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삼남길 제5길 중복들길 上(서호공원입구~SK그룹 수원고향)2022, 10, 23, 본문
화서역 5번출구에서 600m거리에 있는 서호 입구는 경기옛길 삼남길 제5길 출발점이다,
또한 이 길은 수원팔색길이기도 하다, 팔색길 안내에서는 1794년(정조18년)에 시작하여 1796년(정조20년)에 끝난 화성 축성에 필요한 석재들을 팔달산, 숙지산, 여기산, 권동위 5개 부석소에서 구했고, 대들보와 서까래 등으로 쓰일 나무들은 충청남도 안면도와 황해도 장산곶에서 남양만 구포나루(지금의 화성시 비봉면 구포리)를 통해 축성현장으로 운반했다,
또한 벽돌과 기와를 굽기 위해선 불을 땔 가마와 불을 지필 많은 나무가 필요했는데 나무가 많았던 백운산에서 벽돌과 기와를 구워 화성 축성에 사용했다, 구포나루에서 화성까지의 주요 경로는 구포리에서 쌍학사거리, 비봉IC, 어천저수지, 천천리마을, 국립산림연구원, 수원여대, 호매실교, 서군동, 서울농대, 향미정, 서호, 여기산, 숙지산, 화서문, 화성행궁에 이르는 약 25km의 길이다, - 안내판 인용 - 이 내용은 서호에서 출발하는 수원들레길에 대한 안내인 것같다,
이제 서호로 들어간다, 입구인 서호와 서호천이 연결되는 지점에는 인도전용 목재다리가 있고 다리와 나란히 차가 다닐 수 있는 새싹교도 있어며 징금다리도 있는 등 3개의 다리가 있다,
삼남길 제5길은 다리를 건너 가는게 아니고 서호 주변에 있는 서호공원을 따라간다,
진입부터 길은 매우 아름답고 넉넉하다,
더욱이 아침 햇살을 머금어 빛을 발산하는 서호는 유리알처름 맑다,
서호 주위를 따라 가는길 서호공원에는 화장실도 있다
한진현대 아파트가 보이는 이곳은 수원시 화서동 숙지 초, 중, 고등학교가 있는 지역이다,
길은 계속 서호 둘레로 이어진다,
새들을 조망 할 수 있는 조망대가 있는데 그 조망대에서는 정조 23(1799년) 화성 서쪽에 조성된 저수지로 다양한 새와 생물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사람과 자연이 공존하는 도심 속 생물 서식지라는 안내와 함께
서호에서 만날수 있는 민물가마우지, 큰기러기, 쇠기러기, 물닭, 쇠백로, 흰빰검둥오리, 등등과 서호납줄갱이(한국고유 수종으로 서호에서만 발견된 잉어과어류 - 현재는 멸종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유일한 표본은 미국 시카고 필드 자연사 박물관에 있다,)등도 안내되여 있다,
서호 건너편 오른쪽 산은 여기산(104,1m)으로 우장춘박사 묘소가 있는 산이며 그 아래 흰색의 건물은 선거역사전시관과 선거연수원이다,
서호를 끼고 들어서 있는 나무들은 이제 단풍을 피우려는지 하나 둘 곱게 물들어 가는게 보인다, 호수와 호수에 비치는 단풍이 어우려지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그러나 이 포스팅을 올리는 오늘은 2022년 10월 23일이고 블르그에 공개되는 날은 2022년 12월 2일이니 한겨울에 보는 가을의 전경은 어떨지? 궁금하다, 오늘 올린 일기가 1개월이 지나서야 공개되는 이유는 2일에 한번씩 공개하는 순서가 그때까지 밀려 있기 때문이다,
서호 뚝방으로 올라왔다,
서호 뚝방에서 보이는 수원역일대 아파트 군락은 끝이 없을 정도로 이어저 있다,
서호 뚝방길로 항미정 방향으로 간다,
서호 뚝방에서 보이는 소나무 밑 둥을 보니 수백년은 된 듯한 소나무다, 서호를 만들면서 심어진 소나무 라면 600년 이상은 되였겠지만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다, 여하튼 꼬꼬 할아버지 소나무다,
그리고 서호 뚝방 아래는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 시험재배장도 보인다, 이곳은 벼, 밀, 보리, 옥수수 등 식량으로 활용하는 농작물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곳이다. 고소한 팝콘 향이 나는 쌀, 과일처럼 단맛이 나는 옥수수를 비롯해 우리가 매일같이 먹는 곡식 대부분이 이곳에서 개발됐다.
중부작물부는 경기 강원 충청 등 중부 지역에서 농사를 짓기에 적합한 품종을 개발한다. 유전공학 화학 토양학 등 관련 분야 박사학위를 가진 연구관과 연구사들이 더 맛있고, 건강에도 좋고, 기르기 쉬운 품종을 밤낮으로 연구한다. 한 가지 품종을 개발해 세상에 내 놓기까지 10년 넘게 걸리기도 한다.
중부작물부는 우리나라 농업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조선 시대 이 자리엔 군대 용 식량 작물을 재배하는 ‘둔전(屯田)’이 있었다. 정조 임금은 근처에 축만제라는 저수지를 건설해 농업용수로 쓰도록 했다. 지금 이 저수지는 수원시민들이 여가를 즐기는 호수공원으로 조성됐다.
아픈 역사도 있다. 일본은 1906년 조선 침략을 원활히 할 목적으로 이곳에 농업 기술을 연구하는 권업모범장을 설치했다. 현재 전북 전주에 있는 농진청 본 청도 2014년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
농촌진흥청 국립식량과학원 중부작물부는 그 규모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다, 수원 도심 한가운데 있지만 마치 농촌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다. 서울 경기 등 대도시 주민들에게는 평소 접하기 힘든 특별한 경험이다.
수원 축만제에 대한 안내도 보인다, 축만제 라고 하니 조금은 낮설지만 서호의 이름이다, 축만제는 1799년(정조 23) 화성의 서쪽 여기산 아래 길이 1,246척 너비 720척이라는 당시로서는 최대 크기로 조성한 저수지다,
이에 앞서 정조는 1795년에 장안문 북쪽에 만석거를, 1797년에 화산 남쪽 사도세자 묘역 근처에 만년제를 축조했다, 대규모 수리시설과 둔전 개간이 크게 성공하자 정조는 만석거와 만년제의 3배 규모에 달하는 축만제를 조성하였고 개간된 둔전에서 얻은 수익은 화성을 수리 하는 비용으로 사용했다,
축만제는 천년 만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한다는 뜻으로 화성 서쪽에 있어 일명 서호로 불린다, 정조시대 농업 기반 시설은 일제 강점기 권업모범장, 해방후에는 서울대학교 농과대학, 과 농촌진흥청 설립으로 이어졋고 수원은 20세기 농업 중심지가 되였다, 축만제의 가치는 세계적으로도 인증받아 2016년 11월 국제관개배수위원회(ICID)의 세계관개시설물 유산으로 등재 되였다, - 서호 뚝방에 있는 안내문 인용 -
축만제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 다리를 건너간다, 이 하천도 서호천이다,
다리에서 보이는 북쪽 아파트 밀집 지역, 오늘 들어 온 화서역방향 수원시 팔달구 화서동 일대다,
다리 건너서는 직진은 아니고 왼쪽 서호천 방향이다,
그리고 이곳 삼거리 언덕에 항미정이 있다,
항미정으로 올라가는 계단 왼쪽에 삼남길 스템프 함이 있다, 여기서 경기도 삼남길 제5길 항미정 스템프를 찍었다,
안내에는 항미정은 축만제에 있는 정자로 1831년 당시 화성유수 였던 박기수(1774~1845)가 현재의 자리에 건립했다, 1831년 2월 21일 화성유수에 임명되어 이듬해 1832년 윤 9월 4일 대사헌으로 이임하기까지 11개월간 재임하면서 항미정을 창건 하였을 뿐만 아니라 화성지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항미정이라는 이름은 중국 시인 소동파의 시군에 서호는 항주의 미목같다고 읊은 데 서 그 이름을 따서 지었다고 한다, 항미정 구조는 남북으로 ㅡ 자형 4칸과 전퇴가 있는 건물을 기본 구조로 하고 북쪽 끝에서 서쪽으로 2칸의 공랑을 붙였고 남쪽 끝에서 동쪽으로 1칸의 마루칸을 내어 달았다,
항미정은 1908년 10월 2일 순종황제가 기차를 타고 수원능행을 했을때 융건릉 참배 후 서호 임시 정거장에 도착하여 축만제 뚝방딜을 지나 한미정에서 차를 마시며 잠시 쉬였던 유서 깊은 정자 이기도 하다,
삼남길 이야기 5-4에는 서시의 눈썹에서 이름이 유래한 항미정이라는 안내도 있는데 이는 송나라 대문호인 소식이 중국 항주 태수를 지낼때 항주를 대표하는 절경인 서호가 서시의 눈썹처름 아름답다고 말했던 것에 유래한 것으로 서시는 중국 월나라의 미인으로 월나라 왕구천의 신하인 법려가 서시를 오나라 왕 부차에게 바치고 서시의 미색에 빠져 정치를 태만하게 한 틈을타서 오나라를 정복했다는 이야기, 뭐 어쩌구 ~ 두개의 안내판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이렇게 유서깊은 곳이니 잠시 정자에 앉아 앉아본다, 조선시대 같았어면 상상도 못했겠지만
정자 중심부 ㅡ 자형 4칸의 전퇴가 있는 건물을 기본 구조로 하고, 북쪽 끝에서 서쪽으로 2칸의 공랑(벽이 없는 구조, 뒤로 이어진 곳)을 붙였고 남쪽 끝에서 동쪽으로 1칸(본건물 벽이 없는 돌출 부분)의 마루 칸을 내어 달았다 는 설명을 따라 뒤편에서 본 항미정이다,
항미정 옆 계단으로 내려와서 올려다 보는 항미정,
항미정을 나가서 이어지는길은 서호천 뚝이다,
서둔교 아래를 지나간다,
서둔교는 서호천19번째 다리다, 물론 항미정이 있는 곳 서호에서는 첫번째 다리다,
계속해서 길은
서호천변으로 이어지는데
오래된 천이라 그런지 여기도 수양버들나무가 많이 있는게 보인다,
천변 숲은 가을 옷으로 갈아 입고 있는 중이고
하천변이라도 길은 타일이 깔려 있다,
가는길 오른쪽에 엄청난 크기의 수양버들 몇 그루가 있다, 밑둥은 2명 정도가 팔을 뻗어야 닿을만큼 크다,
서호천 건너편에는 일반 주택이 아닌 기숙사 형 숙소도 있는데 이 일대는 농업생명과학대학농장이 있어니 대학농장 기숙사인가 보다,
보이는 다리는 농대교다,
농대교를 지나가면서 보이는 서호천변은 울창한 숲이다,
하천변에 이렇게 울창한 숲이 있다는 것도 놀랍다, 그만큼 오랜 역사가 있는 천이라는 뜻이 아닐까?
벌말교다, 벌말교 넘어는 운동장형 건물도 보이는데 SKV1모터스가 있는 곳이다,
벌말교 아래 수원팔색길 안내도 있고
SK그룹의 고향 수원이라는 삼남길 안내도 있다, 서호와 옛 수인선 철도 사이에는 지은지 수십년이 되는 공장 건물들이 11만평의 넣=ㄼ은 부지에 자리하고 있는데 이곳은 SK그룹의 발상지인 선경직물 수원공장 터로서 1953년 창업주인 최종건 회장이 기존 직물공장을 인수하여 창업한 곳이다,
SK그룹은 한국전쟁으로 잿더미가 된 평동 벌판에서 직기 20대의 설비로 시작하여 지금은 수백조의 매출을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현재 선경직물 수원공장터에는 1944년에 세워진 사무동을 비롯해 본관과 공장 건물이 남아 있어며 당시 사용하던 집기 일부도 보존되여 있어서 해방이후 한국 산업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근대문화 유산이다, - 안내문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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