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경기옛길 봉화길을 마치며 下(세종대왕릉~장호원)2024년 10월 5일 본문
세종대왕릉 주차장을 지나 영릉근린공원으로 왔다, 여기서 세종대왕릉 스템프를 찍고 인증샷도 했다. 이 마저도 오늘의 추억을 기록하는 게 아닐까?
이곳에 있는 봉화길 이야기는 "대륙으로 향한 북벌의 의지, 효종대왕 이야기가 안내되여 있다, 1636년(인조 14년)12월 청태종이 12만명의 군사를 이끌고 압록강을 건너 조선으로 처들어 왔다,
청나라 군대는 불과 5일만에 한양에 이르럿고 강화도로 피난을 가지 못한 인조는 남한산성으로 들어가 항전을 했는데 그러나 이듬해 1월 30일 인조는 삼전도로 나가 청태종에게 삼배구고두의 예를 올리며 항복했다,
삼배구고두란? 여진족이 천자를 배알할때 행하는 의식인데 한번 절하고 세번 땅에 부딪치는 것을 세번 반복하는 것이다,
인조가 성의없이 머리를 땅에 부딪치자 청태종은 소리가 나지 않는다며 계속 다시할 것을 요구해 인조는 땅 바닥에 수십번 머리를 부딪쳣고 이로 인해 머리에는 피가 났어며 흘러내린 피가 용포를 적셨다고 전해진다,
이 치욕적인 항복 후 청나라에 8년간 불모로 잡혀있다가 귀국하여 죽은 형 소현세자를 대신해 왕위에 오른 이가 조선 17대 임금 효종으로 여주에는 2개의 영릉이 있는데
조선 4대왕 세종대왕릉(1397~1450)과, 제17대 효종(1619~1659)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세종대왕릉은 영릉(英陵)이고, 효종대왕릉은 영릉(寧陵)으로 같은 이름이지만 세종대왕릉은 꽃부리 英자, 효종대왕릉은 편안할 寧자로 한자가 다르다,
영릉을 지나 여주역으로 왔다, 옛 여주역은 1931년 12월 수려선 개통과 함께 지금의 여주시 홍문동에서 영업을 개시하였으며 1972년 4월 수려선과 함께 폐지되었던 여주역은 2016년 9월 24일 경강선 개통과 함께 여주시 교동에서 새롭게 출발하게 된다,
봉화길 제1길에서 제 7길은 여주역이 종점이다, 다음 제8길은 제6길의 종점이였던 부발역에서 설성면 행정복지센터까지 20여km의 길로
황금들녁의 비경을 찾아가는 결실의 길 이라는 이름의 자채방앗길이다, 자채방앗길은 사계의 변화를 누릴 수 있는 결실의 길이라고 한다,
자채방앗길은 이천시 중심을 가로 지르는 복하천과 그 지류 일대의 모심기부터 벼가 황금빛으로 물들때 까지 농부들이 흘린 땀방울의 결실을 체험하는 길이기도 하며, 특히 자체벼는 이천지방을 중심으로 일부 지역에서만 재배 되었던 양질의 재래종 벼를 말하는데 밥 맛이 유별나게 좋기 때문에 임금의 수라상에 올리는 진상품으로도 유명했다,
"동국여지승람"에도 땅이 넓고 기름져서 백성은 많고 부유하다 고 할 만큼 벼 농사로 이름난 지역이었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변화되는 주변의 풍경을 느끼며 걸어 보길 바란다는 경기옛길 재단의 추천사가 있는 길이 봉화길이다,
기독교 역사박물관이라는 곳도 있는데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 어떤 전시물이 있는지는 알 수 없고
하남에서 당정뜰에서 부터 출발해 먼 길을 왔지만 봉화로 종점이 하필 태백산 사고인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전주, 무주, 강릉, 강화 등이 각기 통영로, 제주로, 평해로, 강화로, 본선 또는 지선이 지나고 있으므로 사고는 기본적으로 대로로 연결되는 주요 지점으로 인식 되었던 듯하다,
사고의 전주본은 이후 1628년(인조 6)에는 강화의 마리산으로, 1660년(현종 1)에는 같은 섬 안의 정족산으로 옮겨 다니게 된다,
500년을 써 내려온 역사 기록물인 조선왕조 실록은 한국이 자랑할 수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이다, 이에 조선 왕조실록은 훈민정음 해례본과 더불어 1997년 10월에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되었으며
2001년 9월에는 승정원 일기와 프랑스에서 소장하고 있는 직지심체요절(하권)이 추가로 지정되었다, 세계기록 유산은 2004년까지 세계적으로 총 90건이 지정되어있다,
대강의 봉화로 경로를 살펴보면 한성 동대문이나 광희문을 나선 봉화로는 살곶이 다리로 청계천을 건넌 후
송파진, 광주 경안동과 곤지암, 이천, 음죽을 경유해 경기도를 벗어나고
이후 충주, 단양, 죽령, 풍기, 영주 등을 지나 봉화까지 이어진다,
그러나 현재의 봉화로 탐방길이 부발역에서 세종대왕릉으로 해서 여주역까지 이어지게 했는지? 그리고 다시
부발역에서 부터 코스를 달리해 장호원까지 이어지게 설계를 했는지에 대한 이유는 딱히 없는 것깉다,
봉화길이 여주역에서 부터 장호원까지 이어지는 길은 없었는지?
부발역에서 여주역까지 갔다가 다시 부발역으로 돌아와 장호원으로 가야하는 이유가 무었때문인지?
여주에는 영릉이 있고 1931년 12월 수려선 개통으로 지금의 여주시 홍문동에서 영업을 개시하였으나
1972년 4월 수려선과 함께 봉화로는 경기도 이천과 충청도 충주의 가흥창 및 서팡에서 분기하는 3개의 1차 지선이 있었는데
여주, 제천, 영춘, 청풍, 순흥, 예안 등이 이들 지선으로 연결된다, 봉화로 도로 관리는 한성에서 음죽까지는 경안도(慶安道)에서 이후의 구간은 연원도(蓮原道)에서 담당했다,
오늘날 봉화로 노선은 대체로 서울에서 장호원까지는 3번 국도, 장호원에서 충주까지는 38번국도, 충주에서 죽령까지는 36번 국도, 죽령 이후 봉화까지는 5번 국도 및 36번 국도로 연결이 된다,
대동지지 에 의거한 경기도 내의 봉화로 노선은 다음과 같다, 경도(京都) ~ 전곡교(箭串憍, 10리) ~ 송파진(松坡津, 5리) ~ 가장 가까운 남쪽의 율현까지 15리,
추령ㄲ자 30리, 용인까지 20리, 가장가까운 남쪽 나루인 심정까지 20리, 이보현까지 5리, 신현까지 15리, 경안역까지 10리) ~ 검북참 15리, ~ 경안역(慶安驛, 15리) ~쌍령점(雙嶺店, 10리) ~ 곤지애 10리, 광현(廣峴 15리) ~ 이천(利天) 20리)로
서울에서 130리, 분기점 ~ 장동점 30리(광현으로 진입하지않고 이천까지는 직진 고리로 45리) ~ 음죽(陰竹 20리, 서울에서 180리, 덩븍방향의 여주까지 50리) ~ 장해원(長海院 10리)다,
자료를 찾아보면 봉화로가 어디서 어디로 연결 되였는지 대충은 감이 오지만 지도로 남아 있는게 아니기도 하지만 설령 지도로 남겨져 있다고 하더라도
오랜 세월이 흐린 지금에 그 흔적을 따라 제대로 찾아간다는 것은 불가능 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라도 길을 이어준 경기도에 감사함을 표한다,
여기는 설성면사무소 지금은 설성면행정복지센터다, 봉화길 제8길은 여기서 끝이나고 제9길로 접어드는데
봉화길 제9길은 경기도 하남시에서 출발한 봉화길 경기도 구간이 끝나는 마지막 구간이다,
이천역에서 08시 45분, 25번 버스로 약 35분 정도 걸려서 도착한 금당1리(설성면행정복기센터)정류장에서 봉화길 제9길 봉화길 마지막 구간을 간다,
하남에서 2024년 5월 5일에 시작한 봉화길은 9월 29일인 오늘에야 끝맺음을 한다, 따라서 오늘은 경기옛길 7대를 모두 완주하는 날이다
설성면은 장호원읍과 부발읍, 그리고 신둔, 백사, 호법, 마장, 대월, 오가면 등 2읍과 6면으로 행정구역이 나누어져 있으며, 눈처름 순수하고 별처름 빛나는 고장이라는 소개를 하는 면이다,
장능1리(장수골)마을 회관을 지나 설정로 다리를 건너 농협 벼 자동화 공동 육모장을 지나서
세봇교 옆 드넓은 농토를 보면서
신필2리 마을을 지나간다,
지나가는 곳 곳이 한편의 동화속 그림같은 길을 따라 가다보니
마을 골목길 끝 지점에 신필 2리 마을회관이 있다,
신필 2리에서는 봉화길 제9길 종점 청미교는 12,6km나 남았고 설성면 행정복지센터에서는 3,4km라는 이정표를 보면서 설성산 방향으로 기다보면
앞에 보이는 나즈막한 산이 설성산으로
해발 280m의 설성산 정상은 이런 모습이다,
설성산 정상을 내려가면 산 중턱에 신흥사가 있다, 신흥사는 오랜 역사를 지닌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의 말사이자 경기도 전통사찰로 지정된 사찰로 신라 내물왕(재위 356~402) 때 창건된 절이라고 전해지는 사찰이다.
신흥사 표지석을 지나 내려가면 利川 雪城山城(이천 설성산성)이 있다, 설성산성은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삼국시대 산성으로 >이천시 장호원읍 설성산 봉우리와 그 아래의 큰 계곡을 포함한 험준한 산의 지형을 이용해 쌓은 지금까지 성의 자취가 비교적 분명하게 남아있어 성 전체의 윤곽을 알아 볼 수 있는데, 성 城의 둘레는 약 1km, 폭 5m, 높이 4∼5m다. 성은 바깥을 향해 경사지게 쌓고 안쪽으로 돌을 메우는 방식으로 쌓았는데, 매우 견고하게 발달된 성城 쌓기임을 알 수 있다.
설성산성을 지나가면 이천 선읍리 석불입상이 있다, 통일신라 말(統一新羅 末) ~ 고려초기(高麗初期)에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되는 불상으로. 신흥사로 오르는 진입로 옆에 있어며 원래는 불상 전체를 1석으로 조성한 것이 아니라 대좌(臺座)와 동체(胴體), 두상(頭像), 보개(寶蓋) 등 4부분으로 나누어 각각 1석으로 조성해 연결시켜 안치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옛 음죽군의 중심인 장호원은 본래 장해원이라는 역원에서 유래되는데 일제시대에 갑자기 장호원으로 바뀌였고 이 경위가 석연치 않다고 한다,<
장호원을 흐르는 청미천은 원래 천민천(天民川)인데 대동여지도 작성 과정에서 천미천으로 오기 되었고 나중에 지금의 청미천이 된 것이라 한다,
장호원읍과 설성면의 경계를 이루는 설성산에 있는 설성이라는 성城 은? 신라시대에 눈이 띠를 이루어 내려 쌓인 흔적을 따라 성을 축조했기 때문에 지은 이름 이라고 하고
선읍리는 봉화로 노선상에 위치한 3번 국도(경충대로)에 약간 빗겨 있으나 실제 옛길 노선상에는
지금과 같은 곧은 형태가 아니라 행려자가 머물기 위해 선읍리로 약간 우회하는 노선으로 표기되여 있다,<
원하리를지나 장호원농협 벼공동육묘장도 지나가면 다시 설성천과 만나게 되는데 여기서 부터 설성천은 천 폭이 매우 넓다,
설성천변 하류로 내려가다가 첫번째 다리인 풍계새마을교 를 건너서, 이어지는 설성천변 둑길은 일직선 길이다,
길은 계속해서 설성천 둑으로 이어지는데 둑안에 있는 농지에는 다양한 형태의 농업이 형성되고 있다
이천지역 하천 둑길에는 나무가 없는 곳이였는데 처음으로 장호원 설성천 둑에 새로 심은 나무들을 본다, 이제라도 나무를 심었다는게 다행이다, 설성천에서 두번째 다리인 풍계교 가 있다, 건너편에는 마을도 있는곳
>풍계교 오른쪽 가운데 농로가 봉화길이라서
풍계교앞 들녁 가운데 농로로 들어가는데 풍계교에서 설성산길 종점임 청미교 사거리까지는 3,4km정도 남은 거리다,
노탑1리 개자위 마을을지나 청미천으로 나가면 강 건너 멀리 산 중턱에는 큰 건물이 보는데, 저곳은 중부내륙 고속도로 옆에 위치한 감곡면 강동대학교로 음성군 감곡면 대학길 278 (단평리)에 소재하는 재학생 3,000명 규모의 공과대학이다
>청미천 상류 방향 둑길로 올라 가다가
하천변으로 내려가서
가을의 상징인 갈대 숲이 우거진 길을따라 올라가다가 보면
강 건너에 보이는 또 다른 저 큰 건물이 있는데 저 건물은 감곡 장호원역 근처에 있는 극동대학교로 호텔관광대학, 인재개발대학, 항공대학, 과학기술대학, 의료보건과학대학, 미디어예술대학 등의 학과가 있다는 대학이다,
청미천으로 들어와서; 2개의 다리를 지나면
끝이 보이지 않는 코스모스 꽃 밭이 기다린다,
기도 가도 끝이 없을 것 같은 코스모스 군락지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멀리 보이는 마을이 감곡이다
1864년 대동지지 봉화로 원형노선은 한양에서 송파진> 성남> 광주> 이천> 장해원> 충주> 서창> 단양> 풍기> 봉화까지의 길중 우리가 여기까지 온 길은 경기 관할인 하남에서 장해원까지의 거리니 아직도 봉화까지는 먼 거리가 남아 있다,
"대동지지(1864년)" 봉화로 원형노선
한양 ~ 봉화 전체거리는 500리, 196km이지만 경기 관할은 135km다,
(한양) 전곶교 -> 신천진 -> 송파진
(경기) 율목정 -> 남문 -> 검북참 -> 경안역 -> 쌍령점 -> 곤지애 -> 이천 -> 장해원
(충북) 오갑 -> 용당 -> 충주 -> 활강역 -> 수산역 -> 장위점 -> 단양 -> 죽령
(경북) 창락역 -> 풍기 -> 창보역 -> 연천 -> 내성점 -> 봉화,
(참고 문헌 :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원 김종혁 연구교수, 역사지리학자)
장호원교 앞 봉화길 제9길 두번째이자 봉화길의 마지막 스템프 함이있는 이곳은 청미교 사거리로 장호원은 복숭아가 유명한 모양이다, 봉화길 마지막 스템프에는 복숭아 라고 새겨져있고 이곳 스템프함에는 또 하나의 스템프가 있는데 경기옛길(봉화길) 완주 스템프인 태백산 사고 스템프다, 여기가 경기도 관활 봉화길의 끝이라는 게 된다,
135km는 자동차로 가면 1시간 30분 정도의 거리일 수 도 있다, 그러나 하남 당정뜰에서 부터 여기까지 걸어온 기간은 약 3개월 정도 걸렸다, 봉화길 9개구간을 매주 일요일 마다 걷다보니 2달이 더 걸렸고 여름철 더위를 피해서 걷느라 약 3개월만에 완주를 했으며 2024년 9월, 조선시대 주요 도로망이 였던 의주로, 경흥로, 평해로, 봉화로, 영남로, 삼남로, 강화로, 등 경기옛길 제 7대로를 모두 완주했다,
경기도지사의 봉화로 완주 인증서와 기념품, 지난 6대로 완주시때 보다 기념품은 더 깔끔해 졋다, 완주증이나 기념품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나 스스로의 기록이자 역사이니 소중하게 보관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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