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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의주길 제5길 임진나루길 中 화석정~통일로 2023, 01, 29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의주길

의주길 제5길 임진나루길 中 화석정~통일로 2023, 01, 29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2. 17. 00:42

화석정을 나와서 의주길을 이어가는 길은 김포 대명항에서부터 연천역고드름까지 이어지는 평화누리길 제8코스 반구정에서 율곡습지공원까지 가는 역코스 길이다,

평화누리길은 2015년,과 2017년, 그리고 2019년,까지 3번이나 완주(약 600km)를 하고 완주인증서까지 받은 길이라서 이 길을 걷는다는게 반갑기만 하다,

화석정에서 약 380여m를 가면 화석정로가 나오는데 여기서는 직진이 아니고 오른쪽으로 U턴을 해서 화석정로를 따라 가야한다,

이 길은 평화누리길 시그널이 많이 보이는 길이다,

회석정로 인도로 앞에 보이는 37번 국도인 율곡로 아래를 지나가면

멀리 초평도가 보이는 임진강이다,

강 상류로 휘여지는 임진강은 고량포구로 이어진다, 고량포구는 삼국시대부터 임진강을 통한 물자교류를 하던 전략적인 요충지 나루터로 1930년대에는 개성과 한성의 물자교류를 통하여 화산백화점 분점이 자리 잡을 정도로 번성하였어나 625전쟁으로 쇠락하였고 또한 1,21 무장공비 침투사태의 침투로 로도 유명한 곳이다,

임진나루는 임진강의 대표적인 나루로 관북과 관서의 분기점이자 한양에서 의주로 가는 의주대로의 중요한 길목이였다, 하루는 다른 곳의 뱃사공이 임진나루의 뱃사공을 시험하기 위해 양반으로 변장하고 나타 났지만 지혜로운 임진나루 뱃사공은 너의 수염이 한쪽으로 구부러졌고 노를 젓느라 고개가 돌아간 것을 보니 너도 나와 같은 뱃놈이구나 하고 속아 넘어가지 않았다는 이야기 판도 이곳에 있다,

길은 양쪽으로 나누어진다, 직진으로 가는 길은 화석정로고 오른쪽 길은 임진리마을로 들어가는 임진나루길 이다,

오른쪽 마을 임진나루 길로 들어간다,

여기는 파주시 문산읍 임진리 나루터마을이다,

나루터 마을은 모두 음식점들일 정도로 많은 음식점들이 있다,

들어가면서 보이는 것 만해도 임진나루터집, 임진강집,

성터나루 집 등의 음식점들이 밀집해 있다,

음식점들이 빼곡히 있는 곳을 잠시 지나가면

키토산 장군두부 임진나루협동조합(마을기업)이 있다, 손두부도 직접 만들어 준다는 집이니 아직 점심시간도 되지 않은 이른 시간이지만 두부 맛이니 보려고 들어갔다,

따끈한 생두부를 잘라 뽁은 김치와 함께 두부 한점을 먹어보니 ~

마을기업을 찾아주는 여러분께 최고의 맛을 추구하며 최저가로 대접하는 마을기업으로 여러분들과 함께 동행 하기로 약속 한다는 "동행선서문" 까지 걸려 있는 집을 나와서

임진나루마을 길로 올라간다,

가는길 오른쪽에는 마당넓은 식당도 있다,

그리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는 곳에 파주시 어촌계가 있다, 파주시 어촌계의 어획구간은 임진강 일원 지류인 공릉천과 문산천을 포함 적성면 어유지리~문산읍 내포리까지로 120여명의 어민들과 58척의 배로 1~5선단으로 나뉘어 조업을 하며,

20여년 전에 결성된 구 어민협의회와 2000년도에 통합해 수협의 지원을 받아 2014년 1월 10일 이곳에 사무실을 열 정도로 파주시 어촌계는 파주 어민들의 구심점이다,

파주시 어촌계를 지나서 임진리를 나 간다,

나가는길 왼쪽 언덕 위는 37번국도 율곡로이고 우리가 가는 아랫길은 임진나루길이다,  37번 국도는 임진강변 자유로 당동 IC에서 포천 양문IC교까지 이어지는 약 60km의 도로다, 의주길은 오른쪽으로 내려가는 길이다,

이 길은 법인 주차장도 있고

중고 콘크리트 흄관판매장 이자 하치장도 있다,

그리고 임진리오토캠핑장도 있는데 간판만 걸려있다,

여기서의 길은 이 길 뿐이다,

임진나루길 장산전망대로 가는 길이라는 의주길 안내도 있는길

언덕으로 올라간다,

차가 지나 다녀서 길이 얼어붙어 매끌 매끌하다,

언덕을 모두 올라가면 헬기장이 있는데

헬기장 반대편은 장산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장산전망대는 300m이니 왕복이 600m다, 장산전망대 에서 보이는 것은 임진강이다,

그러나 하루종일 걷어야하는 사람들은 600m를 돌아가고 싶지 않다,

의주길인 장산리로 내려 간다,

헬기장이 있는 언덕에서 장산리 삼거리 까지는 약 500m정도다

장산리 삼거리에서 직진은 마포동 버스 정류장이 있는 길이고

왼쪽은 맨밧골 버스정류장이 있는 마을 앞이다, 평화누리길은 이 길로 가다가 앞에 보이는 창고 앞 쪽 농로를 따라가야 한다,

그러나 의주길은 직진으로 마포동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으로 간다, 앞에 보이는 파란색의 구조물이 버스정류장 표지다,

이 길은 장산로다,

양수장입구 버스정류장도 있는데 양수장은 임진강변에 있을 것 같은데 여기서 임진강까지는 약 1km 정도는 되는 거리다,(지도로 확인한 거리)

계속해서 장산로를 따라 내려간다,

2차선 도로도 아니고 마을길인데도 버스는 다니는 것 같다,

장산1리 버스정류장도 지나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집들이 보인다,

이 마을이 장산 1리인 모양이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을 따라

내려가면 장산1리마을회관 버스정류장이 있는데 여기서 조금전에 갈라진 평화누리길과 합류된다,

장산1리마을회관 앞 길은 데크길이다,

의주길에서 걷기와 건강에 대한 안내도 해 놓았다,

잠시 만났던 평화누리길은 여기서 다시

맨밧골천 장산교를 건너 가기 전 오른쪽 둑길로 내려가야 하지만

의주길은 직진이다,

나즈막한 언덕길에 교동인씨 통훈공파제실 비석이 있다,

애국지사 인진명 선생의 묘도 있다고 안내되여 있는데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어신 인진명 선생은 1908~1909년 대한제국의 하위급 관료로 1910년 경술국치 사건에 의분을 참지못하고

1935년부터 공덕동 부근에서 항일운동을 했어며 폭발물을 제작하여 경성역 앞 세브란스 병원 근처에서 조선 총독을 폭살하려다가 일본 경찰에 붙잡혀 징역 2년의 옥고를 치뤘고 후에 사저인 무당재에서 1940년에 별세하신 애국지사 였다, 울타리 안으로 교동인씨 통훈공파 제실이 보인다,

교동인씨 제실을 지나서 언덕으로 올라간다,

이렇게 포장이 되여 있어니 차도 다닐 것 같은데 

생각보다 지나가는 차는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보니 승용차 1대가 지나가는데 

워낙 한적한 길이라서 그런가 지나가는 차도 반갑다,

그러다가 보니 이 길에도 장산2리 버스정류장이 있다,  버스도 다니는 길인데도 왜 이렇게 한적할까?

이제 의주길 안내는 임진강역을 알려 주는데 여기서 2,3km다,

그리고 오른쪽에 이 지역에서는 보기도 어려울 것 같은 큰 건물도 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진사랑요양원이 다,

이제 길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마정4리입구 버스정류장 앞으로 해서

교회 건물이 보이는 곳으로 가다가

교회 앞에서 왼쪽 마을로 들어간다,

그리고 족히 수백년은 된 것 같은 느티나무가 있는

마을길을 따라간다,

농촌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마을 길을 가다보니

작지만 깨끗하게 지어진 마정3리 마을회관도 있고

마정초등학교도 있는 길이다,

마정초등학교에서 나가면

마정로 와 연결이 된다,

마정로는 2차선도로다, 여기는 마정3리 고

얼마되지 않은 거리에 마정2리가 있다

마정2리 에는 음식점도 있고 마정2리경노당도 있다는 표석도 보인다,

마정2리 경노당이 있다는 마을 안길

의주길은 계속해서 직진으로 마정2리경로당 버스정류장을 지나간다,

마정로에도 인도는 없다, 의주길 걷는 사람들을 위해서 없는 길을 만들 수도 없어니 조심해서 잘 지나가야 한다,

그리고 이 길에는 방벽이 있다, 전방 마을이라 그런지 자연스럽기만 하다,

방벽을 지나서 나가면

이렇게 큰 도로와 만나게 되는데 이 도로는 1번국도의 끝 통일로다, 1번 국도는 전남 목포에서 평북 신의주까지 연결되는 종단 국도로 일제 강점기에 건설되기 시작해 20세기를 가로 지르며 한반도 역사와 문화의 실크로드로 근대화의 산실로 중요한 자리 매김을 해 왔다,

 1번 국도는 서울을 경유하면서 서울시 은평구 구파발에서 파주시 문산읍 마정리 임진각에 이르는 구간을 통일로라고 부른다, 49,2km에 달하는 통일로는 조선시대에도 중국으로 통하는 유일한육로인 의주로가 근간이 되여 이루어진 도로다,

이 도로는 2차선도로 였어나 남북회담이 개최되기 전인 1972년에 왕복4차선 도로로 확장 했다, 이것이 파주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대단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