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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의주길 제2길 고양관청길 下, 혜덕사~혜음원지(2023, 01, 25)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의주길

의주길 제2길 고양관청길 下, 혜덕사~혜음원지(2023, 01, 25)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1. 24. 00:58

혜덕사를 나가서 고읍마을회관으로 간다,

서울 불광동에서 이 지역으로 오가는 774번 버스 중간 계류장을 지나서

오른쪽 옥녀봉길로 들어간다, 입구 간판에 보이는 옥녀봉길 이라는 옥녀봉은 북한산에서 이어지는 산 줄기가 우뚝 솟은 국사봉을 일명 옥녀봉이라고도 하는데 국사봉은 나라의 안녕과 왕의 만수를 기원 하는 제를 올리는 산이라서 국사봉이라는 이름이 붙은 산이다

또한 이 길은 고읍마을회관으로도 가는 길이다,

여기는 은빛누리요양원도 있는 마을이다,

마을길을 따라 계속해서 들어가면

운동기구가 설치되여 있는 곳에 관청고개(관청재) 이야기가 있고 그 옆에 있는 건물이 고읍마을 회관이다,

관청고개는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고읍마을과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사이에 있는 고개로 고개아래 고읍마을에 고양 관아를 비롯한 주요한 관청들이 있었기 때문에 관청고개로 불렸다고 한다, 지금도 이 지역에는 고읍, 읍내, 관청재, 향교골 등 옛 관청과 관련된 지명이 많이 남아 있다,

주로 혜음령이 옛길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관청고개 역시 고양과 파주를 오가는 중요한 길이였다, 한편 관청고개 동쪽에 있는 산 봉우리 이름은 국사봉(옥녀봉)인데 이는 이곳에서 나라를 위한 제사를 지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 고양시 대자동 고읍마을은 오랜 역사를 가진 유서깊은 곳이다, 마을은 북한산과 개명산에서 이어진 산 줄기가 우뚝 솟은 국사봉(일명 옥녀봉) 이 산 봉우리에 고양군수등이 올라 나라의 안녕과 왕의 만수를 기원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국사봉이다,

이곳의 법정동명은 대자동이며 자연촌락 마을 이름은 고읍이라 한다, 고읍은 조선시대에 고양군 전체를 다스리던 고양군청이 있어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도 그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이곳 국사봉 아래 대자동 산 1-10번지에 있던 고양군청은 서기 1544년부터 1625년까지 81년간이나 있었다,

처음 이곳에 고양군청이 들어선 시기는 조선 중종 39년 1544년 5월 10일이다, 당시 고양군청은 현 덕양구 원당동 서삼릉 부근에 소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곳에 조선조 12대 인종의 어머니인 장경왕후 윤씨의 회릉이 들어서면서 고양군청을 이전하라는 왕명이 내려져 이곳 대자동 고읍마을로 군청을 옮겼다,

당시 고양군청은 국사봉 아래 산 기슭에 있었는데 주초와 기와편 등을 통해 볼때 위용이 대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자동에 고양군청이 있을 당시 군청관아와 향교, 감옥, 포청, 남별관, 사직단 등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지금도 이와 관련된 지명이 곳곳에 남아 있다, 80년이 넘게 이곳에 있었던 고양 군청 관아는 이곳에 효종의 부마인 정제현의 묘소와 원찰인 백련암이 들어 서면서 1625년 현 고양동 벽제관 부근으로 옮겨지게 되였다,

이렇게 유서깊은 고읍마을과 고양군청의 역사를 후대에 길이 전하기 위하여 고읍마을 주민들의 요청을 받은 고양시에서 고읍주민들의 협조를얻어 고읍마을회관 입구에 이 안내문을 세우게 되였다,라고 알려준다,

고읍마을에서 관청재로 올라간다, 고읍마을에서 관청재로 올라가는 산길은 좌우로 샛길이 보여도 직진으로만 올라가면된다,

서서히 시작되던 산 길이 점점 더 가파라진다,

이 길에는 그 흔한 데크계단도 없고 안전 보조 설치물도 없다,

2023년 새해들어 첫눈이 내리는 날, 산길 바닥은 미끄럽기도 하지만

물에젖은 진흙이 신발에 덕지 덕지 달라 붙는다,

올라가면 갈 수록 점점 가파른 산 길

옜날에는 이 길로 많은 사람들이 지나 다니던 길이 였겠지만 요즈음 사람들은 궂이 이런 험한 고갯길을 다닐 이유가 없기 때문에 자연히 소멸된 길인가 보다,

산 능선으로 올라왔다, 가파른 길을 올라 왔어니 잠시 심호흡을 하고 의주길 사각 표지목이 알려주는 방향인 왼쪽으로 간다,

올해들어 첫 눈을 만나는 날이라서 그런가?

나무가지에 소복히 달라 붙은 눈알갱이가 온 산천을 하얗게 물들였다,

그래서 일까? 발자국을 내기도 미안해질 정도로 아름답기만 하다,

물론 내 옷과 모자에도 눈이 쌓였지만 궂이 털어내고 싶지도 않다,

능선을 따라 가는길 내내 즐겁고 행복한 기분이다,

계속해서 능선을 따라 가는데 의주길 시그널이 보이지 않는다

능선에 서서 온 몸으로 눈을 맞어면서 확인해 본 GPS에서는 의주길을 한참이나 벗어나 있었다, 분명히 알려주는 대로 왔는데? 그래서 다시 사각 안내 표지목이 있는 곳으로 돌아간다,

돌아와서 다시 학인을 해보니 능선에서 처음 본 사각 표지목 왼쪽 2~3m 지점에서 가파르게 아래로 넘어가는게 길이였다, 내려가는 길이 묘지라서 리본을 걸데가 없었다, 그러면 사각 안내 표지목에 90도 각으로 꺽어진 스티커라도 붙여놓던가, 하긴 길 찾아가는 사람들이 알아서 갈거니까, 그런 것도 필요 없겠지만,

여기는 묘지로 오르내리는 사람들이 다니는 길로 가파르기도 하지만 눈이 내리는 날이라서 미끄럽기만 하다, 그러나 다른 방법은 없다, 그저 조심해서 내려가야 하는 것 밖에는

조심 또 조심해서 내려가니 이렇게 넓은 주차장이 있다,

그리고 주차장에서 이어지는 도로가 아래, 위로 두 군데나 있다, 이렇게 내려가는 길과

아랫녁에서 내려가는 길 까지,

윗길로 나가다가 돌아보면 지금 막 지나 온 주차장이 보인다, 주차장에 있는 작은 통?은 반들 반들?한 화장실이다, 간이 화장실인데도 휴지도 있고 관리상태도 A급인 화장실, 이 공동묘지의 관리 주체가 어디길래?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고읍마을에서 관청고개를 넘어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로 왔어니 이제 이 도로를 따라 용미2교차로 로 내려간다,

그리고 주차장 아래쪽에 있는 도로는 용미리 마을회관이 있는 용미3교차로로 이어지는 도로다,

이 일대는 공동묘지다, 여기뿐만이 아니라 이 지역 일대는 서울시용미리 제1공원묘지 와 용미리추모의집, 용미리추모의 숲,

왕릉식추모의집, 화교화원묘지, 백란공원묘원, 용미리제1묘지, 통일로추모공원, 등등

헤아릴 수 도 없을 만큼의 많은 묘지공원이 있는 지역이다,

오늘은 공동묘지와 설화의 아름다움이 겹치는 세상을 만난다,

생은 유한하기 때문에 언제인가는 떠나는게 자연스러운 순리다,

그래서 묘지는 떠나신 분들이 영생을 누리는 보금 자리가 아닐까?

묘지는 무섭거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다운 것이다,

묘역 주차장에서 용미2교차로 까지는 약 1,6km 정도는 된다,

평소 같어면 내림길이니 시간이 많이 안 걸릴 수도 있지만

오늘은 미끄러운 길이라서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러다가 보이는 78번 국도 혜음로 용미2교차로 입구로 내려왔다,

용미2교차로에 있는 공원묘지 안내판을 보니 여기는 서울시립공원묘지다, 서울시는 1970년대 서울 개발을 위해 한강 이남에 있었던 8개 공동묘지를 파주군 용미리 등지로 옮겼는데. 그중 한곳이 여기다,

이제 200m만 더 가면 용미3리다, 용미3리에서 이어지는 길도 안내해 주면 좋을 것 같은데 경기옛길 홈페이지에는 최초에 지정한 의주길 안내가 전부다, 그러나 의주길 제2길은 추가로 코스를 연장 시켰는데 이에 대한 언급은 없다, 네이버나 다음지도 도 업데이트를 했는데 정작 주관부처 홈피는 아직도 그대로니

용미2교차로에서는 혜음로 아랫길로 들어가 고산천 용진교를 건너 혜음원지로 간다, 용진교 건너에 혜음원지로 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이어서 개천변 세류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두번째 다리를 건너 U턴을 해서 내려가다가 

왼쪽 장지산로 31번 길을 따라가야 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을 따라가다 보면 가는길 왼쪽에 이렇게 보이는 집이 있는데

이 집 앞 개천변으로

계속 해서 올라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여기서는 직진이다, 이곳 삼거리 전신주에 안내판이 걸려 있다,

전신주가 있는 곳을 지나가면 앞에 도로가 보이는데

이 도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혜음원지 방문자센터가 있다, 눈이오는 겨울날 반나절이나 얼어붙은 몸을 방문자 센터에서 녹였다, 최신 건물이라 난방은 물론 화장실도 최상급인 혜음원지 방문자센터 덕분에 아주 편안하게 잘 쉬다가 나왔다, 감사 ~

방문자센터 앞 혜음원지 종합안내도를 보면 혜음원지의 규모가 대단했음을 느낀다,

혜음원지는 파주시 관탕면 소재 우암산 혜음령에 건립한 고려시대의 역원터로 국립숙박 시설이였다고 한다,

당시에 개경과 남경을 오가는 관리나 백성들을 위한 숙박시설이였고

왕이 행차시에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행궁과 사찰까지 갖춘 약 10만m2(약 3만 250여평)의 규모로 지어진 커다란 휴식처였다,

혜음원지는 경기옛길 의주길 제2길 종점이자 의주길 제3길 쌍미륵길(혜음원길)의 출발지점이다,

여기서 의주길 제2길 두번째 스템프를 찍었다, 스템프 형채는 알아볼 수도 없을 만큼 엉켜 있지만 파주 혜음원지 글씨는 보인다,

경기옛길 의주길 제2길은 한양에서 중국으로 통하는 길목에 세워진 10여개의 역관 중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벽제관터에서 출발해서 파주시 광탄면에 있는 고려 전기 개경과 남경을 왕래하는 사람들을 위해 건립한 역원터이자 여관터인 혜음원지까지 약9,1km로 3시간 정도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