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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의주길 제2길 고양관청길 上, 벽제관지~혜덕사(2023, 01, 25)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의주길

의주길 제2길 고양관청길 上, 벽제관지~혜덕사(2023, 01, 25)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1. 20. 00:50

지하철 3호선 삼송역 6번 출구뒤 버스정류장에서 마을버스 053, 033 나 일반버스 790번 버스를 타고

고양동시장에서 내려서 약 150m정도를 가면 고양시 덕양구 고양동 55-8 번지에 벽제관지가 있다,

경기옛길 의주길 제2길은 여기서 부터 혜음원지까지다, 종전에는 용미3리가 의주길 제2길의 끝으로 7,3km 거리 였지만 새로 바뀐 제2길 종점은 혜음원지로 9,1km이다, 혜음원지는 의주길 2길과 3길의 분기점이지만 아직도 경기옛길 홈 페이지는 수정이 안되여 있다,

경기옛길 홈페이지에 의주길 제2길은 "고양의 관아 자리를 지나는 관청 고갯길" 이라는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는데 그 출발지가 벽제관지인 이곳이다,

벽제관지 앞에 의주길 제2길 첫번째 스템프 함이 있다, 스템프는 아래와 같이 찍힌다,

그리고 여기는 벽제관에 대한 안내도 있다, 벽제관지는 조선시대의 대표적 객사인 벽제관이 위치했던 장소로 벽제관은 중국과 조선을 잇는 곳에 위치하여 당시 중국과의 외교에서 핵심적 역활을 수행했다, 중국 사신들이 한양에 들어가기 하루전에 이곳에 머물며 예를 갖추는 것이 관례였어며, 중국으로 가는 우리나라 사신들 또한 여기서 휴식을 취했다,

벽제관은 성종 7년 1476년에 서쪽으로 3km 떨어진 곳에 지어졋어나 1592년 임진왜란으로 당시의 고양 군청이 훼손되면서 인조3년 1625년에 이곳으로 옮겼다, 일제 강점기에는 조선 총독부에 의해 그 원형이 훼손되였고 조선총독부 2대 총독인 하세가와는 벽제관의 부속 건물인 육각정을 일본으로 불법 반출했다,

벽제관은 한국전쟁으로 건물과 담장이 소실되였어며 1960년대에는 그때까지 남아 있던 삼문마저 허물어 졋다, 현재는 건물의 기둥을 받치든 돌의 일부만이 남아 옛 흔적을 찾기가 힘들지만 지리적인 위치로 인한 전투와 한 중 외교사의 역사적인 의미가 인정되여 1965년에 문화재로 지정 되였다,

고양시는 2021년 정밀발굴조사를 시행해서 기존에 파악되지 않았던 담장과 부속건물 유구가 발견 되였고 고고학적 기초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벽제관의 원형을 복원하고 고양동의 잃어버린 역사성도 동시에 회복할 계획이다,

벽제관지는 지금 이렇게 주추돌만 남아있다,

벽제관지 오른쪽옆으로 벽제관지 끝으로 가면

이 지역에는 고양감리교회가 있는데 한국최초의 남감리교회로 12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는 안내 와

벽제관지 앞에는 1901년 5월 1일에 설립된 110년 역사를 지닌 고양초등학교도 있다는 안내가 있다,

뒤편에서 본 벽제관지의 모습

벽제관지 뒤로 해서 의주길 제 2길을 따라가면

뒤길 끝 모서리에도 고양 벽제관지 안내판이 있다, 전면에 세워진 안내판 내용과 같다,

사진도 같고

뒷길 끝에서 다시 돌아보는 벽제관지, 언제 원형복구 사업이 집행 될려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대가된다, 

벽제관지 뒤 모서리에서 왼쪽으로 길을건너 마을 골목으로 들어간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약 500여m 정도를 가면

오른쪽에 고양향교가 있다, 향교 홍살문으로 들어간다, 홍살문 옆으로 보이는 담장 안은 중남미 문화원이다,

고양향교 삼문인 대성문은 굳게 닫혀있다, 고양향교는 숙종(1674~1720년)때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어며 한국전쟁때 불타버린 명륜당과 진사청, 외삼문은 1984년에 새로 지었다, 대자산 기슭에 자리한 이 향교는 홍살문을 시작으로 하여 명륜당 등의 한옥 건물과 담장, 굴뚝, 기와, 등이 어우려져 전통의 건축미가 잘 남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전면 외삼문 쪽에는 공부하는 장소를 두었고 뒤 내삼문 안에는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두는 전학후묘 의 배치었어며 건물들을 비스듬히 배치하여 배수와 통풍, 경관 등을 세밀하게 고려했다, 매년 음력 8월 27일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가르침과 그 학덕을 기리고자 지금도 제사를 지내고 있다,

이어지는 의주길은 향교 담장 옆이다,

또한 이 길은 최영장군묘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향교 담장 사이로 올라간다,

향교 담장 넘어로 명륜당이 보인다,

고양향교는 경사를 따라 위로 비스듬히 경사지게 지였는데 향교 안내에서도 건물들을 비스듬히 배치하여 배수와 통풍, 경관 등을 세밀하게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향교내에도 담장과 내삼문을 두고 제사를 지내는 공간을 구성 했는데 향교안에 보이는 담장이 내삼문 공간이다,

향교 담을 따라 끝까지 올라가면

이런 공간이 보이는데 여기는 포토 포인트라는 안내판이 세워저 있다,

포토포인트로 올라가서 내려다 보는 고양 향교 내부, 향교 뒤 제일 높은 곳에 향교 내삼문 안으로 제서 공간이 보이고 그 앞쪽은 공부를 하는 공간이다, 

향교 옆길로 계속해서 언덕으로 올라가면

최영장군 묘 940m 라는 이정표도 있다,

이어지는 능선길을 따라 가다보면

잠시 쉬여 갈 수 있는 정자도 있고

그리고 이어지는 길은 양쪽으로 갈라진다,

직진 방향인 윗 길은 최영장군 묘로 가는 길이고 의주길은 아랫쪽 길이다,

최영장군은(1316~1388) 고려 후기의 명장이자, 충신으로 고려를 끝까지 받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끝내 처형된 인물이다, 묘는 이곳 대자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어며 단분으로 부인 문화 유씨와 합장했다, 한편 위 쪽에는 최영의 부친인 동원부원군 최원직의 묘가 있다,

눈이 내리는 날이고 가야 하는 길은 멀고 해서 오늘은 최영장군 묘역으로 가지 않고 의주길을 따라간다, 가는길에 체험의 숲이라는 곳이 있는데 여기는 밤송이 줍기체험을 하는 밤나무 체험 숲이라는 안내다,

밤나무 체험 숲을 지나가는 길은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눈이 내리는 날이라서 그런지 소나무 향이 향기롭다,

습기가 많은 날이라서 솔향이 멀리 퍼지지 못하고 바닥에 깔리는 현상이 아닐까 싶다,

그윽한 솔향을 진하게 음미 하면서

휘작 휘적 내려 가는데

탁트인 공간이 펼처 지면서

도로가 보인다,

이곳은 LG전자 고양물류센터가 있는 고양시 대자동으로 버스 정류장도 있다,

대자동을 지나가는 동현로를 따라 

중부대학교 고양캠퍼스 방향으로 내려간다,

중부대학교 삼거리에서 중부대학교로 들어가는 전용도로 끝에 중부대학교 캠퍼스가 보인다,

중부대학교 삼거리를 지나

소하천 대자소천이 있는 곳을 지나간다,

옻닭집이 보이는 주변 야산은 온통 무덤인데

이 일대는 천주교 공동묘지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경기축산 버스 정류장을

지나가면 주사랑순복음교회가 있는데

교회건물을 조금 더 지나가면

연산군시대 금표비가 있다,

1994년 11월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에서 이상한 비석이 발견되였는데 연산군때 세워진 비석으로 연산군 유흥지인 고양에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기 위하여 세운 비로 무단으로 들어올 경우 처벌한다는 내용이 적혀 있는 비가 금표비다,

금표비는 고양시 대자동에 있는 금천군 이변의 묘역 안에서 발견되여 지금의 자리로 옮겨졋다, 비의 크기는 높이 1,38cm vhr 0,34cm이다, 이 비석은 금석문으로 희귀할 뿐만 아니라 문헌의 사실을 고증해 주는 귀중한 예 다,

연산군 금표비를 지나서 고읍마을로 가는길

오른쪽으로 매우 큰 사당이 보인다, 보이는 것 만으로도 예사롭지가 않다,

사당으로 들어 가는 삼문도 보이고 대형 안내판도 있는 절 같은 사당이다,

사당은 가는길 동헌로235번 길에서 오른쪽으로 조금 들어가 있지만

사당으로 들어 가 본다,

안내판에는 전주이씨 온녕군파 선영으로

이름은 혜덕사다, 이 곳 혜덕사는 조선 태종대왕의 7남인 온령군으로 부터 삼세에 이르기 까지 여덟분 양위의 신주를 모시고 제향을 받드는 사당이다,

이 사우를 중심으로 전야 후산 일대가 삼대 일곱 위 묘소와 4세 수자위 까지 잠들어 계시는 전주이씨 온령군파의 성지다, 온령군은 태종7년 정해년에 탄생하였어며 익산군부인 순천바씨를 배위로 맞았어나 후사가 없어

아우인 근령군의 둘째 아들 우산군을 계자로 하여 자부는 문성군부인 문화유씨를 맞아 여섯 손자와 두 손녀를 두었다, 등 등의 내용으로 가문의 역사가 이어진다,

조선국 태종대왕 왕자 온령군 신도비가 가문의 역사를 대변해 주는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