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흐르듯이 순리대로
북한산 원효봉지나 대동사로 - 1,(2009년 6월 22일) 본문
북한산성 입구에서 보이는 삼각산모습, 오른쪽은 지난주에 지나온 의상봉이고
그 뒤로 용출봉이 보이고 왼쪽은 오늘 내가 가려는 원효봉이다, 가운데 운해에 걸려있는 노적봉도 보인다,
이 삼각산은 쥐라기 중기(1억 8천만~1억 6천만 년 전)에 화산 분출이 있은 뒤 만들어진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라고 하는데, 곳곳에 바윗길이 많아 산행하기에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다.
북한산성계곡을 따라 원효봉 으로 간다, 등산이라는 게 뭔가?,
오랜시간 오르막길과 능선을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내리막길을 걷는것이 아닌가, 때로는
푹신푹신한 흙길을, 때로는 울퉁불퉁한 바윗길을, 때로는 나무 계단이나 돌계단을 걸어며 세상만사
근심걱정 다잋고 자연의 품에 자신을 내 맞기며 즐기는게 아니든가, 오늘은 지난주 의상능선에서
건너다 본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이 끌어 들이는 엄청난 매력에 빠저
기어이 원효능선을 찾아 나섰다,
토요일날 그리도 많은 비가 내렸음인가, 계곡물이 많이 불었다,
성급한 이들은 시작부터 계곡물에 발 담그고 더위를 식힌다, 북한산성 계곡을 한참을 올라가다가 덕암사로
들어간다, 덕암사라는 절은 이렇게 바위틈에 대웅전을 만들고 대웅전 옆에는 큰 불상을 세워놓았고 불상 10여미터 아래
작은 석탑을 만들어 놓은게 전부인 작은 암자다, 북한산성내 절은 거의가 1712년 성능(聖能) 스님이 북한산성 도총섭이
된 이후에 승병이 머무르는 군영 (軍營)으로 창건되거나 중창된게 역사인데 이 절의 형태로보면 요즘말로
유격승병이 머물럿든 절인지 아주 으슥한 곳에 통상적이 사찰의 생김새와는 다른 모습의 절이다,
대웅전 옆 끝에서 수풀을 헤치고 시구문으로 간다,
덕암사 옆 산 비탈길을 따라가다가 얼마되지 않은 곳에서 북한산성 제일 북쪽에 자리하고 있는
시구문을 만난다, 앞 사진은 성 안에서 밖으로 내다보는 사진으로 성내였든 셈이고, 뒤 사진은 성밖
효자동에서 올라오면서 보이는 시구문(암문)이다, 시구문이 라는게 뭔가, 죽은 사람이 나가든 문이 아닌가,
옜날 어른들께서는 궂이 이 높은곳까지 힘들게 시신을 모시고 올라와서 성을 나가게 했을까?
그기에는 무슨 뜻이 숨겨저 있는 것일까?,
시구문에서 한참 생각을 더듬다가 북한산성을 타고 원효봉으로 올라간다,
이곳은 산성위에 이렇게 돌계단을 만들어 등산로를 정비해 놓았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돌계단 옆이
시구문에서 훤효봉 북문으로 이어지는 성곽으로 현재의 돌계단은 성곽위다,
산은 늘 그자리에 그대로 있는게 아닌가, 굴곡진 인간살이를 내려다보며
늘 그렇게 듬직한 모습으로 우릴 지켜보고 있지않은가, 그래서 산에 오르는길은 언제나 숨차다, 그러나
그 품에 안기는 마음은 언제나 늘 넉넉하기에 물소리 바람소리 새소리를 닮으러 우리는 산에 오르는게 아니든가,
흙한점 없는 바위 한가운데 붙어 살아남은 이 소나무는 여기서 얼마나 살았을까, 청정한 솔잎의 푸르름이
뚝뚝 떨어져 내리는듯한 전율을 느낀다, 경이롭다, 이 소나무에 비하면 인간은 얼마나 나약한가
원효암이다,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수도하기 위해 세운 암자이며
조선 숙종39년(1713년)북한산성 축성후 산성의 수비를 위해 중창 보수 되였다가 6,25때 부분 소실된것을
1955년에 복원한 기도 도량이라고 하며 암벽 아래는 원효가 지팡이로 뚫었다고 전해지는 약수가 있다
원효암을 나와 원효봉으로 올라간다,
여기는 원효대사의 얼이서려 원효라는 이름이 붙혀지게 되였나보다,
꽤나 멀리온것 같은데 내려다보니 아직도 시작이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오늘 내가 올라 오려다가 포기한 치마바위 암벽에
릿지산행을 하는 사람들이 올라오는게 보인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도루 내려가서 저기에
붙어보고 싶다, 다음에는 무조건 저길로 올라오리라, 사실 릿지산행은 보기에는 위험해 보여도
길만 잘알면 그렇게 위험한건 아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여자들도 많이 즐긴다
어제(2009, 6, 20, 토요일) 비가 많이 오더니 오늘은 무척 덥다,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바람, 노래에도 있듯이 산위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게 마련인데
어찌 오늘은 바람한점 없을까, 땀이 비오듯 흐른다, 덕분에 짊어지고 온 물통이 벌서 동이나 간다,
갈길은 아직도 많이 남았는데 ~ 코앞에 다가온 앞산을 바라본다, 의상대사가 수도 정진했다는
의상봉과 의상능선을 타고 용출봉, 용현봉, 중취봉, 나월봉, 나한봉, 문수봉이 순서대로
그림처럼 하늘에 뜨있다
원효암에서 원효봉으로 가는 길 중간에 단 한번 이런길이 나온다,
튼튼하게 쇠말뚝을 박고 쇠줄까지 걸어놓은것도 모자라 바위를 깍아 계단까지 만들어 놓았다
그래도 오르고 내려 가는길을 조금만 방심하면 큰일 치루기 딱좋은 길이다,
만만하게 보고 덤비다가 가끔씩은 사고가 나기도 한다, 하기는 평지에서도 길가다가 헛디뎌 넘어지는
일이 다반사인데 더욱이 산길에서야 더 말해서 무었하겠는가, 평지고 산길이고 조심하는수 밖에 없지않은가,
산길이 지루할때는 이런길은 양념길이 아니든가,
원효봉 정상이다,
벼랑끝 북쪽으로 산성을 쌓은 곳에 이렇게 꽤나 넓은 공간이 있다,
이정도 크기라면 여기다가 군막도 설치하고 훈련도 했음직한 장소로 보인다,
사실을 알길은 없지만 그런 생각이 든다
남쪽 벼랑끝을 보니 치마바위릿지로 해서 원효봉정상 으로 올라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사진에 보이듯이 별다른 장비없이 손발로 붙어 올라오는 사람들이다, 다음에는 저길로 올라와야겠다 얼마나 재미 있을까,
눈앞에 떠억하니 다가온 염초봉, 그 뒤로 바로 백운대가 맞닿아 있다,
바라 보는것 만으로도 숨이 멋는것같다, 이런 장관을 두고 웅장하다고 해야하나,
아니면 아름답다고 해야 하나,.. 원래 염초봉은 백운대로 가는길이다, 그러나 이 염초봉에서
백운대로 가는 구간은 북한산에서 제일 위험하고 사고가 많이 나는 구간이라 간간이
설치해 놓았든 쇠줄도 철거하고 등산로도 페쇄했다,
북한산에서 가장높은 봉우리인 백운대(표고 836m)는
이성계가 조선창업이전에 이곳에올라 "흰구름 가운데 있다" 고 하여 이름 붙여졌고
그 우측에 보이는 만경대(표고 799m)는 조선 태조가 도읍을 정할때 무악대사가 이곳에 올라
도읍을 정하였다고 해서 國望峰 이라는 이름도 가지고 있다,
우측으로 노적봉(표고 716m)이 위치해 있고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백운대 앞에 있는 인수봉(표고810m)은 공자의 " 인자요산 인자수(仁者樂山 仁者壽)"
즉 어진사람은 오래산다는 뜻에서 어질 " 인" 자와 목숨 "수" 자를 사용하여 인수봉이라 하였다,
백운대와 만경대, 인수봉, 세개의 봉우리가 뿔같이 솟았다 하여 삼각산이라 불리였는데
지금은 삼각산이라는 이름보다 북한산이라는 이름을 쓴다,
바라다보이는 봉우리들은 의상대사가 참선수도하였다 하여 의상봉으로 불리며
의상봉에서 문수봉까지 이어지는 능선을 의상능선이라 하며 이 능선은 3,5km의 성곽으로 이어저
북한산성 총연장 8,4km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의상봉이 의상대사가 참선수도 한 곳이라면 원효봉은
원효대사가 수도한곳이라 하는데 두거목이 마주 바라다보고 까꿍하셨나, 하기는 의상대사가
스물 아홉에 출가하신 이후 원효대사와 함께 당나라에 유학길을 떠나신 분들이시다,
선덕여왕 13녕 644년 경이니 참으로 오래전 분들이다,
원효봉에서 보면 도봉산이 지근 거리에 있다,
도봉산의 여러 봉우리들이 여기서도 잘 보인다, 도봉산을 바라보며 성길을 따라 천천히
원효봉과 염초봉 가운데 제일 낮은 곳에 자리한 북한산성 북문으로 내려간다
여기가 북문이다, 그러고 보니 북한산성중 에서도 제일 북쪽에 있는 문인데,
다른 대문들에 비해 성문누각은 훼손된 채로 있다, 언제인가는 복원이 되겠지만 전란중에
불타없어진 북문을 보니 이 북한산성은 우리 민족의 아픔의 역사를 오래도록 함께
한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북문 앞에서 성길을 따라가면 가파르게 염초봉으로 올라가는 바위길이 나온다,
오늘은 북한산관리공단에서 나온 근무자가 산꾼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하도 많은 사고가 나는
구간이라 입산통제를 했고 전문 암벽 산악 장비를 갇춘 사람들에 한해서만 등반을 허가 한다,
무척이나 염초봉의 품에 안겨보고 싶지만, 염초봉은 끝내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일반산악인들은 여기서 북문바로 아래 위치하고 있는 상운사와 대동사를 지나
백운대와 만경대 중간계곡길 로 우회해서 백운대로 가야한다, 결국은 하산했다가 다시
힘겹게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길로 가야 한다는 뜻이다,
북문에서 백운대와 노적봉 가운데 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은 아주 잘 만들어 놓았다,
내려가다가 중간지점에서 왼쪽으로 나있는 상운사로 들어간다, 절집으로 들어가는길 치고는
오솔길일 뿐만 아니라 무심코 지나가면 눈에 잘 띠지도 않는 있는듯 없는듯한 길로,.
상운사는 삼각산 염초봉아래 자리한 ‘상서(祥瑞)로운 구름 속의 사찰’ 이란 뜻이다,
상운사는 북한산의 대표적인 사찰 가운데 하나로 원효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등 수려한 봉우리들이
병풍처럼 둘러처진 곳에 세워져 있다.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상운사는 신라시대에 원효스님이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길에 북한산에서 잠시 수행할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 절이다,
현재 상운사 사찰의 규모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지만, 한때는 130여 칸에 달하는
절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한산성 안의 많은 사찰들이
흔적도없이 사라져 버린 상황 속에서도 상운사는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며 남아 있다.
상운사는 북한산에서 3 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로, 경내에 있는
오래된 향나무는 아이를 못 낳는 사람들에게 아이를 낳게 해주고, 영험있는 약사 부처님이 있는
절로도 유명 하다고 한다. 상운사 대웅전 뒤로 보이는 염초봉이 아주 멋있다
상운사에서 내려가니 바로 이웃해서 대동사라는 절이 나온다,
상운사는 대웅전에서 부터 모든 건물의 문이 닫혀있기는 했어도 절마당은 오픈되여 있었다,
대동사는 아예 절에 들어오지도 못하도록 울타리를 처놓고 자물쇠를 채워놓았다,
스님들이 수도하는 공간이라 일반인들의 접근을 차단 시켰다,
대동사 일주문은 특이하게 나무를 깍아 만들어 놓았다,
왠지 절집의 통상적인 일주문과는 다른 느낌이 온다, 기둥마다, 앞뒤 사면에 금색으로 뭐라고
써 놓았는데 그중에서 몇줄을 소개하면 "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다 허망하다, 만약 모든 형상을
형상이 아닌 것으로 본다면 곧 여래를 보리라, "나의 한 생각이 나를 비롯한 우주 만물을 창조
하였으니 남을 탓하지 말고 참회 합시다, 라고 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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