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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북한산성 행궁지(2015년 11월 8일) 본문

국내 山行日記/서울·북한·도봉

북한산성 행궁지(2015년 11월 8일)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5. 11. 10. 07:40

 

딱히 가야할 곳은 없다,

그러나 어디라도 훌쩍 떠나지 않으면 뭔가 억울할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어디를 가도 울긋불긋 가을색이 호사로움을 더해주기 때문이다,

산영루 비석거리를 지나 대남문으로 올라 가는길,

화강암을 정으로 다듬어 모양을 낸 석축을 쌓아놓은 곳이 나온다,

이 지역이 북한산성 행궁지(北漢山城 行宮)다,

북한산성 행궁북한산 상원봉 아래에 위치했던 행궁으로, 실제로 사용된 적은 없다.

 중성문을 지나 남쪽 골짜기로 진입해 동장대가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후 도성의 방위 체제를 강화하기 위하여 북한산성을 축성하고 임금이 거처할 수 있는

행궁을 만들었다. 숙종 37년(1711)에 착수하여 이듬해 5월 완공하였다.

성 외곽의 전략적인 요지인 북한산성에 위치한 행궁은 남한산성 행궁, 강화행궁과 더불어

전란을 대비한 임시궁궐이며, 도성 방어의 의지를 표출하기 위해서 축조된 것으로 다른 행궁과는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는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역사적, 학술적 가치가 큰 곳이다.

↓ 1904년경의 행궁사진

 북한지에 있는행궁지 위치도

생각보다 행궁지는 괘나 넓다,

문화유적 관리팀에서 이곳 행궁지에 대한 조사는 모두 마쳣겠지만 이대로 둘수는 없을것 같다,

하루라도 빨리 복원해서 문화유산을 이어가야 할것 같은데 이곳 행궁의 역사적인 가치는 정녕 없는 것일까?

 

 

北漢山城 禁衛營移建記(북한산성 금위영 이건기비)다,

임진왜란이후 중앙 군영인 삼문군(훈련도감, 어영청, 금위영)을 설치하여 서울도성을

직접 방어하게 했는데,  이들 중앙군영을 동원하여(1711년 숙종37년)북한산성을 축성하고

현지 주둔부대 유영(留營)을 두어산성의 수비를 구간별로 나누어 맡게 했다,

 

이 삼군 유영 중에서 금위영 유영 만이 높은곳에 위치해 비바람에 무너질 위험이 있기에

이곳으로 옮기게 되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비가 이 비석이다, 

- 유영이란? 현지주둔부대로 이해하면 된다, -

↑ 비문에는 금위영이 용암봉에서 보현봉까지 성곽을 쌓고 축성이 완료된 뒤에도

해당구간을 맡아서 수비했다는 사실과  시단봉에 금위영의 지휘소인 동장대를 세웠다는 것과

보국사, 보광사, 용암사, 태고사를 금위영 유영 관할에 두었든 사실도 함께 새겨저있다,

- 금위영은 훈련도감, 어영청과 더불어 국왕호위와 수도방어의 핵심 군영의 하나였다, -

 

 

대성암 부도다, 고양시 북한동 163번지, 어영유영지 터에 자리잡은 대성암은

북한산성 계곡에서 대남문으로 가는 등산로에서 대남문에 고의 다 다르면 오른쪽에 있다,

이곳은 율곡과 이순신 장군 율곡의 어머니 신사임당을 산신으로 모시고 있다,

지금은 중창건 불사가 진행중이 였다,

대성암 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