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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방랑시인 김삿갓 종명지 2023, 08, 01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방랑시인 김삿갓 종명지 2023, 08, 01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3. 9. 4. 00:28

삼복권역 커뮤니티센터를 전세?냈다,(여름 휴가철인 데도 우리만 있어니까) 개인이 운영하는 곳이 아니라 관리인도 없고 알아서 이용하면 되는 곳이다, 아랫층은 행사가 있을때 사용하는 실습실과 강의실이고 2층은 숙소로 5개의 넓고 큰 거실이 있는 곳이다,

본 건물 뿐만이 아니라 순두부 체험장도 있어며 전기차 충전시설도 있는 곳이다, 2023년 8월 1일 아침 5시 경 산책을 나섯다, 숙소 앞 도로 김삿갓로를 따라 내려간다,

외진곳이지만 도로변에 창고가 있는데 이 창고는

한천리 마을 공동창고다,

창고 마당에는 이렇게 이름을 쓴 물건들이 있는데 이 물건들은 가축분퇴비로 마을공동창고 까지만 같다 놓어면 여기서 부터는 마을 주민들이 필요할때 같다 쓰는 모양이다, 

가는길 큰길 도로도 김삿갓로이고 옆마을로 들어가는 동네길도 김삿갓로다,

표석을 보니 구암마을 이다,

그 옆에는 시선난고김병연 김삿갓 종명 초분 유적지라 는 입석도 있다,

그리고 이곳에는 화장실과 쉼터도 있다,

이렇게 깨끗하게 잘 지어놓았는데 화장실 문이 잠겨있어 사용 할 수는 없다, 상시 개방시 관리적인 문제 가 생길 수는 있겠지만 그 정도의 예측은 하고 화장실을 지었을텐데 말끔하게 잘 지어놓고 쓸수없다면?

화장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김삿갓 종명지 관광객들이 이용하는 게 아니라 바로 앞 동복천 에 있는 둔동교 건너 동복 연둔리 숲정 관광객들을 위한 편의시설인 모양이다, 그래서 화장실 앞에는 주차장도 있다,

어찌되었거나 여기서 부터는 김삿갓방랑로다, 

동복천 건너 숲정이에서 망미대, 김삿갓 초분지, 김삿갓 종명지, 한천농악전수관에 이르는 

3,6km 구간으로 구름처럼 바람처럼 떠돌았던 김사사갓의 자취를 따라 조성된 둘레길이다,

일직선으로 들어온 길 마을이 보이는 입구에

고목 한 그루와 정자가 있는 소공원에

빙 둘러서 시비(詩碑)를 세워 놓았다, 먼길을 찾아 온 낮선 곳에서 만난 김삿갓 시인의 흔적이니 하나도 빼지 않고 모두 돌아본다,

노인자탄(老人自嘆)노인 스스로 탄식함, 이라는 시비가 있다,

팔십년에서 4년을 더 살았으니, 사람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며 그렇다고 신선도 아니네,

다리에는 근력이 없다고 항상 다니며 넘어지고, 눈은 어둡고 전신은 보족하여 앉아서 문득 졸고 있네,

생각과 말 함은 다 망 녕 되고, 그래도 아직은 실 한가닥 같은 기운은 남아 있네.

슬픔과 즐거움은 다 망연 하지만, 때때로 황정의 문경 편은 잘도 외우네, 라는 시가 적혀 있다,

자탄(自歎) 자신을 탄식함 이라는 시비에는

슬프도다! 온 세상의 남아들이여, 내평생 지내 온 일 알아 줄 이 누가 있는가?,

부평초처름  삼천리 강산 떠 돌아다닌 자적, 금서 사십년 모두가 허사로 구나,

청운의 꿈 억지로 안되니 원치도 않고, 백발은 오직 공명한 길이니 슬프지 않네,

귀향의 꿈을 꾸다가 놀라 깨어 일어나 앉으니, 한 밤중에 공작새 소리 남쪽사지에서 들려오네,

오경등루(五更登樓) 한밤중에 누각에 오름

하늘은 만리나 높아도 머리 하나 들기 어렵고, 땅은 천리나 넓다 해도 다리 하나 펼 수 없네,

깊은밤 누각에 어른 곳은 달 구경하려는 것 아니고, 삼일을 굶은 것도 신선이 되려고 하는 것 아닐세,

자상(自像) 자신의 아픔을 옲음

자식을 청산에 묻고 또 처를 장사하니, 부는 바람 슬픈데 해가 지니 더욱 쓸쓸해 지는구나,

문득 잡에 돌아오니 집 안은 절간 같고, 홀로 찬 이불을 끌어안고 닭 울때 까지 앉아 있노라,

잡영(雜詠) 생각에 잠겨

고요한 곳 문짝에 내 몸을 기대어서니, 구경하는 마음과 기쁜 일들 맑고 진실 하여라,

안개 걷힌 외로운 봉우리는 초승달을 밀어 올리고, 고목에 핀 꽃은 늦 봄을 만드네,

술은 좋은 벗을 만나 감개 무량하고, 시는 명산에 다다랐으니 신이 저절로 나네,

기묘한 경자는 모름지기 물 외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로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 중 한있는 사람이 적도다

자고우음(自顧偶吟) 자신을 뒤 돌아 보고

웃으며 푸른 하늘 우러려 보다 앉으니 마음 더욱 아득하고 지나온길 돌이켜보니 살아온 일 더욱 까마득하네

가난하게 사니 늘 식구들의 꾸지람을 받았고, 술 어지러이 마셔 저자의 여인들에게 조롱 받았도다,

이 세상 모든 일은 낙화 보듯 세월 흘러 보냈고 일생을 밝은 달밤 처름 흐릿하게 살았도다,

세상을 응당 내 몸으로 짓는 업이라 하며 살았고 차츰 청운의 꿈은 내 분수 밖의 일임을 깨달았노라

김삿갓 시인의 시비가 있는 정자 공원을 지나 조금 더 들어가면 장승이 있고 주차장이 있는 곳

앞에 이렇게 보이는 석물이 있다,

그리고 난고 김병연(김삿갓)종명 終命 초분 初墳 유적지 안내도 있는데 이 내용을 읽어보면니 선생은 1807년 경기도 양주군 회천면 회암리에서 안동 김씨 안근과 어머니 함평 이씨 사이에서 2남으로 태어나 이름은 병연이고 호는 난고 자는 성심이라 불렸다,  

선생 나이 6살이 되던 해 선천부사인 조부 김익순이 홍경래난에 연류되어 복주되고 가족은 멸족의 위기를 면하였어나 상민으로 전락되자 어머니가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광주, 이천, 가평, 평창,을 전전하다가 영월 어둔 산협에 은거 하였다, 

20세 되던해 영월도호부 백일장에서 김익순을 통탄한 글을 써 장원을 하였어나 그후 조부임을 알고 자책과 통한을 이기지 못하여 모친과 처자를 남겨두고 조상에 지은 죄가 커서 하늘을 보기 두렵다 하여 삿갓을 쓰고 대지팡이에 의지하여 방랑길을 떠나 금강산과 각처 명승지 또는 서당을 두루 섭렵하여 방랑생활을 계속하면서 많은 시구를 남겼다,

1850년 동복면 구암리에 당도하여 창원 정씨 댁과 인연을 맺은 후 주변산자수병한 자연경관을 즐기며 몇편의 시를 남겼고 1863년 3월 29일 57세를 일기로 정씨 사랑채에서 한 많은 세상을 하직하여 마을 동편 동뫼(東山)에 초장 한 후

3년 뒤 후손에 의해 영월군 하동면 와석리(노루목)에 이장되고 지금은 파묘 터 흔적만 남아 있다, 선생은 35여년 동안 방랑생활을 하면서 해학과 민중시 와 많은 초탈과 변형시를 남겨 미국의 윗트먼과 일본의 석천 탁목과 함께 세계 3대 시 혁명가로 꼽히는 유명한 시인이시다,

찾아오는 식객들을 후대했던 임해 丁정씨 창원군 백인당파의 종가를 재건 하는 공사를 하고 있는 곳에서 주차장으로 들어가면

주차장 안쪽으로

방랑시인 김삿갓에 대한 만화도 그려져 있는데 많이 바래서 잘 보이지도 않는다, 아니면 잘 보이기는 하지만 노안이라 그런가?

김삿갓 1807년(순조 7년)에 태여나서 1863년 3월 29일 57세로 이곳 구암마을에서 운명하실때 까지의 이력이 년도별로 적혀있고

無等山考松下在(무등산고송하재) "무등산이 높다 하되 소나무 아래 있고"

赤壁江深沙上流(적벽겅심사상류) "적벽강이 깊다 하나 모래위에 흐른다"라는 시도 적혀있다,

그리고 빼곡히 적혀있는 이 공원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어나

이런 것도 있다 는 정도로 이해하고

삿갓을 쓰고 대지팡이를 짚고 서 있는 김삿갓 동상이 있는곳으로 들어간다,

과안락성견오

안락성중욕모천 관서유자용시견, 촌풍염객지취반 점속관인단색전,

허장예뢰빈유향 파장투냉갱무전, 조래일흡강산기 시향인간벽곡선,

각종 조형물 들과 시비가 많이도 있다,

그러나 일일이 다 이해하고 느낄 수는 없어 그냥 한바퀴 돌아본다,

그러다가 수없이 많은 시비 중에서 구월산에서 라는 시는 얼핏보아도 많이 접해본 시라서 옮긴다,

지난해 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났고 올해 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네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지나니 구월산 풍경은 언제나 구월이로세

자신을 돌아보며

쓸쓸한 소나무 밑 외딴 주막에서 내 한가로이 누웠어니 딴 세상 사람 같도다,

산 골짜기 가까우니 구름을 즐기고 개울가에서는 새와 정다운 벗되네

짓수를 따지는 야박한 세상에 어찌 뜻을 두랴, 시와 술로서 나를 스스로 위로하리

달을 바라보며 마음 너그럽게 가지고 유유이 만끔이니 자주 꾸어 보리라,

김삿갓 공원은 그리 크지는 않다 그러나 많은 작품들이 공원에 가득히 자리하고 있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는 않은듯 거미집이 촘촘히 자리하고 있다,

그래서 일까, 공원 안쪽에 있는 정자는 들어가 볼 수도 없다,

김삿갓 공원을 나가 돌아간다,

그리고 공원길 일직선 동복천 둔동교 앞으로 나왔다, 이곳에도 훈장 훈계(訓長訓戒) 훈장을 훈계하다, 라는 시비가 있다,

오늘도 둔동교는 안개 속에 잠겨있지만 멋스러움은 여전하다,

동복천 둑길로 상류로 올라간다,

동복천변 둑길은 고목이 우거진 곳이라 경치도 좋은 곳이지만 예로부터 이렇게 오래된 나무들이 

동복천 범람을 막는 중요한 역활을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선조님들의 지혜가 읽히는 대목이다,

삼복권역 커뮤니티센터로 돌아왔다, 오늘 아침 산책은 여기 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