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삼남길 제3길 모락산길 中(임영대군묘역~사근행궁터)2022, 10, 09, 본문
임영대군 묘역에서 능안로를 따라 가는길, 옛골가든, 모산황제백숙, 가야금 한정식 등등의 음식점들이 이어져 있다, 백운호수 일대 지역이니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능안길 마을이 끝나는 왼쪽 마지막 집 옆으로 삼남길이 이어진다,
삼남길은 이제 다시 산으로 들어간다,
삼남길 안내판과 모락산둘레길 안내판이 함께 붙어있는 길
서서히 고도도 높아지고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기는 한데
도로는 아니고 임도 도 아닌 그런 길이다,
비닐 하우스가 있는 것을 보니 조경수 농장인듯 하다,
다시 숲으로 이어진다,
모락산둘레길 안내판이 산남길 안내보다 더 많은 길,
안내판을 따라 계속 숲길로 간다,
산길이라 어디가 어딘지? 감이 안잡힐 수도 있겠지만 여기는 삼남길 리본이 촘촘히 걸려 있어니 그런 염려는 안해도 된다,
모락산둘레길과 삼남길 까지
방향 안내도 이렇게 잘 설치되여 있다,
우리가 지금 온 길은 능안마을이고 갈 길은 오매기 마을이니 알려주는 방향 대로만 가면 된다,
다시 산길 사거리가 나오지만 가는길은 직진 내림길이다,
삼남길 리본이 곳곳에 걸려 있어니 리본만 따라 가도 되는길
한 여름에 와도 시원 할 것 같은 내림길을 따라
계속 내려가다 보니
농지가 보인다,
그리고 마을이다,
이제 부터의 길은 오매기중간길이라는 표식이 있는데
집들도 보이는길
오전리교회 안내도 있다, 오매기마을에 기독교가 정착하는 데는 오매기골자기에 핀 최초의 꽃, 전도부인 홍길순여사에서 비롯되였다, 홍길순 여사는 마을에서 20여리나 떨어진 수원읍성 성결교회까지 걸어 다녔다,
오전리교회 기독교 역사에서 홍길순 여사는 첫 번째 믿음의 꽃이였다, 신도 수 가 늘어나면서 1937년 6월 10일에 유근풍의 집에 예배소가 설치 되였는데 이것이 오전리 교회의 시작 이였다, 라고 길게 설명이 붙어 있다,
개천을 따라서 계속해서 내려간다,
모락산둘레길 종합안내판도 있는데 갈미한글공원, 임영대군묘와 능안마을 오매기마을과 용머리 전주남이마을과 삼형제바위전설, 보석골 거북바위 등의 지세한 안내와 둘레길 지도가 붙어있다, 삼남길을 걷는 길이니 모락산둘레길은 지나가지만 다음에 날 잡아서 다시 찾아오고 싶은 그런 길이다,
삼남길의 으뜸 풍경, 오매기 마을 이라는 삼남길 3길 5번째 이야기도 안내되여 있다, 오매기마을은 용머리, 목배미, 사나골, 가운데말, 뒷골, 백운동 등의 작은 마을로 구성된 마을 입니다, 조선시대에는 오막동 또는 오마동 이라고 불렸습니다, 오매기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두 가지 유래가 있는데
문화 류씨를 비롯하여 진씨, 노씨, 마씨, 문씨등 5개 성씨가 각각 막을 지었고, 이것이 전부 5막이여서 여기에서 오매기라는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있어며 또하나는 이 마을의 산세가 5마리의 말이 각기 기수를 태우고 달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오마동 이라 했다고도 전해집니다,
오매기중간길 끝 백운로가 있고 오매기마을 버스 정류장도 있는게 보인다, 길은 버스정류장이 있는 백운로까지 가지않고 앞에보이는 붉은색 기와집인 오전상회 옆 골목이다,
개천을 건너가는 다리도 있고 화장실도 있는 곳에서 길손 식당 뒤 길로
오매기중간길로 계속 가야한다,
이 일대는 오매기지구라는 이름도 있는데
비교적 최근에 지어진 집들도 보이고
의왕지장암으로 가는 길과 만나면 삼남길은 왼쪽 도로 방향으로 가라는 표식이 보인다,
의왕 오매기지구 시작을 알리는 안내가 걸린 집도 지나서
오전천 다리를 건너가서
지장암버스정류장 오른쪽 백운로로 내려 가다가
백운로 맞은편 GS칼텍스 주유소가 보이는 곳에서 상록수농원 간판 골목으로 들어간다,
잠시 이렇게 보이는 농촌길을 가다가
309번 봉담 과천로 아래 굴다리를 지나
계속해서 이렇게 보이는 길을 가다가 보면
외진 곳처름 보이는 지역에 고급주택들도 있는데
이곳으로 오는 길은 오른쪽에서 이어지는
이 길인가?보다
이 길의 이름은 홍치골길 이다,
가는 길에 있는 윙스팜 집 담장에 이런 글도 붙어있다, 당신은 지금 어떤 마음으로 이 길을 걷고 있나요? 이 물음에 대한 답은 딱히 생각이 안난다, 삼남길이 여기에 있어니 걷고 있다는 생각 뿐,
조선시대 한양과 충청, 경상, 전라를 이어주던 삼남길, 수많은 선비들이 과거시험 보려가던길, 충무공 이순신장군이 전라좌수영으로 부임하던길, 이몽룡이 장원급제하여 춘향이를 보러 가던길, 세상이 너무 많이 바뀌였어니 정말 이 길이 그 길이 맞는지?
홍치골길에서 이제 사근행궁터로 가야한다,
길은 자전거길과 합류되고
자전거길은 직진으로 이어지지만 행궁터로 가는 길은 자전거길을 건너간다, 이곳 소로 삼거리에서 행궁터는 1,7km 다
그리고 직진길과 오른쪽으로 가는 골목길 삼거리에서는 오른쪽이다,
오른쪽 골목으로 잠시내려가면
이렇게 보이는 작은 사거리가 있는데
이곳 전신주에 직진은 해남방향 통미마을로 가는길이고 오른쪽은 사근행궁터 스템프가 있는 곳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사근행궁터를 경유해서 가는 3길은 3,5km가 더 멀다,
이곳 사거리에는 원앤원 이라는 곳도 있다,
왕림길을 따라 나가는길
여기도 골목길이다,
골목길 끝, 309번 봉담과천로 의왕TG로 가는 도로 아래가 보인다,
왕곡로와 골목길이 만나는 삼각녹지대에 청풍김씨 묘문비가 있다, 묘뮨비는 묘역의 입구에 건립하는 비석으로 일반적으로 묘산비 라고 하며 조선시대에 걸립된 것은 10기 내외로 매우 적은 수가 제작되였다고 하는 비다,
백운산일대에 자리잡은 청풍김씨 묘역입구 길가에 있었는데 도시개발로 몇 차례 위치를 옮겻다고 적혀 있다,
묘문비 앞에는 왕림마을 비도 있다,
309번 봉담과천로 아래를 지나서
체육공원 사거리를 지나 왕곡초교사거리 오른쪽 아파트사이길로 들어가서
현충탑이 있는 현충탑공원 앞 길을 따라가면
계속해서 골목길이다,
골목길임에도 삼남길 안내는 곳곳에 있어니 길을 찾아가는 데는 문제가 없다,
이렇게 골목길을 따라 가다보면 이런 안내판이 보이는데 사근행궁터다,
여기는 조선시대 사근행궁터다, 일제 강점기인 1919년 3월 31일 800여명의 시위대가 의왕면사무소와 주재소를 포위하고 독립만세 시위를 했던 고천리다, 일본경찰은 군대를 불러 시위대를 해산 시켯고 이 과정에서 2명이 총상을 입었고 46명이 체포되였다, 체포된 주민들은 태형 60~90대를 받았는데 걷지 못할 정도로 상처가 심했다고 한다,
사근행궁터는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현륭원으로 옮기고 찾아가는 행차길에 머물러 쉬던 행궁으로 과천행궁, 사근행궁, 시흥행궁, 안양행궁, 안산행궁, 화성행궁등 모두 6개의 행궁이 있었다,
영조 36년(1760)사도세자가 온양으로 행차 할때도 지나갔다는 기록으로 보아 행궁이 들어 서기 전 부터 삼남으로 이르는 교통요지였을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 사근행궁터는 의왕시청별관이다,
사근행궁터 시청별관이 있는 이곳에 삼남길 제3길 2번째 스템프 함이 있다,
비는 내리는데 우산을 받쳐들고 스템프를 찍었더니 찍히지 않는다, 살펴보니 스템프가 새겨진 고무판이 떨어저 나가서 바닥에 붙어있다, 고무판을 꺼내서 겨우 억지로 찍었다, 비가 많이 와서 빗물에 스템프 찍은 종이까지 젓었다,
삼남길 제3길 모락산길 中, (임영대군묘역~사근행궁터) 두번째 일기는 여기까지다,
다음에는 사근행궁터에서 삼남길 제3길 종점인 지지대비휴게소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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