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비, 구름, 계곡의물소리,-북한산삼천사(2011, 7, 11)조블뉴스 본문
장마철인 토요일, 7월 9일 오늘도 아침부터 비가 내립니다,
기상대에서도 오전에는 비가 올거라고 했어니 비가 오는게 맞겠지요,
비가와도 눈이와도 추어도 더워도 토요일은 언제나 산을 찾는 사람들이,
오늘은 구기동에서 승가사를 거쳐 사모바위 승가사로 갑니다,
내리는 비를 온몸으로 맞어며 구기동에서 승가사 입구까지 올라왔습니다,
천년의 고찰인데도 분별없는 화강석 공사로 온통 역사를 망가뜨려 놓은 절인 승가사는, ~ 그냥 패스~
비가 잦아드니 이번에는 짖게 안개가 끼입니다,
언제 어느철에 보아도 항상 웅장하고 멋스러워 보이는 비봉,
오늘도 변함 없이 그자리에서 등산객을 만납니다,
향로봉 아래 산줄기에 깊은 운무가 끼이니, 한층 더 멋스럽게 보입니다,
주말이면 언제나 등산객으로 발디딜틈도 없는 사모바위앞
비도 오고 아직은 아침 이른시간 이라 그런지 사람도 없고 텅비어 있습니다.
그나마 몇 안 되는 등산객들만 가랑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멋스러운 북한산을 맘껏 즐기고 있습니다
의상능선 넘어 노적봉, 백운대, 만경대,도 짖은 안개로 아주 색다르게 보이네요
구름에 가려있는 백운대와 그 주변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용출. 용혈.
증취봉의 눈부신 자태가 짖은 운무속에서도 반짝거립니다
사모바위 에서 지척에 건너다 보이는 나한봉과 나월봉,
그리고 문수봉까지 짖은 운무가 감싸고 돌아 풍광이 아주 멋스럽 습니다
이 좋은 풍광은 그냥 바로 지나칠수가 없습니다,
일년내내 북한산을 오르면서도 좀처름 보기 힘든 광경이라 그저 마냥 바라봅니다,
사모바위 아래서 삼천사 가는길은 응봉능선으로 가는길과 삼천사 계곡으로 가는길이 있습니다
삼천사 계곡길로 삼천사 까지는 4km 입니다, 오늘은 삼천사 계곡길을 따라갑니다,
사모바위 앞 응봉능선 과 의상능선 중간에있는 계곡길로 삼천사로 하산하는 길은
여름철에는 숲 그늘과 계곡물이 맑아, 많이 찾는 북한산 코스입니다
장마철이고 오늘도 비가 많이와서, 사람이 다니는 길인지
그길이 그냥 물길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물이 넘처납니다
그냥 모두가 계곡이고 보이는것 마다 물 입니다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만으로도 충분히 시원 합니다,
물길에 스쳐 불어오는 바람마저도 냉기가 감도는곳 여기가 북한산 삼천사 계곡 입니다,
물만 보면 풍덩 뛰여드는 열풍이 여기서도 예외는 아닐듯 한데,
문제는 물이 많이 차다는거, 그래서 용기가 안납니다
결국은 물장구도 치고 한바탕 신나게 즐겼습니다,
삼천사 입니다, 삼천사에 들리면 꼭 보고가야 하는것이
지마애불입상(고려불상) [三川寺址磨崖佛立像] 입니다, 보물 제657호로.
총높이는 302㎝, 불상높이 259㎝. 로서 이 상은 삼천사 위쪽에 있는 병풍바위로 불리는
암벽에 융기선으로 표현된 것인데, 전체적으로 입체감이 없으며 선(線)을 따라 금분(金粉)을
칠하여 원래의 모습이 약간 손상되여있습니다. 불상의 좌우에 네모진 가구공(架構孔)이
있어 목조건물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소발(素髮)의 머리에 큼직한 육계가 있으며 풍만하고 둥근 얼굴의 입가에
미소를 띠고 있어 온화한 느낌을 주며 목은 굵고 긴 편이며 삼도(三道)가 목걸이처럼 늘어져 있다.
어깨에 걸친 통견(通肩)의 법의 옷주름은 사선으로 촘촘하게 새겨져 있으며, 가슴 앞에서
U자형으로 넓게 벌어져 대각선의 내의와 리본처럼 묶은 군의(裙衣)의 띠매듭이 보인다.
오른손은 아래로 내려 옷을 살짝 잡았으며, 왼손은 엄지손가락을 구부린 채 배
앞에 두었다. 발은 복련(複蓮)의 연화대좌 위에 놓여 있는데 좌우로 벌린 표현이 어색한 느낌을
준다. 광배는 간략하게 표현되었는데 원형 두광(頭光)은 2줄의 선으로, 신광(身光)은 1줄의 선으로
되어 있다. 이 상은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간략한 조각수법으로 표현되었으며 손과 발의 표현에서
미숙한 면이 보이지만 원만하고 균형이 잡혀 있는 고려 초기 마애불 중의 하나다
(다음 백과사전 참고)
삼천사는 서기 661년(신라 문무왕 1) 원효(元曉) 대사가 개산(開山)하였다.
1481년(조선 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北漢誌)》에 따르면 3,000여명이
수도할 정도로 번창했다고 하며 사찰 이름도 이 숫자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측된다.
1592년(조선 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승병들의 집결지로 활용되기도 하였고,
임란 중에 소실 되었으나 뒷날 이 절의 암자가 있던 마애 여래 길상터에 진영 화상이 삼천사라
하여 다시 복원하였다
사찰에서 2km 위쪽에 위치한 옛 삼천사 터에는 대형 석조(石槽)와 동종(銅鐘),
연화대좌(蓮花臺座), 석탑기단석(石塔基壇石), 석종형부도(石鐘形浮屠), 대지국사(大智國師) 법경(法鏡)의
비명(碑銘)이 남아 있는데, 그 중 동종은 보물로 지정받아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참고 자료,/ 삼천사 홈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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