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봉화길을 마치며 上(하남당정뜰~세종대왕릉)2024년 10월 5일 본문
경기옛길 봉화길 전구간을 다시 정리하는 이유는 특별한 의미가 있어서가 아니라 조선시대 간선도로망 6대로 체제에서 평해로와 영남로(동래로)라는 두 대로 사이에 있었던 도로의 하나인 한양에서 경북봉화까지 이어지던 큰 길을 현재의 길로 답사하면서 본 긴 이야기를 상 하편으로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 함이다,
봉화로는 1770년 신경준의 도르고 에서 정식 간선도로망 중 하나로 인정 받지는 못하나 점차 상업의 발전으로 인하여 10대로의 도로망 확장 체제에서 경북지역을 연결하던 길이였으며, 현재의 경기도 관할 시작은 하남시 당정뜰이다,
봉화길은 한양에서 광주와 이천을 거쳐 충주를거처 경북 봉화까지 이어지는 노선은 거의 직선에 가깝고 기복이 적어 최상의 교통 여건을 구비한 곳이였으며, 한강 유역에서 상업 활동을 하던 상인들에게 주요한 상업로로 활용되였던 길이다,
당정뜰에서 덕풍천길을 따라 이어지는 봉화길 첫 향교는
하남시에 있는 광주향교다, 지금의 하남시는 예전에 광주고을이였다,
광주향교에서 남한산성 북문으로 올라가면 남한산성행궁 앞 산성로터리로 이어지고
이어서 남문방향 남한산성로를 따라 남한산성 제7암문(제1남옹성 암문)을 지나 한양삼십리길을 따라간다, 한양삼십리누리길은 광주시 목현동에서 남한산성까지 12km로 조선시대 관원들의 군사정보 전달과 지방선비들의 과거길로 병자호란 인조임금의 고뇌재현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남한산성의 역사와 문화를 알리고자 조성된 숲길이다,
봉화로는 노선이 거의 직선에 가깝고 기복이 적고 강이나 내(川)등 건너기 힘든 장애물이 없어 최상의 교통여건으로 "소의 이동" 이 보장되는 牛路(우로)로 활용되었던 길이다,
봉화로의 중요성은 역대 조선왕조의 실록과 왕실족보인 璿源譜(선원보)가 移運(이운) 되던 역사 保障(보장)의 길이라는 것이다,
한양양누리 삼십리 길은 검단산으로 이어지는데 검단산에서는 청나라 전승비(戰勝碑)인 삼전도비(三田渡碑)가 있는 잠실일대가 내려다 보인다, 남한산성과 잠실 일대는 우리 민족이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치욕의 역사 현장이다,
봉화로는 태백산로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조선시대 10대로 중 유일하게 종점이 내륙인 것도 특징이다, 남한산성을 지나 가면서 "자전곶교지 광주략도" 남한산성 옛길에 대한 역사적 내용들을 살펴보면
"대동지지"의 정리고 성내분로조(城內分路條)에 따르면 도성에서 살곶이다리(서울시 사근동)까지의 길은 흔인문, 동묘, 영도교, 왕십리, 차현을 지난다, 영더교는 청교천 본류에 가로놓인 다리로 황학동에 있었고 황학동에서 중앙 시장을 지나 왕십리길을 통해 살곶이 다리까지 이어졋다,
차현은 수레의 왕래가 빈번해 붙은 이름으로 현재 한양대학교 교내에 편입돼 있다, 살곶이 다리는 중량천에 놓여진 다리고 이를 건너면 뚝섬(살곶이 벌), 자양동, 신천진(서울시 신천동)으로 이어진다,
신천진은 잠실도(蠶室島)의 북안에 위치한 나루로 남안에는 잠실이 있었고 여기서 한강을 건너면 송파진에 닿았다, 지금은 신천진 자리에 잠실대교가 놓였고, 송파진은 송파대로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정황은 1890년 중반에 측도된 구 한말 한반도 지형도(남용우 편, 1996, 성지문화사 영인본)와 1910년대 일제가 제작한 5만분의 1 지형도에 잘 나타나 있다,
송파진 건너 이후의 봉화로는 문정동까지 송파대로와 일치하고 올림픽훼밀리타운 아파트단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송파세무서, 서울여학생 생활교육원, 하남시 학암동, 남ㅎ나산성까지, 남한산성 부터는 308번 지방도로를 따라 검북참(광주 중부면 검북리) 오전리, 새오고개, 목현리 경안리까지 이어진다,
남한산성 부터는 308번 지방도로를 따라 검북참(광주 중부면 검북리) 오전리, 새오고개, 목현리 경안리까지 이어진다,
마을 서쪽에 뾰죽바위를 곤지바위로 부른데서 이름이 붙은 곤지암은 봉화로를 기반으로 실천면은 물론 이 일대의 상업요지로 기능해 왔으며 옛 선조들의 생활 문화의 큰 줄기가 되는 도로(옛길) 주변에는 다양한 문화유산이 존재하는데봉화로 역시 많은 유산과 지역의 명소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독특한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도보길 이다,
경안리에서 장호원까지는 3번국도와 거의 일치한다, 대쌍령과 소쌍령으로 이어지는 쌍령은 대도여지도에 따르면 그 너머에 쌍령점이 있으므로 오늘날 쌍동리에 해당할 것이다, 이곳에서 경안천의 지류인 곤지암천이 합수 한다,
곤지애(실촌면 곤지암리)역시 경안동과 마찬가지로 5일장의 역사가 오랜 곳이다, 마을 서쪽에 뾰죽바위를 곤지바위로 부른데서 이름이 붙은 곤지암은 봉화로를 기반으로 실천면은 물론 이 일대의 상업요지로 기능해 왔으며 최근에는 중부고속도로 인터 체인지가 건설 되면서 중심성이 더욱 높아 졋다, ,
넋고개로도 불리는 광현(실촌면 신촌리)은 경안천과 복하천의 분수령이 되면서 동시에 광주와 이천의 경계점이 된다, 장등점은 여주군 가남면 태평리 섬배(蟾背, 섬비)마을로 추정된다
음죽은 청미천 유역에 위치한다,1914년 이천으로 편입되면서 청미면이 되어 군으로서의 이름을 잃었다, 장해원은 오늘날 장호원으로 음죽의 치소가 장호원읍 선읍리에 있었다, ,
장호원은 전국의 시장 정보가 최초로 수록된 자료인 "동국문헌비고"(1770) 때부터 지금까지 5일장이 개시되는 곳으로서 음죽의 전통적인 상업요지다,장호원은 일찍이 1941년에 읍으로 승격된다
한양양누리 삼십리길을 지나 광주로 들어왔다, 광주를 흐르는 京安川변은 청석공원이다, 청석공원이라는 이름은 개울가 돌색이 푸른 청석바위가 있던 곳을 상징하여 청석공원이라고 했는데, 이는 조선을 건국할 당시 휼륭한 충신들이 목숨을 많이 잃었는데 이때 불운한 국운을 애통해 하던 일곱명의 한학자들이 칠사산에서 은거했다,
학사들은 낮에는 산속에 숨어 지내다 석양 무렵이면 경안천에 있는 바위에 앉아 고려에 대한 그리움과 시름을 달래곤 했는데 물에 젖은 바위가 노을에 반사되어 유난히 푸른 빛을 띠는 것을 보고 고려에 충절을 다짐했던 자신들의 마음과 같다해서 청석바위라고 불렸다, 위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나 정황으로 볼때 청석바위로 부르기 시작한 시기는 600년이 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읍치가 성 밖 경안리로 나온 것은 1906년으로 경안리는 오래 전부터 경안역, 파발막, 관청, 장시가 밀접한 광주의 중심 지였다, 경안리에서 장호원까지는 3번 국도와 거의 일치한다, 내려다 보이는 곳은 광주역이다,
봉화로(奉化路) - 사고(史庫) 로 통하는길, 여암 신경준(1712-1781)은 1770년에 그의 저작 도로고(道路考)에서 처음으로 조선의 간선도로를 6대로(大路)로 파악하고 이후 고산자 김정호(?~1864)는 1860년대에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10대로로 확대해 규정했다, 약 100년 사이에 4개의 대로가 추가된 셈이다,
이중 첫번째 대로(大路) 즉, 조선시대 7대로가 곧 봉화로(奉化路)이다, 奉化路에 大路의 자격이 부여된 때는 19세기 초반으로 임원십육지(林圓十六志)와 산리고(山里考)등의 자료에서 이를 알 수있다,
봉화로의 출발점이 한양인 것은 다른 대로와 마찬가지다, 하지만 종점이 보통의 고을이 아닌 태백산사고(太白山 史庫)라는 특정 지점인 것이 이채롭다, 이 사고가 설치된 곳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의 각화산 산중이다, 조선의 실록은 처음에 춘추관과 충주사고에서 보관했는데 세종 대에 이르러 증설의 필요를 느껴 경북 성주와 전북 전주에 사고를 더 설치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중에 전주본을 제외한 다른 실록이 소실되었고 이에 전주본을 바탕으로 명종까지의 실록을 다시 만든 후 평북 영변의 묘향산에 사고를 설치해 전주본을 옮기고 강릉 오대산과 봉화 태백산, 무주 적성산에 사고를 더 지어 새로 간행한 실록을 분산 보관하기 시작했다,
전주본은 이후 1628년(인조 6)에는 강화의 마리산으로, 1660년(현종 1)에는 같은 섬 안의 정족산으로 옮겨 다니게 된다,
500년을 써 내려온 역사 기록물인 조선왕조 실록은 한국이 자랑할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이에 조선 왕조실록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더불어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되었으며
2001년 9월에는 승정원 일기와 프랑스에서 소장하고 있는 직지심체요절(하권)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세계기록유산은 2004년까지 세계적으로 총 90건이 지정되어있다,
봉화로의 종점이 하필 태백산 사고 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지만 전주, 무주, 강릉, 강화 등이 각기 통영로, 제주로, 평해로, 강화로, 본선 또는 지선이 지나고 있으므로 사고는 기본적으로 대로로 연결되는 주요 지점으로 인식 되었던 듯하다
대강의 봉화로 경로를 살펴보면 한성의 동대문이나 광희문을 나선 봉화로는 살곶이 다리로 청계천을 건넌 후 송파진, 광주 경안동과 곤지암, 이천, 음죽을 경유해 경기도를 벗어나고 이후 충주, 단양, 죽령, 풍기, 영주 등을 지나 봉화까지 이어진다,
봉화로는 경기도 이천과 충청도 충주의 가흥창 및 서팡에서 분기하는 3개의 1차 지선이 있는데 여주, 제천, 영춘, 청풍, 순흥, 예안 등이 이들 지선으로 연결된다, 봉화로 도로 관리는 한성에서 음죽까지는 경안도(慶安道)에서 이후의 구간은 연원도(蓮原道)에서 담당했다
오늘날 봉화로 노선은 대체로 서울에서 장호원까지는 3번 국도, 장호원에서 충주까지는 38번국도, 충주에서 죽령까지는 36번 국도, 죽령 이후 봉화까지는 5번 국도 및 36번 국도로 연결이 된다, 대동지지 에 의거한 경기도 내의 봉화로 노선은 다음과 같다,
경도(京都) ~ 전곡교(箭串憍, 10리) ~ 송파진(松坡津, 5리) ~ 가장 가까운 남쪽의 율현까지 15리, 추령ㄲ자 30리, 용인까지 20리, 가장가까운 남쪽 나루인 심정까지 20리, 이보현까지 5리, 신현까지 15리,
경안역까지 10리) ~ 검북참 15리, ~ 경안역(慶安驛, 15리) ~쌍령점(雙嶺店, 10리) ~ 곤지애 10리, 광현(廣峴 15리) ~ 이천(利天) 20리)로 서울에서 130리, 분기점 ~ 장동점 30리(광현으로 진입하지않고 이천까지는 직진 고리로 45리) ~ 음죽(陰竹 20리, 서울에서 180리, 덩븍방향의 여주까지 50리) ~ 장해원(長海院 10리)다,
"대동지지(1864년)" 봉화로 원형노선
한양 ~ 봉화 전체 500리, 196km
(한양) 전곶교 -> 신천진 -> 송파진
(경기) 율목정 -> 남문 -> 검북참 -> 경안역 -> 쌍령점 -> 곤지애 -> 이천 -> 장호해원
(충북) 오갑 -> 용당 -> 충주 -> 활강역 -> 수산역 -> 장위점 -> 단양 -> 죽령
(경북) 창락역 -> 풍기 -> 창보역 -> 연천 -> 내성점 -> 봉화
신둔도예역을 지나 설봉산으로 올라왔다,
설봉산은 해발 394m의 낮은 산이지만
이천의 진산으로 이천 시내 사방팔방이 조망되는 산이다,
설봉산을 내려가면 설봉공원이다,
경북봉화에 있었든 태백산 사고(史庫)에 대해 알아보면
태백산사고(太白山史庫)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aks.ac.kr)
설봉호수를 지나 이천미란다 호텔 뒤편으로 가면 이천 안흥지에 애련정이 있다, 愛蓮亭은 이천읍지에 의하면 객사 남쪽 정자가 언제 창건되었는지는 모르나 세종10년(1428)에 중건하고 성종5년(1474) 이천부사 이세보가 다시 중건 했어며 정자 옆 습지에 안흥지를 파서 그 가운데 연꽃을 심고 영의정 신숙주에게 애련정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제5길 남천주길 <해동지도 海東地圖 >에서 보여지는 옛 이천의 모습과 봉화대로 <해동지도 海東地圖 > 이천부의 옛 지도에는 읍치를 중심으로 주변의 산세와 도로, 하천등을 그려 넣었으며, 이천부의 경계까지 표현했다, 주요 지형지물과 읍치를 중심으로 그려진 비교적 단순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지도의 상단과 측면에서 이천의 연혁과 함께 주요 산천에 대한 위치 설명도 수록되여. 있어며 이천읍치에서 주변 마을의 거리도 함께 수록해 놓았다, 봉화대로는 지도의 북서쪽 광현(廣峴)에서 시작하는데 광주계이십리(廣州二十里) 라는 거리 표시와 함께 이 길이 대로임을 표기해 놓고 있다
애련정을 나와서 설봉삼거리로 왔다, 설봉삼거리 중리 천변에는 이렇게 높은 아파트단지도 있다, 이 아파트는 이천롯데캐슬 페라즈 스카이 오피스텔과 아파트, 그리고 이천롯데캐슬 골드스카이 아파트 단지로 단지내에는 롯데마트까지 있는 이천시에서는 제일 높은 아파트 단지인 것같다
이곳 중리천 변에도 말끔하게 잘 꾸며놓은 공원이 있는 이렇게 멋스러운 연못도 만들어 놓았다, 꽤 큰 연못이기도 하고 관리도 잘 되여 있지만 주변에 주차장이 없어니 멀리서 부터 걸어와야 하는 곳으로 보여 평소에 많은 사람들이 오지 않는 것 같은 공원이다,
복하천이다, 복하천은 하천폭이 넓은 하천이다, 고려 태조인 왕건이 후백제군과 일전을 벌이기 위하여 지금의 이곳 福河川에 이르렀을때 서목이라는 사람의 도움으로 건널 수 있었다, 아마 그때도 강물이 많아서 쉽게 건널 수 없었든 모양이다, 후백제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왕건은 이 하천에 이섭대천(利涉大川)이라는 글귀를 내려주었고 여기서 利涉大川의 앞 뒤 글자를 따서 이천이라는 지역명이 비롯되었다는 하천이다,
복하천에 있는 복하교를 건너가 복하사거리 복하IC교 아래를 지나가면 이마트 후레쉬센가 있고 이어서 오랜 역사가 있는 오비맥주 이천공장이 다
부발농협 하나로 마트와 부발농협이 있는곳과 신화초등학교를 나가면 죽당천으로 이르게 되는데
죽당천을 따라 올라가면 부발역이 있다, 판교역에서 부터 이어지는 경강선 전철은 부발역을지나 여주역으로 이어지지만 충주로 가는 고속철은 부빌역에서 충주방향 오른쪽으로 갈라진다
1930년부터 1972년 까지 수원에서 이천을 거쳐 여주를 잇는 수려선 협궤열차가 지나 다녔다, 일제 강점기 시기에는 이천과 여주일대에서 생산되는 쌀을 인천항까지 운송하기 위해서였고 해방 후에는 지역민의 사연을 가득 담은 이동수단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 흔적조차 찾기 힘든 협궤열차가 아니라 경강선 전철이 다닌다, 오늘은 협퀘열차 흔적을 찾아가는 골내근길 14km를 약 3시간 정도, 이곳 부발역에서 세종대왕릉까지의 길을 간다,
이천의 드넓은 옥토는 보는것 만으로도 편안하다, 평야지대는 아니지만 이천쌀로 유명한 곡창지대라 그런지
넉넉해 보이기만 하는 지역이다,
양화천변을 따라 세종대왕릉역으로 간다, 양화천은 이곳에서 대신천과 양거천을 합류해 흐른다,
대신천은 가남읍 행정복지센터 방향에서 흘러내려 오다가 삼근교에서 안금천을 합류하고 영동고속도로 양화교를 지나서 본두천도 합수해 흘러내려오는 큰 줄기의 천이다,
부발역에서 세종대왕릉으로 가는 경강선 열차가 지나가는게 보인다, 경강선은 세종대왕릉역을 지나 여주역까지 가면 종점이다
세종대왕릉역으로 가는 길은 나무 그늘이 전혀 없다, 그래서 일까? 막바지에 보이는 소나무숲이 생소하게 느껴지는 길이다,
넓은 들녁 끝에는 농가가 줄지어 있는 마을이 있고 저 마을을 지나 조금 더 가면
세종대왕릉 역이다, 역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동쪽 약 3km 남짓 거리에 조선 4대임금인 세종대왕과 소헌왕후를 모신 영릉이 있으며 그 옆에는 조선 17대 임금인 효종과 인선왕후의 쌍릉이 위치해 있다
세종대왕릉역을 지나 경강선 전철변으로 세종대왕릉으로 간다,
원래 세종대왕릉에 있었던 이인손의 묘는 세종대왕릉이 옮겨 오면서 이 자리로 이장했다, 충희공 이인손 묘 문화유적지라고 한다
이인손은 태조4년(1395)부터 세종대왕까지 한성부윤(서울시장)까지 오른 인물로, 수양대군이 단종 왕위를 찬탈하는 계유정란에 참여한 쿠데타 세력으로 2등 원종공신이 되어 우의정까지 올랐어나 수양대군과 세조로 부터 토사구팽 당하며 씁쓸하게 퇴장했던 인물이다,
이렇게 한적한 곳에 있는 이인손의 묘가 유명한 이유는 이인손 묘는 원래 세종대왕릉(英陵) 자리에 있었는데. 세조가 죽고 뒤이어 오른 예종때 세종대왕릉은 서울 내곡동 대모산기슭, 태종릉(헌릉)옆에 있었으나 계유정난(癸酉靖難)등으로 왕실이 풍지박살이 나자 세종대왕릉을 잘못 써서 그런거라는 루머가 돌며 천장을 해야한다는 상소가 빗발치자 새로운 왕릉 물색에 나섯다
원래 이인손의 묘가 있었던 현재의 세종대왕릉(영릉)에서 이곳으로 묘를 옮길 때 예종의 어명으로 묫자릴 찾아 나선 지관 안효래가 찾아낸 묫 자리가 여주 영릉이다, 이인손의 묘를 파내자 유해 아래 비단에 쓰여진 글에 "이 자리의 주인이 새로 나타나면 이곳에서 연을 날려 하늘 높이 떠오르거든 연줄을 끊어라. 그리고 연이 떨어지는 곳에 나의 묘를 옮겨라" 라고 적혀 있었다.
글대로 연을 날리자 연은 바람에 날려 서쪽으로 약 10리 밖에 떨어졌고 '연이 떨어졌다'고 연당 혹은 연주리라고 부르며 현재의 세종대왕면 신지리 가 되었다는, 일화가 전해온다, 봉화길을 마치며 상편은 여기까지다,
'경기옛길(조선시대 7大路) > 봉화길'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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