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올레길 6코스 쇠소깍다리-제주올레여행자센터 11km(2021년 2월 28일~3월 1일) 본문
쇠소깍 다리에서 6코스를 출발한다,
쇠소깍 다리를 출발하여 서귀포 시내를 통과, 이중섭거리를 거쳐
제주올레 여행자센터까지 이어지는 해안, 도심 올레다, 해안가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소금막과 삶과 문화가 숨쉬는 서귀포 시내를 걸으며 서귀포의 문화와 생태를 접할 수 있다.
6코스의 명소라고 꼽기에 손색 없는 서귀포 칼호텔 바당길과 허니문 하우스
전망대 길에서 푸른 바다의 파노라마를 즐기면 더할 나위 없다.- 올레홈 -
쇠소깍다리에서 효돈천 하구로 내려간다,
효돈천에 대한 안내도 있고
길은 효돈천을 가깝게 볼수있는 하천 데크길로 이어진다,
유명한 관광지 답게
이렇게 잘 만들어 놓은 하천변 우레탄 포장길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쇠소깍,(용연, 쇠소)은 양쪽가 절벽은 병풍을 세워
두른듯 조수가 상통하는 장강을 형성하고 있고 바위 위 푸른 소나무도 녹색강을 자랑하며
예로부터 우리 조상의 어업 기지인 천연어항으로 우돈지명을 따서 우소라 하였다
깍 은 하천의 하구부분으로 바다와 만나는 부분을 일컷는 제주어다,
따라서 쇠소깍은 쇠소와 하구부분의 바닷가를 통칭하는 지명이며 옛 조상들은
쇠소에 용이 산다고 하여 용소라 부르기도 했다 - 안내판 -
쇠소깍으로 한걸음 더 가깝게 내려 간다,
여기는 하효 본향당도 있고
하효동 쇠소깍 해신당도 있는 모양이다,
효돈천은 한라산 백록담 남벽과 서벽에서 생겨나 해안으로 이어지는
하천이다, 쇠소깍은 효돈의 옛날 지명인 쇠둔의 쇠(송)와 웅덩이를 뜻하는 소 그리고
강물이 바다로 흘러가는 지역인 하구를 뜻하는 제주 방언 깍에서 유래했다,
- 쇠소깍 안내판 -
전설에 따르면 이곳에 용이 산다고 하여 용소라고도 불럿는데
가뭄에 이곳에서 기우제를 올리면 그 효과가 뛰여 났다고 한다, 이곳 쇠소각은 깊은
수심과 기암괴석, 울창항 소나무 숲이 절경을 이룬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
오랜 세월에 걸처 빚은 명승지다, - 쇠소깍 안내판 -
40만여년 전에 분출한 조면암질 용암류가 오랜세월 파도에
지금의 기암괴석을 만들었다, 해변의 검은 모래는 상류의 현무암이
물살에 쓸려 이곳에 쌓인 것이다 쇠소깍은 자연, 역사, 민속 등 많은
부분에서 중요한 보존 가치가 있다, - 쇠소깍 안내판 -
제주 서귀포 쇠소깍은 효돈천이
바다와 맞닿아 끝나는 곳에 있는 하천 지형이다,
하효쇠소각 해변길로 하효항 방향으로 간다,
하효 검은모래 해변
제주에는 검은 모래로 이루어진 해변이 분포 되여 있다, 검은 모래의
기원은 두가지다, 해안선을 따라 분포되여 있는 수성 화산이 부셔저서 인근 해안을 따라
검은 모래가 쌓인다, 또 하나는 하천 하구에 검은 모래가 퇴적되는 경우다, 이는 한라산 고지대에
분포되여 있는 현무암이 침식되여 하천을 통해 바닷가로 운반된 경우다, 이곳 하효마을
해안의 검은 모래는 효돈천을 따라 한라산의 현무암 부스러기가 하류로
떠 내려와 쌓인 것이다,
효돈감귤
오래 전부터 효돈은 따뜻하여 감귤이 재배되였다고 전하며
지금도 효돈과 원터가 전해오고 있다, 이 고장에서 생산된 감귤은 진상품으로
사용되여 졋어며 조정에서는 그 감귤을 성균관 유생들에게 나눠 주고 황감제라는 특별
시험을 치를 만큼 이 고장에서 생산된 감귤은 맜이 깊었다,
검은 모래 해변을 따라서 하효항으로 간다,
뒤로 돌아 본 쇠소깍과 하효해수욕장
인어와 해녀,
인어는 잘모르겠어나 해녀는 제주의 상징이다,
제주 감귤의 발원지가 효돈이라는 안내다
무려 그 역사가 2천년이라니,
하효항이다,
파도가 없는 날이여서 인지
하효항은 조용히 잠들어 있는 것 같다,
올레길은 이제 소금막으로 올라간다,
소금이 귀하든 시절 바닷물을 가마솥에 끓여 소금을 생산하고 저장했든 곳이다,
소금을 지키는 병사들의 막숙(막사)도 있었다, -올레 안내 -
이제 완연히 잘 보이는 하효항
쇠소깍로에서 갈라진
보목포로는 이렇게 해안을 따라서 이어진다,
하효항이 잘 내려다 보이는곳에 있는 정자
이곳 어디에 있을 것도 같지만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빈지바위 라는 안내는 있다,
빈지바위는
이 숲 넘어 해안에 있는 모양이다,
길은 이길 하나 뿐이니 다른곳으로 갈수도 없지만
이곳에서의 길은 자전거 길과 나란히 간다,
모자바위 안내가 있다,
바위가 두개니 모자 바위인 모양이다,
이랗게 갈라진 길이
나오드라도 해안길로만 따라가면 올레길이다,
여기가 소금 코지(소금 밭)다,
하효동1448번지 주변 일대 하효동 남쪽 갯가의 길게 뻩어 나간 곶
부리를 소금 코지라 한다, 소금코지 허리 부분에 편편한 바닥돌이 있는데 이곳에
바닷물이 들어 왔다 증발하면서 하얗게 소금이 남았다 하여
소금 코지(소금밭)라 불럿다고 한다,
이 일대가 소금밭
하효항 다음에 있는 보목포구
보목 어촌계 건물과
그 옆으로 공중 화장실도 있다,
보목어촌계 건물을
지나서 보목천 다리를 건너간다,
비가 온다, 그래도 계속 강행군을 했더니 제법 빗 방울이 굵어진다,
오늘은 이쯤에서 철수해야 겠다,
아침 일찍 소정방 폭포로 왔다,
작은 5개의 물줄기가 흘러 내린다는 소정방 폭포
소정방폭포에서 소라의 성으로 올라가는 계단
서귀포항과 문섬이 보인다,
소정방 폭포 위에서 내려다 보는 전경
소정방폭포에서 소라의 성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가파르다,
비까지 오는 날이라 미끄럽기도 하다,
언덕위에 있는 소라의 성
소라의 성에는 6코스 중간스템프 함이 있다,
소라의 성은 음식점이였다,
성이라고 해서 일반적인 성곽인줄 알았는데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다,
소라의 성을 지나서 정방폭포로 간다,
정방폭포 일대 공원으로 들어간다,
남영호 조난자 위령탑도 있다,
남영호 침몰사고는 1970년 12월 14일 17시경 남제주군 서귀읍 (현 서귀포시)
서귀항에서 출항한 부산~제주를 잇는 정기 페리인 남영호가 다음날인 12월 15일 침몰해
326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로 대한민국의 해상 참사 사망자 수 1위, 대한민국에서 6,25전쟁을
제외하고 사망자 수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참사다.
정방폭포 주차장으로 들어간다,
정방폭포 매표소
정방폭포 주차장에서 보이는 칼 호텔
아침 이른 시간이라
정방폭포 매표소는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높이 23m, 너비 8m, 깊이 5m이다. 서귀포 동쪽 해안에 있는 동양 유일의
해안폭포로서 폭포수가 바다로 직접 떨어진다. 마치 하늘에서 하얀 비단을 드리운 것 같다
하여 정방하폭 이라고도 부르며, 예로부터 영주12경 가운데 제5경으로 유명하다. 앞바다에 있는
숲섬, 문섬, 새섬, 범섬에는 난대림이 울창하여 남국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정방폭포 입구에 있는 편의점
올레길은 정방폭포
매표소 주차장을 지나서 서복공원으로 간다,
서귀포항과 문섬도 보인다,
나가는길 오른쪽에 서복불로초 공원이 있다,
2200년전 진시황의 사자인 서복 이 시황제의 불로장생을 위한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동남 동녀 오백명 혹은 삼천명을과 함께 대 선단을 이끌고 불로초가 있다는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을 찾아 정방폭포 해안에 닻을내리고 영주산에 올라 불로초를 구한후
돌아가면서 정방폭포 암벽에 서불과지 라는 마애명을 새겨 놓았는데
서귀포 라는 지명도 여기서 유래 했다,
서복 불노초 공원은 이러한 전설을 바탕으로 정방폭포 암벽위에
조성되였고 공원에는 맥문동, 삼백초, 사철쑥, 흰민들레, 약모빌(어성초), 방풍, 유자나무,
섬 오가피, 등의 약용식물이 식재 되여 있다,
서복불로초 공원을 나가면
서복전시관이 있다,
서복은 서불(徐巿)이라고도 불리며, BC255(제왕 10)년 진나라가
통일하기 전 제(齊)나라에서 태어났다. 서복의 고향은 진나라 당시 제군(齊郡) 황현(黃縣)
서향(徐嚮)으로 오늘날 산동성 용구시(龍口市)다. 한편 강소성 감유현 서부촌(徐阜村)도
서복의 고향이라 전해진다.
서복은 제나라에서 태어나 자연스레 연, 제나라의 신선사상 영향을 받아
방사(方士 : 천문, 의학, 신선술, 점복(占卜), 상술(相術) 등을 연구하는 사람)가 되었다.
서복은 진시황의 명을 받고 불로장생약을 찾아 3,000여 명의 대선단을 거느리고 동도(東渡)하였으나,
평원광택(平原廣澤 : 평탄한 들과 넓은 진펄)을 얻게 되자 나라를 세우고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고 한다.
최종 정착지로 알려진 일본에서 서복은 농, 어업, 의약, 주거문화,
토기 등 야요이문화를 창달시켜 일본 경제사회의 발전을 촉진시켰다고 전해진다.
정방폭포 매표소에서 부터 서복공원 서복 전시관을 지나
올레길 6코스를 이어간다,
사귀포 칠십리 음식특화거리 앞
교차로에서 길을건너
소암기념관 앞으로 간다, 서귀포 시내에서도
시그널이 잘 보이니 도심이라도 길을 잋어 버릴것 같지는 않다,
온길을 돌아본 서복전시관
가는길에 전시되여 있는
서귀포의 옛날과 현재의 모습 사진도 둘러보고
작가의 산책길로 들어간다,
정방동의 정방은 이 마을에 속한 정방폭포에서 따온 것이다,
서귀1리와 서귀 2리를 통합하여 정방동이라 했다,
정방동은 고려시대부터 서귀포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
되였을것으로 보고 있다, 서귀포는 고려시대와 조선초까지도 홍로현 포구로
이용되였고 세종때 제주목 9진의 하나로 서귀진이 들어서 그 주변에 마을이 형성되면서
나중에 서귀마을이 이라 해 오다가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까지
풍덕리라 하였다가 다시 서귀리 라 했다,
서귀포초등학교 도 지나간다,
그리고 사귀포항 공원
서귀포항 입구 공원에있는 자구리 안내도 있다,
올레자매 밥집 지금시간이 07시 30분 경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아침 일찍 문을 연 식당이 안보인다,
자매 밥집을 지나가니 공원이 보인다,
공원이 아니라 서귀진지다,
서귀진은 탐라십경의 하나로서 조선시대 제주의
대표적인 방어유적으로 3성 9진에 속하면 정의현 관할이 였다,
1589(선조 22년) 아옥 목사가 서귀포로 옮겨 축성했다,
둘레는 825척 5치이고 높이는 12척이 였다, 설문은 동과 서에 있었다,
집채는 북성안 중앙에 객사를 두고 좌우로 진사, 무, 고 사랑방,
포주, 창고등이 배치되였다, 당시 서귀진에는 성정군 68명, 목자와 보인 39명을
합해 100여명이 있었든 것으로 기록되여 있다,
서귀진지도 지나서
생명의 나무 조형물이 있는 거리로 들어간다,
제주 현무암, 열매, 줄기등의 자연적 이미지를 생명의 시작과 성장을
상징하는 커다란 나무의 형태로 표현하였어며 무한한 시간과 만물을 포함하고 있는
끝 없는 공간의 총체적 이미지를 우주적 신비로운 공간으로 연출 하고자 했다,
>라고 작가가 적은 내용이 아래에 보인다,
이어지는 길은 이중섭 거리다,
목련이 곱게 피여 있는 한옥집이
이중섭 미술관이 였다,
화가 이중섭은 1951년 1월에 부인과 두 아들을 데리고
피난을 와서 12월경에 부산으로 떠나기 전까지 1년 가까이 이 집에 살았다는 곳이다,
서귀포 극장이다,
1963년에 개관한 서귀포 극장
지금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서귀포 극장 앞으로 해서 언덕으로 올라간다,
서귀포극장 앞 길의 끝은 서귀포 매일 올레시장이다,
매일올레시장에서 좌측으로 제주은행을 지나고
우체국도 지나고
천지동 주민센터도 지나가면
길건너편에 하얀건물이 보이는데 여기가
올레길 여행자센터다,
올레길 여행자 센터에서
6코스종점과 7코스 출발 스템프를 찍는다,
7코스는 7-1코스가 또 있다,
7-1코스는 서귀포버스터미널에서 여기까지 오는 코스다,
그러나 나는 오늘 비가오는 날이라서 7코스를 가는 것 보다 7-1코스를
가는게 더 좋을것 같아서 여기서 서귀포 터미널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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