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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삼남길 제9길 진위고을길 中(봉남3리정자~진위향교~터골휴게소)2022년 11월 13일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삼남길

삼남길 제9길 진위고을길 中(봉남3리정자~진위향교~터골휴게소)2022년 11월 13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2. 12. 8. 00:13

봉남3리 100년 느티나무에서 진위향교는 1,06km 거리다, 

이어지는 마을 길을 내려가다 보면

마을길 끝은 진위초등학교다, 900년 4월 7일 지역 유지들이 신교육을 통한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공립 진위소학교로 설립해 수업 연한 4년에 수산, 국어, 산술, 역사 등을 주로 가르쳤으며, 1923년 4월 수업 연한을 6년으로 연장해 오늘에 이른다, 결국 120년의 역사를 가진 학교다,

초등학교 울타리 안으로 들여다 보니 공원처름 꾸며져 있다,

공원처름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진위초등학교 공원인가 보다

진위초등학교를 지나면 진위면사무소다, 진위면사무소 앞에 "북면사무소 3, 1운동 만세 시위지" 라는 안내가 있는데 진위군 북면(현 진위면)주민들이 독립만세 시위를 전개한 곳으로 북면시위는 봉남리를 중심으로 전개되여 3월 11일에 천도교인들이 주축이 되여 시위를 했어며

3월 21일에도 봉남리와 야막리 주민 500여명이 면사무소를 습격했어며, 3월 31일에도 박성백, 최구홍, 유동환, 전영록 등 주민 400여명이 면사무소에서 대대적인 시위를 전개 했는데 박성백, 유동환, 전영록 등은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 받았다, 라는 이야기다,

또 한편에는 진위현 관아 기초석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1871년 발행한 진위현지도에는 평택시 북부지역의 산과 강, 마을, 길, 관아가 그림으로 표현되여 있다, 특히 이 지도는 당시 행정부 역활을 담당했던 진위현 관아의 객사, 동헌, 향청, 루문, 옥사, 등의 공간 구성이 잘 표현되어 있다, 현재 진위현 관아 건축물은 진위향교만 남아 있는 상황에서 진위현 지도는 당시 관아 배치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사료다,

진위면사무소 앞 야외에 전시된 초석과 계단석으로 모두 20여점이 전시되여 있다, 이곳에 전시된 진위현 관아 기초석은 2010년 평택문화원이 진위면사무소 인근 주택공사 현장에서 발굴해 서탄면 웃다리 문화촌에 보존해 왔다, 이후 2019년 7월 15일 진위알리미사업의 일환으로 진위면민의 염원을 담아 이곳에 이전 설치했다,

진위현 관아 기초석은 10여년전 까지만 해도 진위초등학교에 20여점이 남아 있었어나 유실되고 현재는 학교 뒤편에 1점만 보존되여 있다, 진위알리미사업은 과거 평택지방의 중심이였던 진위현의 옛 모습을 되살리고 시민들에게 평택의 뿌리를 알리기 위한 주민 협치 사업이다,

그러나 진위현 관아터가 어디였지에 대한 안내는 없다, 진위면은 고구려땅이 였을때는 부산 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우리나라 2대 도시인 부산과 한자까지 같다, 은산리에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의 사당인 문헌사와 기념관과 가묘가 있다, 이곳 신대마을은 정도전 후손들이 집성촌이다, 조선시대에는 진위행궁이 세워졋다, 구 진위군의 중심지로 구 한말까지 진위군청 소재지 였다,

진위면 관광지는 진위향교와 무봉산청소년수련원, 만기사철조여래좌상, 진위천유원지, 정도전사당, 진위천 관방제림 등이 있어며 진위면 마을인 봉남리부터 신리까지 12개마을의 마을 유래가 소개 되여 있다, 일일이 다 소개 하지는 못하지만 귀한 자료다,

진위면사무소앞 골목길로 조금만 더 나가면

고풍이 넘처 흐르는 홍살문이 보이는데 이곳이 진위향교다, 진위면 봉남리에 있는 명당 중의 명당, 진위향교는 1398년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으로부터 624년의 역사를 지닌 향교다,

진위향교는 병자호란때는 불에 타 건물이 소실되여 위패만 모셔두고 제향만 올렸지만 1644년 현령 남두극이 대성전을 중수하면서 다시 격을 갖추었다, 진위향교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27명의 성현 위패를 모셨고, 유림에서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제를 올리고 있다,

진위향교는 특히 풍수지리가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진위천을, 남쪽으로는 퇴봉산을 안산으로 하여 문필봉과 무봉산 남쪽 줄기의 부산을 동서로는 진위천의 충적지인 장안평을 바라보고 있어 풍수의 기번적인 배산임수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이처름 진위향교는 전국 향교 중에서도 풍수 지리가 가장 으뜸인 것으로 유명하다, 라고 적혀있다,

진위향교 비석 뒤 끝에 있는 작은 비석은 하마비다, 향교까지 말을 타고 왔어도 여기서 부터는 걸어서 들어가야 한다는 비다,

홍살문 안으로 들여다 보이는 진위향교다, 문이 닫혀있어니 들어가야 출입이 안된다,

들어가는 대신 조금 당겨서 향교 사진을 찍었다, 늦 가을 정취가 한껏 묻어나는 고풍스러운 향교다,

진위향교 입구에 삼남길 스템프함이 있다,

여기서 삼남길 제 9길 도장을 찍었다,

진위향교 입구 도로변에 비각도 있다, 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조산시대까지 교육기관으로 조선시대 교육기관으로 지금의 초등학교는 서당, 공립중고등학교는 향교, 사립 중고등 학교는 서원, 대학교는 성균관이다, 그래서 향교는 꼭 필요한 고육기관으로 각 고을마다 세워졋다,

또한 향교는 두 공간으로 나누어지는데 공부를 하는 명륜당과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이다,

비각안에 보이는 많은 비석들 어떤분들의 비석인지는 알 수 없지만 보기에는 수백년은 된 것 같다,

이제 향교를 나가 삼남길을 이어간다, 이어지는 길은 진위향교 앞 진위천 다리다,

이 다리 이름은 세월교다, 얼마나 오랜 세월을 함께한 곳에 놓여진 다리라서  세월교라 했을까?

세월교 다리를 건너 진위천변 오른쪽 뚝길로 올라간다,

세월교와 뚝길이 만나는 곳에 평택의 나루터 이야기가 있다, 평택지역은 일찍부터 해상교통이 발달한 지역으로 고려시대 이후 안선천의 대표적인 포구인 안성천군문포는 경기도 진위현과 충청도 평택현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충지였고 현덕면 신왕리 신왕나루는 상업활동이 활발했던 포구다,이밖에도 청북면 토진리의 토진포, 청북면 삼계리 웅포, 청북면 현곡리 청포, 등이 평택의 대표적인 나루였다,

또한 이곳에는 정도전의 이야기도 있다, 진위면 은산리 산대마을은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 후손들이 집성촌으로 정도전의 이야기가 안내되여 있어나 낡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진위천 뚝길을 300m 정도를 올라가다가

향교에서 약 900m 거리에 삼남길 제9길 42번째 알림목이 있다,

알림목 옆 가로등에 붙어있는 이런 표식의 스티커는 충무공이순신 백의 종군길안내 표식이다, 이순신생가터인 명보극장에서 출발해 의금부터인 종각앞으로 해서 남태령까지는 이순신장군 백의종군길을 따라 왔어나 남태령에서 부터는 삼남길과 함께가는 길이라서 곳곳에 이런 표식이 보인다,

90도 각으로 꺽어서 맞은편 마을로 나간다,

진위천 뚝길에서 400m거리의 일직선 농로로 맞은편 삼봉로 까지 왔다, 마산3리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정류장에서 삼봉로를 건너간다,

가는길은 건너온길 맞은편 골목이다, 전신주에 정도전길과 섶길이라는 시그널이 붙어있다,

골목길은 이렇게 산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다,

이길 끝 단풍이 곱게 물든 곳에 정자가 있는데

정자 옆에는 느티나무도 있다,

진위면 마산리 산 10번에 있는 이 느티나무는 수령 120년이며  이 지역에는 느티나무가 많이 보이는데 모두 100년은 넘은 느티나무다,

느티나무옆에는 삼남길 꺽쇠 안내가 있다, 부메랑 모양의 꺽쇠 3개로 이루어진 삼남길 안내표지는 무척 간단하게 생겼지만 부메랑 모양은 어디로 던지든 처음 자리로 돌아오는 부메랑처름 도보여행을 통해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의미를 담고 있다, 

3개의 부메랑은 삼남대로가 이어지는 충청, 전라, 경상의 세 지역을 의미하며 안내표지와 리본등에 사용된 색중에서 푸른색은 녹색길을 상징하는 것으로 서울방향을 가르키고 발 딛는 흙의 색인 황색은 황토길을 상징하는 것으로 땅끝 방향을 가리킨다,고 적혀 있다,

느티나무 정자를 지나 가다가 돌아보니 단풍이 절정이다,

이어지는 길은

마을공원이다,

마을공원을 나가서 도로변으로 가면서 왼쪽으로 보면 신세계푸드 물류센터가 있고

오른쪽에는 나인테크가 있다, 이 일대도 공장지대인 모양이다,

다시 도로를건너서 

마을길로 들어간다,

마을길 중간에 부부화가네 도 있는데  

집 근처에는 여러가지 조형물을 만들어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마을길 끝에서 큰 도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올라간다,

여기는 진위향교에서 1,9km 이고 가야하는 흰고개는 2,5km에 있다는 이정표도 있다,

가는길 옆 단양우씨세거비도 있는 곳 뒤 언덕에 있는 묘지가 보인다,

단양우씨 시조 우현(禹玄)은 고려 광종조에 정조호장(正朝戶長)을 지냈어며 6세손 우중대(禹仲大)는 문하시중(門下侍中)을 지냈고 10세손 우인열(禹仁烈)은 조선 개국원종공신에 녹훈되고, 판삼사사(判三司事)를 지낸 집안이니 어떤 공파인지는 모르겠지만 世居(세거)라고 했어니 이 지역에 대대로 살았다는 뜻인가보다,

4차선 도로지만 이 길이 옛 삼남길이다, 예전 고개를 넘어가던 길에 신작로를 낸 도로라서 이 도로의 이름은 317번국도 삼남로다

산과 산을 이어주는 야생동물 통로 굴다리를 지나간다,

야생동물 이동 굴다리를 나와서 내려간다,

한적하다 못해 인적이 없는 길이니 이 낙옆은 자연으로 돌아갈때 까지 그대로 있을것 같다,

도로를 따라가는길 왼쪽마을과

도로 건너 마을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는 사거리로 왔다, 왼쪽마을은 동막마을이고 오른쪽 마을은 지산동이라는 도로 이정표가 있다, 사거리 이름은 알 수 없지만 따라온길 삼남로와 오른쪽 지산로 그리고 왼쪽 동막길로 나눠지는 사거리다,

이어지는길은 삼남로 사거리를 건너서 지산로로 들어간다,

지산로를 따라 가다가 건물 사이 태평궁과 간장계장 간판이 보이는 골목길로 들어간다,

태평궁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는 왼쪽으로 

태평궁 음식점 방향이다,

태평궁 음식점도 지나서

조금 더 올라가면 이렇게 보이는 정자가 있는데 이 정자는 터골휴게소라는 간판이 붙어있다,

삼남길 제9길 두번째 일기는 여기까지다, 이어지는 일기는 원균장군묘 앞 내리입구 삼남길 제9길 종점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