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낙산사와 하조대를 지나 경포대로, 2023, 09, 10 본문
낙산사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낙산사로 들어간다, 낙산사로 올때마다 바닷가 쪽 의상대로 입장을 했는데 오늘은 낙산사 주차장에서 낙산사 정문인 홍예문으로 들어간다,
주차장에서 홍예문 까지는 약 500m 정도는 된다,
그래도 그리 멀지않게 느껴지는 것은 이렇게 울창한 소나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숲길을 따라 들어가는길 데크 인도 공사를 하고 있었다, 이 공사가 끝나고 길이 개통되면 주차장에서 낙산사 정문으로 가는 길은 지금보다 더 편안해 질 것 같은 요즘 말로 무장애 길이 되는 셈이다,
그래도 데크길 보다야 친근한 숲길이 더 아름답다,
아름다운 소나무 숲길을 걷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냥 지금처름 다녀도 무방할 것같다,
홍예문 안에 낙산사 전각들이 있다면 홍예문 밖인 이곳에는 낙산사 요사채 쯤 되는 건물을 수리하고 증축 하는 공사를 하고 있다, 여기는 주차장과 동해대로 낙산사 일주문에서 들어오는 길이 만나는 지점이다,
공사장 울타리에 전시되여 있는 낙산사 해수관음상 1972년에 착공되어 1977년에 11월에 점안 했다고 알려준다, 해수관음상 둘레에 조성한 108 법륜석은 2005년 대형 산불 이후 불법이 더욱 번창하여 중생의 번뇌를 깨달음으로 성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조성한 것이다,
낙산사 산내 암자인 홍련암은 의상대사가 본 사찰인 낙산사를 창건하기 앞서 관세음보살의 진신을 친견한 장소이며 또한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 위해 석굴안에서 기도하던 곳으로 낙산사의 모태가 된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홍련암 법당은 2005년 대형 산불 속에서도 화마가 오지 않았다,
낙산사 대표적인 두 곳을 보는 것 만으로도 낙산사 를 모두 둘러본 것이나 마찮가지 일 정도다, 오늘 이곳으로 온 이유는 문화유산탐방 여행중이라서다, 어제는 설악산 신흥사를 방문했고 오늘은 여기서 부터 강릉까지 둘러 볼 예정이다,
낙산사 홍예문이 보인다, 동해대로 에서 낙산사 일주문으로 들어오거나 낙산사 주차장에서 낙산사로 들어가는 정문이 홍예문이다,
홍예문 왼쪽에 낙산사 안내소가 있다, 이곳 안내소에서 문화유산방문자여권에 스템프 날인을 한다,
낙산사 홍예문은 1467년(세조13년)에 축조 되었다고 전하며, 그 위의 누각은 1963년 10월에 지은것으로 2005뇬 대형산불로 소실되고 2006년에 다시 복원 했다, 현재 이 홍예문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33호로 지정되어 있다,
홍예문으로 낙산사로 들어간다,
홍예문으로 들어 가는 길에는 법구경 구절이 적혀있다,
"지혜가 으뜸인 사람은 항상 신중하고 그것을 보호하여 소중한 보물로 삼는다"
"남의 허물 꾸짖기를 좋아하지 않고 자기 몸을 살피는 일에 힘써라" 이런 말씀이 적혀 있지만 내용의 깊이를 알 수 없어니 불자가 되기는 힘들 것같다,
홍예문으로 들어와 잠시 걷고 나서 다시 돌아 나간다, 낙산사는 여러번 다녀간 적이 있어니 오늘은 이쯤에서 하조대로 간다,
들어올때와는 사뭇 다른 듯한 낙산사 홍예문, 들어올때는 현판이 걸려있었는데 밖으로 나가는 안에서는 현판이 없다,
낙산사에서 강릉 경포대로 가는길 양양군 햔북면 하광정리 5-1 하조대로 왔다,
하조대는 입구 공터에 주차를하고 앞에있는 언덕으로 올라간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사람들이 안보인다, 조금 일찍 거면 이런 점이 좋다,
소나무 숲속에 하조대 정자가 보인다, 길옆 울타리에 붉은색 리본이 걸려있는데 해파랑길 리본이다, 2016년 4월 24일 해파랑길 42코스를 걸을때 하조대는 해파랑길 코스가 아니였다, 하조대로 오는길 광정천 인도교를 건너 해조대해안로로 속초항으로 올라 갔었는데 오늘보니 하조대를 경유하도록 재 지정을 한 것 같다,
2016년 하조대는 해파랑길은 아니였지만 나는 하조대를 들려서 간 적이 있다, 아랫 마을에서 하조대까지는 왕복으로 약 1,5km 정도는 되는 거리니 먼 길을 걸어면서 돌아간다는 것은 어려운 결정이 였지만 워낙 유명한 곳이라 들렸다가 간적이 있는 곳이다,
고려말 하륜과 조준이 이곳에 은둔하며 새로운 왕조를 세우려는 혁명을 꾀했고 그것이 이루어져 뒷날 그들의 성을 따서 하조대라 했다는 설과, 하씨 집안 총각과 조씨 집안 두 처녀 사이의 이루어질 수 없는 애절한 사연으로 인해 명명되었다는 설이 있다.
조선 정종 때 정자를 세웠으나 현재는 바위에 새긴 하조대라는 글자만 남아 있으며, 근래에 와서 육각정이 건립 되었다, - 이 내용은 2016년 해파랑길을 걸어면서 하조대를 지나간 일기를 옮긴 것이다,
하조대 정자에서 바다를 보면 양양 지정번호 10호 보호수(保護樹)가 있다,
바닷가 암봉 정상에서 200년을 살아가는 소나무다, 흙 한점 없는 곳에 어떤 영양분으로 살아갈까?
200년 소나무에서 오른쪽으로 해안마을이 있는데 보이는 곳은 기사문항 이다, 2016년에 저곳으로 걸어서 지 왔어니 낮설지는 않다,
조선 정종 때 정자를 세웠으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자리에 근대에 지었다는 육각정에 7년 5개월만에 다시 왔어니 흔적이라도 남겨야 할 것 같아서,
이렇게 아름다운 유서깊은 곳에 왔어니 하조대에 얽힌 이야기를 안할 수가 없겠다, 조금은 긴 내용이지만 안내문을 정독을 하면 양양 하조대(河趙臺)는 2009년 12월 국가 지정문화재인 명승 제 68호로 지정되었다, 하조대는 고려말 조선 초 문신인 하륜과 조준 두 사람이 만났던 곳이라하여 이 들의 성을 따서 이름붙였다고 전한다,
하조대 정자는 조선 정조때 처음으로 세웠는데 훼철된 것을 1939년 6월 양양군 현북면 기념사업으로 육각정으러 건립 하였어나 해방 후 다시 파괴 되었다, 현재의 정자는 1998년 해체복원된 건물로 초익공 굴도리 양식의 육각정으로 지붕에 절병통을 얹었는데 소나무와 함께 주위의 자연경관과 잘 어울리고 있다, 정자각 앞 바위에는 조선 숙종때 참판을 지낸 이세근이 쓴 河趙臺라고 음각된 글자가 남아 있다,
양양 하조대는 돌출 해안 정상부에 건립된 정자주변을 지칭하며 온 갖 기암괴석과 바위섬들로 이루어져 있는 암석해안으로 동해바다의 절경을 바라 볼 수 잇는 조망지점이자 빼여난 조망대상이 되고 있다, 또한 주위 의 울창한 송림이 정자와 잘 어울려 아름다운 해변 풍경을 나타내고 있으며 정자 주변 지역은 참나무류 등이 활엽수림을 형성하고 있다,
하조대 지질은 중생대 쥐라기에 관입된 화강암(대보화강암)이 노출되어 있는데 이 화강암이 동해바다의 해식작용을 받아 해식애 등 우수한 해안경관을 이루었어며 이 해식애 위에 소나무가 자라고 있어 운치를 더 한다, 하조대의 풍경을 더해주는 주변 경관 요소로는 하조대 해수욕장의 모래 사장과 등대가 있다,
하조대 앞 정자 맞은편에 무인등대가 파도와 어우려져 또 다른 절경을 이뤄내고 있다, 하조대 언덕 위에 오르면 바닷물에 여기 저기 잠겨있는 바위들과 해안 풍경을 한 눈에 볼 수 있어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동해안의 일출은 장관이다,
하조대에서 앞 주차장으로 내려 왔다, 그리고 하조대관광 안내소 부스 앞으로 등대로 간다,
등대로 가는 길은 이렇게 인도 육교를 잘 만들어 놓았다,
육교를 따라 나가면서 내려다 보는 바다
조금 전까지 머룰럿던 하조대와 아름다운 하조대 앞 바다를 보면서
등대로 간다,
그리 높지 않은 계단을 올라가면 등대로 이어지는길은 이렇게 보인다,
보이는 이 자체 만으로도 무어라 형용할 수가 없을 정도로 그저 먹먹한 이 느낌은 무었일까?
하늘과 맞다아 있는 바다,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까지가 바다인지 그 경계도 명확치 않은 것 같은 동해 바다
하조대를 배경으로 2023년 9월 10일 기록도 남겻는데 하조대 앞 암봉 정상 200년 소나무도 함께 찍혔다,
하조대와 마주 보고 있는 무인등대를 나와서
약 40분 정도를 달려 도착한 경포대, 경포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문화유산방문자여권 스템프를 찍었다, 경포대는 관광안내부스가 있기는 했지만 근무자도 없었고 문화유산방문자여권 스템프는 안내소에 있는게 아니라 안내소 맞은편 노상?에 덩그러니 방치해 놓았다, 더욱이 스템프를 찍을 받침대도 없어 길 바닥에 여권을 놓고 찍어야 했다, 5개의 길 30여개의 여권 스템프를 찍어면서 처음 본 스템프 부실관리 1위 경포대다,
경포대로 올라간다, 올라 간다는 표현을 했지만 경사진 길을 올라가는 것 정도다,
경포대는 경포호 가 내려다 보이는 강릉시 저동 94번지 언덕에 있다,
鏡浦臺(경포대)는 경포호수 북안(北岸)에 있는 조선시대 누대.다,
보물 제2046호. 관동팔경의 하나로 1326년(충숙왕 13)에 관동존무사(關東存撫使) 박숙정(朴淑貞)이 현재의 방해정(放海亭) 북쪽에 세웠는데, 1508년(중종 3) 부사 한급(韓汲)이 현위치로 이건한 후 현재까지 7차에 걸쳐 중수했다.
평면은 앞면 5칸, 옆면 5칸이며 총 32개의 기둥을 두었고, 바닥은 우물마루로 짜여져 있으며 3단의 단차를 두어 사용자의 신분 및 계급에 따라 자리배치를 달리하던 평면에서의 위계(位階)를 보여준다.
또한 벽체의 구성없이 모두 난간을 가설하여 누대가 갖는 공간적인 개방성을 보여준다.
공포는 기둥머리에서부터 초익공이 나와 주두를 감싸면서 상부의 2제공을 받고 있는 이익공으로 그 상부에 재주두를 놓아 대들보를 받고 있다.
기둥 사이의 창방 위에는 앞면과 뒷면에 2구, 옆면에 1구씩의 복화반(覆花盤)을 놓아 구조적 의장재(意匠材)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가구는 종보, 중종보, 대들보로 이루어진 7량가로서 매우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내부에는 율곡(栗谷) 선생이 10세 때 지었다는 〈경포대부 鏡浦臺賦〉를 판각한 것과 숙종(肅宗)의 〈어제시 御製詩〉를 비롯하여 여러 명사들의 기문과 시판(詩板)이 걸려 있다.고 했다,
여기까지의 경포대에 관련한 설명은 다음백과 사전에 기술되여 있는 내용을 참고해 붙인 것이다,
경포대에서 바라보는 경포호 와
경포호 건너 경포대해수욕장 해안에 두동이 서로 연결되여 있는 스카이베이호텔경포 와
오른쪽으로 경포비치호텔이 마치 그림을 그려 놓은 듯이 펼쳐진다,
속세는 간데 없이 온갖 선경이라
나오느니 서경시요, 들리느니 노래라
바다에는 갈매가
호수에는 철새들이 쌍쌍이 날고
천병만마 늘어선 송림서이로
거니는 선삼 선녀의 모습이 그림 같구나
어느 가을 달밤에 경포대에서 호수를 바라보던 세조가 남긴 글
경포대는 관동팔경 중 하나로 지형, 지질적 가치가 뛰여난 자연석호인 경포호와 함께 동해안의 빼여난 절승지로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자녀간 명승지로서 수많은 시, 서, 화, 가 있어 역사문화 경관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영조22년(1746년) 김상성(金尙星 1703~1755)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화원들에게 강원도 절경을 그리게 한 후 친한 사람들에게 시를 지어 완성한 작품이 관동십경(關東十景)인데 그 중 경포대 그림은 경포대와 경호를 높은 곳에서 바라보는 부감법으로 그린 것으로
경호는 경포대를 경계로 하여 내호와 외호로 구분하고 있어며 호수와 바다가 경계 되는 곳에는 백사장과 함께 현재의 죽도봉이 그려져 있고 천혜의 자연경관을 조망하며 심성을 수양하는 곳 일뿐 아니라 풍부한 문학적 소재성 등 문화적 경관적 요소가 결합된 누정으로 장소적 가치가 매우 높은 곳이다,
지붕의 형태는 부연이 가설된 겹처마의 팔작지붕으로서 양측면에 충량이 2개씩 나와 합각부의 무게를 대들보와 측면의 평주로 분산시켜 주고 있으며,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 다음 백과사전 -
경포대 기등 지붕과 연결되는 꼭지점에 매 인지 용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의주를 물고 있는 형상의 멋스러운 장식을 해 놓았다,
경포대 앞에는 경포대 충혼탑 도 있다,
경포대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숲은
경포대 연혁 처름 오래 되지는 얺았지만 보는 것 만으로도 풍요로워 보인다,
낙산사와 하조대, 경포대까지의 일기는 여기 까지다, 다음은 선교장과 오죽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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