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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삼남길 제6길 화성효행길 下(용주사~세마교)2022, 10, 23,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삼남길

삼남길 제6길 화성효행길 下(용주사~세마교)2022, 10, 23,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2. 11. 25. 00:00

용주사 주차장 한켠, 문화관광 해설사 컨테이너옆 삼남길 제6길 스템프함이 있는 곳에서

용주사 앞 사거리로 나간다, 사거리 일대에서 보이는 곳은 화성태안3지구로 모두가 단독주택지 이며 그 뒤로 보이는 산 능산은 융릉과 건릉이 있는 화성이다, 1796년에 축성된 읍성으로 다른 지방 읍성들과의 차이점은 정조가 양주에 있던 사도세자의 능인 영우원(永祐園)을 화산(花山)융건릉으로 옮겨 명칭을 현륭원(顯隆園)으로 고쳤으며 능행을 위한 행궁을 화성 안에 건축했다는 점이다, 결국 아버지 묘를 중심으로 성을 쌓았어며 후일 정조도 이곳에 묻혔다,

사거리에서는 왼쪽 안녕초등학교 방향으로 간다, 건너편에 보이는 아파트 군락은 화성태안우미린센트포레B1블록아파트와 B2블록아파트 단지로 2023년 3월과 4월에 준공하는 아파트 공사장이다, 요즈음에는 아파트 이름이 왜 이렇게 길고 어려운지? 아파트공사장과 도로 사이에도 넓은 공터가 있는데 여기는 단독주택지라고 한다,

가는길 왼쪽 높은 담장 위도 용주사다, 용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로. 854년(문성왕 16)에 창건하여 952년(광종 3)에 소실된 갈양사(葛陽寺)의 옛터에 창건된 사찰이다. 1790년(정조 4)에 사일(獅馹)이 팔도 도화주(八道都化主)가 되어 철학(哲學) 등과 함께 팔도 관민의 시전(施錢) 8만 7000여 냥을 거두어 갈양사 옛터에 145칸의 사찰을 창건했다,

이 절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능인 현륭원(顯隆園)에 명복을 빌어 주는 능사(陵寺)로 창건되었다. 창건과 동시에 이 절은 전국 5규정소(五糾正所)의 하나가 되어 승풍(僧風)을 규정하였다. 그 뒤 1900년에 용해(龍海)가 중수하였고, 1911년에는 30본산의 하나로 수원, 경기일대에 있는 49개사찰을 관장하는 조계종 제2교구 본사다,

용주사에서 화산2지하차도 교차로로 가는길

가는길 왼쪽 지역 일대도 아파트공사장이다, 여기는 화성송산동 원로얄듀크파크아파트로 2024년 2월에 준공 한다는 곳이다,

안녕초등학교 400m전방이라는 이정표가 있는 곳을 지나

이름 없는 버스 정류장도 지나가면

안녕초등학교가 있는 곳 화신2지하차도 위 사거리다,

사거리에서 대각선으로 건너서

안녕초등학교와 방음벽 사이길로 간다,

그리고 초등학교 부지가 끝나는 지점, 오른쪽 골목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안녕초등학교 뒤에 있는 농로다,

안녕초등학교 울타리 옹벽에는 삼남길 제6길 화성효행길 안내판도 있고 지도도 그려져 있다, 

안녕초등학교 옹벽에 그려진 이렇게 멋스러운 그림은 화산동주민자치회에서 그린 그림이라 안내되여 있다,

안녕초등학교 옹벽에는 미국 대통령 린든 존슨이 한국을 방문 했을때 한국정부는 처음으로 경지정리가 이뤄졌던 화성 지역으로 그를 안내 했는데 환영인파에 감동한 린든 존슨 대통령은 노인 한사람을 헬기에 태우고 주민들이 준비한 사모관대를 입어보는등 파격적인 행보를 보여서 린든 존슨이 돌아간 이후 안용중학교 뒤편에 존슨공원이 만들어 지기도 했다는 마을이라는 안내다,

초등학교 근처라 그런지 팔랑개비를 만들어서 장식을 해놓은 길이다,

안녕동 우방아이유쉘아파트 796세대가 있는 곳을 보면서

앞에 보이는 산 방향 농로를 따라간다, 저 산은 임진왜란때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승전을 한 독산성이 있는 줄기다,

나가면서 뒤로 돌아 본 안녕초등학교, 학교 건물은 모두가 반듯한 사각 건물로 지어졋는데 여기는 곡선 건물이다, 

농로를 따라가는길 지역주민들의 작품을 전시 해놓은 공간이 보이는데

첫번째로 전시되여 있는 작품들과

두번째와

세번째 작품 전시 공간까지 있다, 세번째 전시공간에는 화산동 주민자치회 라는 안내판도 걸려있다,

일직선으로 나 있는 길을 계속해서 나가면

84번 국도 효행로와 연결이 되는데 사진에 보이는 작은 다리를 지나 오른쪽으로 간다,

그리고 신한미지앤 아파트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서

맞은편에서 다시 내려온길 방향으로 올라가다가 첫번째 오른쪽 길로 들어간다,

이곳 갈림길에 정조대왕의 효심이 깃든 세계유산 융릉과 건릉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길은 황구지천으로 합수되는 지천을 따라 내려가는 길이니 여기서 정조대왕 효심이 깃든 이야기를 길게 이어가려고 한다, 융릉은 훗날 장조의 황제로 추존된 장헌세자(사도세자)와 헌경의황후로 추존 된 그의 부인 혜경궁 홍씨의 합장릉이다, 

정조는 1789년(정조13년)양주 배봉산에 있던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소인 영우원을 수우너도호부 화산(현 화성시 화산동)으로 옮기며 현륭원도 융릉으로 격상했다, 현륭원의 석물은 연화문을 새긴 병풍석, 꽃봉오리 모양의 인석, 신체의 비례감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문, 무인석, 등에서 사실상 왕릉과 같은 격으로 조성하고자 하였던 정조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건릉은 정조와 그의 부인 효의왕후의 합장릉으로, 1800년 정조 승하 즉후 현륭원 동쪽에 조성되였다가 1821년 효의왕후와 합장하여 현륭원 서쪽으로 이장, 오늘날의 건릉이다, 

효의고장 화성시를 대표하는 문화재인 융릉과 건릉은 역사적,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970년 사적 제 206호로 지정 되였고 2009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였습니다,

하천 뚝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제 다리를 건너서

43번국도 만년교 아래로 지나간다,

만년교 아래서 부터는 황구지천 뚝길을 따라 계속해서 내려가야한다,

신한미지엔아파트에서 1km 지점에 있는 안내판에는 세마교까지는 700m가 남았다고 알려준다,

이제는 계속해서 황구지천 뚝길을 일직선으로 내려간다,

가는길 오른쪽으로 높은 건물도 보이는데 화성 일진전기 회사다,

황구지천은 이제 강처름 넓은 하천이다,

만년교에서 삼남길 6길 종점인 세마교까지는 1km의 직선 뚝길이다,

내려가는길 오른쪽 들판을 지나 작은산이 있는 곳에는 일진전기가 있다,

황구지천 건너는 오산화성고속도로 서오산 TG가 있다,

황구지천은 본래 항곶천(亢串川)이라 불리었다고 전해지는 천이다.

항곶천 이라는 이름은 항곶진(亢串津)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오늘날의 평택시 서탄면 황구지리에 해당한다.

이 마을은 항곶포(亢串浦), 항곶진(亢串津), 항곶포(項串浦) 등으로 불리었는데, 마을 이름을 따서 항곶천이라 부르던 것이 변하여 황구지천이 된 것이라는 추정이다.

이와는 다른 이야기도 전한다. 아주 오랜 옛날 용소리 뒷산에 청룡사(靑龍寺)라는 절이 있었고, 그 절의 주지 이름이 황구지(黃口地)였다. 이 절의 본당과 승방 사이에는 내[川]가 있었기 때문에, 절의 스님들은 본당과 승방 사이를 오가기 위해서는 매일 이 내를 건너야만 했다. 그래서 주지가 이 곳에 돌다리를 놓았으며, 이 내의 이름을 절 주지의 이름을 따서 황구지천 이라 부르기 시작했다고도 전해지는 천이다,

황구지천은 위왕시 부곡동 일대에서 발원하여 군포시 다시 의왕시로 흘러가서 왕송저수지 를 지나 수원시와 화성시, 오산시, 평택시을 거쳐 안성천으로 흘러드는 하천이다, 1km의 일직선 뚝길을 걷다보니 오른쪽 들녁과 왼쪽의 황구천만 보이는 길이라서 황구지천에 대해 알아보았다, 

이 의자가 있는것이 삼남길 제6길 종점인 세마교다,

화산동간이쉼터 라고 알려주며 오늘 하루도 멋지게 웃기, 라는 알림도 있다,

삼남길 제6길은 여기가 끝이다, 이제부터는 여기서 다시 삼남길 제 7길이 이어진다,

삼남길 6길의 종점에는 솟대도 만들어 놓았다,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닌듯 하고 쉼터 의자를 만들면서 세운듯 하다,

세마교 앞은 만년로인 315번국도가 지나고 세마교와 쾌랑6길로 나눠지는 뱅뱅이 사거리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뱅뱅어페럴 건물이다,

오른쪽 뱅뱅이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2022년 10월 23일은 삼남길 제5길과 제6길을 걸었어니 오늘은 여기서 돌아간다,

뱅뱅이 버스정류장에서 서울로 돌아가는 교통편은 25번, 25-2번, 25-5번 버스로

1호선 전철이 운행하는 세류역으로 가면된다,

오늘의 뒷풀이는 사당역근처 낚지탕집이다,

삼남길 제6길은 약7km 정도로 천천히 걸었어도 2시간 정도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