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1000년 내소사 대웅전과 3층 석탑(2023년 10월 21일) 본문
내소사 설선당(來蘇寺 設禪堂)과 요사 (寮舍)다, 설선당은 인조 18년(1640)에 청영대사가 지은 것으로 앞면 6칸, 옆면 3칸의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오른쪽 1칸은 마루이고, 앞면에서 남쪽 2칸은 난방을 위한 부엌으로 큰 아궁이를 설치하고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해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유형문화재 제125호다,
요사는 2층 구조로 1층에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방과 식당이 있고 2층에는 저장공간이 있다, 두 건물은 자연 지형을 그대로 이용하면서 지붕을 자연 스럽게 연결했다, 건물 가운데 마루와 우물을 둔 회回 자형의 공간 구성 방식을 보여 준다, 설선당과 요사 전면도 및 평면도 가 전시되어 있다,
내소사 대웅보전이다, 내소사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불을 모셨다. 봉래루와 설선당과 요사에 이어 대웅보전도 단청이 없다, 내소사는 원래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세운 소래사였다고 한다. 임란때 소정방이 다녀갔다 해서 이름이 그렇다고 하는 말 들도 있는데 이는 요즘말로 전형적인 가짜 뉴스다.
임진왜란때 불타 소실된 내소사를 인조 11년(1633)에 청민대사가 건립한 대웅보전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그리고 대웅보전 앞 삼층석탑은 신라 탑의 양식을 따른 고려시대 탑으로 높이는 3.4m이다.
맨 아래의 받침대와 몸체도 층마다 하나의 돌을 사용하였으며, 각 면마다 기둥을 새겼다. 몸체와 지붕돌은 위로 올라갈수록 그 크기와 높이가 급격하게 줄었으며, 지붕돌의 경사도 심한 편으로 날렵한 느낌을 주는 탑이다. 유형문화재124호다,
대웅전 불상 뒤쪽 벽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상이 그려져 있으며, 단청은 관세음보살이 오색찬란한 새의 모습을 하고 칠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 새는 대호(大虎)스님인바 내생(來生)에나 소생(蘇生)하라고 소래사라 했다는 내소사 대웅전은 쇠못을 쓰지 않고 목재로만 지었으며 우물 정(井)자 천장과 용이 물고기를 물고 있는 보머리와 문살조각이 뛰어난. 보물291호다,
대웅전 지붕은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 부분에 장식구조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 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우리 옛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대웅보전 한옥 구조는 기단에서 부터 용마루까지 생각보다 복잡하기만 하다,
부안 내소사 대웅보전에 대한 안내다,
대웅보전 왼쪽(대웅전을 바라보는 방향에서)옆에는 조사당이 있다, 조사당은 절의 창건자 이거나 절의 명성을 드높인 왕사 혹은 국사 스님이거나 우리나라 불교 발전을 이루어내신 유명한 대사님을 추모하기 위해 그 분의 영정을 모신 전각을 조사당이라 한다,
조사당으로 대표적인 것은 승보종찰 순천 송광사다, 16분의 국사를 배출한 유명한 사찰이니 그 분들을의 진영을 모신 국사전이 유명하다, 내소사 조사당은 6평의 목조한와 맞배지붕으로 된 건물로 내소사에 주석하셨던 조사 스님들을 봉안한 전각다,
조사당 뒤 제일 높은 곳에 내소사 삼성각이 있다, 내소사 삼성각은 1941년 능파스님이 건립했다. 독성(獨聖), 칠성(七星), 산신(山神)을 봉안하기 위하여 6평의 목조 맞배지붕으로 86년과 93년 2차에 걸쳐 우암혜산선사가 보수, 해체 복원하였다.
삼성각은 이름대로 치성여래를 중앙에 모시고 좌 우 에 산신과 독성이라는 세분의 성인을 모셧다 해서 삼성각이다, 삼성각 없는 절 집이 없을 정도로 어느 절에나 다 있는 그래서 너무 친숙한 보조불전이다,
산신은 모르는분이 없을테니 독성에 대해서 설명을 하면 홀로 독獨 자를 써서 독성이다, 홀로 깨달은 성인이라는 뜻이지만 보통은 나반존자를 가르킨다고 한다,
부처님 제자로 특별한 신통력을 지니셨다고 알려져 있다, 그래서 중생들이 그 분께 기도하면 그 분의 특별한 능력으로 도와 주실 것이라는 독성 신앙이 생기게 되었고 이렇게 삼신각에 모셔지게 되었다,
내소사 삼성각 현판이다,
삼성각은 어느절이든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는 당우이기 때문에
내소사에서도 대웅전이 내려다 보인다,
그리고 대웅보전 옆에 있는 조사당도 보이고
조사당 옆에 있는 당우는
지장전이다, 지장전은 명부전이라고도 하는데 지장전에는 지옥중생을 전부 제도한후 성불하겠다고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과 협시로 무독귀왕과 더명존자 그리고 저승의 시왕과 판관등이 모셔져 있다, 지장전이나 명부전은 죽은자의 명복을 비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절에서는 절의 중심에 대웅전이 있고 대웅전옆에는 지장전이나 명부전이 있다, 이는 살아있는 사람들이나 죽은 자의 복을 비는 것이 함께라는 뜻일게다,
대웅전 앞 봉래루는 내소사 불이문으로 창건시에는 만세루 였는데 1926년에 봉래루로 명칭이 바뀌였다고 한다, 중국에 신선이 산다는 봉래산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2층은 설법을 듣는 강당으로 활용하고 있어며 루 아래를 통과하며 고개를 숙여 겸손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뵐 수 있도록 했다는 의미가 있다,
봉래루 아래로 나가는길 봉래루 누각 기둥에 한국33 관음성지 제8호 내소사라는 현판도 보인다,
그 앞으로는 고려 동종각도 있고
작은 고목도 있다,
그리고 봉래루와 사천왕문 사이 큰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느티나무가 내소사 느티나무 신앙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유명한 수령 1000년의 느티나무다,
느티나무에서 봉래루 옆으로 올려다 보이는 내소사 3층석탑과 대웅보전
단청이 없어니 더욱 더 고풍스러운 대웅보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못내 떠나기가 아쉬워서 대웅전 앞 마당 촛불 함에 촛불을 켠다, 초 한자루에 불을켜고 손 모아 합장을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마는 불자는 아니드라도 마음이 가는대로 하는 것이니 마음이 편하면 되지 않겠는가,
이제 대웅전 마당을 나가는길 왼쪽 한켠에 벚꽃이 피여나고 있었다,
봄에만 피는 벚 꽃이 가을에도 피다니 이게 무슨 일일까? 이상 기온이라 벚꽃도 철을 모르는 모양이다,
그러나 이 벚꽃은 봄, 가을, 일년에 두번 피는 춘추벚꽃 이라는 안내가 있다,
내소사 를 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다시 한번 더 돌아보는 내소사 경내, 오랫만에 찾아 오기도 했지만 다시 온다는 시기는 언제가 될려는지 기약을 할 수없어니
그래도 때가되면 가야 하는게 순리다, 단풍나무 숲길을 따라 나간다, 아직은 단풍이 들지 않아서 초록 숲이지만 이제 금방 묽은색으로 물들 단풍을 상상하면서
절에서는 흔하게 보는 모습이 여기도 있다,
대장금 찰영지에서 기념사진 한장 정도는?
전나무 숲길을
따라 나가면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 역사와 배경에 대한 안내도 있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석포리 당산제의 역사는 문헌상 기록이 없기 때문에 그 역사를 가늠하기가 불가능 하지만 신목으로 모시는 느티나무의 수령이 1,000년과 700여년이 되기 때문에 고려시대나 조선시대 민속신앙이 기층민들의 생활 깊숙히 전파되였을 때 부터 시작되였다는 설이 있다,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는 현재 사찰과 마을이 합동으로 당산제를 지내면서 내소사 석포리당산제로 불리며 사찰 안에 있는 할머니 당산과 사찰입구(마을북쪽)에 있는 할아버지 당산으로 불린다, 2010년 이후 내소사와 석포리 지역주민이 공동으로 당산제를 주관하게 되면서 그 의식과 신앙의 형태가 더욱 굳건하게 다져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마을입구 할아버지 당산나무(700년)에는 2014년 작은공동체 전통예술잔치 우수축제선정마을 내소사 석포리 당산제 동판(문화체육관광부와 KOTRA 공동명의)도 있다,
내소사입구 3자매가 운영한다는 내소식당, 1인분 20,000원 솥밥정식으로 점심을 하고, 고군산군도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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