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의주길 제5길 임진나루길 上 문산역~화석정 2023, 01, 29 본문
지하철 5호선 열차 공덕역 문산역 환승탑승구 비행기 모형이 전시되여 있다, 공덕역은 지하철 5호선과 경의중앙선 그리고 공항철도가 함께하는 환승역이다, 공덕역에서 환승해 도착한 문산역
문산역에서 버스로 이동한 선유시장이다, 문산역 한진아파트앞을 지나가는 버스는 거의 선유시장으로 간다고 보면 된다,
선유시장 옆 선유삼거리에 위주길 제5길 출발점이자 제4길 종점이 있다, 의주길 제5길 임진나루길은 여기서부터 임진각까지 13,8km거리로 약 4시간정도가 걸린다,
선유삼거리 오른쪽 바로 옆에 있는 다리로 가면
다리를 건너서 왼쪽으로 개천 둑으로 가는게 길이다,
많은 눈은 아니지만 며칠간 계속되는 강 추위로 바닥이 꽁꽁 얼어붙었다,
한발만 잘못 디디면 어김없이 미끄러지는 길이라서
여간 조심스러운게 아니지만 가야하는 길이니 어쩔 수는 없다,
개천 둑길을 모두 지나면 이제는 2차선 도로다,
차가 그리 많은 도로는 아니니 미끄러운 눈길보다는 차라리 아스팔트 도로가 더 좋은? 길이다,
도로를 따라 올라가다보면 장례식장 입간판이 있는데
외진곳에 있는 장례식장 이지만 요양병원과 함께 있는 장례식장이 가는길 옆에 있다,
계속해서 따라가는 2차선도로
파주수도지사도 있다, 도시가 형성되면서 부터 가장 기초적인 생활물질인 물이지만 우리는 이런 기초적인 생활필 수 품목이 소중한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
화석정 캠핑장도 지나가고
임진강 수라상 음식점도 지나서
필 무인텔 맞은편
농로로 들어간다,
농가주택이 드문 드문 보이는 이곳은
파주시 파평면 율곡리 화석동마을이 다,
화석동 경노당도 있다,
음지라서 자동차가 지나간 자리는 아주 많이 미끄럽다,
빙판을 지나가는 것과 같은 길,
그렇다고 아이젠을 착용하기도 그런 길을 가다가
반사경이 있고 평화누리길 안내판이 보이는 곳에서는 왼쪽 골목길로 들어가야 한다,
여기는 화석정 아래에 있는 마을이라서
길은 좁아도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이길은 평화누리길과 경기둘레길, 의주길이 같이 지나는 길이다,
낮은 지대에서 높게 쌓아올린 구축물이 세멘트로 만들어진 철도 철도 침목이다, 무게가 있기는 히지만 안전할려는지? 불안해 보이기도 하는데?
앞에 보이는 저 언덕에 화석정이 있다,
언덕으로 올라가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그림같은 화석정이 보인다,
화석정은 원래 고려 말의 유학자인 길재(吉再)가 조선이 개국하자 벼슬을 버리고 향리에 돌아와 후학을 양성하던 곳이었는데 사후 그를 추모하여 서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후 폐허가 되었다가 율곡 이이의 5대조인 강평공 이명신(康平公 李明晨)이 세종 25년(1443년)에 정자를 세우고 1478년 증조부 이의석(李宜碩)이 중수하고. 이숙함이 화석정이라 명명하였으며, 이이 때에 이르러 다시 중수된 유서깊은 곳이다.
정자 주변에 울창하게 서 있는 느티나무 아래 임진강에는 밤낮으로 배들이 오락가락 하였으며 밤에는 고기잡는 등불이 호화찬란 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임진강을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고 느티나무 몇 그루만이 그 시절을 증명해주고 있어 쓸쓸하기만 해 보인다,
여기는 임진왜란때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떠난 선조가 지나간 길이다, 율곡선생은 임진나루에 있는 화석정에 틈이 날때마다 들려서 들기름을 묻힌 걸레로 정자마루와 기둥을 닦도록 했어며 임종때 어려움이 닥치면 열어보라 고 하며 밀봉한 편지를 남겻다고 한다,
그 이후에 임왜란(1592)이 일어나고 선조 임금이 의주로 피난을 가는 길에 폭풍우가 너무 심해 한치 앞을 볼 수 없는 어려움이 닥쳐서 피난 길을 따르던 이항복이 밀봉한 율곡의 편지를 열어보니 화석정에 불을 지르라고 쓰여 있었다, 기름이 잘 먹은 화석정에 불이 붙자 관솔이 타듯이 불길이 올라 대낮같이 밝아져 선조일행이 무사히 강을 건널 수 있었다,
화석정 앞 계단 옆에 의주길 제5길 첫번째 스템프함이 있다, 스템프에는 화석정이 새겨져 있다,
화석정에 관한 안내도 있다,
화석정 건물 정면 중앙에는 박정희 전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 있으며,
임진왜란때 불 타 없어져 80여년간 터만 남아있던 화석정을 현종(顯宗)14년(1673)에 율곡선생의 증손 이후지(李厚地) . 이후방(李厚坊)이 다시 세웠으나 한국전쟁때 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初翼工)형태 조선시대 양식을 따랐다.
1593년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오면서 이 강에 당도해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순국한 병사들의 넋을 달래고자 나루터 강변 모래사장에 제물을 차려놓고 위령제를 지냈다, 선조가 다시 이곳 임진나루로 돌아온 이유는 임진강 안쪽은 수직절벽으로 형성되어 임진나루, 징파나루, 고랑포나루,등의 몇 몇 나루를 제외하고는 건너기 어렵기 때문이다,/p>
의주로 피난을 가던 당시 달빛조차 희미하던 4월 그믐밤 폭풍우속에서 노심초사 고생끝에 이 나루를 건너게 된 쓰라린 아픔을 기억하고 이 강을 지키고자 목숨을 지푸라기와 같이 버린 용감한 백성들의 명복을 기원하는 가운데 선조가 통곡을 하면서 하늘의 도움을 받아 이 나루로 다시 돌아오게 되였구나 하여 신지강이였던 강 이름을 임진강(臨津江)으로 개칭했다는 일화도 전해온다,
정자 오른쪽에 있는 이 울창한 느티나무는
수령 600년이다, 1982년 10월에 지정했을 당시에 560년이 였어니 2023년 현재로 보면 600년이나 된 느티나무다,
화석정 내부다,
내부 뒷면에 율곡선생이 8세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 (八歲賦詩)가 걸려있다.
임진강이 휘돌아 흐르는 언덕에 세워진 화석정의 전망은 아름답기 그지 없다.(林亭秋已晩 騷客意無窮)숲 속정자에 가을이 이미 깊으니 시인의 생각이 한이 없어라 (遠水連天碧 霜楓向日紅)먼 물은 하늘에 닿아 푸르고 서리 맞은 단풍은 햇빛 받아 붉구나 (山吐孤輪月 江含萬里風)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강은 만리 바람을 머금는다 (塞鴻何處去 聲斷暮雲中) 변방 기러기는 어디로 가는가 저녁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소리,.
율곡선생이 8세때 화석정에서 지었다는(八歲賦詩)를 새긴 비석도 있다,
파주 임진팔경에 대한 안내도 있다, 우리에게 알려진 임진강 팔경의 출처는 내소정 팔경시(來蘇亭 八景詩)에서 유래된 것으로 제 1경은 파평면에 있는 화석정이다. 팔각지붕에 초익공 형태로 지어졌으며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서 이이가 제자들과 학문을 논하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내소정은 임진나루 남쪽에 있던 정자로 조선시대 영의정 관직을 지낸 거창부원군 신승선(愼承善)이 건립한 정자이다. 조선 숙종 때 문신인 호곡 남용익(壺谷 南龍翼)선생이 래소정에 올라 임진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읊으니 이것이 임진강 팔경의 유래가 된 내소정 팔경시 다. 임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히는 임진강 8경(景)은 화석정의 봄, 장산(장암)의 낚시풍경, 송암의 맑은구름과 바람소리, 장포의 가랑비, 동원에서 보는 눈, 동파의 달구경, 진두사의 새벽종소리, 임진강(주월)의 적벽, 을 임진강 8경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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