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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선왕을 받든다는 뜻의 봉선사(奉先寺) 본문

국내 山行日記/인천·경기·강원

선왕을 받든다는 뜻의 봉선사(奉先寺)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24. 11. 20. 00:51

조선 7대 임금 세조와 왕비가 묻힌 경기도 남양주 광릉 옆에는 고찰이 하나 있다. 세조비 정희왕후 윤씨가 남편을 위해 중창한 원찰로 이름은 봉선사다.

奉先寺는 남양주시 진접읍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종 소속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이기도 하다. 고려 광종 20년인 969년에 승려 탄문이 운악산 자락에 절을 창건하고 운악사라고 부른 것이 봉선사의 전신이라고 전해진다.

봉선사로 이름을 바꾼 것은 조선 예종 때인 1469년이다, 왕의 어머니인 정희대비가 죽은 남편 세조의 능을 운악산으로 이장하여 광릉이라하고, 이 절을 세조의 명복을 비는 사찰로 삼아 '선왕을 받든다'는 뜻으로 봉선사라는 이름을 붙였다.

봉선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디딜방아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여기에 안치한 석물石物은 디딜방아로 추정되며 원래는 현 위치에서 남서방향으로 육백여보 상거相距한 백호능선 아래 인적이 뜸한 곳에 있던 것으로

돌의 빛갈과 이끼로 미루어 보아 오랜 풍상을 격어온 듯하며 오래전 선조들의 유물로 여겨지는 바 현재의 자리로 옮겨 선조들의 지혜를 되새기며 옛과 지금을 잇고 미래를 잇고자 여기에 안치했다, 오고 가는 길손과 선조들의 정감이 이어지는 곳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을 담는다, 라는 이야기다,

봉선사 현판은 예종 친필이기도 한 사찰로 1551년에는 교종의 으뜸 사찰로 지정되는 등 사세가 번창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때 소실된 것을 1637년에 복구했지만,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전소되어 현대에 복원한 건물이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국무위원을 역임한 태허(운암 김성숙)스님, 운허스님이 머물렀고, 운허의 친척 형이 되는 이광수도 은거한 일이 있다. 이 때문에 이광수 기념비가 절 입구에 세워져 있다.

운악사 일주문에서 큰법당으로 들어가는길 연못과 운악사 전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운악사는 대한불교조계종 25교구 본사로 전국 25개 교구 본사(本寺)다.

대웅전인 큰법당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느티나무는 500여년전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먼저 가신 선왕의 위엄을 기리고 능침을 보호하기 위해 절을 중창하고 절 이름도 운악사에서 봉선사로 고쳐 불럿어며 이때 절 입구 양지바른 곳에 느티나무 한그루를 정성스럽게 심었다,

예전부터 느티나무가 없는 절이 없을 정도로 느티나무는 사찰의 일부와도 같은 존재였다, 느티나무가 있는 곳에 사찰을 지은 것이 아니라 사찰을 위해 느티나무를 심은 것이다, 그후 이 느티나무는 대지를 향해 힘차게 뿌리를 남기고 가지는 두팔을 벌려 하늘을 떠 받들 듯 우람한 모습으로 성장했다,

봉선사를 둘러보기 전에 봉선사 가람 배치도를 살펴보면

2층누각인 이 건물은 큰법당으로 들어가는 첫번째 건물로 청풍루다,

청풍루 옆 오른쪽에는 범종각이 있다,

청풍루 중앙 통로로 큰법당으로 들어 간다,

큰법당 마당으로 들어서면 봉선사 유래 안내판도 있고

큰법당이다, 봉선사 대웅전 건물의 현판은 다른 사찰과 다르게 한글로 '큰법당'이라고 쓰여 있다. 그리고 기둥에 걸린 주련도 모두 한글이다. 이 현판과 주련의 글씨는 서예가인 봉화금씨 운봉(雲峯) 금인석(琴仁錫 : 1921~1992)의 작품이다. 우리나라 불교대중화를 위해 앞장섰던 운허스님이 서예가 금인석에게 청하여 쓴 것이다.

큰법당 오른쪽의 당우는 지장전이고 지장전 앞에는 방적당이 배치되여 있다,

큰법당 왼쪽은 관음전이 있으며 관음정 앞(처마 만 보이는 당우)에는 운하당으로 방적당과 마주보고 있는 건물이다, 

관음전 뒤 언덕에는 삼성각이 있다,

큰법당 뒤에는 조사전과 그 옆 앞쪽으로 개건당도 있는게 보인다, 

큰법당을 한바퀴 돌아나가면 큰법당으로 들어올때 통로 건물이였던 청풍루가 큰법당과 마주보고 있다,

남양주 봉선사 큰법당은 불교 대중 문화에 앞장선 운하 스님이 1970년에 조성한 건물로 대웅전이라는 명칭대신 큰법당이라는 한글 편액이 달려있다, 한국전쟁때 타버린 대웅전을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새롭게 지은 것으로 형태는 정면 3만, 측면 2칸이다, 1960년대 정부의 공업화 정책으로 문화재 건축 사업에도 철근콘크리트 구조를 도입한 시대상황이 반영된 것이다,

문화재로 지정된 비로자나삼신 쾌불도 - 보물 제1792호 안내도 있다

봉선사 큰법당은 - 등록문화재 제522호다, 그러나 큰법당 앞 마당에 있는 삼층석탑에 대한 문화재지정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

이 외에도 봉선사 문화재는 => 봉선사 동종은 - 보물 제397호로 지정되였고, => 봉선사 목조불 좌상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3호, => 봉선사 칠성도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4호, => 봉선사 독성도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5호 등이 있다,

봉선사는 큰 절이기는 하지만 오늘은 돌아가야할 시간이 빠듯하여 서둘러 일주문을 나선다, 돌아갈때도 아침에 타고 들어온 2번 마을버스로 오남역으로 돌아 간다, 2번 마을 버스는 여기가 종점이자 출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