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봉화길 제3길 너른고을길 上(광주역~국수봉)2024, 6, 9, 본문
봉화길 제3길 너른고을길은 1,000년을 이어온 광주의 세월을 느껴보는 길로 광주는 940년(고려 태조 23)에 廣州라는 지명을 쓰기 시작해 1,000년을 넘게 써온 지명이다, 넓을 광(廣)을 쓸 만큼 드넓은 지역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으며 수원으로 편입된 일부 면과 서울 강남 및 강동구, 남양주 일부, 의왕과 군포, 성남, 하남, 일대가 모두 광주였다
이렇듯 넓고 광활한 지역라는 뜻으로 너른고을 이라 했다는 廣州(광주), 봉화길 제3길에 있는 국수봉 정상에서 광주의 드넓음을 느끼고 곤지암천에서 세월속에 간직된 나의 의미를 찾아보기 바란다는 너른고을 길을 걷는날
2024년 6월 9일 9호선 신논현역에서 신분당선을 타고 판교역으로 가서 경강선으로 환승해 경기 광주역으로 왔다,
광주역앞 광주역로로 왼쪽 경안천 방향으로 간다,
여기는 경안천을 건너가는 인도전용 육교가 있는데 육교앞 엘리베이터 입구에 너른고울길 경기광주역~곤지암역 까지의 15km 경기옛길 봉화길 안내가 있다, 이 길은 1000년을 이어오는 광주의 느껴보는 길로 광주는 940년(고려태조 23)에 광주라는 지명을 쓰기 시작해 1000년을 써온 지명이라고 한다,
봉화로 제3길 출발은 광주역좌측에 있는 경안천 경안브릿지를 건너가야한다, 육교입구에 있는 너른고월길 안내를 보고나서 육교전용 엘리베이터로 육교로 올라왔다, 물론 계단 길도 있다,
육교로 올라와 옆에있는 광주역을 보고나서,
육교를 건너간다, 이 육교의 공식 이름은 경안천브릿지로 경안천 건너마을 주민들이 광주역으로 다니는 전용육교다,
경안천브릿지를 건너가면서 경안천 상류를 보면 경안교와 경안대교도 있다,
경안천브릿지는 약 300m 정도는 되는 것 같다, 육교를 건너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경안천변으로 내려왔다, 여기서는 경안천 하류방향으로 내려가야 한다,
가는 길 첫번째 다리는 광주역에서 곤지암역으로 연결되는 경강선전철 아래 둑길이다,
이지역은 광주시 종합운동장 공사를 하고 있는데, 2026년 2월 준공이라는 안내가 있다,
경안천 건너 광주도심 일대와 경안천변 갈대밭도 잘 어울리는 그림이다,
이곳 둑길은 한가롭다 못해 적막하기까지 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둑길을 따라 청석로까지 가면 인도가 없어 경안천변 공원으로 내려가야 한다,
청석로(도로)에서 경안천변 공원으로 내려와 잠시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계단 난간 사각 파이프에 경기옛길 시그널이 숨어 있듯이 걸려 있어 잘 보이지 않았다,
봉화길 시그널을 보지 못한채 파크골프장 옆 자전거 길로 계속해 내려 가다가
파크골프장 끝에서
작은 나무 다리를 건너 내려가다 보니
장의자 두 개가 있는 쉼터가 있는데 청석바위에 대한 유래도 있다, 청석바위 유래는 봉화2길 下편에서 이미 언급을 했어니 오늘은 청석바위를 노래한 시를 옮긴다,
"희한의 정기 받아 맑고도 찬연한 대 물빛도 푸르러 바위도 푸르러 우리들 마음의 꿈도 하늘처름 프르러"
"바위를 끌어안던 희디흰 모래펄에 숱한 애환 묻었던 인연은 흘러가고 지금은 바람을 건너 은 갈대 숲만 푸르러"
"칠사산 무갑산 감싸 도는 능선 아래 옛 시정 그리움 담아 서리서리 흐르는 곳 이곳에 가슴을 묻고 너른 고을 지키네"
"폭풍우 타는 가공 물굽이 잠재우고 누천년 명목의 세월 묵묵히 감고 감는 그대는 광주의 역사다, 푸르고 푸른 꿈이"
여기서 길을 잘못 들었음을 알게 되여 다시 파크골프장 입구로 돌아왔다, 지나간 거리가 700m 정도이니 왕복으로 치면 .1,4km나 되는 먼길? 알바를 했다, 잘보이는 곳에 이정표까지는 아니드라도 리본이라도 잘 보이게 걸어 놓았어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
경안천공원 파크골프장에서 제방위 도로(청석로)로 올라왔다, 그리고 인도를 건너간다,
전시주에 곤지암역 13,8km 이정표가 길을 알려주는 골목길로
쌍령동 마을로 들어가 CU편의점 뒤 골목으로 들어간다,
CU편의점 맞은편 쓰레기 수거장에 곤지암역 13,4km 이정표도 있다,
리본 시그널을 따라 골목길을 따라간다,
골목길 마지막집 물 홈통에 걸려있는 리본도 지나가니
샘물교회가 보이는 곳 왼쪽에 봉화로 제3길 너른고을길 안내가 있는데 봉화로와 우시장 이야기다
조선 후기에 봉화로는 남쪽 지방에서 한양을 향해 올라오는 소의 이동경로가 되면서 대로로 성장한다, 18세기 후반 이후 19세기에 들어와 한양의 쇠고기 수요가 증가하고 쇠가죽 수출이 확대되면서 지방에서 올라오는 소의 마릿수도 점점 늘어나고 경안역의 경안장과 삼전도의 솔파장은 모두 규모가 큰 우전(牛展)이 열렷다,
장에서 소를 거래 하였는 가의 여부는 해당장의 규모를 가르는 중요한 기준이었다, 따라서 봉화로 노선상에 존재하는 우(牛)시장은 해당지역이 소를 거래할 정도로 큰 교역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는 근거가 되고 경안장에서 송파장으로 가기 위해서는 두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데 하나는 새오개를 넘어 산성을 지나 장자동으로 넘어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니부티, 즉 이배재고개(광주-성남간 길)를 넘는 길이다,
새오개를 넘어면 광주 읍치를 들를 수 있지만 경사가 가파른 것이 흠이고 이배재를 넘는길은 구불구불한 길이기 때문에 경사는 가파르지 않지만 도둑의 피해가 우려 되었다, 산 허리를 따라가는 이배재고개를 넘으면 송파까지 깊으내주막, 삼거리주막 등 여러 주막이 이어졋는데 이 역시 늘어난 통행량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했다,
샘물교회앞 봉화길 안내를 차분히 음미하면서 옛 시절을 생각하다 보니 서서히 높아지는 산 길은 큰 묘지 앞으로 연결이 된다,
범상치 않아 보이는 묘지앞 비석을 보니 溫陽方氏 三十世諱(온양 방씨 30세) 묘지다, 온양 방씨 중시조 쯤 되시는 분의 묘소인가 보다,
그리고 그 옆 오른쪽에도 묘소가 있는데 봉화길은 오른쪽 묘소 옆 숲으로 이어진다, 여기도 봉화길 시그널은 없다,
숲 길로 들어가기 전 다시 돌아 본 방씨 묘지 일대, 산 비탈이지만 잘 다듬어 놓았다,
그리고 잠시 숲 길로 들어가면 경기옛길 리본이 걸려있다, 천리안도 아니고 숲속에 숨어 있는 리본을 어떻게 보라고? 그래도 리본을 찾았어니 제 대로 길을 찾았다,
이번에는 萬石塔(만석탑)이 있다, 누가 어떤 일로 만석탑을 세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나름 볼거리는 된다,
만석탑 앞쪽에는 비석이 여러개가 있는 묘지도 있는데 또 어떤 분들의 묘소인지? 알길이 없고
비석이 보이는 곳에서 왼쪽으로 들어가니
검은천으로 경계 울타리를 만들어 놓은 곳이 있는데 가운데가 야자매트를 깔아놓은 길이다,
길은 꽤나 먼 거리에 검은천으로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다,
야자매트길은 나무계단으로 도 이어지는데
무었? 때문에 천으로 경계를 만들어 놓았는지? 궁금해서 안쪽으로 들여다 보니
장뇌삼 농장인듯 하다, 농장물 보호를 위해 만든 울타리다,
장뇌삼 농장 사이길은 계속 계단 길을 따라
올라간다,
계단길 길이가 조금 길어서 숨이차고 힘들때 쯤, 언덕으로 올라서니
봉화길 제3길 스템프함이 있다,
태백산 사고를 본 따서 스템프함을 만들었다는 독특한 디자인의 스템프 함에서
경기도 봉화길 - 너른고을길 스템프를 찍고
이정표를 보니 올라 온 마을인 쌍령1통 마을회관에서 는 1km이고 국수봉 정상은 260m남았다고 알려준다,
정상의 거리가 260m이면 그리 멀지는 않지만
계속해서 계단으로 올라가는 길이라 만만치는 않다,
힘겹게 계단길을 올라가니 고압전선탑을 관리하는 구조물이 있고
잠시 능선을 따라 가다가
다시 한번 더 계단으로 올라가면
운동기구도 있고 작은 정자도 있는 곳이 보이는데
여기는 지금 까지 산으로 들어 온 이후에 처음으로 보는 꽤나 넓은 평지다,
그리고 평평한 곳 오른쪽 끝에 2층 정자가 보이는데 여기가 국수봉 정상이다,
2층 정자에서는 광주일대 시내가 내려다 보이는데
광주시내를 처음 내려다 보는 사람으로서는 광주시내가 상상을 초월 할 만큼 큰 도시다,
어디가 어디인지? 다 알지는 못하지만 지나온 발걸음을 더듬어 보면 사진 오른쪽에 흐르는 개천은 목현천이고 바로 아래로 흐르는 천은 경안천이다, 목현천은 경안천으로 흘러들고 경안천은 팔당호로 유입된다,
우리가 아침에 건너 온 경안천브릿지로 불리는 육교도 보이고
경안천브릿지 앞에 광주역이 있는 것도 보인다, 아치형 구조물이 있는 다리가 육교다
그리고 정상 2층 정자 옆에는 국수봉(國守峰)정상석도 있다, 국수봉은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이 청군에 포위되어 위급할때 경상좌도 병마절도사 허완(許浣)이 일만여 군사를 이끌고 북상하다 쌍령리에서 청군과 맛서 용전분투 하였으나 중과 부족으로 많은 군사가 전사 하였으며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민영과 병마절도사 이의배 안동영장 신세향 등 여러 장수도 전사했고 경상관찰사 沈演(심연)은 패퇴하여 땅을치고 통곡한 전적지 쌍령리에는 다섯분의 충령을 모신 정충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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