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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의주길 제1길 벽제관길 下 송강공릉천 공원~벽제관(2022, 12, 25)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의주길

의주길 제1길 벽제관길 下 송강공릉천 공원~벽제관(2022, 12, 25)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1. 6. 00:48

송강 공릉천공원을 나가면 공릉천 신원교 앞이다, 여기는 공릉천변이나 송강공원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위한 신원교 버스정류장도 있다,

이어가는 길은 신원교 앞에서 공릉천을 따라 직진으로 공릉천 뚝길이다, 앞에 보이는 호국로 벽제육교를 아래를 지나서

계속해서 공릉천 뚝길로 내려가면

외진곳인 이 뚝길에는 그리향교회도 있다,

그리향교회를 지나면 철교가 보이는데 이 철교는 1963년에 개통되였던 교외선이다, 서울역에서 출발해 고양 능곡역 양주 장흥역, 송추역 등을 거쳐 의정부로 이어지던 철도 였어나 지난 2004년 이용 수요 저조 등의 사유로 여객 수송이 중단되여 지금은 녹슬은 가차길만 남아 있는 철도다,

교외선 철교 앞에는 소하천 능골천도 공릉천으로 흘러 들고

길은 교외선 철교 아래로 계속해서 이어진다, 기차가 끊어진지 19년이나 되여가는 교외선 철도는 최근 교외선 구간 인근지역 택지개발 등에 따른 이용 수요 증가와 경기북부 교통복지 및 이동권 편의 등을 위한 운행재개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어 재개통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교외선 철교 아래를 지나면 송강누리길 안내 이정표가 있는데 이 길은 고양누리길 11코스로, 고양누리길과 송강누리길 그리고 경기옛길 의주길까지 3개의 길이 함께하는 길이다,

여기에도 송강 정철에 대한 안내가 있다,

내마음 베어 내어 저 달을 만들 고저

구만리 장천에 훤하게 걸여 있어

고운 임 계신곳에 가 비취어나 보리라,

정철(1536~1593)은 조선 선조때 정치가이자 시인이며, 자는 계함 호는 송강으로 벼슬이 좌의정에 이르렀다, 서인파의 투사로 당쟁의 와중 속에서 몇 차레 파란과 귀양살이를 격었다, 그는 시인으로서 천재적 자질을 나타내여 많은 걸작 가사를 남겼다, 그의 가사는 종래의 한문투를 벗어나 3, 4조의 운율에 의해 자유자재로 우리말을 구사 했어며 그의 호탕하고도 원숙한 시풍은 가사문학의 최고봉이라 일컬어 진다, - 이하 생략 -

이 지역에 대한 안내도 있다, 공릉천과 교외선철교, 북한산과 노고산에 대한 안내다,

공릉천과 교외선 철교 그리고 호국로 벽제육교는 바로 앞에 보이지만

북한산은 가물거리는 거리에 작게 보여서 당겨서 찍었다, 왼쪽부터 인수봉과 가운데 북한산 정상인 백운대, 그리고 만경대가 출렁인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릉천 뚝길,

왼쪽으로는 공원도 있는 것 같다,

공릉천을 건너가는 작은 다리도 보인다, 의주길은 저 다리를 건너서 반대 편 건물들이 보이는 곳으로 가야 한다,

뚝방 길을 조금 더 내려 가다가

공릉천 하천변으로 내려가서

다리를 건너가면서 교외선 철교 방향으로 올려다 보면 교외선 철길과 호국로 벽제육교가 보인다,

다리를 건너 와서는 다시 또 하천변을 따라 내려간다, 

이렇게 보이는 이곳은 공릉천과 벽제천이 합류되는 두물머리다,

청동오리떼 와 백색의 철새가 한적하게 놀고 있는 합수지점을 지나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벽제천으로 올라가

첫번째 돌 다리를 건너

1번국도 통일로 제1대자교를 아래를 지나

벽제천 뚝길로 올라간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은 벽제천 뚝길로 용복교와 빈정교 방향이다,

뚝길이라도 통행이 많은지 포장도 되여 있는길

이길에는 지방에서는 좀처름 보기 어려운 대형 유치원인 경기유치원도 있다,

경기유치원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제1대자교 400m지점에 용복교가 있는데 용복교를 건너 가면

다시 벽제천 건너 뚝길로 올라가라는 이정표가 보이고 이곳에는

대자동에 대한 안내도 있다, 대자동은 고양동의 서쪽과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쌍궁말, 고골, 대적골, 빈정동, 용복원, 한오동, 새원, 간촌 등의 자연촌락 마을이 있다,

대자동에는 최영장군 묘역을 비롯해 연산군시대 금표비 등 많은 문화유산들이 있는데 대자동의 유래 설은 조선 태종 넷째 아들인 성령대군이 총명하고 용모가 단정하여 임금의 사랑을 받았는데 홍역에 걸려 일찍 죽었다

이에 상심한 태종은 무덤 근처에 암자를 세워 불공을 드리기로 했는데  조정에서는 길이 너무 멀어 임금이 이곳을 자주 왕래하면 혹 나라일을 소홀히 할까봐 잦은 행차를 진언 하였다고 했다고 한다,

이에 태종은 무덤 근처에 큰 자비를 내린다는 뜻으로 大慈寺(대자사)라는 절을 지어 성령대군의 명복을 빌었어며 이때부터 이 절의 이름을 따서 마을 이름을 대자리로 부르게 되였다는 안내다

용복교에서 벽제천 뚝길을 따라 계속해서 내려 가다가

약 1km정도에

오른쪽으로는 이렇게 보이는 마을이 있고

벽제천 빈정교가 있다, 가는길 직진으로 계속해서 내려갈 수도 있지만 

의주길 시그널은 빈정교를 건너서 맞은편 뚝길로 가라고 알려준다,

빈정교를 건너와서 내려가는 초입에는 작은 쉼터도 있다,

계속해서 뚝길을 따라 간다,

왼쪽에 있는 산 끝까지 내려가면 앞에 아파트 지역도 보이고 

학교 건물도 보인다,

보이는 학교는 고양일고등학교다

이어서 고양1교 앞 고양읍내로 들어간다,

가는길은 고양1교 앞 왼쪽이다,

읍내로를 따라간다, 왼쪽으로 보이는 학교가 고양일고등학교다,

읍내로를 약 50여m 정도 가다가 첫번째 사거리에서

인도를 건너 오른쪽으로 나 있는 

도로를 따라 가면

래미안 아파트가 보이는 곳 사거리에서

45도 각으로 이어지는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이 길 끝 540년 수령의 느티나무 3그루가 있는 이곳이 경기옛길 의주길 제1길의 종점인 벽제관터가 있는 곳이다,

이 나무는 조선시대 당시 한양과 의주, 중국을 연결하는 의주길(연행로, 관서대로)부근에 자리해있다, 본래는 사적 144호인 고양 벽제관지의 경내구역으로 인근에 연못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일 설에는 조선 성종 연간에 벽제관을 증축, 확장 하면서 이를 기면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이 나무의 앞쪽에 있는 경기도 관찰사, 고양군수의 선정비(善政碑)등과 함께 고양시의 오랜 역사를 보여 주고 있다,

이 자리에 있던 고양 벽제관 육각정은 사적 제144호로 지정된 벽제관지의 유일한 현존 건물이나 1918년 일제강점기에 조선총독부 2대 총독인 하세가와에 의해 불법 반출돼 현재까지 일본 야마구치현 이와쿠니시 모미지다니 공원에 놓여 이와쿠니시의 관광자원으로 활용되고 있다.

고양시는 육각정 환수를 위한 범시민 서명운동 추진, 고양 벽제관 육각정 기초조사 용역 등을 통해 육각정 환수에 박차를 가하고 있어며 지난 2월 18일에는 이와쿠니시에 고양 벽제관 육각정의 환수를 통해 벽제관의 역사적 의미를 복원하겠다는 98만 고양시민의 의지를 표명한 고양시장의 친서를 전달한 바도 있지만 일본은 돌려줄 생각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육각정 터 앞에는 고양시 숭덕비군도 있다, 옛날부터 고양시지역을 통치했던 현감, 관찰사, 등의 치적을 기린 송덕비다, 조선사대 부터 근대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게 분포된 선정비는 총 7개의 송덕비가 있다,

좁은 터 지만 이곳에는 벽제관지 버스 정류장도 있다,

서울과 고양시의 경계인 삼송역에서 경기옛길 제1길 종점인 벽제관 까지는 8,2km에 3시간 정도가 찍혔다, 공식적인 거리는 8,7km에 2시간 30분이 걸린다고 안내되여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