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한양도성순성길 와룡공원, 숙정문, 청운대쉼터, 삼청공원까지 2023년 9월 17일 본문
와룡공원에서 정자가 있는 곳에서 한양도성 밖으로 나간다,
이제 가는 길은 말비위 안내소 다,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가는길은 어디한 곳 나무랄데가 없을 만큼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잠시 와룡공원에서 성곽을 따라 가다가 성곽을 벗어나서 산길로 가는 구간을 만난다,
말바위 안내소 800m전방 우회하여 순성길을 이용해 달라는 안내판이 있다,
그리고 한양도성도감의 이름으로 한양도성은 600년 역사를 간직한 소즁한 문화재입니다,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성벽의 일부구간에서 자연적인 현상으로 인한 풍화, 배부름, 균열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시민의 안전과 문화유산을 보호하고 성벽의 원형보존을 위해 안전진단 및 계측관리를 시행하고 있으니 불편하시더라도 우회하여 한양도성을 순성하시기 바랍니다, 라는 당부가 안내되어 있다,
우회하라는 안내가 있는곳에서 아래로 내려와 첫번째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가면 직진과 왼쪽 계단길이 나오는데 여기서는 왼쪽 계단길로 가야하고 그 다음에도 왼쪽 계단이 나오면 계단을 올라가야 한다,
성곽에서 아래로 내려 왔어니 다시 성곽으로 올라가는 길이라서 계단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계단길이 길지는 않지만 여기서는 가파르게 올라 가야한다,
이렇게 가파르게 올라가는 이유는 여기서 성 안으로 들어가는 암문이나 통로가 없기 때문에 이 계단을 올라가서 성곽 위로 성내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니면 아랫녁에서 왼쪽으로 올라 오지 말고 직진으로 가서 숙정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있어나 조금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이 길로 다니게 된다,
위 사진에 보이는 곳이 성곽위로 넘어가는 가장 높은 곳이다, 높은 곳에서 보이는 삼청동 일대 제일 왼쪽에 있는, 三淸閣은 성북동에 있는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1972년 건립되어 1970년~1980년 요정 정치의 산실로 대표되었든 곳이다. 2000년 5월 서울시가 삼청각 부지와 건물을 문화시설로 지정해, 리모델링 공사를 끝낸 후 2001년 10월 새로운 전통 문화공연장으로 문을열어 세종문화회관이 운영하는 곳이다,
성곽 위로 해서 성 안으로 들어간다,
성안으로 들어와서 말바위안내소로 가는 길에 보이는 성북동
여기서부터는 다시 본격적으로 한양도성을 따라 간다, 이제 가는 길은 말바위안내소와 숙정문 방향이다,
도성안으로 넘어 들어온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말바위안내소가 있다,
예전에는 이곳 말바위 안내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하고 입장패찰을 받아 목에 걸고 가야 했는데
대통령실이 용산으로 옮겨갔어니 이 길은 더이상 성역구역이 아니라서 자유입장이다, 그리고 안내판은 문화재청 명의다,
말바위안내소를 지나 계속 성곽을 따라간다,말바위 안내소니 말바위가 있는것은 맞겠다, 말바위란? 어떤 바위일까, 말바위 유래는 이렇게 안내되여 있다, 조선시대 말을 이용한 문무백관이 시를 읊고 녹음을 만끽하며 가장 많이 쉬던 자리라 말(馬)바위라 불리기도 했고 백악(북악)의 산줄기에서 동쪽으로 좌청룡을 이루며 내려오다가 끝에 있는 바위라하여 말(末)바위라 했다는, 설도있는 바위이름이 말바위라지만 가본적이 없어니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겟다
말바위 안내소를 지나면서 부터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이어지는 길이다, 말바위 안내소 지근거리에 숙정문이 있다, 숙정문은 한양도성의 북쪽대문이다, 처음 이름은 숙청문(肅淸門)이 였어나 후에 숙정문(肅靖門)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숙정문은 현존하는 한양도성의 문 중 좌우 양쪽으로 성벽이 연결된 유일한 문으로 1976년에 문루를 새로 지었다,
숙정문은 한양도성 북대문(北大門)이라고도 했다. 경복궁의 주산(主山)인 백악산(白岳山) 동쪽 고개에 위치하였다. 1395년(태조 4)에 숙청문(肅淸門)이 건립되었으나 1413년(태종 13)에 풍수학생(風水學生) 최양선(崔揚善)이 왕에게 백악산 동쪽 고개와 서쪽 고개는 경복궁의 양팔에 해당하므로 여기에 문을 내어서는 안 된다고 두 문을 막을 것을 청하여 창의문(彰義門)과 함께 폐쇄하고 길에 소나무를 심어 사람들의 통행을 금지시켰다,
>다만 한재(旱災 : 가뭄으로 인한 재해)가 심할 때에 이 문을 열고 숭례문(崇禮門 : 南大門)을 닫는 풍속이 있었다.이것은 북은 음(陰)이며 남은 양(陽)인 까닭에 한재 때 양을 억제하고 음을 부양하는 음양오행사상(陰陽五行思想)에서 나온 것으로 1416년(태종 16)에 처음 시작했다.
또한 숙청문을 열어 놓으면 장안의 여자가 음란해지므로 항상 문을 닫았다는 속설(俗說)도 전해지고 있다. 그것은 이 문이 음방(陰方 : 여자의 방위)에 있는 까닭에 이런 말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창건 당시 숙청문(肅淸門)이 어느 때부터 무슨 이유로 숙정문(肅靖門)으로 개칭했는지?는 알려 지지 않는다.
그러나 1523년(중종 18) 중종실록의 기사 이후 역대 각 실록에 모두 숙정문으로 기록되여 있어 숙정문이라 했음을 알수 있고. 1531년(중종 26) 북정문(北靖門), 1587년(선조 20) 숙정문(肅靜門)으로 표기된 것을 볼 때, 정숙한 기운을 일으킨다 는 의미에서 숙정문(肅靖門)으로 명명하지 않았나 정도로 추측한다.
숙정문 일대는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쌓인 소나무 군락지다,
오랜 세월 금역의 지역으로 묶어 있어서 가능 했을 것 같은 소나무 군락지 가운데에 있는
촛대비워 쉼터로 들어간다, 촛재바위라는 이름이 있기는 하지만 앞에 보이는 바위가 전부인곳이다,
어찌되였건 촛대바위 쉼터에서는
백악의 빼여난 전경도 보이고
경복궁 광화문 일대도 조망이 된다,
어디가 어디인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이곳에서 보이는 곳은 종로구 일대다,
잡시 촛대바위쉼터에서 간식도 하고 나서
백악곡성 방향으로 올라간다,
말바위안내소애서 부터는 사진한장 제대로 찍을 수 없었던 한양도성 백악구간이였지만 지금은 모든 활동이 자유스럽다, 백악곡성은 한양도성 길에서 40m정도 위로 올라가야한다,
여기서 백악구간의 정상인 백악마루눈 980m 거리이고 백악곡성 입구는 숙정문에서 700m 거리에 있다,
백악곡성에서 보이는 서울 도심 광화문 일대 사진도 걸려있다,
이런 길로 올라와 곡성으로 가는데
오늘 우리는 곡성으로 올라가지 않고 직진이다, 가는길 짧은 구간이지만 성곽 보수공사도 하고 있다,
백악산 정상부 일대에는 온전히 살아 숨 쉬는 듯한 한양도성이 이어진다,
백악산 정상부 능선 도성 옆에 좀처름 보기 힘든 넓은 공터가 있다, 여기가 청운대 쉼터다
청운대 쉼터를 지나서
조금만 더 가면 문이 달려 있는 저 안쪽에 백악 능선에서는 유일하게 화장실도 있다,
오늘은 여기서 삼청안내소 이정표를 따라 하산을 간다,
첫번째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왼쪽으로 보면 조금 전에 쉬었던 촛대바위 쉼터가보인다, 숲에 가려저서 잘 보이지 않아 촛대 바위 형체를 못 보는게 이쉽다,
여기서 내려가는 길은 거의 계단길이다,
그리고 사실 이 계단길이 개방되여 시민에게로 돌아 온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청운대에서 내려가면 청운대전망대가 있다, 조망터이자 갈림길인 이곳에서는 오른쪽은 청와대로 가는길이고 왼쪽은 삼청안내소로 가는 길이다,
이곳에서는 아차산과 낙산, 롯데월드타워, 님힌산성, 창덕궁과 청계산까지 조망되는 곳이 기도 하다,
왼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법흥사터도 있는데 법흥사 터 유물 돌에 앉았다가 구설수에 오른적이 있는 사연으로 유명해진 청와대 뒤 삼청안내소와 청운대 간 등로다,
일단 오늘은 청와대 방향으로 만새동방으로 간다,
만세동방을 지나가면 청와대로 들어가는 대통문이 있는 곳이다,
이 구간의 길은 모두 데크길이거나 매트를 깔아 놓은 최상급의 길이다,
그럴수 밖에 없는 이유는 예전에 이 길은 대통령 전용 등산로 였기 때문이다,
글씨가 작아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왼쪽 위 능선은 백악마루로 해서 창의문으로 내려 가는길이고 오른쪽능선은 와룡공원에서 곡성으로 청운대로 올라오는 길이며
양쪽 능선 아래 왼쪽은 지금 가고 있는 만세동방을 지나 청와대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법흥사를 지나 삼청안내소로 내려가는 등산로다,
내려가는 사람들은 이길이 버겁지는 않지만 청와대에서 이곳으로 올라오는 사랍들은 힘겨워 하는게 보인다,
이제 마지막 계단을 내려거면
약수터가 있는데
약수터 바위에는 "만세동방" "성수남극" 이라고 바위에 음각 글자가 새겨져 있다,
바위에 새겨진 이 글자로 주변계곡을 만세동방이라 부르고 있다고 하며 이 글자는 누가 언제 새겻는지 알 수 없어나 글자의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나라의 번창과 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동방 東方 : 삼천갑자를 산다는 전설속의 동방삭
성수 聖壽 : 임금의 수명
남극 南極 : 수명을 관장하는 남극의 별로 무병 장수를 뜻함
만세동방 약수터에서 내려가면
이런곳이 나오는데 저곳은 청와대 뒤에 있는 청와대 전망대로 들어가는 대통문이다,
청와대 전망대에서 보이는 전경이 궁금하면 참고하길
대통문 앞에서 삼청안내소로 간다, 이 길로 온 것은 만세동방을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니 삼청공원으로 내려갈 생각이다,
다 내려왔는데 그리고 청와대 뒤 청와대 전밍대로 해서도 내림길만 있는데 여기서 삼청안내소로 가는길은 올라가고 내려 가고를 반복해야 하는 길이다,
계곡이 있어니 다리가 있을터 작은 다리지만 이름이 있다 백악 2교다,
백악2교를 지나 내려 갔다가
다시 또 올라간다,
가끔은 계곡도 보인다, 물은 없어도 물이 흐른 흔적은 촉촉히 남아 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데크길은
계속해서 오르내림을 반복하면서 이어진다,
중간에 잠시 쉬고 나서 이어지는 내림길을 따라 가면
아랫녁에 계곡이 보이는데 여기가 법흥사터 아래 삼청안내소로 이어지는 계곡이다,
계곡에 沃好停(옥호정)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이 정자가 있다, 정자 이름의 뜻은 계곡물을 가두어서 즐기는 정자라는 뜻으로 沃(물댈옥) 好(좋을호) 停(머무를정)자를 쓴 정자다,
계곡을 타고 흘러 내리는 물 줄기가 그리 많은 량은 아니지만
>정자 앞에는 물을 가두어 둘 수 있는 작은 공간의 댐도 있다,
옥호정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삼청안내소와 화장실이 있고,
삼청안내소 앞은 굳게 닫혀 있었든 통문도 있다,
통문을 나가 삼청터널로 연결되는 도로를 건너 삼청공원으로 들어간다,
삼청공원은 서울의 진산인 북악산 기슭에서 삼청천 계곡을 따라 수목이 울창하게 우거진 도심속의 근린공원으로
1934년 3월 삼림공원(森林公園)으로 지정되어 관리되어 오다가, 1940년 3월 12일에 도시계획공원으로 지정(조선총독부 고시 제208호)된 공원이다.
이 공원은 140개의 계획 공원 가운데 제1호로 지정되었다. 당시의 면적은 432,000㎡이었으나, 그 뒤 여러 가지 이유로 이 공원의 구역이 잠식되어 줄었다.
본격적으로 공원 조성 사업이 시작한 것은 1984년의 일이며, 공원조성 계획은 1990년 3월 29일에 수립(서울특별시 고시 제34호)되었다. 지정 면적은 372,418㎡이다,
삼청공원 숲속도서관도 있다, 숲속 도서관 입구 아래층에는 카페도 있는 것을 보니 책보다 먹거리가 우선인 도서관인 모양이다,
삼청이란 이름은 물이 맑고(水淸) 숲이 맑으며(山淸) 사람의 마음까지도 맑은 곳(人淸)이라는 데에서 유래하였다는 설과 깊은 골짜기 안에 도교의 삼청전(三淸殿)인 소격전이 있었다는 데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삼청공원 정문으로 나가서 왼쪽으로 감사원으로 올라가면 감사원앞길 건너 감사원 어린이집이 있고
감사원 일대가 보인다, 이 일대는 감사원과 감사원제2별관까지 함께있는 감사원 단지다,
감사원어린이집 위 골목길로 주한베트남대사관 방향으로 간다,
이 지역은 삼청동일대로
조경수 지만 30~40나 되는 높이의 곧은 소나무도 있는 곳을 지나
북촌로로 나가서, 사우디대사관앞 버스정류장에서 종로2번 마을버스로 YMCA앞으로 이동했다,
YMCA 맞은편에 있는 양평해장국에서 점심을 하고 오늘 일정을 끝낸다, 오랫만에 돌아보는 한양도성 순성길 낙산 구간과 숙정문 구간 일대 더욱이 오랜 세월 비밀의 공간으로 묶어 있던 북악에서 청와대 까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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