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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영남길 제3길 구성현길中(민영환 묘~법화산정상)2023, 02,26 본문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영남길

영남길 제3길 구성현길中(민영환 묘~법화산정상)2023, 02,26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3. 21. 00:08

2023년 2월 19일 경기옛길 구성현길 민영환선생 묘소에서 귀가했던 길을 일주일 후인 2월 26일에 구성역 3번출구로 왔다, 

구성역 3번 출구 뒤 버스정류장에서 33번 버스로 10여분만에 도착한 구성초등학교에서

마복천 다리를 건너서

구성동행정복지센터 사거리 방향으로 간다

그리고 구성래미안2차 사거리까지 가서 왼쪽으로 돌아가면 대소인하마비가 있는데 하마비란 향교, 궁궐, 사묘, 능원과 같은 영역에 들어가기 전 신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이 비석이 세워진 위치에서 부터 말에서 내려 경의를 표 하라는 뜻을 새긴 표석이다,

용인향교에는 조선시대 초 부터 전해 내려 온 하마비가 보관되여 있어며 보존상의 이유로 2017년 새로 하마비를 만들어 향교앞에 세웠어나

하마비 의 원래 위치를 찾고 지역 문화재인 향교를 알리고자 하는 주민 의견을 수렴하여 현 위치로 옮겨졌다, 는 내용이 새겨져 있다,

하마비가 있는 곳에서 약 100여m 정도의 거리 맞은 편에 용인 향교가 있다,

향교 출입구인 홍살문이 있고 홍살문으로 들어가면 용인향교 삼문이 있다, 삼문은 오늘도 닫혀 있다, 용인향교는 용인현의 중심지인 구성에 건립되였다, 법화산에서 서쪽으로 뻗은 능선 말단부에 서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가장 높은곳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위치하고 내삼문을 두어 신성한 곳으로 구분했다, 용인향교는 조선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 되는데 최초 설립 후 3치레 옮겨 지었다, 본래 용인현의 동쪽 2리(하마비 마을, 구 경찰대 후문 인근)에 위치했다가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조선 인조 19년 1641년에 현의 북쪽 1리(구교동)로 옮겨지었고 숙종 12년 1686에 원래의 터인 현의 동쪽 2리로 다시 옮겨 지었다가, 1900년을 전후한 시기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잦은 이전에도 대성전은 17세기 경기도 향교 건축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용인향교는 한국전쟁 시 대성전을 제외한 나머지 건믈들이 소실됨에 따라 1963년 명륜당을 중건 하면서 현재까지 외형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다,

향교 삼문 옆 울타리 안으로 들여다 보면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은 화장실이고 그뒤 계단 위로 보이는 건물이 명륜당이다, 명륜당 뒤에 는 내삼문이 있고 내삼문을 들어가면 대성전이다,

그리고 삼문 옆 왼쪽 큰 건물은 충효교육관이고 그 안쪽에 용서재가 있다,

용인향교를 나와서 잠시 더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산으로 들어가는 길이 있다,

산길 입구 영남길 이야기 판에는 법화산 이야기다, 법화경에서 산의 이름을 떠 왔다는 법화산은 읍내면 상마곡, 동변면 수청동에 있다고 기록되여 있으며 용인의 산수 이야기에는 천태교학의 법화경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기록되여 있다, 

주 능선은 북서~남동 방향으로 뻗어 있는데 300m 정도의 봉우리들이 연속되여 있어며 북서쪽에는 무등재, 남동쪽에는 무푸레고개가 있다, 이들 산에서 흘러 내린 물은 탄천이 되여 북쪽으로 흐르고 있어며 주요 식생으로는 주로 소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다,

법화산으로 올라간다,

해발300m 정도의 산이니 높은 산은 아니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니 울창한 소나무 숲길을 걷는다,

빽뻭히 들어선 소나무 군락 나무 연령을 추정 컨데 

1세대 사방사업으로 심어진 소나무 같은데

제대로 간격을 벌여서 심은게 아니라 그냥 다닥 다닥 붙여서 꽂아놓은게 용케도 죽지않고 잘 살아나서 이렇게 울창한 소나무 숲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아주 오래전 이야기지만 사방사업이라도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 산간지역은 주로 아카시아 등의 잡목의 나무들이 주종을 이루었고

수도권 지역은 그 당시로는 나무값이 비교적 비싼 편인 소나무들 위주로 심어진 것 같다,

더욱이 인구가 많은 마을이 가까운 곳 산이면 더 더욱 그랬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데 그 당시에는 국토 차별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니였을까 ,

여기는 지역 주민들의 산책로라서 일까, 운동기구도 설치되여 있고 잠시 쉴 수 있는 정자도 있다, 정자 이름이 법화산 쉼터3 이니 법화산에는 2쉼터 1쉼터도 있다는 게 된다,

구성동 주민센터에서 약 1km, 법화산 정상까지는 2,4km정도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가면

오른쪽에 잔디가 심어진 곳과 작은 호수도 있어며

왼쪽 아랫녁에는 아파트 단지가 있는곳, 아파트경계 울타리를 따라 계속해서 산으로 들어간다,

가는길 내내 오른쪽으로 울타리가 있는데 여기는 골프장이라는 안내도 보인다,

조금 가파른 곳은 이렇게 데크계단으로 길을 냇어니

법화산은 지역 주민들에게는 아주 좋은 휴식공간인듯 하다,

골프장 울타리를 따라가는 길은 꽤나 멀다,

골프장 울타리에 가끔 보이는 안내는 골프공이 날아올 수 있어니 조심하라는 친절?까지

골프장 공이 울타리 위로 날아 와도 높은 곳이니 다칠 일은 없을 것 같다,

잠시 골프장 울타리를 

벗어 났다가

다시 합류하면

칼빈대학교 1km 정상 1,8km 지역이다,

여기서 보이는 낮선 이름의 칼빈대학교는 1954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야간 신학교로 개교한 신학대학교로, 1996년 4년제로 인가받고1997년 칼빈대학교로 개교했다.

계속 능선으로

법화산 정상을 향해 간다,

이렇게 산으로 연결해서 가는 길이 

조선시대 영남길은 아니였을 것이고

조선시대 영남길은 현재의 도시화가 그 흔적을 치웠을 것이니

옛길 토대로 새 길을 조성한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런 산길을 걸을때는

옛길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것 같은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가 지리산 둘레길이나 치악산 둘레길도 아니고

조선시대 부산과 한양을 연결하던 대로大路 였는데 

먼길을 오고 가던 사람들이 궂이 험한 산길로 다녔을 것 같지도 않지만

더욱이 우마가 다니지도 못했을 것 같은 산길을

지금의 시대에 이렇게 그 길의 향수를 따라 걷는 길로 조성해 놓았다는게

행정 편의적 발상인 것 같아서 안타갑다,

그래도 가는 길에서 주변을 돌아보면 아랫녁에는 아파트들도 보인다,

법무연수원과 경찰대학교와 법화산정상 그리고 칼빈대학교 방향으로 나누어 지는 삼거리를 지나면

가는길 옆 언덕에 돌기둥이 보인다, 안내판에는 이곳이 평화의 쉼터라 했다, 이 지역에서 평화의 쉼터 라는 곳은 6,25전사자 유해발굴 지역이다, 지난주 영남길 제2길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는데 이 곳에서도 1951년 1월 25일~2월 16일까지 썬더볼트작전에서 희생한 국군6사단과 미 24사단 그리스대대 전사자 유해발굴 가념지역 제6호라고 안내 되여 있다,

육군 제55보병사단은 2012, 5, 7 ~ 6,29 간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 을 실시하여 국군 전사자 유해 74구, 전투화, 군번줄 등 유품 500점을 발굴하여 뒤늦게 나마 조국의 품으로 모실 수 있었다,

썬더볼트작전은 법화산~석성산~청왕산 등지에서 중공군38군 예하 112~113~114사단과 전투를 했던 역사적인 장소로 경기도와 용인시 제55보병사단은 후손들에게 자랑스러운 내조국 내 강토를 물려주고 호국보훈 의식과 애국애족의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이곳 법화산에 평화의 쉼터를 마련했다, 라는 내용이다,

썬더볼트작전 전사자 유해발굴 평화의 쉼터가 있는 곳에서 능선을 따라 조금만 더 가면

이렇게 보이는 곳이 있는데 

여기가 영남길 제 3길 중 가장 높은 곳인 법화산 정상이다,

법화산(法華山)은 용인시에 있는 385.2m의 산이다.

법화산 정상은 이렇게 데크로 넓은 공간을 만들어 놓았다,

법화산은 천태교학 天台敎學의 법화경에서 산이름이 유래되었다. 조선지명지에 읍내면 상마곡(마북동), 동변면 수청동(청덕동)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용인시 수지구, 기흥구, 처인구 등 3개구 모두에 걸쳐 있는 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