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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의주길 제3길 쌍미륵길 中, 용미3리교차로~윤관장군묘 2023, 01, 15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의주길

의주길 제3길 쌍미륵길 中, 용미3리교차로~윤관장군묘 2023, 01, 15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1. 31. 00:17

점심식사를 한 후 용미3교차로 로 가서 왼쪽 개천을 따라

용미3리 마을회관 앞으로 들어간다,

이 지역에는 묘지가 많은 곳이라서 자연스럽게 여러개의 묘지관리 업체들이 영업을 하고있다,

용미3리 마을회관에서 직진은 서울시립공원묘지로 연결되지만 의주길 제3길은 오른쪽 마을길로 들어가 용미리마이에불이 있는 용암사로 가야한다,

마을길을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산쪽으로는

온통 공동묘지다, 이래서 용미리하면 = 공동묘지가 떠오르는가 보다,

마을길로 들어 가다가 직진 길과 오른쪽으로 나가는 갈림길이 보이면 여기서는 오른쪽이다,

오른쪽 도로 방향으로 나가는 길에는 오래된 집들이 있다,

용미리 중앙석재 조경 앞을 지나서

조금 더 마을길로 내려가면 마을내 개천과 만나고

개천에 있는 다리 왼쪽으로 건너가면

산 아래 농지로 이어지는 길이고

밭처름 보이는 평평한 곳에는 가족묘지도 있다,

70년대에 서울지역 공동묘지를 모두 용미리로 옮겼다고 하지만 보이는 모두가 묘지라는게? 이해가 안 될 정도다,

여기서는 길이 끊어지고 없다, 대신 밭 둑으로 이어진다,

밭 둑을 지나가면 명봉산로 352번길 2차선 도로다,

2차선 도로 인도를 따라 

계속 가다가

갈림길이 보여도 가는 길은 오른쪽 인도다

그리고 고산천 옥미교(다리)를 건너서

왼쪽 고산천변 98번 도로를 30m 정도 올라가다가 오른쪽 샛길로 나가면

78번 국도인 혜음로 다,

혜음로에서 처음 보이는 것은 부대앞 버스정류장이다, 여기서 큰 도로는 인도가 없어니까, 다시 또 옆길로 돌 아서

다시 또 혜음로 로 돌아 와 또 다른 마을길 입구에서

왼쪽 숲길로 들어가는데 여기는 길이 아니라 그냥 숲이다,

길은 없지만 리본이 있어니 나무 덤불을 헤치고 가다보면

숲길 끝에 주차장이 있는데 여기가 용미리마애이불이 있는 용암사다,

주차장에서 용암사로 올라가는 돌 계단 앞에

의주길 제3길 스템프함이 있다,

스템프는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이라는 도장이 찍힌다,

스템프도 찍고 인증 사진도 찍고나서 다시 길을 이어간다, 날씨가 궂어니 이 지역에서는 유명하다는 용미리마애이불 입상은 다음으로 미루고 지나간다, 언제 여기로 다시 올려는지는 기약이 없지만,

혜음로를 따라 올라간다,

이 길에도 인도는 없어니 조심해서 가야한다,

사실 이 길은 의주로로 지정되여 있는 길은 아니다,

그러나 워낙 오늘은 날씨 변덕이 심해서

돌아서 가는 우회하는 길을 버리고

도로를 따라 직선으로 가기로 했다,

그래서 분수1리도 지나간다,

차가 많이 다니지는 않지만 이렇게 좁은 도로에서는 도로변에 있는 밭으로 걸어가기도 하면서

윤관 장군묘역으로 왔다, 묘지로 올라가는 입구에 두 개의 봉분이 있는데 봉분위에 비석이 세워져 있다, 비석에는 "윤시중교자총""윤시중전마총" 이라 새겨져 있는데 비석의 내용으로만 보면 윤관장군이 타던 가마무덤 과 말 무덤?을 알리는 비석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안쪽에 해동의 명장 문숙공 윤관장군의 묘가 있다, 장군은 고려는 물론이고 조선시대에도 추앙 받던 인물이였으나 묘는 실전되여 찾지 못하다가 후손들이 지금의 자리임을 주장해서 영조40년(1764)년에 공인된 곳이다,

윤관장군 묘는 왕릉을 떠 올리게 할 정도로 거대한 규모로 조성했는데, 묘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석물들이 그의 업적과 위상을 짐작케 한다,

묘역앞 주차장에는 여충사 문숙공 윤관장군 묘역을 알리는 비석도 세워져 있고

윤관장군 이야기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그린 만화도 전시되여있다,

해동의 명장이라 불리는 윤관장군은 문무를 겸한 고려때의 공신이다, 본관은 파평이며 자는 동현 시호는 문숙이다, 고려 태조를 도와 후 삼국통일을 이룩한 통합 삼한익찬공신삼중대광태사 윤신달의 현손이며, 겸교소부소감 을 지낸 윤집형의 아들이다, 고려문종때 문과에 급제하였고 1104년 동북면 행영병마 도통사가 되여 고려의 변방을 침범하던 여진을 징벌했다,

이때 특수부대인 별무반을 창설 하였어며 1107년(예종2)에 대원수가 되여 부월(임금이 장수에게 살생권을 부여 한다는 뜻에서 주던 도끼모양의 의장)을 하사받고 오연충을 부원수로 하여 17만 대군을 이끌고 여진을 정벌했다,

이 정벌에서 고려군은 여진을 두만강 북쪽 700리 까지 몰아내고 9성을 축조하였어며 선춘령에 고려정계비를 세웠다, 윤관은 4차에 걸쳐 여진 정벌을 하였어며 북방의 백성 75,466호를 점령지에 이주시켜서 생활의 안정을 영위토록 하였다,

관직이 문하시중에 이르렀고 문무를 겸전한 척지진국공신이다, 1111년(예종6) 5월 8일(음력)에 서거하였어며 1130년(인종8) 예종의 묘정배향공신이 되였다, 조선의 성종, 선조, 숙종, 영조는 윤관의 후손에게는 7역을 면제 하라는 교 를 내렸다,

묘는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 여충사 경내에 있다, 1988년 2월 사적 제323호로 지정되였다, 매년 음력 3월 10일과 10월 5일 여충사에서 제향을 올리고 있다,

윤관장군 묘 안내도와 사당으로 들어 가는 삼문도 있다,

길 건너편에서 본 윤관장군 묘와 주차장

오늘은 여기서 돌아가야한다, 윤관장군 묘는 파주시 광탄면 분수리에 있다, 여기서 불광역이나 연신내 역으로 가는 버스는 774번 버스로 25분 ~ 30분 간격으로 운행을 한다,

윤관장군 묘 맞은편에는 편의점도 있고 중국집도 있다, 일요일이라서 낙지대장은 문을 닫았지만 영업은 하는 것 같았다, 다음에는 여기서 광탄면 신산5리 버스 정류장까지(약 5km) 의주길 제3길을 이어서 가야한다,

774본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불광역 2번 출구 옆골목 목포낚지 집에서

오늘의 뒷풀이도 하고 2023년 1월 15일 일정 끝을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