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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흐르듯이 순리대로

1400년의 세월이 녹아내린 소백산 희방사(2013, 1, 22)조블뉴스 본문

국내 山行日記/그곳에 가고싶다

1400년의 세월이 녹아내린 소백산 희방사(2013, 1, 22)조블뉴스

물흐르듯이순리대로 2013. 1. 22. 15:44

국립공원 소백산 희방사 주차장에서 40여분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희방사가 나온다,

승용차를 가지고 갔다면 희방사 입구까지 올라갈수도 있다,

 

주차비 5,000원에 희방사 관람료 2,000원,

주차비 내고 입장료 내고, 국립공원은 무료인데 절집에서 돈은 왜 받어?

절 대문에 매표소를 만들어 절구경 하는 사람이나 받을 일이지?, 등산객 까지 무조건

다 돈을 받는건 비단 여기 뿐만은 아니겠지만 문제는 있다, 여기도 돈 내는곳

표시는 기가 막히게 크게 만들어 놓았다,

 

 

 

 

소백산 남쪽 기슭, 해발고도 850m에

신라선덕여왕 12년인 643년 두운조사가 창건한 사찰 희방사 바로 밑에 내륙지방

최대 폭포인 높이 28m의 희방폭포. 폭포가 떨어지는 계곡에는 커다란 바위덩어리와 숲이

펼쳐진다. 지금은 폭포가 꽁꽁 얼어붙어 이곳에서 솟아지는 폭포수는 볼수가 없었다,

 

 

희방폭포 바로 위로 폭포 관람 전용 계단길까지,.

지금은 페쇄되여 있다,

 

 

 

 

 

 

여름이면 울창한 숲에 잘보이지도 않을것 같은 희방사,

절 옆 두갈래 계곡에 물이 흐르는 여름이면 바라 보는것 만으로도 시원할것만 같은곳,

헉, ~ 이 모습이 아닌데 너무 아쉽다,

고즈녁한 산사, 희방사의 작고 아담한 그리고 자연에 녹아든 옜 모습만 남아 있는 내게는,..

이렇게 큰 건물이 꼭 필요 했을까? 무었을 하려고? 움막에서 기도정진하든 참 스님들은 어디로 갔을까,

더욱이 기둥까지 콘크리트를 부어 만들고 덧칠까지 해 멋을 내려고 했어나 어슬프기 까지하다,

소백산(小白山) 희방사(喜方寺). 경북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313-3 에 있으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 의 말사다. 소백산 연화봉 아래 해발 850m의

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 희방사는 신라시대 선덕여왕 12년(683)에 두운(杜雲)

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희방사(喜方寺)란 절 이름은

창건 설화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370년 전 두운대사가 태백산 심원암에서 소백산 연화봉밑 작은동굴에서

기도정진을 하고 있었는데 눈보라가치든 어느 겨울날 호랑이 한마리가 굴로 뛰여

들어 고통을 호소했다, 호랑이는 사람을 먹고 비녀가 목에 걸렷는데 두운대사는

이를 빼주고 호랑이를 살렸다,

 

그후 호랑이는 두운조사의 은혜를 갚고자 어느 양가집 규수를 물어다

주었는데 이 양가집 규수가 경주호장의 무남독녀 외동딸이였다, 두운대사 때문에

외동딸을 살린 경주호장은 그 은혜로 이 절을 지어 주었다, 그리고 절 이름도

은혜를 갚게되여 기쁘다는 뜻의 기쁠 희 喜 와 두운조사의 참선방

이라는 모 방 方 을 써서 喜方寺 라 하였다 한다,

희방사에서는 1568년 선조 1년에 새긴 월인석보, 1, 2권의 판목을 보존하고 있었어나,

6, 25전쟁으로 희방사 법당과 훈민정음 원판, 월인석보 판목 등이 소실되었다. 1953년에 중건했어며,

희방사 동종 (경북유형문화재 226)과 월인석보 책판을 보존하고 있다.

월인석보는 수양대군이 세종의 명으로 석가세존의 일대기를 국문으로 엮은 석보상절 과

세종이 석보상절을 보고 석가세존의 공덕을 찬송하여 노래로 지은 월인천강지곡 을 합친 책이다.
불경언해서로서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글자와 말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1권 머리에

훈민정음 판 15장, 30면이 얹혀 있어서 국어사 연구의 자료로 이용되는 귀중한 것이다,

↑ 절에가면 대웅 大雄 이란 현판을 볼수가 있다, 그럼 대웅보전 이란 무었일까?

이는 불교경전인 법화경, 에서 석가모니를 " 위대한영웅 " 즉 대웅 이라 유래한 부처님의 덕호이며

대웅전 大雄殿 이란 천지간의 대웅이신 석가모니를 봉안해 놓은집을 대웅전이라 한다,

이를 격을 높여 대웅보전 大雄寶殿 이라 한다,

 

 

지옥중생을 다 구제한 다음 부처님이 될것을 서원한 보살이 지장보살이다,

바로 그 지장보살을 봉안한 법당이 지장전(地藏殿)이다, 명부전, 시왕전, 업경전, 이라고도 한다,

좌우협시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리고 열분의 시왕과 시중을 드는동자, 판관 2명, 녹사 2명,

금강역사 2명등을 포함해 29구의 존상이 봉안된다, 그러나 단독의 지장보살 혹은

지장삼존상만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희방사의 지장전의 건물 양식은 정면과 측면 각 3칸에 팔작지붕 이다,

지장전 앞에는 조선시대의 칠층석탑과 근래에 조성항 석등이 있다,

지장전(地藏殿) 편액은 동곡 일타 스님의 글씨다,

법호는 동곡 東谷, 법명은 일타 日陀 이며, 1929년 9월 2일 공주 우성 동대리 182 에서

출생하여 1942년 양산 통도사에서 윤고경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비상종회의원,

초대 중앙종회의원, 이후 2, 3대 중앙종회의원, 합천해인사 주지, 영천 은혜사 주지를 역임하신

뒤에 은해사 조실로 주석 하셨어며 1999년 11월 29일 미국 하와이 와불산

금강굴에서 입적하였다,

경북유형문화재 226호인 희방사 동종

1742년 조선영조 18년에 주조된 것으로, 머리부분이 둥글고 아래로 가면서 살짝 벌어지는 형태의 종.

종을 거는 고리가 2 마리의 용 으로 되어 있고, 몸통은 가운데 2줄의 띠를 둘러 2 부분으로 나누고 있는종이다

위쪽 어깨부분에는 범자를 새겨 둘렀으며, 아래에는 4군데에 유곽을 배치하고 그 사이에 보살입상을 두었다.

몸통 아랫부분에 명문이 새겨 있으며, 입구에서 조금 올라간 부분에는 꽃무늬와 덩굴무늬로 띠를 둘렀다.

이 동종은 전통적인 수법에 외래 요소인 쌍룡의 고리와 띠 장식이 가미된, 조선 후기 범종의 한 유형인

혼합 형식의 종으로 비교적 안정감이 있는 범종이다,  - 백과사전 참고 -

예전부터 남아 있는 희방사의 모습,

저 모습을 아름다운 모습을 콘크리트 덩어리가 막고 있다니?

 

이제 희방사를 떠나 연화봉으로 올라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