서 5,6km지점이다,
동해역에서 약 13km정도를 왔다, 그래도 아직 해가 중천이니
오늘은 해파랑길 34코스를 갈수있는 곳까지는 가봐야 할 것같다
대진항 회 센터도 보인다,
사람이 없어니 문은 닫겨있었다,
대진항 옆 대진 해수욕장이다, 이 곳에서 부터 해변은
망상해변으로 길게 연결이된다, 그러나 해변으로 해서 망상으로 바로
갈수는 없다, 대진 해변과 망상해변 사이는 군부대가 있다,
도로와 자전거 길이 있는 인도를 따라 올라간다
대진항에서 망상으로 올라 가는길
노봉 바닷가에는 서울대학교 동해 해양연구센터도 있다,
서울대 해양 연구센터 옆 바닷가에 큰바위가 보인다,
노고암이란다, 노인 노(老)자에, 시어미 고(姑) 그리고 바위 암(岩)자를 썻다,
한자표기대로 해석하려 했어나 전설은 사뭇다르다, 이 바위가 "老姑岩"
전설도
읽어보는 재미가 있는 이야기다,
가든 길을 따라 망상역으로 올라간다,
노봉해변은 통제되여 있지만 노봉해변 앞으로 지나간다
망상역이다,
망상 제2오토캠핑장도 있다,
망상 제2오토캠핑장 앞에서 부터
길게 북으로 이어지는 망상해변 해수욕장,
해안도로 를 따라
망상오토캠핑리조트로 올라간다,
망상 오토캠핑 리조트 후문도 지나서
철 길과
고속도로 아래로 들어가서
고속도로 옆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오른쪽으로 동해 약천온천 간판이 있는데
이 간판이 가르키는 방향으로 잠시 따라 들어가면
해파랑길이 계속해서 연결된다,
물론 이정표나 해파링길 리본을 잘 찾아가야 하지만 입구에
외할머니 민박집이 있다, 이 마을은 민박촌이다,
마을길이기는 하지만
예측 가능한 길이 이어지는 구간이니 걱정 할일은 아니다,
가다가 보면
이렇게 만들어진 이정표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전신주에는 해파랑길 스티커도 붙어있고
그저 그런 농촌길을 가다보니 비각이 보인다,
김응의 효자각이다,
심곡리 김응위 효자각에서
더 내려가니 고풍스러운 한옥이 나온다, 무슨 한옥일까?
이 건물 앞 삼거리에 이정표가 있는게 보인다,
해파랑길 34코스 종점인 옥계시장으로 가는길은 오른쪽으로 들어가서
산길을 넘어가면 된다, 산으로 들어가면 길이 있을까? 그러나 오후 1시경에 동해역에서
출발해서 먼길을 왔더니 벌서 해가지는 시간이다, 오늘은 이곳에서
멈추고 내일 다시 와야겠다,
정자 주춧돌에 藥泉(약천)이라 써여 있다,
한마디로 약수라는 뜻이다,
조선 숙종때 영의정을 지낸 약천 남구만 선생은 조선후기
인조 7년에서 숙종 37년까지의 문신으로 당시 西人의 중심 인물로 문장과
서화에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남구만 선생의 본관은 의령, 자는 은로, 호는 약천 이었다.
약천은 당파싸움시 반대파에 몰려 강릉에서 1년정도 귀양살이를 하며 서당을 운영한 했는데
바로 여기다, 따라서 발락재와 장전(長田)약천등 약천마을 일대에서 현재까지
전해오는 지명은 약천 남구만 선생으로부터 유래한다,
약천이 그시절에 지였다는 詩 "동창이 밝았느냐" 는 다음과 같다,
동창이 밝았느냐 노고지리 우지 진다
소치는 아해 놈은 상기 아니 일었느냐
재 너머 사래 긴 밭을 언제 갈려 하느니.
이 시는 동쪽 창문이 벌써 밝았느냐? 날이 새었는지 종달새가 마구 울어 젖기는 구나!
소 먹이는 아이는 아직도 아니 일어났느냐? 저 고개 너머에 있는 이랑 긴 밭을 부지런을 떨어도
하루해로는 어려울 터인데, 언제나 갈아 보려고 늦장을 부리느냐? 는 뜻이라 한다,
맞은편 길 거너에는 이렇게 멋스러운 큰 누각이 있다,
누각 옆 다른 건물에는 약천정보화마을 사무실이고 이 정자는
어느 시대에 지여 젓는지 설명이 없다
동해 심곡 약천마을 정자앞 너른 공터에는 버스 장류장이 있다,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일단 동해 시내로 나가야 할것 같아서다,기다려도
버스가 오지 않는다, 버스가 하루에 3번 정도 다니는데 아침 일찍, 한낮, 저녁이란다,
그나마 입구에서 이곳으로 들어오는 손님이 없어면 들어오지도 않고
큰길에서 그냥 나간다고 한다
할수없이 다시 큰 도로가 있다는 길까지 걷기로 했다,
심곡소류지도 지나서 큰 길로 나갓어나 버스는 언제 올지 기약이없다,
결국 동해친구에게 전화를해서 친구 차로 시내로 들어갔다, 내일은 이곳으로
다시와서 해파랑길 34코스를 이어서 옥계장터로 갈 생각이다,
아침 8시가 조금 못되여 심곡리 약천마을로 택시로 들어왔다,
동해시청 앞에서 이곳까지 택시비는 12,000원 이다, 그래도 언제 운행할지
알수없는 버스를 기다리는 것 보다는 택시요금이 더 싼게 아닐까,
이곳에서 산길을 넘어 옥계시장으로 간다,
특이하게도 열녀문이 있는 집을본다, 일반적으로 열녀문은 사당이나
비각등으로 지어저 있든데 여기는 일반 가정집에 김윤수의 처 삼척김씨지문 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20세에 남편이 위독할때 손가락을 짤라 피를 먹였어나 목숨을 구하지
못해서 같이 죽을려고 두번이나 목을 매였어나 실패 했지만 대상날 남편의
상막에서 목을 매 죽었다, 철종때 열녀문을 내렸다고 안내되여 있다,
한적한 농촌 풍경이다, 작은 차는 다닐 정도의
좁은길로 계곳해서 이어진다, 다행스러운 것은 심심치않게
해파랑길 리본이 보인다는 점이다,
이제 첫번째 고개를 넘어서 간다
고개를 넘어가니 이곳에도 마을이있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길은 세멘콘크리트로 포장도
되여있고 연결되는 길은 이 길뿐이니 길을 잘못 들어설 이유도 없다,
포장도로도 끝이나고 낮은 임도로
들어가는데 이런 곳에도이정표가 설치되여 있는게 보인다,
남양홍씨 시조묘도 있는 길
임도라고는 하지만 차가 통행할 수 있을만큼 길이 좋다,
양지바른 곳에서 잠시 쉬여간다, 인적이 없어서 일까? 조용해서 좋다,
이 산길에서 세번째 고개다, 저곳이 어디인지는 몰라도
이정표가 있는것 같아서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니 동해시와 강릉시 경계인
이곳 망운산 옷재에 해파랑길 구간 이정표가 있다,
아직 34코스를 가려면 옥계시장까지는 가야하지만
여기가 동해시와 강릉시 경계지역이라는 안내다, 동해시는 여기서 끝이나고
이 지점을 지나가면 강릉지역으로 들어간다는 뜻이다,
현위치 망운산 옷재와
옥계시장 까지의 지도도 있고
묵호역에서 옥계시장 까지의 34코스 지도
해파랑길 구간 이정표
요건 잘못? 붙여 놓은것 같다,
옷재를 내려간다,
이제부터 가는 길은 옥계장터다,
이 길은 임도다, 그러나 차량 통행은 안될것 같은 임도,
동해시 구간과는 확연한 차이가 난다, 그리고 얼마가지 않아서 괴란동이다,
산길을 내려와서 처음 만난 첫집 다음은 농로다, 이곳 농로를 따라
가다보니 어디선가 화난 목소리가 들린다, 누가 그 길로 오라고 했냐고 돌아가란다,
이게 무슨소리인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기도 해서 화를내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어니 자세히 알려달라고 그랬더니 한다는 말이
이 길로가는 사람들의 주민등록증을 확인해서 고발한다고 했다,
한사람이면 좀 이상한 사람이겠거니 하겠는데 일하든 동네주민
5 ~6명 정도가 모두 그렇단다, 그러면 여기는 무었인지 사연이 있을것 같았다,
내용은 장황하겠지만 이 마을로 외지인이 다니는게 못 마땅한 모양이다,
아직도 이런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 있다니? 모를 일이다,
옷재에 설치해놓은 해파랑길 이정표 설명대로라면
아름다운 바다길에서 내륙으로 스며들다, 망운산 고개를 넘어며
강릉으로 행정구역이 바뀐다고 했다, 그러나 강릉시에서 해파랑길에서 해변으로
이어지는 가까운 길은 빼고 옥계를 끼워넣어 옥계로 들어가도록 코스를
만든 것 같다, 이런 해파랑길코스 횡포는 강릉시가 제일 심하다,
해파랑길은 기차역에서 항으로, 해변으로 불리는 친근한 이름이 많다,
그러나 이 길의 종점인 옥계시장이라는 이름은 낮설어 보인다 강릉시는 강릉시
곳곳을 해파랑길에 끼우다 보니 오륙도 해맞이공원에서 통일전망대까지 동해의 떠오르는
해와 푸른바다를 길 동무 삼아 함께 걷는다,는 본래의 기본 취지는 사라저 버렸다,
잘못 기획되였어면 바로 잡을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남양 3리 버스 정류장을지나 도로를 따라 옥계시장으로 간다,
도로를 따라가든 길이
여기서 마을길로 접어든다,
세멘트포장이 되여 있는 농로를 따라
한참을 따라 가야하는 길, 빤히보고 가는 길이 더 힘이든다,
여기를 넘어가면 옥계시장이 보일까,
생각대로 옥계시장이 보인다,
옥계중학교도 보이고
옥계예식장도 보인다
옥계에 있는 유일한 큰 기업인 한라세멘트 옥계공장 과
세멘트를 항구로 보내는 파이프 라인도 있다,
옥계천 다리를 건너 둑방으로 내려가서
마을로 들어가면 옥계시장이다, 썰렁하다, 사람이 보이지도 않는다,
옥계보건소, 저곳에 가면 사람을 볼수 있을까?
옥계보건소는 묵호항에서 시작한 34코스가 끝나고 35코스가
시작되는 분기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봐도 아무런 흔적이 없다,
유일하게 보건소 옆 경운기 수리하는 집 건물 벽에 붙어있는 이 스티커가
아니였어면 이곳이 해파랑길이 맞는지도 몰랏을 정도다, 어찌 되였거나 해파랑길
34코스는 이렇게 끝이났다, 동해시와 강릉시 경계에 있든 옷재 분기점
안내판을 여기에 설치해 달라고 하는 건 무리한 욕심?인가 보다,
'해파랑길(동해안 일주) > 동해안국토종주결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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