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의주길 제3길 쌍미륵길 上, 해음원지~용미3리교차로2023, 01, 15 본문
혜음원지에서 출발하는 의주길 제3길 쌍미륵길(혜음원길)은 광탄면 시산5리 버스정류장까지 16,6km다, 혜음원지로 오면 돌아가려고 해도 어치피 의주길 제3길 걸어야 하며 다른 방법은 없다,
혜음원은 김부식의 혜음사신창기 등의 고서에 기록되여 있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어 찾지 못했는데 동국대학교 학생이 1999년에 지금의 위치인 광탄면 용미리 우암산 자락에서 혜음원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기와를 발견하면서 혜음원지가 발견되였다고 한다,
이로해서 1122년(예종17년)에 건립되여 800여년 가까이 땅속에 묻혀 있었던 혜음원지가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된 이 대단한 발견이 오늘을 있게 했다, 의주길 제3길 출발은 혜음원지로 들어가면서 시작이 된다,
혜음원지는 이 일대 3만여평이 였다고 하니 그 규모가 실로 대단했을 것 같다, 혜음원과 관련해서는 김부식이 지은 혜음사신창기(惠陰寺新創記)가 전해진다. 이에 따르면, 혜음원은 예종이 비구 응제(應濟)와 제자 민청(敏淸)등에게 명령하여 1120년(예종 15)에 공사를 시작한 뒤 2년 만에 완공 했다고 한다.
혜음원과 함께 있었던 절은 인종이 이름을 내려 혜음사(惠陰寺)라고 불렸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인종 이후에 큰 화재로 모두 불탔는데, 몽골이 고려를 침입했을 때 약탈하고 불을 놓은 것으로 추정한다.
어찌되였거나 동국대 학생이 발견한 이후 23년이 지나면서 여러 사람들의 땀과 노력으로 혜음원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 왔어니 역사를 찾는다는 것은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도 없을 만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인 것 같다,
혜음원지 발굴조사는 2004년까지 5차례에 걸쳐 작업이 진행되였는데. 발굴조사 결과 혜음원 경역은 원, 행궁, 절,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13세기에 불탄 뒤 14세기 이후 작은 건물을 다시 짓고, 일부 경역을 다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혜음원터에는 동서로 약 104m, 남북으로 약 106m에 걸쳐 9단으로 조성된 건물터 와 함께 연못이 확인되었어며. 연못은 건물터 사이에 자리 했는데, 네모난 형태로 원터 전체에 5곳이 흩어져 있었다.
이 외에도 건물터에서는 금동여래상, 향완(香垸)등과 함께 많은 양의 기와 와 자기 파편 등도 출토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금동여래상은 높이가 6,3㎝로 작은 편이고, 신라 말 고려 초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혜음원지 전망대도 있다, 아무도 지나기지 않은 곳이라서 조용히 내려 앉은 눈에도 발자국도 남지 않았다,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는 혜음원지는 고려 수도인 개경과 삼경(三京) 가운데 하나인 남경(南京)을 오가는 관리나 백성을 위하여 건립한 숙박시설이기도 하지만. 사찰과 함께 국왕이 사용할 수 있는 별원(별궁)까지 갖추어 규모가 매우 컸던 것으로 보인다.
혜음원지는 만월대 궁궐과 함께 고려시대 궁궐의 배치와 생활 양식을 살펴볼 수 있는 소중한 역사 확인 장소기도 해서 교육적 가치가 넓은 문화유산으로 평가를 받는다,
전망대에에 있는 안내는 파주 혜음원지의 배수 체계에 대한 안내가 있다, 혜음원지의 배수체계는 외부와 내부로 나뉘는데 외부 배수체계는 혜음원지의 북쪽과 북동쪽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을 통제하였다,
북쪽계곡의 물은 행궁지 동쪽 담장과 축대 안쪽의 배수로를 따라 흘렀다, 배수로 곳곳에는 물을 모아 두는 집수 시설을 설치하여 물의 양과 속도를 조절했다,
내부 배수체계는 빗물을 내 보내기 위한 것이다, 법당터 서쪽에서 부터 시작된 물은 건물 주변의 배수로를 따라 흘러 마지막으로 중문터 옆에 있던 연못에 모였다, 이 처름 건물 어디서나 들려오는 물소리와 물결 중간 중간에 설치된 연못 등의 조경은 고려인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였을 것이다,
이를 통해 혜음원지의 배수 체계는 배수기능이 이라는 실용성 뿐만이 아니라 조경요소를 더 함으로서 시청각적 즐거움을 추구한 고려인의 미 의식을 살펴볼 수 있다,
혜음원터는 해발 328.6m 우암산 비호봉의 서 남쪽 산줄기 구릉에 자리하고 있다고 했다,
여기는 혜음원지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이제 혜음원지를 지나가야 한다,
그래도 못내 미련이 남아서 다시 돌아보게 되는 혜음원지,
혜음원지도 아름답지만 눈이 내린 설경이 어우려져 더욱 아름답다,
혜음원지 제일 위쪽에는 이렇게 넓은 임도가 있다, 이 임도의 용도는 무었일가?
임도를 따라 가는 길
눈 꽃이 핀 임도는
다른 세상 인듯 하다,
임도를 내려가니 다시 다른 임도와 만난다,
갈림길 삼거리에서 시그널은 오른쪽으로 가라고 알려준다, 여기서는 GPS가 연결되지 않아서 앱을 통한 길 찾기는 이용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그널이 알려주는 대로 따라간다,
여기도 넉넉한 임도가 있어니
임도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눈이 내려서 설화가 곱게 핀
여유로운 임도를 따라서 간다,
그리고 한참 만에 보는 의주길 리본이 반갑기만 하다,
이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은지?는 모르겠어나 외진 곳인 것 같은데 정자도 있다,
정자를 지나가니 임도로 이어지는 길은 울타리로 막혀 있고
의주길은 임도 아래 비탈길로 이어진다,
여기서는 아랫녁 용미4리 마을도 보인다,
계속해서 길은 예전히 산 비탈이다,
그러면 어떤가, 설화가 핀 숲은 아름 답기만 한데
이길에서는 의주길이 문제가 아니고 오로지 나무에 사뿐히 내려 앉은 눈꽃을 구경하면서 가는 길이다,
얼마나 걸렸을까 그리 먼길은 아니지만 산비탈 길을 모두 내려가니 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용미4리 진지로(도로이름)로 내려가니 전신주에 오른쪽으로 가라는 안내판이 보인다,
안내판이 알려주는 대로 오른쪽으로 진지로 를 따라간다,
인도가 따로 없는 2차선 도로인 진지로 를
한참을 올라 갔더니 이런 조형물은 보이지만, 의주길 시그널이 보이지 않는다, 어디가 어디인지 감을 잡을 수 도 없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든 것 같다,
GPS도 연결이 안되는 곳이니 현재의 위치 파악이 안된다, 어디 물어볼 사람도 보이는 않는다, 그래서 온 길을 다시 돌아 내려간다,
결국 길을 잃어버렸다, 이럴때는 감으로 가야 한다, 도로 아래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길을 따라 가다가 용미4리 마을회관 앞으로 들어갔다, 이곳으로 오기 전 지도로 걸어 본 의주길에 용미4리 마을회관이 있었다, 물론 의주길은 아니였지만 가는길 인근이였어니 이제는 제대로 찾아 갈 수 있겠다,
맞은편 산 지나 온 서울시립공원묘지를 보면서 들길로 들어간다,
그리고 조금 더 가서야 혜음원지로 들어오던 길을 찾았다, 잠시의 헷갈림이였지만 긴 시간인 것 같았다,
용진교를 지나서 고산천 뚝으로
용미3교로 내려간다,
고산천을 건너가는 이 다리가 용미3교다, 용미3교를 건너가면 용미3교차로다
용미3교차로에서는 용미3리로 들어가야 하지만 우선은 점심을 먹어야 해서 오른쪽 100m정도 거리에 있는 동태탕 식당으로 갔다, 의주길 제3길 전편은 여기까지다, 다음에는 제3길 下 편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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